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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에서 할례

LNCK 2011. 3. 5. 22:42

 

◈길갈에서 할례          수5:2~9, 골2:11~12          10.08.13.설교녹취 

                                                                                                       김성수 목사 사사기강해3강 15‘~30’

 

구약을 이렇게 자세하게 공부하는 이유는,

신약의 십자가, 세례의 의미를.. 구약이 더욱 (배경으로) 풍부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약을 만약 무시하면.., 신약도 자기 나름대로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요단강..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에 의해 건너다.

 

▲12돌을 쌓은 이유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자마자, 가장 먼저 당도한 가나안 초입이다.

마치 인천상륙작전 후에 인천을 거점으로 남북으로 전개해 나갔듯이,

이스라엘은 요단강 도강 후에, 길갈을 거점으로 가나안의 남과 북으로 확장해 나갔다.

 

하나님은 그곳에 12돌을 쌓게 하셨고,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명령하셨다.

 

12돌을 길갈에 쌓은 것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순전히 언약궤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을 건너되,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는 기념이었다. 수4:19~21

 

 

▲언약궤가 제일 먼저 입수했고, 강 중앙에서 기다리다가, 제일 나중에 빠져 나왔다.

 

영화에 보면, 월남전 같은데서, 지휘관이 제일 먼저 헬기에서 내리고, (가장 위험한 선봉에 서고)

작전을 다 마치고 모든 군인들이 다 헬기에 탄 후에,

지휘관이 마지막으로 타고, 헬기가 뜬다. (가장 위험한 후미에 선다.)

 

마찬가지로 요단강을 건널 때,

언약궤가 제일 위험한 대열의 선봉에,

또한 제일 위험한 대열의 후미에 섰다는 것이다.

 

요단강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가면.. 갈라지고,

백성들이 요단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는 요단강 가운데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언약궤가 대열의 마지막으로 요단을 건너자마자.. 강물은 다시 합쳐졌다.

 

그러니까 그 요단강의 건넘은

이스라엘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들이 열심히 뭔가를 해서.. 강물이 갈라져 건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 즉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건넌 것이다.

 

▲4백년 전 언약의 성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미 4백년 전에 언약을 주셨다.

‘네 후손이 가나안에 갔다가 4백년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라’언약이었다.

창15:13~14을 찾아서 읽어보시라.

 

언약궤가 앞장을 섰다는 것은,

그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언약이 유효해서,

지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창15장의 그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장 선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앞장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이 앞장서서,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지금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최초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여호수아서, 사사기의 ‘가나안정복전쟁’의 본질

자기 땅이 없는 노예민족에게, 그저 땅을 주시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이 주도해서 성취되고 있다’ ..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언약궤가 앞장서서 요단을 건너고,

또 강 중앙에서 돌 12개를 주워서, 서편 길갈에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구원역사)을 이루는 전쟁’ 임을 너희가 명심해라는 것이다.

 

 

길갈에서 할례를 통해 언약이 강화되다.

 

▲요단을 건넌 후. 하나님은 길갈에서, 할례를 명하셨다.

 

수5:2~3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드디어 당도하자마자 

이스라엘이 제일 처음 행한 것은 ‘할례’였다. 

 

수5:8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주1)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애굽의 수치.. 아마 애굽의 노예살이의 수치를 뜻한다고 본다.

그런데 그 수치를 없애 버리기 위해,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데..,

 

▲할례의 의미.. 육의 죽음

할례, 즉 생식기의 표피 끝을 자르는 것은,

(생식기는 남자의 전 존재를 의미한다.)

인간이 자기 전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 남자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거세되었다/죽었다는 표식sign이다.

 

정리하면,

길갈에서 할례를 명하신 것은.. ‘너희는 반드시 죽어야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애굽의 노예 신분의 수치가 굴러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죽어야 해결된다는 것이다. 산 사람을 더 고쳐서 개선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게 ‘할례’다.

 

이것은 곧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의 주체가 되어버린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그 옛 사람, 그 육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 ‘육의 소멸’이 되지 않은 자는,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나안 초입에서, 그 육을 잘라버리는(죽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 전 존재가 할례를 당해서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할례 당하신 것처럼)

내 옛사람이 죽는 것이.. 크리스천의 본질적 삶이다.

 

그 구약의 아브라함의 할례의 언약이,

본문 여호수아 때 길갈에서 다시 재확인되고, 강화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치 않는다.

 

그 언약이 나중에 십자가에서 진짜 실체로 드러나게 되는데...

(※오늘날 우리는 할례 대신에, 할례의 의미로 세례를 받는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는 ‘자꾸 살리려’ 한다.

(물론 부활해서 결국은 살아나는데) 먼저 죽어야 부활해서 살아나는 것을..

죽지는 않고, 인간의 전존재를 개선해서 살리려 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구약의 할례의 언약 - 예수님의 십자가의 언약 - 신약성도의 세례의 언약은

그 첫 단추가 ‘육이 죽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주의/자기계발/긍정마인드/번영신학

이런 것이 ‘십자가 복음’과 대척점을 이루는 이유는,

육신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육신을 더 강화/계발시키기 때문이다.

 

 

▲할례는 .. 육적 몸을 벗는 것/죽는 것

 

골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문맥상 할례=세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할례와 세례의 정신은 똑같다.

일단 죽였다가 다시 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할례가 ‘육적 몸을 벗는 것(죽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육적 몸’이 뭔가? 어디에서 그게 처음 생겼는가? ↙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의 신spirit이 떠나버린 사람.. 그것이 ‘육체’요,      창6:3

또한 바울이 말한 ‘육적 몸’이다.       골2:11

 

하나님과 관계없는 모든 인간은 다 ‘육체’요, ‘육적 몸’이다.

육체만 살아있지, 그 영적 상태는 이미 죽은 것이다.

 

‘육체/육적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 할례이다.   골2:11

그래서 할례를 하고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는 존재라는 뜻

 

▲할례 = 일단 죽는 것 + 다시 사는 것

그러므로 할례/언약/세례는..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었으니.. 이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마치 말기암 환자가, 암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나면 다시 살아나듯이

할례(잘라내면) 죽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산다. 잘라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2:12

 

위 구절에서도 세례(할례)의 의미를 

함께 죽으심+함께 일으키심(살림, 부활)으로 동시에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창15장에서 할례를 받고, 다시 살아났다. 창17:10

늙어서 다 죽은 몸과 비슷했는데,

할례를 통해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육이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비로소 이삭을 잉태하게 된다. 할례를 통해 다시 살아난 거니까!

 

※지금 할례(언약)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1) 일단은 떼어내는 것, 잘라내는 것, 죽는 것이다.

2) 죽이면.. 완전히 죽어야 되는데, 역설적으로 다시 살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고

선악과를 따 먹어버린 아담.. 그것이 바로 ‘육/육체/육의 몸’이다.

 

그것은 죽어야 된다.

인간이 그 ‘육’의 상태에 머무는 한, 제한된 시간 자기 수명 동안 살다가

그게 사라지면, 존재는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데,

 

사람이 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로 살아가려면,

자기 ‘육’에 하나님의 생명력(바라크/복)을 공급받아야 한다.

 

▲죽은 몸에.. 생명이 들어가니까, 다시 산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내지 않으시면, 생명력(바라크)을 공급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은 존재다. 육/육체/육의 몸일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바로 그 ‘육/육체/육의 몸’을 죽여 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담을 새 몸을 주시는데,

그 몸 안에 완전히 하나님의 생명력을 가득 채워주신다. 그걸 ‘영생’이라고 한다.

 

그게 천국의 삶이다.

그렇게 인간은 육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

그리고 그 육의 몸이 죽어가는 동안

그 육의 실체를 자기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자각해 간다.

 

‘아, 육의 한계가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의 복/은혜/생명력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육으로 살다가 처참하게 가는 거구나.’

 

▲그런데 내가 진짜로 죽으면 안 되니까, ‘할례’라는 싸인을 통해, 자기 죽음을 받아들인다.

할례는.. 그런 인간의 모든 육적 가능성을

다 소멸해버리는/죽어버리는.. 의식이다.

 

그 자리에 하나님의 생명/은혜가 채워지면서 다시 살아난다.

 

그런데 육적 몸을 벗기 위해서는, 육신이 다 죽어야 된다.

조금만 죽으면 안 되고,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러한 육의 몸을 벗는 일을 하는데,

진짜 죽이면 당연히 안 되고,

할례만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갖고, 그 흔적을 쳐다보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너는 할례 받아 육적 몸을 죽인 자다. 너는 죽은 자다!’

-이게 구약할례의 의미요, 

  신약에서는 세례, 곧 십자가에서 자기 죽음의 의미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짜 할례의 언약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받았던 할례는,

그저 싸인으로서 죽는 시늉만 하는 할례였고, 진짜 죽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싸인이 아니라 진짜 할례를 받아서, 진짜로 죽으셨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받을 세례(할례)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할례’나 ‘세례’는 같은 뜻으로 ‘쪼갠다’

 

막10:38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눅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것이 ‘십자가 세례’요, 예수님이 받으신 ‘할례’였다.

 

예수님의 몸이 진짜 쪼개지신 것이다.

하나님과 언약을 지키기 위해, 언약대로 죽으신 것이다.

 

창15장의 하나님의 언약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었는데, 창15:8~11

그 언약의 표로, 암소, 암염소 등 짐승을 반으로 갈라 쪼개었다.

 

그리고 언약의 당사자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데,  *당시 언약 체결의 관습임

이 언약이 깨지게 되면, 즉 파기되면,

반드시 쪼개진 고기처럼, 그 언약을 깬 측이 쪼개져서 죽어야 한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정말 쪼개지셨다.

 

언약의 당사자 양측 가운데

언약을 깬 측은 인간인데,

예수님이 인간의 대표로,

그렇게 쪼개지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실제로 하나님이 쪼개지신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내 언약(구원사역)을 지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였다.

 

 

정리하면, ‘할례는 육의 몸을 벗는 것’   골2:11~12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길갈에서 할례를 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는 것이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할례 언약의 성취/계속 확인/재강화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 ‘할례 언약’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1)육의 죽음, 자아의 죽음, 육의 몸을 벗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베이식(기초)요, abc이다.

기독교 신앙은 자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2)그럼 내가 다 죽고나면, 어떻게 사나?

역설적으로 사는 것이다. 안 죽으면 못 산다. 죽었는데,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산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 하시는 일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끌림 받고, 먼저 죽었다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열심/은혜/하나님의 영/하나님의 생명에 의해

이끌림을 받으면서 다시 산다..

 

3)그리고 그 언약은,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물론 인간의 순종도 필요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삶' -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베이식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은, 제일 처음 길갈에서, 그 베이식을 재무장했던 것이다.

 

................................

 

 

주1)

625때, 인천상륙작전 상황과 비슷하다. 길갈이 ‘인천’인 셈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은, ‘인천’을 점령한 후에, 할례부터 시행한다.

 

이제 정말 여리고성과 이후 30성읍의 격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하여, 이스라엘 군대가 잘 걷지도 못하게 만드신 것은..

이 전쟁은 너희의 힘과 노력으로 이기는 전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뭐냐?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주도되어지고, 승리되어지는 전쟁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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