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침묵 계11:19 계49강 1'~15' 녹취
계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인류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다.
본문 계11:19절에, 즉 7째 나팔이 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완성될 때,
<하나님의 언약궤>가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인류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창세기 처음부터 나타났던 언약,
그리고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 *언약에 관해서 주1) 보세요.
또한 다윗에게 주신 언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된 언약..
이렇게 성경은 창세기부터~계시록까지 언약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그 모든 언약을 성경에 가장 반복해서 등장하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는 것’이요,
그 언약의 완성이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21:3
(※그리고 마지막 최후의 심판인 ‘7대접 재앙’을 설명하기 전에,
그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 계12장, 13장, 14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침묵
▲성경에는 언약(약속)들이 풍성하다.
성경에는 모두 5만4천개의 언약/약속이 등장한다... 라고 한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반드시 이루리라’ 등이다.
그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은 전부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다’ 라는
그 최종적인 하나님의 언약으로 수렴된다.
그러니까 위에 언급한 (달콤하게 보이는) 약속들은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완성'을 위한 약속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의 수많은 약속들을
내 현세적 축복을 얻기 위한 구절로.. 아전인수 격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내 현실에서는, 그 약속들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렇게 많고, 놀랍고, 정말 저 약속대로 다 이뤄지면.. 내가 하늘을 날 것 같은데..
실제 현실의 내 삶에서는, 저 언약들이 별로 이뤄지는 않는다.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대신에 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로울 때,
저런 하나님의 약속들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로 매달려 보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묵묵부답 침묵하실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갓 예수를 믿었을 때는, 그래도 내 기도에 하나님이 즉시 응답해 주시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 하시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내가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그런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풍성한데, 그들의 현실적 삶은, 외롭고 괴로웠던 것이다.
①다윗
시편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이 시는, 그 믿음 좋은 다윗이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토로한 격정의 시다.
그는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서 자기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는 미친 사람 흉내를 하고서야,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왜 다윗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한 마디로 얘기해 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거기서 즉시 꺼내 주지도 않으셨고, 위로해 주지도 않으셨다.
앞서 하나님은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면서도, 또 기름부음을 주셨으면서도,
그 이후로 왜 하나님은, 그렇게 오래 동안 다윗에게 침묵하셨을까?
다윗은 이미 기름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높이 평가한 사람이, 성경에 거의 없다.
다윗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데 다윗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다윗이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계속 침묵을 하셨을까?
‘내가 너를 도와 줄 것이다.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런 약속은 다 어디 간 것인가? 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까?
②욥도 마찬가지다. 욥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훌륭한 신앙이었다.
하나님은 욥을 이렇게 높이 평가하셨다.
욥1:1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런데 욥은 엄청난 고난 속으로 던져졌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욥기1~38장 동안 한 번도 욥에게 안 나타나시고,
한 마디도 안 하셨다. 위로는커녕, 그 고난의 이유도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욥23:8~9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③모세도 마찬가지였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 나와서 미디안 땅에서 40년간 처가살이를 했다.
자존심, 성질 다 죽었다. 거의 나이가 여든 이었을 때,
(시90편, 모세의 시편을 보면, 인생이 길어야 70, 강건해야 80이라 그랬는데..)
그런데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80세인 것은..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번도 안 나타나셨다. 침묵하셨다.
그를 위로해 주지 않으셨다.
④아브라함도 마찬가지다.
그가 75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네 자손이 많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25년 동안 나타나서 말씀하신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그 약속대로 자식은 주시지 않았다.
‘준다’ 그랬으면, 바로 그 다음에 주면 좀 좋은가?
그런데 25년이나 기다리고 인내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왜 인내하게 하셨을까?
당장 주시면 얼마나 좋은가?
왜 우리에게 이런 기다림, 인내, 시간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⑤왜 요셉이 그토록 힘들어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침묵하셨는가?
그가 형들에게 팔려갈 때,
그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할 때,
수년 동안 하나님은 그에게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요셉이 거기에서 ‘하나님, 저 여기서 좀 나가게 해 주세요, 저 억울해요!’
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애절한 기도에, 수 년 동안 그를 감옥에 쳐박아 두시고,
응답해 주지 않으셨을까?
⑥하나님은 엘리야에게도 침묵하신 적이 있었다.
엘리야는 그 하나님의 침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히 특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라고 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를 죽여달라고 그랬을까? 왕상19:4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중에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계신 분이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 병 고쳐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대부분의 경우, 쉽게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여러분, 자녀의 문제로 고통 받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
그 자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셨는가.
뭔가 그 자녀에게 금방 변화가 오던가요?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만큼, 간절한 기도가 어디 있는가?
그런 간절한 기도에도, 보통의 경우,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내가 요구하는 내용이, 뭐 부당한 것도 아니다. 거의 정당한 것이다.
즉, 내 자녀가 하나님께 돌아와서,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게 해 달라고,
그런 정당한 기도를 드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좀처럼 그 기도를 안 들어주신다.
내 자녀는 여전히 변화가 없이, 그대로이다.
▲우리 교회에는 특별히,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저는, 교회에 그런 분들이 계신 것을.. 복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그 문제를 놓고’ 기도 안 하셨는가?
아니 당장 쓸 돈이 없고, 먹을 게 떨어져 가는데, 기도 안 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 제가 가난해진지 벌써 수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언제까지 제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되는 거지요?’
‘하나님, 제 경제적 문제를 조금만 풀어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호소해도, 전혀 변화가 안 나타난다.
그런 성도님들을 바라보는 목회자인 제 가슴도 아픈데,
정작 그 고통을 몸소 당하는 본인들은 얼마나 더 아프랴.
그래도 하나님이 침묵하신다.
왜 하나님은 좀 빨리 빨리 응답해 주지 않으실까?
오죽하면 ‘하나님은 천천히 일하신다 God takes time’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침묵의 긴 터널’을 통과하게 하실까?
하나님은 성경에 수많은 달콤한 약속을 해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례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같은.
왜 그런 약속들을 외면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
그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이 전부 어디로 수렴되는 것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생을 계속 답답하게 살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약속을 해 놓았지만, 안 지키는 분이라고 원망하게 된다.
그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로 수렴되는가 하면,
너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라는 그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약속들이다.
우리가 목적지를 잘못 설정하고 있으면,
즉, 나의 소원성취를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계속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침묵이, 그 기다림이
그 인내의 시간이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고 (즉 성화시키고)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위한 과정이다.. 라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원망의 시간이 아니다. 어두움의 시간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화시켜, 천국에 데려가기 원하신다.
그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하면,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며,
병들게도 하시고, 병 낫게도 하신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그러니까 그 목적 이룸이 중요하지,
우리가 이 땅에서 부자 되고, 출세하는 것은.. 주님의 크신 관심사가 아니다.)
그 최종적인 언약을 목적하지 않고,
성경에 나타난 지엽적인 문제들만 우리가 임의대로 강조해서 신앙생활 한다면,
‘가장 중요한 최종적 심판, 구원의 완성’에서도 우리는 미끄러질 수 있다.
이 최종적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일생동안, 신앙생활 하는 내내
우리는, 하나님께 시험 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나님이 도무지 자기 기도(소원)를 들어주시지 않으니까.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그리고 실족해서 신앙생활을 한 동안 중당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이는 정크 푸드나 캔디를 먹기 좋아하는데,
부모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쓴 나물, 채소, 등 푸른 생선을 준다.
그러면 아이가, 부모의 의도에 맞춰서 그것 먹고 살면 되는데,
끝까지 정크 푸드나 캔디를 안 준다고 발버둥치고, 울고 불고 한다.
그건 부모 잘못이 아니라, 아이의 잘못이다. 아이가 고쳐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 분은 모든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서 침묵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인식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은 그 언약을 지금 성실하게 이행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우리 성도의 믿음의 완성'
그 언약을 성실히 수행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소원의 기도 제목에 '침묵'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허풍이 심하신 분으로, 우리가 오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열심히 만들어 가고 계신다. 매일 그 언약에 충실하게 역사하신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침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입양아의 예
제가 아는 어떤 전도사님이, 자기가 어릴 적에 미국에 입양되었는데,
4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그 분의 이야기다.
그 때, 한국에서 자기 친엄마가 자기를 놀이공원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엄마는 자기에게 아이스크림 하나 사 주고는, 자기를 벤치에 앉혀놓고는,
‘엄마가 화장실에 좀 갔다 올게...’ 그러고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았다.
자기는 하루 종일 그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저녁에 보호소로 넘겨졌고,
결국에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어떤 백인 할머니가 그를 입양했는데, 참 좋으신 분이었다.
친자녀 이상으로 자기를 훌륭히 키워주셨다.
너무나 그 분과 사는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가 9살 되던 해에, 그 (양)어머니와 함께 디즈니랜드에 놀러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머님이 (한국에서의 친어머니와 똑같이)
자기를 벤치에 앉혀 놓고,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말하고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는 과거에 상처가 한 번 있었으니까
‘이 어머니도 나를 버리셨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한 시간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벤치에 혼자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자기 마음속에서 그 두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버릴 거면, 갔다고 오겠다고 약속이나 하지 말지,
왜 어른들은 그렇게 약속을 초개같이 버릴까?’ 하며 속으로 분노했다는 것이다.
그러는데 점점 생각해 볼수록,
지난 5년간 자기를 키워주시고,
자기를 그렇게 헌신적으로 대해 주었던 양어머니가,
자기를 버렸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5년간 양어머니와 행복했던 시간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아냐, (양)어머니는 꼭 오실 거야!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절대로 이 어머니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나를 버릴 것 같았으면, 아예 한국에서부터 나를 데려오지 않았을 거야!’
이런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꾹 참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때 그 시간에, 그는
‘아, 나는 진짜 이 (양)어머니를 믿고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난 후에 정말 그 어머니가 오셨다.
앰뷸런스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이 연로한 어머니(할머니)가, 자기를 디즈니랜드를 구경시켜주다가 과로해서,
화장실 가는 길에서 졸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가, 정신이 들자마자, 다시 거기로 달려온 것이다.
그때 그 어머니를 보고, 자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Mom, I know you're coming.’ 엄마, 저는 엄마가 오실 줄 알았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고백이 듣고 싶으신 것이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하신다.
‘Dad, I know you're coming.’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오실 줄 알았어요!
‘너 정말 나를 믿고 있니?
이런 침묵의 상황 속에서도, 내가 나의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 낼 것이라는 것을
너는 진짜 믿고 있니?
너는 나의 인격과 나의 성품을, 내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있니?
그것을 알아야.., 그런 사람만... 나(하나님의 재림)를 기다릴 수 있단다.’
네가 분명히 나를 아니?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숙을 위해서, 침묵의 시간을 허락하시지만..
그 침묵의 기간 동안에
우리가 아버지를 굳게 믿고 있기를 바라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그런 침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아,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구나’ 라고 깨닫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그 분을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그 분을 신뢰하지 못하는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속에 침묵하시게 되면, 우리는 얼마간은 잘 견디는 듯 보인다.
그런데 고통은 계속되고, 하나님의 침묵은 계속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점점 사그라진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성경과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언약의 완성>, <내 구원의 완성>을 목적지삼아, 거대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침묵도.. 그 과정인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가운데, 언약이 완성되고, 내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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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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