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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갈대상자, 법궤, 모세 & 예수 2889

LNCK 2011. 2. 24. 18:20

◈방주, 갈대상자, 법궤, 모세 & 예수               창6:1~10, 고전10:1~2        인터넷설교녹취

                                                                              

 

◑1. 노아의 방주


노아의 홍수 사건이 과연 성경전체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1. 물(홍수)은 저주의 홍수를 상징한다.

저주, 죽음, 심판, 어둠을 다 상징한다.  주1)


▲2. 방주는 구원의 그리스도를 모형한다.

그런데 그 저주의 물 위에 방주가 떠 있고,

그 방주 안에 들어있는 자들은, 그 방주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된다.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 인데,                             *tebah

방주/테바는 ‘배’ship가 아니다. ‘나무상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도, 노를 젓거나 돛을 달아서 어디로 항해한 게 아니라,

그저 물에 둥둥 떠 있는 나무상자였다.


그래서 방주는,

홍수(심판)의 물 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2. 모세의 갈대상자


그 방주(테바)가, 성경에 또 다른 곳에 나오는데,

출2:2절에 모세가 담겼던 갈대상자(테바)이다.


노아의 방주에도 역청(나무 진)을 칠했고

모세의 갈대상자에도 역청(나무 진)이 칠해졌다.

방주, 갈대상자 둘 다 똑같이 상자(테바)이다.


그러니까 노아 때 방주(테바)를 타고 구원 받았듯이,

모세는 똑같은 테바(갈대상자)를 타고, 심판의 물 위로 건져진 자이다.


이것이 성경의  일관성 있는 모형이다.


성경에, 구원사역이

점진적이고, 점층적이고,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데나 푹 찔러서 끌어올려도,

전체가 쭉 같이 따라 끌려 올라오게 되어 있다.

안 그러고 따로 따로 떼어서 보면, 성경을 잘 못 보시는 것이다.


애굽에서 하수(물/심판 저주 상징)에 모두 죽어야 하는 히브리 사내아이들의 운명은,

바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죄인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 모세라는 아이가 방주에 의해서 살아나게 된다.

 

이것은 ‘구원의 모형, 예표 antitype’인 것이다.

‘구원의 원형 prototype’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노아는 하나님님께 은혜를 입었고,

모세도 똑같이 은혜로 선택을 받아서

전부다 물에 빠져죽어야 할 그 상태에서, 둥둥 떠서 살아나게 구원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구원 이야기‘다.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을 못 보고, 도덕책으로만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큐티를 할 때도,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2)


그런데 거기 방주에는 운전할 수 있는 키(운전대)가 없었다.

가만히 넋 놓고 있어야 한다. 방주는 하나님이 움직여 가시고,

문도 하나님께서 밖에서 닫아 주시고, 창문도 위에 하나밖에 없다.

하늘만 바라보게 되어 있다. 그게 노아의 방주요, 모세의 갈대상자이다.

이것이 구원의 모형이다. 인간이 자기 공로로 구원 못 받는다는 뜻이다.



◑3. 지성소의 법궤


노아의 방주=모세의 갈대상자=지성소의 법궤로 이어지는데... 주3)


법궤는 지성소 전체를 축약하는 것이고,

지성소는 성막 전체를 축약하는 것이며,

성막은, 하나님 나라를 축약하여 모형하고 있다.


따라서 법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된다.


법궤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들의 그릇된 반응을 상징하는

쉬운 말로 죄를 모형하고 있는 3가지가 들어 있다.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그 죄 위를 법궤 뚜껑이 덮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대리자를 상징하는 그룹(천사)들이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대리자가 그냥 그대로 내려다보면.. 그들은 반드시 다 죽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제물의 피가 쫙 뿌려지게 되면, 죄가 사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피만 보게 되어 있다.


‘아이고 내 아들의 피, 이 피가 모든 것을 덮었으므로,

그 밑에 있는 것은, 어떤 모양이라 할지라도 내가 안 볼 거야!

너희들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내가 절대 안 볼거냐!’

이게 법궤와 그 위를 덮고 있는 속죄소의 상징이다.


그게 하나님 나라(법궤)의 구조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력, 용서, 사랑을 부여받아야 살 수 있는 피조물에게

끊임없이 하나님 것을 다 부어주시고,

거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생명력, 복을 공급받아 사는 곳..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거기에서 내가 선악을 판단할 수 없고, 그 통치에서 튀어나오고 거부하는 것을

죄, 또는 악이라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더러운 죄덩어리 일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려다보시게 되면, 인간들은 다 죽어야 한다.


그런데 제물의 피가 가려져 있다. 덮고 있다.                  ☞  하나님의 덮으심 2867

법궤 위의 피가, 죽어야 할 죄인들을 품어 안고 있는.., 덮고 있다.


마치 법궤가 푹 찔려서 죽고, 그 법궤가 피를 콸콸 솟구치게 되면,

그 피에 의해서 아래 있던 죄들이 가려지는 모양이다.


그 모양이 이렇게 노아의 방주, 모세의 갈대상자, 지성소의 법궤..

이렇게 구원의 이야기가 계속 점진적으로 반복된다.



◑4. 모세 안에서


이제 선택받은 자들을 품에 안아서 그들의 생명을 건져낸 방주가

사람(모세)의 모양으로도 등장한다.


다 죽어야 할 자들이, 누구 안에 쑥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자들을 살려내는

바로 그런 그림이 성경에 또 나오는데...


고전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여기서 키워드가 ‘모세에게 속하여’이다.

출애굽 백성들은 영적으로 모두 모세에게 속해 있었다.

즉, 그리스도께 속해 있었다는 뜻이다.


세례는, 애굽 쪽에서 보면 죽어야 할 죄인들이

홍해 (저주의 바다)에 푹 빠져 죽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안 쪽에서 보면, 푹 빠져 죽은 자들이 새로운 자들이 되어서 살아 올라온다.


이게 세례의 의미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례를 머리 위로 물을 뿌리는 것은,

머리 위까지 물에 다 잠겼다/죽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새사람으로 다시 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 안에서 이스라엘이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방주 안에서가 아니라,

모든 존재가 빠져 죽어야 할 그 저주의 바다를, 그들이 마른 땅처럼 건넜는데,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이냐면 ‘모세 안에서’ (예수 안에서)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죽었다가 살았다)


하나님이 모세를 물에 빠뜨려서 죽였다가 살려냈더니,

그 안에 진짜 죽어야 할 자들이, ‘모세 안에’ 들어가서, 그들이 다 살아나더라는 것이다.

모형적, 상징적 이야기다.

성경이 그렇게 일관성 있게 쭉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5. 모형의 원형은 그리스도


그런데 그 모형antitype인 모세가, 신약에 가면 진짜 그 원형prototype이 나온다.

모세가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운다고 하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18:15, 행7:37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그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스데반이 대놓고 말했다. (모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도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물었다.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신18:15에서 말한 그리스도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1:21

  

유대 백성들이 역사 속에서 ‘그 선지자’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분이 실제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게 신약이다.



▲마치는 말

위에서

방주=갈대상자=법궤,

또한 =모세=그리스도

성경은 모두 예수/구원을 상징, 모형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예수가 찔려서 죽고, 그 피가 우리를 덮는 것이고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

예수가 저주의 바다에 빠져 죽고,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나는 ...

이렇게 성경은 전부다 구원의 이야기다.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가면, 그렇게 모두가 빠져 죽어야할 그 바다에,

둥둥 떠서 그 바다에 풍랑을 정말 무색케 하는, 한 인물이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다음 호에 계속)


..........................................



주1) 물/홍수가 저주, 죽음, 심판, 어둠을 상징하는 이유


① 사57:20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 여기서 바다는.. 더러운 것을 솟구쳐 내는.. 더러움, 죄악의 바다를 상징한다.


② 시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 여기서도 홍수는 심판을 상징한다.  


③믹7:17.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 여기서도 ‘바다’는 죄와 같이 더러운 것들을 품고 있는 깊은 곳이다.


④창1:2,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니라

-역시 혼돈, 흑암을 상징한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다시는 바다가 없다.’ 계21:1



 

주2)
여러분이 큐티를 많이 하시는데, 큐티하실 때 보통 큐티를 어떻게 하느냐면,

 

그날 읽을 분량을 쭉 읽고서,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 를 많이 찾으시는데,

사실 큐티는 그렇게 하면, 그걸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게 된다.


성경 전체가 일관성 있게 하나의 맥을 갖고 있는데

성령에 의해, 연대기 순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하나의 일정한 내러티브(이야기)를 갖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편집되어 있다.


그 전체의 모양을 다 이해한 다음에, 거기에서

이것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수렴되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사실은 성경을 올바로 읽고, 큐티를 올바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늘은 나에게 어떤 단어나, 어떤 문장을 주실까?’

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은,

원래 성경을 보는 방법이 아니다. 그건 ‘뽑기’(운세)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한 번 성경을 어떻게 이렇게 성경신학적으로 풀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 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신앙생활은 항상 감정적이나 선동적인 마음을 갖고 하시면 안 된다.

그러한 열심 있는 종교행위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주3)  법궤는 히브리어로 ‘아론’이다. ‘테바’가 아니다.            *모세의 형 아론(아하론)과는 완전히 다른 말

그러나 사과능금이 같은 말이듯, 아론과 테바도 똑같은 말(나무상자)이다.

그래서 영어성경도 법궤도 ark, 방주도 ark, 갈대상자도 ark of bulrushes, 즉 같은 말(ark)로 번역했다.


특히 신약성경에도 언약궤, 방주 등이 6~7차례 나오는데,

아론과 테바의 구분 없이 한 단어(헬. 키보토스)로 쓰고 있다. 

‘아론’과 ‘테바’가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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