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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51강 어린아이-왕

LNCK 2011. 4. 15. 11:21

 

◈어린아이 - 왕             계12:4~6             계51강 12'~32' 녹취


 

◑4절, 용이 해산된 아이를 삼키려하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게11:4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전통적으로 이 구절에 근거해서,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할 때, 천사의 1/3을 데리고 나와서, 자기 수하의 마귀로 삼았다고 본다.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 헤롯의 영아 살해 사건을 가리킨다. 

여자가 아이(대표로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면,

용을 우두머리로 하는 모든 마귀의 세력은, 자기들이 큰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을 예감하고,

사전에 손을 써서,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이려 든다.


그것이 실제로 나타난 사건이,

예수님 탄생 때, 헤롯이 그 지역의 2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인 사건이다.


▲그런데 역사에는, 용이 ‘여자의 후손’을 죽이려 했던 사건이 계속 반복되어 내려왔다.

-사탄은 가인에게 충동하여, 아벨을 죽여 버린다.

아벨의 후손으로 예수가 탄생할 것인데, 아벨부터 죽여서, 아예 싹을 자르려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셋을 대신 주셨다.


-사탄은 바로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도록 격동하였다.

사라는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와 같은 언약의 후손들을 낳을 ‘열국의 어미’였다.

그런데 사라가, 바로 왕의 첩이 되어버리면, 언약의 자손들을 낳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라의 연고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창12:17

크게 화를 입은 바로는, 즉시 사라를 내보낸다.


-사탄은 아비멜렉을 격동해서,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취하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에게 일어났던 똑같은 일이, 그 아들 이삭에게 일어났다.  창26:9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을 지켜주셨다.

계12:16절처럼, 땅이 입을 벌려, 용이 토한 강물을 삼켜서, 여인을 구해주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탄의 공격을 심하게 받고 계신 분들은,

     이 구절을 붙잡고 기도하시면.. 효과 있다.

     용이 아무리 물을 토하여 여인을 떠내려 가게 하더라도,

     땅이 입을 벌려, 그 토한 물을 다 삼켜달라고... 기도하시면 된다. (쳐다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요셉이 태어나자,

사탄은 그를 제거하고자, 그가 애굽에 팔려가도록, 감옥에 들어가도록 몰아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서,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셨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룰 모세가 태어나자

사탄은 바로를 격동시켜, 새로 태어난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강물에 던져 죽게 했다.

(아론과 3살 차이니까, 3년 전에는 아무 탈 없다가,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법이 생겼다. 마귀의 역사다.)

‘여인이 낳은 아이’를 죽이려는 마귀의 역사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애굽의 공주를 감동시켜, 모세를 살려냈다.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전부 죽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아스에게 긍휼한 마음을 주어서,

을 통해서 ‘여인의 후손’을 이어가신다.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을 낳는다.


-이 보아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방인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을 준비시키셨다. 마1:5


-사울왕은 다윗을 몇 번이고 계속 죽이려 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가 오게 되니까, 다윗부터 죽이려는 것이다.


-에스더 때, 하만을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 내 유대인을 모두 몰살시키려 했다.

그러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용기를 통해, 오히려 하만이 당하고 말았다.


-이세벨의 가문에서 남유다로 시집 온 아달랴가 다윗의 가문의 씨를 진멸하였다. 왕하11:1

아브라함-다윗을 이어온 왕통이, 씨가 마를 위기의 순간이었다.

요아스 한 아기만 겨우 목숨을 구하고, 6년 동안 숨어서 자란다.

결국 7세 때 요아스가 왕이 되고, 아달랴는 제거된다. 왕하11:16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으나,

천사가 나타나 현몽하여, 예수님 가족을 애굽으로 피신시킨다.


사탄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아보려고, 역사상 온갖 애를 다 썼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내셨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이제 그 분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완수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렇게 그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 내셨고, 지금도 지키고 계신다.

용, 마귀, 사탄이 아무리 '아이'를 삼키고자 했으나.. 그는 성공하지 못했다. 



◑5절, 어린아이 - 왕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2:5


▲올려가더라                                                *헬 ‘하르파조’

이 단어는, 바울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갔을 때, 그 때 쓰인 단어이다. 고후12:4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올라가는 휴거 사건에도 동일하게 쓰인 단어이다.

                                         살전4:17 구름속으로 끌어올려져

그래서 항상 수동태로 쓰인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이런 수동적인 표현을 한 것은

지금 문맥의 진행이, 사탄의 공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서, 

‘끌어 올리셨다’는 표현을 쓰면서,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도인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켜내실 것이고, 천국으로 끌고 올라가실 것이다.

(‘성도의 견인’이 성경에 전반적으로 나오지만, 이 구절에서도 발견된다.)


▲‘낳았다’는 말의 의미는 포괄적이다.

예수님의 ‘탄생’만 의미하지 않고,

생애, 수난, 죽음, 부활, 승천까지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로서

'낳았다'라고 쓴 것이다. 주1)

 

그러므로 위 본문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씀은

'탄생'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전체를 뜻한다.

그 구속사역이 여인 가운데서(교회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특징을 대표하는 단어가 '어린아이'이다.

그래서 적용해 보면..

 

 

◑적용/ 어린아이 - 왕


▲문제 제기

그런데 예수님이 왕의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데,

왜 그 분의 백성인 우리들의 삶이 이 모양인가? 지지리 궁상인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성도들보다 더 로또 복권도 잘 당첨되고,

비즈니스도 더 잘 되고, 보약 안 먹어도 건강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답변

그 문제를 푸는 키가 바로 ‘아이’라는 단어이다.

‘아이’는 ‘아주 어린 아기’를 뜻한다.  헬, 테크논

왜 계시록이, 지금 철장으로 다스리고 계신 그 예수를 가리켜서

계속해서 ‘아이, 또는 남자아이’라고 부를까?


그 분은 지금 천상에서 왕으로 등극해 계시고,

철장으로 다스리고 계신 분이신데,

그 표현은 ‘어린 아기, 어린 양’ 이렇게 부르고 있다.


‘아이’가 의미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엄마가 젖을 주면 먹고, 안 주면 못 먹는다.

스스로 찾아서 먹을 수 없을 만큼 절대 의존적이다.


예수님을 아이라고 표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절대 의존하며 사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증명하거나,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힘을 쓰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만 순종하고 충성하며 사셨다..

라는 의미에서, 예수님을 ‘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전에

‘나는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것만 했고, 전하라는 말씀만 했다’고 하셨다. 요12:49 등


그 분이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라가셔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도

역시 '아이'로서 다스림이다.


그 말은, 예수님의 철장, 다스림, 왕노릇은

겸손한 다스림, 순종과 섬김의 다스림이란 뜻이다.

지금 철장으로 다스리시지만,

(철장으로 다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니라, 철장으로 죄인을 심판하시더라도)

그 예수님은

자기 자녀들을 사랑과 섬김으로 다스리신다.

그래서 ‘어린아이’라고 계시록에서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왕노릇도 마찬가지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지금 지상에서 이미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을 하고 있다.

예수님 안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시면, ‘이게 과연 왕노릇 인가?’ 하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성경에 등장하는 왕을, 우리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이 세상의 왕의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헷갈린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늘의 왕은, 이 세상 왕 과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군림하는 왕’, ‘경쟁에서 이기는 왕’, ‘싸워서 쟁취하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죽여서 백성을 살리는 섬기는 왕, 사랑의 왕, 용서와 포용의 왕,

아버지께 순종하는 왕이다.

그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왕의 개념이다.


그래서 그 철장으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노릇 하시는 여러분도 역시 섬기는 왕,

사랑의 왕, 용서와 포용의 왕, 순종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내가 힘과 권세가 없어도, 얼마든지 내가 왕노릇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용서하고, 사랑하고, 참아주고, 인내하고, 순교하는 그런 삶은

힘의 원리를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서는

고난으로, 고통으로, 환란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그 삶이 '왕노릇'인지 아직 모르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예수님을 믿었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어요?’

이렇게 절규한다.

왕의 개념을 잘못 갖고 있으니까, 그렇다.


예수님만 왕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왕으로 삼아주셨다.

그래서 우리도 왕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처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인내하고, 여전히 용서하면,

그게 바로 왕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전부 그렇게 왕노릇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땅에 왕으로 오신 평강의 왕, 만유의 주께서 오셔서

자기를 죽이셔서, 남을 살리고 가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왕의 삶의 원리다.. 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가셨다.


마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나의 성질대로, 나의 기분대로, 나의 힘을 사용해서 남들 위에 군림해서 살지 않고,

오직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사랑하며, 참아주고 사는 어린아이

그 예수라는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절대 천국에 못 들어간다.. 이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자기부인’이라고도 하며, ‘십자가를 지는 삶’ 이라고도 한다.

자꾸 나를 비우고, 내 안에 계신 어린아이/어린양 같으신 예수가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6절, 여자가 양육 받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6


▲여자가 1260일 동안 양육받는다.

1260일=3년반 등의 표현은, 교회시대를 가리킨다.

여자(교회를 의미)는 교회시대 내내 양육을 받는다.

신앙의 성장, 영적인 성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5절과 연결해서 보면,

여자(교회)눈 ‘어린아이 같이 사랑의 왕’이 되기 위하여 양육받는 것이다.


여러분, 훈련을 받는 훈련병이

조지 알마니 같은 양복 입거나, 구찌 핸드백 들지 않는다. 훈련복입고, 배낭 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연단 받고, 천국에 잘 들어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다.

천국에서의 다스리는 삶을.. 지금 이 땅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것은.. 참된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지금 우리들 가운데는, 그 훈련(본문에 ‘양육’)이 너무 고되어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이런 찬송을 매일 부르는 성도님들도 계신다.


저도 지난 7년간, 우리 가족들과 다같이 엄청난 훈련을 받았다.

집에 음식이 다 동이 나서, 쌀 한 줌으로 죽을 멀겋게 쑤어서,

자녀들과 온 가족이 함께 나눠 먹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참 힘들었다. 눈물 나도록 괴로웠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저를 어린아이로 만드는 ‘양육’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혹시 그런 시험을 받고 계신다면.. 기뻐하시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 시험을 받을 만한 그릇’으로 대우해 주시는 것이다.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니까.


우리는 이런 ‘양육. 훈련’들을 통해서, 자꾸 내 힘을 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왕’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섬김의 왕’ ‘사랑의 왕’ ‘포용의 왕’으로 다듬어져 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성을 가지고서, 그런 모습/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만약 그런 훈련 없이 내가 왕이 되면, 내게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 다 죽여 버린다.

그리고 결국 자기도 죽는다. 벌 받아서! 


............................


주1)

그런데 그 아이는 여인이 아이를 낳자마자 올라간다.

언뜻 보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부활(승천)했다는 식으로 보인다.


여기서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는 말은,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만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지금 해산을 앞둔 여인처럼 근심하고 있는데,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기뻐하듯이, 너희도 곧 기뻐하게 될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 <아이의 해산>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다.


‘낳았다’는 말의 의미가,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 사역 전체를 가리키는 뜻이다.


행13:32~33절에도, 예수의 탄생(낳았다)을, 부활까지 포함한, 포괄적 의미로 쓰였다.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부활)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정리하면, 예수님이 낳자 마자 승천하신 것은 아니고,

‘낳았다’는 말은,

탄생/생애/십자가/죽으심/부활/승천의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대표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