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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LNCK 2011. 4. 26. 14:55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약1:10~11, 딤전6:17~18           여러설교편집

 

 

◑부자들을 향한 야고보서의 경고

 

영어성경을 읽다보면,

가끔 ‘어,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 하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성경을 찾아서, 같은 본문을 읽어보게 됩니다.

최근에 그런 구절이 한 구절 있었는데요...

 

약1:10 But the one who is rich should take pride in his low position,

because he will pass away like a wild flower.

  

11  For the sun rises with scorching heat and withers the plant;

its blossom falls and its beauty is destroyed. In the same way,

the rich man will fade away even while he goes about his business.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약1:10~11

 

지금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개나리, 벚꽃, 목련 등 봄꽃이 쉬 시들어버리는 계절입니다.

떨어지는 꽃잎들을 바라보면, 누구나 마음속으로 몹시 안타까울 것입니다. ‘어떻게 일 년을 또다시 기다리지?’

 

▶부한 자는 쇠잔하리라 fade away  :11

‘fade away, fade out’ 하면,

꽃잎이 점점 시들어서 떨어지는 장면,

또는 연극무대에서 조명등이 ‘서서히 꺼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부자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점점 fade away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꽃이 떨어지듯 서서히 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에 ‘쇠잔하리라’ 라고 해 놓았으니 평소에 잘 안 쓰는 말이라서

그 의미가 확 다가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위 성경말씀과 반대되는 주장도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 그래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되지, 쇠잔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부자들이 자꾸 나타나서,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는 ‘부자가 삼대 안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위 성경말씀의 뉘앙스는 ‘부자가 3대는커녕 1대代도 가기 어렵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꽃이 시드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약1:11절 말씀을 묵상합시다.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려고 목숨을 걸며 살아가지만,

‘꽃이 시드는 것처럼 곧 시들어버리리라!’는 진리를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 허망함에 목숨을 걸거나, 자기의 소중한 일생을 투자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10

이 말씀은, 모든 성경의 번역이 제각각 입니다.

아마 헬라어 사본 자체가 여러 가지 번역이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가장 간단한 번역, 가장 짧은 번역을 선택해 봅니다. (종종 짧은 게 정답입니다.) 

'부한 형제는 (곧) 낮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부는 곧 시들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번역은 '자랑한다'는 해석을 뺐습니다. 어떤 헬라어에는 그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자기를 높이다가는.. 곧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경고입니다. . 이 단락 편집자 글

 

 

◑부자를 향한 디모데전서의 경고     이 단락 펀 글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이 시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부한 자들에게 명(강력하게 설교)해야 되는 이유는

그들이 위험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하고 위태하기 때문에, 보통 어조가 아니라, 명령해야 하는 것입니다. instruct. command

 

 

▶마음을 높이지 말고

돈과 함께 ‘마음이 높아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해지고 방자해지고

안하무인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무엇보다도, 자기가 믿음이 굉장히 좋은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믿음 좋으니까, 부자가 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경고하라고 디모데에게 편지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돈이 많으면 교만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헌금 내면서 헌금 가지고 목회자를 조종하려고 하고

헌금 내면서 교회를 자기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은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다 버려라 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단순히 부하게 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가 궁핍에도 처할 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도 아는”

궁핍해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부요해도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부자였다.’ 이것만 말하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부자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이삭과 야곱처럼 부자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인 것입니다.

이삭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요, 패망입니다.

야곱처럼 부자만 되면.. 그것은 저주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부자’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아들을, 독자를 하나님께 드릴 정도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내가 알았노라.”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지 않았고,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이지 않았고,

그들은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경외했던 분들입니다.

 

아브라함을 바로 보고, 성경을 바로 봐야지

아브라함을 부자로만 보면 안 돼요.

이삭과 야곱을 부자로만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부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부 때문에 세속화되지 않고,

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를 주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가졌든지, 재물뿐 아니라,

지식, 명예, 지위 등.. 무엇을 가졌든지

마음을 높이지 않도록.. 즉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복주다 (바라크)’의 개념

하나님의 초월적인 생명력, 

피조물에 부어지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하나님의 생명력을 주시는 것 - 그것이 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 주셨습니다. 창1:22, 28, 5: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결과..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을 주셨다'는 말은.. 생명을 주신 것과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안식일)을 복주셨습니다. 창2:3

여기서도 ‘복’이란 말은, 무슨 물질적 복이란 개념이 아니라,

안식일에 ‘하나님의 생명력’을 부어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다'와 비슷한 개념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입니다. 시73:28참조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공급받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나님의 생명력의 공급도 끊어집니다.

 

그 '복'이 사람에게 부어져서

이 '흙'이었던 존재가 생명력을 갖게 된 것 - 그것이 성경이 의미하는 복의 일차적 개념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포괄적으로  물질의 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일차적으로, 복은 -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

그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결과로.. 물질의 부유함과 건강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도'

물질과 건강이 따라 올 때도 있습니다. - 그건 '복'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 '하나님의 생명'이 끊어진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 입니다.

 

 

물론 ‘복’은.. 그 복 받은 결과로.. 물질적 복을 포함합니다. (히. 베라카 창12:2)

 

그러나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신 것은

‘흙’에게 ‘하나님의 생명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일차적인 구약의 ‘복’의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건강은, 복 받은 결과로, 따라올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안 따라 오기도 합니다.) 

물질이나 건강, 그 자체가 복은 아닌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사람이 부자가 되면 될수록.. 재물에 소망을 두려고 합니다.

이게 물질의 또 하나의 위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해지더라도, 우리의 소망이 재물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어야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6:18

 

“이것이 장래의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이런 말로 마치고 있습니다.

 

신자의 눈은 현세를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신자의 눈은 내세를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큰 교회를 세우느냐? 이 땅에서 얼마나 부요하게 되느냐?

이 땅에서 얼마나 성공하느냐?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이 땅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부요해질수록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져서 멀리 못 봅니다.

부요해질수록 사람들은 눈이 흐려져서 앞의 것밖에 못 봅니다.

이 세상 것밖에 못 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여기에만 마음 빼앗기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내세를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천국에 갔을 때 천국에서도 부자일 것인가?

내가 천국에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천국에서도 누리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 지금 일부 한국 교회, 일부 지도자, 일부 성도들이 점점 부요해지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부가 가지고 있는 위험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말씀의 교훈을 따라 아브라함처럼 부자만 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은 이 땅에 보이는 성을 찾는 것이 아니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성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추구하는 

성도들, 교회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자랑/자고하지 말라..

 

▶예를 들면,

어떤 형제가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서,

자기가 요즘 이런 저런 헌신과 봉사를 많이 해서 그런지,

하나님이 자기를 풍성하게 복 주셨다고.. 얼떨결에 자랑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면, 약간 부풀려서 자랑하는 것이.. 대부분의 습관 아닙니까.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가 그런 자랑을 떠벌린 이후로부터,

사업이 잘 안 되고, 여러 가지 연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친구에게 자랑한 것 말고는, 뚜렷하게 집히는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내가 자랑 좀 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시나?

그래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 

 

    그러다가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자기가 사실 따지고 보면, 기도생활에 그리 열심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실 따지고 보면, 섬김과 헌신에도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실 따지고 보면, 부족한 것도 많고, 회개할 점들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합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당장 형편이 유족하다는 이유 한 가지만으로,

   ‘내가 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하나님께 복 받았다’고,

    이렇게 자기가 단정적으로 믿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자랑까지 한 것입니다.

 

그 형제의 말로는,

자기에게 만약 경제적 궁핌함이 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자기가 잘 믿고 있는 줄로, 자고하며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그 형제가, 자기 부족한 점들을 깨닫고, 주님 앞에 돌이키게 되었습니까?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궁핍하게 되니까,

평소에 안 보이던 자기 부족한 점들이.. 하나, 둘씩 눈에 보이고,

자기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게 되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이 형제의 개인적 경험과 고백이,

오늘 구제역 등, 일련의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와 공동체에

어떤 통찰력을 준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들입니다.

(꼭 ‘우리가 잘 믿어서 그렇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독교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 예산도 많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교역규모가 뭐 세계에서 몇 위입니다.

 

꼭 ‘우리가 잘 믿어서 그렇다’는 말을 서두에 넣지 않더라도,

결국 그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런 복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눈에는, 고깝게 보이거나, 들릴 수 있습니다.

   ‘뭐 너희들이 잘 믿어서 그렇다고?, 내 눈에는 정반대인데?’

 

하나님은 하는 수 없이, 여러 가지 일련의 고난을 주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연평도 포격, 구제역’을 이해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깨닫기 시작합니다.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기도를 열심히 못했지?’

‘우리가 그동안 계명을 지키지 못했지?’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께 열심을 내지 못했지?’

위에서 예를 든 형제처럼 말입니다.

 

만약 이런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입술에 여러 가지 자랑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믿었더니, 이러 이러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잘 믿고 있지도 못하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여전히 우리는 잘 믿고 있는 것으로.. 계속 착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잘 믿어서, 열심히 충성했더니.. 이러 이러하게 되었다고

‘세상적인 자랑’을 만약 늘어놓는다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적으로도 반드시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재앙을 씨리즈로 보내어서

내가 평소에 얼마나 대충 신앙생활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잘 믿어서.. 이러 이러하게 복 받았다’고 자고하니까,

     하나님이 그 실상을 파악하라고.. 이런 일련의 재난을 보내신다면,

 

     이제 즉각 그 자랑을 그치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를 돌아보면서, 겸비하고 고치면,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막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징계가 맞다면.. 우리가 '자랑'을 중단하기 전에는, 안 그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잘 된 것들은.. 우리가 잘 믿어왔기 때문이 아니라면, 과연 뭔가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돌려야 합니다.   <2819번 글에서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