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작별인사 수22 :1~6 11.04.15.설교스크랩
▲본문의 정황 : 르우벤/갓/므낫세 半지파와 작별하면서..
우리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재정립해야 됩니다.
본문 수22:1~6절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먼저 설명하면,
르우벤 지파/갓 지파/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동편에서 자기 소유를 다 얻었지만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에서 아직 소유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와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까지 함께 싸웠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그들을, 요단 동편 자기 소유지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물론 여호수아는 요단 서편 가나안에 머물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헤어지기 직전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마치 부모가 죽기 전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들에게 유언하는 것처럼
이제 언제 볼지 모르는, 르우벤/갓/므낫세 半지파에게
여호수아가 권면하는 내용이 여기 본문 수22:1~4에 나와 있어요.
뭐라고 권면합니까?
▲수22 :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러분 보세요. 율법과 명령을 행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게 기독교가 아닙니다.
‘율법과 명령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없이,
율법대로, 성경대로 살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경 공부를 하는 목적도,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없이
‘우리는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 그것 잘못 짚은 것입니다.
그저 율법주의요, 바리새주의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애당초 구약인데도 그냥 ‘율법을 지켜라’ 이게 아닙니다.
‘너희에게 명한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신명기(시내산에 이은, 제2의 율법)을 주면서
총 주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목적이지,
그것을 무슨 계율로,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도,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인 22장에서
그 중요한 핵심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냥 율법을 지켜라’ 이 얘기가 아니에요.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수22 :5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1~4계명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5:계명에서 10계명을 지키고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1~10계명을 다 지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지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 않고,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입으로만 말로만 혀로만 그러지 말고
우리는 ‘말씀 중심적’이다.. 그러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중심적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자들이.. 율법사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수22 :5b
하나님의 계명(율법)을 지키는 목적은,
하나님을 친근히,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수22 :5b
그저 성가대하고/주일학교 교사하고/식당 봉사하고.. 이게 아니에요.
사랑으로 섬기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는 겁니다.
그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섬기는 것이에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몇몇 지파가 헤어질 때, 여호수아가 간청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간절히 강조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제가 느꼈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이게 기독교다!’
그런데 오늘 날 부모들 중에, 예수 믿던 부모가 죽을 때 그럽니다.
‘너 예수 잘 믿어야 된다. 교회 잘 다녀야 된다. 십일조 잘하고 어쩌고저쩌고..’
예수 잘 믿는 것이 술 담배 안 하고, 교회 잘 다니고, 십일조 하고..
거기에 국한시켜 버리는 데요..
누군가 잘못 가르쳤고, 잘못 배워서 그런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잘못된 분위기가, 거의 대다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죽기 전에 부모가 유언으로
‘너 정말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
네가 정말 주님을 친밀히 알아야 되고, 네가 정말 주님을 친근히 해야 되고,
네가 정말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
이렇게 유언을 남기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되느냐 말입니다.
그런 유언을 남기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 부모 자신이,
일평생 신앙의 길을 ‘율법적으로’ 해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우리가 그렇게 잘못 가르쳤고요...
부모가 죽을 때 ‘너 주님을 알아야 된다. 주님을 사랑해야 된다.
주님의 친구가 돼야 된다.’
이런 유언을 남기는 기독교인이 몇 프로나 되겠느냐 이런 얘깁니다.
▲평소 삶에서 ‘사랑함’이 몸에 배여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 중에도, 임지를 바꿀 때, 신자들에게
’성도 여러분 크게 삼가서 주님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주님을 친밀히 해야 됩니다.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섬겨야 됩니다.’
이렇게 권면할 목회자가, 어쩌면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에 ‘교회 열심히 다녀야 됩니다. 주일 성수해야 됩니다. 십일조해야 됩니다.
주의 종들에게 잘해야 됩니다. 충성 봉사해야 됩니다.’
무조건 전부 열심히 하라고 그러는데,
한마디로 하면 <교회에 충성하라.. 그러면 복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또 ‘아, 그렇게 해야 되나 보다!’ 하면서
평소에는 전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친밀히 하지 않던 사람이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친밀히 하십시오!’ 라고 작별인사하면
그 말은, 빈말이요, 식상한 느낌만 주게 됩니다. 아니한 만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 해야 하고, 성경강해 해야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서도, 지식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봉사 열심히 해야 합니다만,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율법에 치우치고, 기복신앙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사랑함 없이, 복 받으려고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과 작별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진심으로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22 :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여호수아는, 칼만 휘두를 줄 알고, 그 외에는 일자무식한 군인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간파한 ‘신앙의 지도자’이었던 것입니다.
▲마치는 말
과연 여러분, 한국 교회 신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한쪽은 말씀에 관심 빼앗기고(율법주의),
한쪽은 복에 관심 빼앗기고,
또 한쪽은 성장에 관심 빼앗기고,
정말 주님께 관심을 주는 교회와 성도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예수님이 유대교를 보시고 한마디로 말씀했습니다.
‘다만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노라.’ 요5 :42
‘말씀’을 사랑한다는 신자들은 많습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사랑하는 신자도 있습니다.
‘복’을 사랑하는 신자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를 소원하는 교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이 아니고/ 성공이 아니고/ 체험이 아니고..
예수님을 향해서 가슴이 뛰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준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결한 주의 신부로 준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구원의 완성입니다.
주님 먼저 저부터 회개합니다. 내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것,
내가 주님을 가까이 하지 못한 것, 내가 주님을 가장 보배롭게 여기지 못한 것,
주님을 얻기 위해서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지 못한 것,
주님을 더 알고 주님을 얻기 위해서 바울처럼 내가 살아가지 못한 것..
너무나 산만하고 너무나 안일했던 것, 너무나 게을렀던 것 주님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정말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하시고
내 가슴이 주님을 향해서 뛰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소서.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소서. 주님과 사랑에 빠진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