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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을 소성시키는 교회

LNCK 2011. 6. 9. 14:49

◈만국을 소성시키는 교회          막11:17,  행6:4                 08.09.19.설교스크랩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막11: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이것이 되면 다 됩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양심이 찔렸습니다.

사도행전에, 예루살렘 교회가 7집사를 세웠는데

그 이유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려고> 세웠다는데 행6:4

저는 전무專務 안 하는 겁니다.


‘사도들은, 목회자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에 전무하기 위해서

안수집사들을 세웠는데..

우리 교회에는 안수집사들이 있는데도.. 나는 너무 전무하지 않는다.

나는 기도에도, 말씀 전하는 것에도 너무 전무하지 않는다.

나는 정말 너무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나는 정말 잘못됐다...’

이런 자책이 되는 것입니다.


또 생각해보니까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기 위해서, 안수집사들을 세웠다 했는데

나는 안수집사 세울 필요도 없는데도 세웠구나...’


그래서 제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주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주님, 제가 너무 비성경적입니다.

제 삶이 너무 비성경적입니다.


사도라면, 목사라면 기도하는 것에 전무하고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해야 하는데,

저는 기도하는 데도 전무하지 않고, 말씀 전하는 데도 전무하지 않고,


그러면서 기도는 딴 사람들이 다 하고, 딴 사람들이 봉사, 헌신 다 하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주여, 제가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주여, 제가 잘못됐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와 선지자의 삶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은 힘들 것 같지만

흉내라도 내봐야 되는 것 아닌가요?


부분적으로라도 본받으려고 애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기도회에 참석하고, 철야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기도에 전무하려고 합니다.


▲목사의 첫 번째 사명이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면,

그 교회를 지키는 목회자는.. 당연히 기도하는 일이 첫 번째 사명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안 하니까.. 교회가 이렇습니다.

기도를 안 하니까.. 설교가 그저 그렇고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를 안 하니까.. 교회가 부흥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많고, 성도들의 믿음의 수준이 낮고,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사도의 첫 번째 사명이, 목사들의 첫 번째 사명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도하는 집>입니다.


▲설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리라." 행6:4


위 말씀에 보니까

‘기도하는 것’이 ‘말씀 전하는 것’보다 먼저 나오잖아요.

둘을 동격으로 볼 수도 있지만, 1번과 2번으로 차등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잖아요..

‘내 집은 말씀하는 집’이 아니라요.. (물론 다른 구절에는 말씀을 더 강조하는 구절이 있겠지만)


그런데 일부 목회자들은 ‘설교’하는데만 전무하고 있습니다.

강해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전무했기 때문에

그게 목사들의 사역의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이렇게 병들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문제가 많고 쇠퇴하고 있습니다.


설교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만 하고 설교를 안 하면 안 되지만, 

우선순위의 문제인데, 설교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사도들과 목사들에게 설교하는 것보다 우선이 기도라면

성도들에게는 예배 참석하는 것보다 우선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것보다, 찬양 팀 하는 것보다, 예언 사역하는 것보다,

축귀 사역하는 것보다 우선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목사를 목사 되게 하고,

그 기도가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예언사역을 예언 사역 되게 하고,

축사사역을 축사사역 되게 하고,

찬양을 찬양 되게 하고, 예배가 예배 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신학교처럼 되면 좋지만, 먼저는 기도원처럼 되어야 합니다.

기도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도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 기도처소를 잘 지어서 운영하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거기 두 번 가 봤는데 좋더라고요.

 

제가 여기(저희교회 기도회) 와서 기도해 보니까, 기도원이 필요 없습니다.

여기가 진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겁니다.

제가 이 교회의 담임목사이면서도 이 교회를 너무 몰랐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듣기는 들었는데 제가 얼마나 현실인지 현실로 인식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석해보고 느낀 것이 아니 어떻게 된 교회가

성도들이 일주일에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 삼사백 명이 와서

다섯 시간, 길게는 일곱 시간을 그냥 기도만 하고 가느냐? ..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교회가 교회 성도 수에 비례해 볼 때

삼사백 명이 일주일에 삼 일을, 다섯 시간 또는 일곱 시간 이상 기도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저는 충격 받았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이런 교회가 됐는가?

저는 잠만 자고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 교회가 이렇게 됐는가?

제가 얼마나 악한 자고, 부적격자인지 몰라요.


아니 성도들이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는데.. 나는 뭐하고 있었는가?

성도들이 이렇게 살 때.. 나는 뭐하고 있었는가요?


▲‘기도하는 집’에 실패하면, ‘강도의 굴혈’  됩니다. 

아까 말씀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이 강하게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둘 중에 하나다.

기도하는 집이 되는데 실패하면, 강도의 굴혈이 된다.’


기도하는 집이 되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납니다.

나아가서 기도할 때 성령의 생명수 강물이 그 교회의 예배 가운데, 찬양, 설교 가운데,

그 교회의 모든 모임 가운데 강물처럼 흐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집이 되지 않으면 강도의 굴혈이 됩니다.

 

목회자들도 기도해야 진짜 목자가 되는 것이지.. 기도 안 하면 강도같이 됩니다.

강도의 굴혈의 집주인은 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탐심이 있어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목회자들이 강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영구히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그렇게 미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본성에는, ‘육신’과 ‘변화된 심성’이 공존하거든요.)


교회의 주인은 도적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신데

교회가 기도하지 않을 때 교회 안에 도적이 틈타게 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귀신들이 틈타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성도의 삶에 여러 가지 마귀가 주는 시험에 노출됩니다.

그 결과, 여러 환란과 삶의 고통을 불필요하게 당하게 됩니다.

 

‘강도의 굴혈’은 작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것까지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겔47장의 성전 환상은, <기도하는 집>과 같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바꿔 말해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본 것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내려서 일천 척을 척량하니까 물이 발목에 잠기고,

일천 척을 더 척량하니까 무릎에 잠기고

일천 척을 더 척량하니까 허리에 차고,


일천 척을 더 척량하니까.. 헤엄을 칠 강이 되어 물고기들이 많아지고

좌우의 나무에 시절을 쫓아 열매들이 열리고, 어부들이 생기게 되고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

이것은 <기도하는 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사가 똑똑한 교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성도 수가 많은 교회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될 때 에스겔의 환상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목회자의 사역과 성도들의 전체의 삶을 볼 때

이 모든 것을 무엇이 좌우하고 이 모든 것을 무엇이 결정짓는가?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느냐, 안 되느냐?

-목회자가 무릎을 꿇느냐, 안 꿇느냐?

-장로들과 중직자들이 무릎을 꿇느냐, 안 꿇느냐?

-집사들이 성도들이 기도하느냐, 안 하느냐?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느냐, 안 만드느냐? ...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중직자도, 성도도 그렇고요. 교회는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기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특별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있으라 하셨는데, 깨어있는 방법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있으라." 눅21:36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4:7


때와 시기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이 어느 때냐?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성경공부만, 강해설교만, 제자훈련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이나 행사만, 찬양축제만, 은사집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기도해야 될 때인 줄 믿습니다.


지금은 목회자부터 성도 전체가 기도해야 될 때인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로 나가야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집>은 <만국을 소성>시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 이유는, 겔47장이 계시록 22장에 다시 나옵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만국을 소성refresh시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 단순히 에스겔의 환상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의 천상의 환상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내려오시고,

주님의 영광이 있고 주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

주님이 함께하시고 임하시는 교회.

그래서 성령의 생수의 강물이 흘러넘치는 교회,


생명나무 과실이 줄줄이 매달 맺혀가지고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

만국을 소성시킬 수 있는 교회,


단순히 개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만국을 소성시킬 수 있는 교회,

도시를 소성시키고 나라를 소성시킬 뿐만 아니라, 만국을 소성시키기 위해서 쓰임 받는 교회,

열방과 열왕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는 교회,


그게 설교 잘 하는 교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치유, 예언, 전도 잘 하는 교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때 그 일이 이뤄질 것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철야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밤을 지새우고, 울고 기도할 때

여러분은 만물을 소성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속 기도해 나갈 때 여러분은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만국을 소성시키는 열매를, 결과를 보게 될 줄 믿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때, 거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임하고 영광이 임재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효과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임재 때문에, 영광 때문에

①그 곳에서부터 생수의 강물이 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겔47장처럼, 그 생수의 강물이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②그 다음에 생명나무 열매들이 맺혀지고 사람들이 영생을 얻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③만국을 소성시키는 역사가, 만국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령의 감동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으로 전하는 것이.. 예언인 것입니다.

이게 제 -설교자-의 은사입니다.

이런 은사를 받은 분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나서, 교회의 덕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