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바울사도의 사도적 사랑 - 쩐리탕 3040

LNCK 2011. 6. 9. 21:35

◈바울사도의 사도적 사랑            살전2:6~12       타이베이 쩐리탕 교회 설교 녹취, 출처



◑1.<본문 설명>은 이론이라서 약간 딱딱하지만 ◑2.부터 생생한 간증이 나옵니다.



◑1. 본문 설명


▲1. 살전2:6~12  부모의 사랑으로, 성도를 양육한 바울

살전2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즉 <사도적 사랑>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바울의 <사도적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부모와 같은 사랑입니다.


살전2: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사도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사도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유모(부모)가 자녀를 기름같이 했습니다.

참 부모는 하나님이시고, 사도는 자신을 ‘유모’라고 표현했습니다.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부모가 그러하듯이, 자녀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주려 했습니다.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은,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요, 몸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잘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 사랑으로 타일렀습니다.


▲사도적인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신약의 여러 곳에서, 사도적인 사랑은,

부모와 같은 사랑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비와 어미와 같은, 자신을 죄다 버리는 사랑입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바울이 보여준 사랑은,

스승의 사랑이 아니라, 바로 부모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스승이 되기 쉽습니까, 아니면 부모가 되기 쉽습니까?

스승이 되기가 쉽고, 부모가 되는 것은 훨씬 어렵습니다.


우리 교우 가운데, 여교사가 있는데, 최근에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 교사의 고백은,

‘예전에는 학교 출근이 힘든 일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학교 출근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첫째, 선생님은 퇴근 시간이 있고, 방학도 있지만,

부모는 퇴근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 교사는 퇴직할 수 있지만, 부모는 퇴직이 없습니다. 평생 양육해야 합니다.

비록 자녀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자를 낳아도.. 손자까지 늘 염려하게 됩니다.


셋째, 교사는 지식만 가르치면 되지만,

부모는 자신의 생명을 자녀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녀만 낳는다고 그게 끝이 아닙니다. 부모 평생 자신을, 자녀에게 다 내어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살전2:8


어머니의 마음이 원래 이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동기가 단순하고, 무조건적으로 자녀에게 사랑을 부어줍니다.

그 사랑에는, 어떤 욕심이나, 어떤 다른 꿍꿍이 없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습니다.


부모 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부모는 언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등 뒤로 보고 배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바울의 사도적 사랑이 놀라운 것은

자신이 ‘그 부모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돌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살전2:7, 11


우리 대만에서는, 목회자를 ‘죽은 제자’라고 농담 삼아 부릅니다.

그렇게 성도를, 바울처럼, 사도적 사랑으로, 부모의 사랑으로 사랑하려면,

목회자가 죽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거든요...



◑2. 제 장모님의 사랑의 삶


지난 주에 저는, 장모님의 장례예배에 참석하고자 미국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가족, 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장모님의 삶 속에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들을 들었습니다.


▲장모님이 예수를 믿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모는 10명의 자녀를 데리고,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왔는데,

10명의 자녀를 양육한 것 자체가 .. 바로 기적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10명의 자녀를 낳고, 다 키웠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공산당에 쫓겨서 대만으로 피난 내려올 때,

다섯 째 아이가 중병에 걸려서, 열이 펄펄 났습니다.

의사도 어쩔 수가 없다며 포기했습니다.

물론 당시는, 의료기술도 별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선교사가, 장모께

예수님은 병을 고치신다고 전도했습니다.


장모는 생각하기를 ‘외국의 어떤 神인가보다..’ 그저 그렇게 생각했답니다.

그리나 정말 자녀의 병을 고쳐주신다면, 자신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 열이 나는 아이를 위해서, 장모는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자,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먹었고, 열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장모는, 신실하게 한평생을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10명의 자녀는 물론, 가족 모두를 전도했습니다.


장인어른 역시, 작은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요..

 

1950~60년대 대만에는, 쥐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한 밤 중에 쥐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발을 물어뜯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방에 같이 자는데도,

예수 믿는 장모는 멀쩡한데, 안 믿는 장인만 쥐에게 물어뜯기는 것입니다.

장모가 쥐에게 물리지 않았던 이유는,

늘 자기 전에, 주님이 자신을 쥐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장인은, 그런 것은 미신이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장모는, ‘당신도 한 번 해 보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기도하면, 쥐들이 물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인은 반신반의하며, 장모를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쥐들이 정말 장인을 물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모도 물지 않았습니다.


그 후부터, 장인어른도,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예수 믿는 초기에는, 이런 기적들이 오늘날에도 종종 일어납니다.

특별히 선교지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제 장모님은 매우 신실하고, 단순하신 자매님이셨습니다.


장인은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사업이란 것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서

사업이 잘 될 때는, 굉장히 돈이 많았지만,

사업이 안 될 때는, 가정경제가 매우 힘들었는데,

심지어는 살던 집까지 경매로 팔리기도 했습니다.


살던 집도 이제 넘겨줄 판국이었고,

장인어른은 어디로 가 버리고,

장모님 혼자 어떻게 10명의 아이들을 어디서 키우면서 생활할 것입니까?


그때 이웃 사람들은 모두, 장모께 ‘이제 어디 가서 살 거냐?’고 물으면서

걱정해 주었습니다만, 아무도 도움을 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장모님은 성경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장모께, 이사야서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옮기지 아니하리라”는 내적 음성을 주셨습니다.

아니, 무슨 수로 지금 경매 당한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집은, 까오슝의 한 판사에게 경매되어 팔렸는데,

내일 집을 비워주고, 이사를 가야하는데,

하루 전날, 뜻밖에도 그 판사가, 비리를 저지른 것이 신문에 폭로되었습니다.


그 결과, 판사의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모두 동결되고 말았습니다.

장모와 10명의 자녀들은, 일단 그 집에서 계속 살게 되었습니다.


재판에 묶여 있어서 집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장모는 돈을 모아서, 그 집을 싼 값에 다시 샀습니다.


장모님의 삶에는, 이런 기적들로 그득했습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는 여종을,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조차, 장모님께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장모는 기도하는 분이셨는데,

한 달 전쯤에 제 아내가,

장모님이 48시간을 못 넘길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황급히 미국으로 건너갔고, 자녀들이 모두 모였는데,

장모는 다시 깨어났습니다.


90세가 넘으셨기 때문에, 장기臟器는 상태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48시간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분이 다시 깨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와서 음식을 드시고, 웃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3주간 동안,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이 연로한 장모님을, 매우 존귀하게 했던 것을.. 자녀들이 봤습니다.

그리고 매우 멋지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아름다운 임종

돌아가실 때까지, 장모님의 정신은, 굉장히 맑았습니다.

그리고 모습도 아름다우셨습니다.


장모님은, 평소에 임종하신 분들을 많이 가서 봤는데,

대부분 보기가 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 입을 벌리고,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그게 보기 싫었답니다.


그래서 자신은 죽을 때,

입을 예쁘게 다물고 죽게 해 달라고, 평소에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장모님은, 가장 사랑하는 두 딸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제 아내 포함

평안하게 ‘입을 꼭 다무시고’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저는 사진으로 임종 모습을 보았는데, 정말 그 얼굴이 평안하고 아름답더군요.


천국에서 예수님의 영접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가장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장모님은, 제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다투지 않으셨던 분’이었습니다.

일생을 늘 온화한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주님을 믿은 후로, 한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한 남편과 자녀들을 섬겼습니다.


저는, 장모님이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남편과 10자녀를 섬기는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어쩌다가 화를 낼 법도 한데,

오직 크리스천의 인격과 사랑으로,

묵묵히 수고하며 섬기는 일에만 헌신하셨습니다. 화냄이 아니고요. 


▲장모님은 ‘사랑으로’ 전도하셨습니다.

장모님 집은, 타이베이 원조우 거리에서 살았는데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사람을 섬기는 가운데, 전도를 하니까,

그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사영리 같은 전도소책자도 없었지만,

장모님은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을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국을 끓여 나누어 먹었고,

그리고 기도할 때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장모님의 사랑에 의해

이웃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되었습니다.


제 말이, 그저 고인에 대한 덕담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10자녀들 중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그 며느리들도 시어머니(장모)께 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사랑으로써, 가정을 잘 다스리고(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의 다스림은, 다름 아닌 섬김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퇴직이 없었습니다.

장모님은, 퇴직하여 미국 휴스턴에 건너가서, 거기 있는 자녀들과 사셨는데,

휴스턴에서도, 교인들 중에 부부사이가 나쁜 부부들을 계속 돌보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들이었지만,

부부싸움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분쟁이 생기면, 꼭 장모께 찾아와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은 항상 “사랑으로써” 모두를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저희 쩐리탕 교회의 젊은 부부도 문제가 생길 때가 있는데,

마침 그 부부가 미국으로 유학/출장을 갔는데,

제가 주선해서, 그 남편이 1주일간 장모님 댁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 남편은, 1주일간 제 장모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장모님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몸에 밴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본문의 사도바울이, 사도적 사랑으로,  

즉 아비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사랑한 것처럼,


저희 장모님도,

사도적 사랑으로,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이, 살전2:7, 11

모두를 뜨겁게 사랑하며, 섬기며, 기도해 주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 ‘사랑의 권위’ 앞에서 굴복해서, 존경을 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제적인 도움을 입었습니다.


모두가 그 분 곁으로 다가가고 싶어 했습니다.

모두가 그 분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사도적 사랑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영적인 부모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들을 위해 아낌 없이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챙기는’ 삶을 사셨더라면, 결코 그런 사랑을 베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살전2: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너무 커서,

결코 그것을 혼자 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랑을, 반드시 퍼서,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삶에 가장 큰 힘과 영향력을 준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훈련이나, 특별 집회가 아니라,

제 삶을 성장시킨 것은,

저를 사랑으로 지도해 주셨던 스승님, 동역자, 아내와 부모님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신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받아 주고, 용서해 주고, 또 제게 행한 무조건적 섬김이

돌아보건대.. 지금까지 제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한 에 설득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베푼 사랑에 영향을 받고, 감동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Love never fails. 고전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개역)



....................... 전략된 부분 .....................


▲(살전1장 복습) 크리스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만약 오늘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들인지.. 일반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교회는 어떤 단체인지, 일반 단체와 무엇이 다른지?’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후서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살전 1장에서, 바울이 말씀한 바에 따르면,

진정한 크리스천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는 삶입니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진실한 크리스천은, 하나님에 대해 신뢰(믿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 대해, 자신을 버리고 사랑으로 섬깁니다.


또한 크리스천은, 고통 가득하고 힘든 이 세상에 살면서,

특별히 죽음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과 미래에 대해서 소망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은.. 진정한 크리스천과, 또한 교회가 가져야 할 특징이요,

다른 사람들, 다른 단체와 구별되는 차별성인 것입니다. 살전1장을 통해 볼 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