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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종살이를 잊지 말라

LNCK 2011. 4. 8. 18:47

◈애굽 종살이를 잊지 말라                   신16:12                    블로그 스크랩, 출처

 

 

▲애굽에 4백년 종살이 시키셨다.

‘하비루’는 그 사회에서 가장 낮고 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는

사회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다.                주1)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물론 하비루가 되어,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고,

또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으로 보내시어서

400년 동안이나 하비루 생활을 하게 하셨을까?             *관련글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종노릇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면

분명 특별한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1. 나처럼 되어라

 

▲1.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선택 되다.

하나님의 구원 대계(大計)는 한 사람을 선택하여, 한 민족을 만들고,

그들로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고,

그 나라를 보고 본받아 모든 나라가 구원받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 최초의 한사람으로 선택된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이스라엘은 그 후손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상에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어

온 세상에 보여주고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받은 선택된 사람들이었다. 출19:5~6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고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려면

그들이 먼저 하나님처럼 되어져야 했다.

하나님처럼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으로 보내시어 하나님처럼 만드셨다.

애굽은 하나님의 대장간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하비루’인가?

애굽의 ‘쇠풀무’에 보내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4:20

왜 하필이면 ‘하비루’(가장 낮은 계층, 노예)인가?

 

애굽의 대형 건축물 토목공사 현장에 동원되어, 건축기술을 습득해서

가나안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대형 도시로,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라고 하심인가?

 

물론 아니다.

그런 외적인 건축물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아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인가?

가장 낮은 사람, 가장 작은 사람, 낮아지고 작아져서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비루, 노예는 섬기는 사람이다.

섬김의 도를 배우게 하심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가장 작아지고 낮아지고 작아져서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양식은 무엇인가?

영성의 길을 가다보면.. 하나님을 직접 뵈옵는 단계가 있다.

 

(꿈이나 환상, 입신의 상태에서 뵌다는 뜻이 아니다.

이런 뵈옴들은 영성의 길로 접어드는 길목, 즉 초보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직 죄성의 정화가 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매체가 꿈, 환상, 환청, 입신 등이다.)

 

영성이 깊어지면.. 평시의 의식 상태에서 마음으로,

영으로 직접 그분을 알현하게 되는데,

언제 그렇게 되는가 하면.. 마음의 상태가 가장 낮고 작아져 있을 때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고, 작고, 비천한 곳에 계신다.

그곳으로 우리 마음이 내려가야 그분을 뵙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의 자리가 마구간 말구유였던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초라한 자리에 인간되신 하나님께서 오시었다.

그분을 뵈오려면 마구간 말구유로 찾아가.. 꿇어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면전에 초대받는 사람들은.. 가장 낮고 작은 소자들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비유에는 이런 예들이 수없이 언급되고 있다.

 

동쪽과 서쪽이 하나이듯이, 하나님에게는 극과 극이 만난다.

가장 낮은 곳에 계시기에, 가장 높은 곳에 계신다.

 

가장 작은자,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는 말씀은 이를 뜻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애굽이라는 대장간에서 가장 낮고, 작고, 비천한 자로 만들어져야 했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왜 그토록 고달픈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아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수천 년 전의 이스라엘이 겪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숱한 어려움들, 불현듯 찾아오는 재앙들,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벌일까?

(그렇든지 말든지, 그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라면)

지금 그는, 하나님의 대장간에서 연장으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구어지고, 두드려지고, 담금질 되고 있는 중이다.

죄 때문이라고만 보면 안 된다.

 

물론 간혹 죄의 결과로 받는 징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의 징계로 말미암은 경우라고 해도.. ‘만들어지기 purifying’는 마찬가지다.

 

징계는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살면서 당하는 온갖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랑의 메시지다.

 

단지 나에게 쓰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쓴 약일수록 몸에 좋은 법이다.

 

가장 성숙한 신앙은.. 고난을 감사함으로, 잠자코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가장 깊은 영성에 도달한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질병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통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이 질병이 있음을 감사한 경우가 그런 사례 중의 하나다.

 

 

◑2. 하비루의 문화를 만들어라.

 

▲하비루 생활을 하되, 400년을 해야 한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다.

그 비참한 종살이가.. 40년도 아닌, 400년이나 필요했을까?

100년, 아니 200년이며 족하지 않았을까?

 

400년이라는 긴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비루 문화를 만들라고 하심이다.

 

문화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은 물론 골수에 까지 스며드는 것이 문화다.

 

‘종의 문화’가 뼛속에 까지 사무치도록 해놓으시는데 필요한 기간이 400년이다.

문화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현실에 맞도록 일하신다.

 

구약성경에 보면 ‘너희는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말씀이

후렴구처럼 반복되고 있다.  신6:12, 24:22등

 

‘하비루 문화’의 생성 여부에, 이스라엘의 성패 여부,

더 나아가 세상구원의 성패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전체를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공력을 기울이시는 부분은

애굽의 종살이 400년임을 알 수 있다.

 

종살이 하다가 죽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면서 참고 계신다.

 

마치 자식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특수부대에서 특수 훈련을 받으면서 다치고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과 같다.

 

그 훈련을 이겨내야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역군이 되겠기에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 신화들은 문자 그대로 신화다.

신화적으로 크게 부풀려져서 민족적인 자긍심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이, 그 조상들이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했다는

<하비루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생명력은 영원한 <하비루 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헤브라이즘(히브리즘)은 곧 하비루 문화다.

 

▲하비루의 문화, 이 문화를 결코 노예근성이라고 부정적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습득한 것이 노예근성이고,

이 근성을 씻어내기 위하여 광야생활을 했다고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큰 의도를 왜곡시키게 될 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잃게 된다.

 

뒤에서 살펴 볼 시내산의 율법의 핵심은

‘애굽에서 습득한 하비루 문화의 보존’에 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신16:12

  

"너희가 살려거던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절대로 잊지말라"는 것이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신신당부였다.

 

 

◑3. 고난을 통해서만, 가장 강인하게 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세우시려고 택하신 땅은

가장 큰 고난을 피할 수 없는 땅이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가장 큰 고난이 준비된 땅에서,

가장 큰 고난을 받으면서 세워진다.

고난과 구원사역을 절대로 뗄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의 길을 가셔야만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나안 땅에서 모진 고난을 이겨내려면

그 고난을 감수할 만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

애굽의 하비루 생활은 바로 이것을 위한 준비였다.

 

"너희는 애굽에서 종살이 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

하나님의 신신당부에는 이런 큰 뜻이 담겨있었다.

가장 큰 고난의 경험을 통해서만.. 가장 강인한 자가 될 수 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그토록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4. 하비루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하비루의 하나님’이시다.  *하비루 - 주1)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에는, 우상이 지배하던 우상종교의 시대였다.

우상의 신들은 하나 같이 가진 자, 힘 있는 지배자의 신이었다.

 

거짓 신앙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탄은

항상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가진 자의 신이 되어

힘없는 90%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지상 지옥을 건설하려는 것이 악마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세력은 절대로 힘 없는 자의 신 노릇을 하지 않는다.

악마의 종교들은, 항상 자신들이 부자와 지배자가 되는 비법을 가진 양

사람들을 회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복종교의 속성은 결국 악마의 본성과 같다.

 

▲이에 반하여 참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지는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작고 낮아져서 섬기는 길이다.

섬김만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세상 역사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낮아지고 작아져서 섬기는 나라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시어

낮고 천한 하비루가 되게 하셨다.

 

비참한 하비루의 경험을 하게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의도는

너희는 하비루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뼈저리게 겪었으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는 

너희 가운데 절대로 하비루가 생겨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뒤에서 다룰 시내산 율법에 의하면

하비루의 대명사인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하나님의 직계가족으로

하나님의 밥상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하나님이신가?

'하비루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을 뵈옵고 만나려는 자는 누구나 하비루가 되어야 한다.

 

현재의 외적인 상태보다는, 마음의 상태가 가장 낮고 천해져 있어야 한다.

심령이 가난 자가 복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가나안은 특별하게 선택되었다.            -이 단락 출처-

 

▲오리엔트 문명지대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애굽)는 서로 경쟁관계였다.

메소포타미아가 통일되면 그 힘은 자연히 이집트로 흘러갔고,

반대로 애굽의 힘이 결집되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했다.

 

그런데 그 길목이 바로 가나안이다.

 

가나안 우측의 빈 땅은, 아라비아 사막으로서, 사람이 다니지 못하는 곳이다.

따라서 반드시 가나안을 통과해야 했다.

 

가나안은 언제나 두 거대한 문명권의 전쟁마당이었고

또 서로의 방패막이여서, 서로 이 지역을 선점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오리엔트시대가 끝이 나고 기원전 4세기부터, 희랍과 로마의 시대가 되자

가나안은,

이번에는 희랍과 로마의 문명이 오리엔트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었다.

 

즉 가나안은 언제나 네 문화권(애굽, 메소포타미아, 희랍, 로마)의 충돌지점이며,

전쟁마당이었다.

 

가나안이 강대국이 되기만 하면

반대로 네 문명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강원도 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 가나안에서

주변의 문명권을 지배할 만한 군사적인 강대국은 생겨날 수가 없는 곳이어서

늘 침략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땅이다.

 

가나안 내부의 사정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강원도 보다 조금 더 큰 지역에

4나라와 7부족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나안은 빈 땅이 아니었다.

네 나라(암몬, 모압, 블레셋, 이스라엘)와 일곱 부족이 복잡하게 얽혀서 사는 곳이었다.

 

게다가 가나안은 매우 척박한 땅이다.

흔히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는 말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전혀 이와 다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끝자락에 위치해서 비옥한 땅이라고 하지만

주변의 황량한 광야, 사막과 비교해 볼 때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세상의 비옥한 자연환경과 비교해 본다면, 전혀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아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가나안이라는 지역은 언제나 전쟁이 끊이지 않는 척박한 작은 땅으로서

사람이 살기에는 최악의 지역이다.

 

실제로 가나안의 역사는 그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지역이 특별히 선택되었을까?

가나안은 특별히 무엇이 준비되었는가?

 

결국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고난이 준비된 땅이라고...

 

그렇다. 바로 이것 때문에 가나안은 선택되었다.

가나안은 지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험난한 땅이다.

 

거대한 네 문명이 충돌하는 지역, 네 나라 일곱 부족이 얽혀 사는 땅,

비좁고 척박한 자연환경,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가나안은 선택되었다.

 

하나님의 의도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온 세상에 보여주시려는 데 있었다.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늘 이렇다.

 

▲(가장 쓸모없는 땅을 선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세우시려는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실 때에도

가장 작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출신의 무지한 어부들인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방식이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비천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께는 쓸모 있는 사람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작은 자들을 귀하게 보시며, 그들의 소망이 되신다.

 

성경 4천년의 구원역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진행이 된다.

하늘과 땅이 먼 것만큼 하나님의 방식과 사람의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가장 큰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 갖추어진 땅’

이것이 가나안이 선택된 이유다.                                

........................................

 

주1) 하비루 Habiru 또는 아비루 Abiru는

주전 1800~1100년 사이에

수메르, 이집트, 아카디안, 히타이트 문화 또는 우가리트 자료 등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용어이다.

이들은 이란, 북메소포타미아, 가나안을 포함한 비옥한 초승달지대 등 당시 근동지역에서

‘유랑 약탈자 집단’을 일컫던말인데, 반란자, 무법자, 종, 이주 노동자 등을 가리키기도 했다.

한마디로 ‘국적이 불분명한 유랑천민’ 이었다.   <위키피디아, 번역 

 

★히브리 민족의 기원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 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결과 과거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발굴된 점토판에 새겨진 기록을 분석한 결과 에블라 문명을 세운 왕의 이름이

'에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야' 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10:21절에 <하란에 있었던 에블라의 대문명>을 암시하는 족보가 있습니다.

여기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요?

어떤 잘못된 견해로 이집트에서 나온 문자를 토대로 '하비루'라는 노예에서 왔다고 하는데요,

사실은 이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 '히브리'입니다. 이것이 정설입니다.

             ※위 글은, 히브리인의 신분이 ‘하비루’라고 했음. 이것은 잘못 없음.

 

'히브리'라는 말은 결국 노아의 아들 셈, 셈의 아들 아르박삿,

그 아들 셀라의 아들인 '에벨'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이 에벨이 큰 문명국가를 이루었고, 에블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 셈족의 국가인데, 어떤 원인에 의해 수메르인에게 멸망당합니다.

 

강 아래쪽의 더 강성한 국가 수메르의 사르곤 왕이 에블라를 멸망시킨 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끌고 갔는데, 이들이 그곳에서 우상이나 만들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새로운 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가다 말고 자기 조상 에벨이 세웠던 찬란했던 나라 '에블라'의 고토

하란 땅에 머무르다가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침내 가나안까지 들어갔습니다.

 

에벨 시절에 번성하던 에블라는 수메르인들이 강해지면서 망하게 되었고,

니므롯의 제국 때 바벨탑을 세우다가 세상이 나누이게 되었는데,

그때가 벨렉의 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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