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천국의 국가대표다 계2:8~11 인터넷설교 녹취
우리의 미래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머나 교회’들이, 각처에서, 꿋꿋이 버티면서, 자기 자리를 지켜 주는데 달려 있습니다.
*모든 대형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란 뜻은 물론 아니고,
모든 작은교회가 서머나 교회란 뜻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볼 때,
교회의 몸집이 커질수록, 그럴 가능성은 높았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화 <국가대표>
▲우리나라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스키점프는 한국에서 대단히 비인기 종목이라서,
한국 전체에 스키점프 선수가 7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7명중 5명이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라고 한다.
(다른 나라는 수 만 명의 선수들 중에, 상위 몇 명 뽑아서 국가대표를 맡기는데..)
게다가 한국에 스키점프 팀이 생긴 것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동계올림픽’의 모든 종목에 적극 참가해야 하는데..
그래서 급조해서 ‘스키점프’팀을 만들어서, 한국대표팀으로 파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년에 한국에서 스키를 좀 탄다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아무렇게나 구성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이니, 그들은 변변한 연습시설도 없어서,
달리는 자동차 뒤 적재함에서, 혹은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했다.
때로는 고장 난 놀이공원 시설을 이용해서, 하강 및 활강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 선수들의 체격과 체형이
‘스키점프’에 꼭 알맞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스키점프 강국이라고 한다.
1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에 의하면 *이 단락이 예화의 핵심
과거에 스키만 좀 탈줄 알았지, 사회에서 비실거리던 사람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난 다음에, 자기들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이거 왜 이래? 이래 뵈도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야!’ 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그저 하루하루를, 권태 속에서 비실거리며 살아가던 그들이
당당한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고는, 그 감격과 자부심이 너무나 커서,
그들은 늘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고,
매사의 언행에 있어서, 거기에 걸맞는 언행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인기가 좀 없으면 어떻고..
돈을 많이 못 벌면 어떠냐는 것이다.
자기들은 당당한 ‘대한민국 국가대표다!’ 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성도들은
좀 형편이 어렵고, 환경이 확 풀리지 않아도, 별로 인기가 없어도,
‘나는 하늘나라 국가대표다!’ 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야 하며,
본문의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바로 그런 삶을 살아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점점 큰 대형교회로 성도들이 모여들면서,
작은 교회들이 하나 둘씩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걸 ‘부흥’이라고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다들 그걸 ‘위기’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작은 교회들이 버텨내 주어야 하는데,
그 가난/비인기/작은 숫자... 이걸 버티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키점프 국가대표>들이, 스스로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버텨낸 것처럼,
작은 교회들이 <우리는 하늘나라 국가대표다>라는 자부심으로 버텨나가야 한다.
그 자부심이 있으면.. 그 설움, 비인기, 가난, 그 무시당함을 버티고..
그 자부심이 없으면.. 그 설움, 비인기, 가난, 그 무시당함을 못 버틴다.
오늘날 교회 규모가 작다고, 무조건 '국가대표, 서머나 교회'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나라의 전방을 지키는 국가대표다' 라는 자부심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그 자부심이 있는 사람만, '하늘나라 국가대표'이다. 무조건 작다고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자부심이 없으면, 그 자리를 계속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성령님이 그 자리로 자기를 부르셨다면.. 반드시 그 자부심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의 서머나 교회는, 다른 6교회가 그러하듯이, 전체 교회를 모형 한다.
그래서 ‘일곱 교회’라고 부른다. 주1)
▲서머나 교회는 <고난>을 대표하는 교회이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서머나 교회처럼,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가야 하는데,
서머나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가야할 길의 한 단면인
고난 받음과 환란 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교회 이름에 ‘서머나 교회’라고 이름붙인 교회는 많지 않다.
다들 ‘고난’이 껄끄럽고, 썩 환영할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서머나교회가 <하늘나라 국가대표>인고 하니,
고난, 환란은.. 스키점프처럼 비인기종목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고난과 환란을 대표로 받겠다고 나서는 교회가 없다.
그러니까 ‘고난, 환란을 받는 교회(성도)’가 되면,
‘하늘나라 국가대표’는 따 놓은 당상인 것이다.
여기는 100대1 같은 경쟁력도 없다.
이 팀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두 다 국가대표가 된다.
▲본문의 <서머나교회>는 모든 교회가 가야할 운명적이며, 필연적인 길을 담고 있다.
모든 교회가 이 길을 가야 하지만,
또 모든 교회가 ‘서머나교회’가 아니고, ‘일곱교회’로 나눠져 있듯이,
특별히 ‘고난과 환란을 당하면서 인내하는 교회’도 있다.
모든 사람이 전도해야 하지만, 특별히 전도의 은사/사명을 받은 사람이 있듯이..
여기서 ‘교회’는 ‘성도’와 동의어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서머나 성도’의 길을 가야 하지만, *서머나 : 쓴 몰약을 의미
특별히 ‘서머나 성도’의 사명을 받은 사람도 있다. 일례로 순교지에서 순교하는 사람들처럼..
어쨌든, 본문 서머나 교회 말씀을 대할 때,
우리 교회 이야기요, 내 이야기로 대해야 한다.
남의 교회 이야기요, 남의 이야기로 들으면 안 된다.
성경을 읽으실 때, 이 단락을 건너뛰어도 안 된다.
물론 건너뛰는 것은, 자기 자유니까, 건너뛰어도 되고,
남의 이야기로 들어도.. 그건 자기 자유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주변 인물’이 될 것이요,
마지막 심판 날에 주님을 만나 뵈올 때에도, 당당하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자기 고개를 떨굴 것이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를 요약하면,
보편 교회의 모범적 모델로서 서머나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별로 매력 있는 내용은 없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지금도 환란과 궁핍 속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죽도록 고난을 받을 것인데,
난 안 말려 주겠다. 나는 말려줄 생각이 없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견뎌라. 이겨내라.
심지어는 사탄도, 너희 중 몇 명을 감옥에 보낼 터인데,
그래도 나는 안 말려 줄 것이다.
견뎌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너희가 둘째 사망(불못, 지옥)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지옥에 안 들어가는 것.. 그것을 위해서
너희들은 반드시, 고난/환란/궁핍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밧모섬에서 요한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다.
▲8절,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예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당신을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한다.
계2: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예수께서 7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말씀이 다 틀린데,
서머나 교회에는 굳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는 표현을 쓰신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기 옛사람을 죽이고, 장사지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너희가 다 환란과 고난을 통해, 죽었다가 살아나는 자가 되어라’는 것이다.
그걸 암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서머나 교인들은 지금 죽을 것 같은 고난을 통과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죽었다가 살아난 이’로 묘사하심으로써
‘너희들은 지금 잘 가고 있다. 나도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래, 그렇게 죽었다가 다시 살면,
새롭게 영광스럽게 다시 살아나게 된단다. 그러므로 힘 내라!’는 것이다. 주2)
▲9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환란과 궁핍을 통과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 이거 뭐 병 주고 약주기 인가?
성도들은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하셔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재산.. 그 가치를 아셔야 한다.
본문은 그것을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라고 증거 한다.
여러분이 가진 진짜 재산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자신이 여러분의 재산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레위 지파에게 땅 분배를 해 주지 않으시고,
‘여호와가 네 기업이다’ 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자기 기업으로 삼은 것’을
땅을 기업으로 받은 다른 지파들보다,
더 자부심을 갖거나, 더 행복해 했어야 했다.
신약의 '왕같은 제사장'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신데,
‘내가 너희의 기업이다. 내가 너희의 유산이다.’ 말씀하시는데,
그러면 성도인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부자와 비교할 수 없는 진짜 부자들이다.
이런 자부심이 있으셔야 한다. 그래야 진짜 ‘국가대표’다.
여러분 그래서 부부도 서로 이 사실을 확인하셔야 한다.
‘여보,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기업과 그 부요함은..
이 세상의 부유함보다 훨씬 더 영원하고 좋은 것이야!’
이게 피부로 살갑게 느껴져야 한다. 이게 말로 설명은 쉽지 않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여호와만 바라리이다!
성경이 말하는 부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 우리가 가진 소유로 ‘그가 부자다/ 아니다’ 라고 측정하면 안 된다.
성도는 그런 잣대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럼 진짜 부는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이게 진짜 성도의 부유함이다.
애굽의 모든 보화는, 당시 세계의 모든 보화와 같다.
그것보다 더 귀한 재물이 나오는데, 그 재물은, 예수를 위해 받는 능욕이다... 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건 설명이 참 어렵다.
우리가 실제로 이렇게 살면서, 자기 체험과 느낌을 전달해 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성도가 이 땅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아, 하나님이 나에게 정말 큰 재물을 주시는 구나, 내가 진짜 부자구나..’
라고 믿고, 감사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힘들고 괴롭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로 지금 점점 지어져 가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그렇게 변화되어 간다.
여러분은 그런 부자가 되셔야 한다.
진짜 부자는.. 환란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환란과 고난을 통과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 동행, 기업이 되어주신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환란 당하는 서머나 교회를 보고, ‘너는 부요한 자다’라고 한 것이다.
▲10절, 서머나 교회의 고난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환란, 궁핍은 지금 현재도 있지만, (미래에 사라지지 않고)
미래에도 계속 있을 것이라니.. 정말 너무한 것 같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지금 현재의 고난이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미래의 고난이다.
하루, 이틀에 끝날 고난이 아니었다.
현재에도 장차올 미래에도 고난은 숨어 있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 칭찬 받은 서머나 교회의 예정/작정이었다.
서머나 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는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정금처럼 재련된다.
여러분은, 그 서머나 교회가 간 길을 잘 가고 계시는 분도 있다.
여러 가지 고난과 환란 중에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잘 가고 계시는 것이다.
소원을 이루고, 부자가 되고, 형통한 삶만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라오디게아 교회에 가깝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3:17
조금 힘이 들더라도, 고난과 궁핍을 통과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지어져가는 참 교회 모습으로 성장해간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이다.
인기 좀 없어도 된다. 가난해서 좀 고생해도 된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시기 바란다.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 폴리캅
그는 A.D. 156년에, 로마 정권에 붙잡혀 진짜 불에 타서 순교했다.
‘환란과 궁핍이 너희에게 또 올 것인데, 죽도록 충성하라’(2:10)는 그 편지의 내용이,
약 60년 후에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 폴리캅을 통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폴리캅은 자기가 십대 때, 즉 주후95년경 ‘요한계시록’을 들었을 것이다.
그가 십대 때 읽은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을
그가 노년이 되어, 그대로 실행에 옮겨서, 그는 당당하게 순교했던 것이다.
.......................................
주1)
성경에서 7을 ‘완전수’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뭔지 제게는 모호하다.
그래서 차라리 ‘충분수’라고 이름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계시록의 7교회는.. 세상의 모든 교회를 (전부, 충분히) 대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수’보다는 ‘충분수’라는 말이, 차라리 더 이해가 쉽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명도,
7이 ‘충분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쉽다.
하나님이 정하신 충분하면서도, 많은 숫자가 있다는 뜻이다./편집자
주2) 실제로 서머나 도시는,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도시였다.
기원전 6세기에, (아마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기원전 3세기에 다시 새롭게 세워진 도시였다.
그래서 서머나 사람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재건의 개념’이 늘 마음 속에 있었다.
그래서 서머나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금방 그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환란을 통과하던 그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새롭게 선 그 도시처럼,
우리도 완전히 새롭게 되기 위해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이구나.
예수님이 바로 그 현실을 몸으로 보여주신 거구나!
그들은 즉시 깨달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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