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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관계, 기도도 관계 Charles Price

LNCK 2011. 6. 8. 09:52

www.youtube.com/watch?v=fIReICw4Sps&feature=youtu.be

◈신앙생활은 관계, 기도도 관계입니다.      막3:14~15,  요17:3     찰스 프라이스 목사님 설교 녹취

 

◑서론

 

▲기도는 크리스천의 삶에 당연한 것입니다.

마6:5절,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7절, 너는 기도할 때에..

 

여기서 예수님은 ‘기도’를 당연한 것으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만약에 너희가 기도한다면..’ 이렇게 가정해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기도가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매우 당연한 일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10대 후반 때, 기도에 대해서 실험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떤 기도 제목을 놓고,

정말 기도가 응답이 되는지.. 한 번 깊이 기도해 보았습니다.

 

그 상황은, 제가 절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오직 기도로만, 그 상황이 변화되는지.. 한 번 면밀히 기도하며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한지 6개월이 지난 후에,

서서히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 몹시 흥분했습니다.

기도가, 저랑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응답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기도는 실제로,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4: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여러분도 한 번 기도를 실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십시오. 자기 욕심대로가 아니라!

 

▲<크리스천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①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삶’을 단순히 신념체계 belief system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적인 설명과, 논리적인 설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크리스천의 삶’은 신념과 지적 동의가.. 그 본질이 아닙니다.

화란 장로교 전통 중에, 기독교를 너무 신념 체계적 측면으로만 접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단순한 신념 체계라면,

기독교란 마치 철학이나 사상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에 불과합니다.

 

이런 관점에 가장 가까운 쪽이 <조직신학>입니다.

올바른 신학/올바른 신념만 가지면.. 자기가 가장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②위와 정반대 입장으로, 경험, 체험을 강조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이 Charismatics 이쪽 극단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체험도 중요하지만, 만약 그것이 기독교의 중점이 된다면,

신앙이 너무 주관적으로 빠지게 됩니다.

경험과 체험은 각자가 주관적으로 너무 다르거든요.

 

그리고 경험, 체험은.. 곧 지나가 버립니다.

같은 레벨의 체험이, 언제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신앙의 초기에, 또는 교회개척의 초기에.. 이런 경험, 체험이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경험, 체험을 강조하며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을 보면,

과거의 노스텔지어(향수)를 늘 그리워합니다.

과거(초기)에 어째 어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생기가 빠져 있습니다.

 

③기독교 신앙에서 감정을 강조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찬양과 경배가 만약에 극단적으로 강조된다면, 이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기분이 짠해지고, 뭔가 감정적인 고조가 일어나면,

자기가 제대로 기도나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신념도 무시할 수 없고, 체험도 무시할 수 없고, 감정도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그런 부분들이, 반드시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만...

그 한 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반드시 옳지 않습니다.

 

④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정의하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바로 ‘관계’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보면, 모든 신앙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는 말이 더 적당하겠습니다. 관계에는 '계속'이란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요.

 

요17:3절을 보십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부부가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듯이

성도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교제와 관계를 통해서..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 얻은 자의 증거입니다.

 

(지금 설교의 맥은 ‘기도’에 대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관계’라면,

기도를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설명하면 그 ‘관계 속에서 대화’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관계는.. 의사소통, 즉 대화가 원활할 때 무럭무럭 자라갑니다.

 

 

◑기도.. ‘관계’를 친밀하게 만듭니다.

 

▲1. 신앙생활이 드라이하고, 주님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

기도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과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하나님과 접촉을 합니다.

어떤 관계이건 상관없이, 대화는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요 요소입니다.

 

언제나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먼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생활만 놓고 봐도,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실감하실 것입니다.

부부관계가 금이 가면, 서로 말을 안 해 버립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무슨 말을 꺼내도, 귀를 닫아 버립니다. 안 듣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주님과 의사소통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깨어진 관계(의사소통의 단절)가 유지되고 있습니까?

 

크리스천의 삶이 지루해지고, 주님이 멀게만 느껴지고,

신앙생활의 체험이 메마를 때는.. 분명 기도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충을 토로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도 사랑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 신앙생활은 왜 이렇게도 바짝 메말라 있는지요?

왜 이렇게 드라이dry 한가요? 하나님이 distant하게 느껴집니다.’                   *distant : 멀리

 

그러면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홀로, 하나님과 얼마나 시간을 보내십니까?’

 

그러면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실 그 부분(기도)이 제가 잘 안 되는 약점입니다.’

 

▲어느 결혼한 커플을 예로 들어봅니다. 상상입니다.

결혼 피로연을 마치고, 신랑이 신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허니, 정말 멋진 잔치였어요.

이런 피로연을 베풀어주신 당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내가 직접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지금 친구와 오늘 오후에 골프를 치기로 약속이 잡혀 있어서...

(바쁜듯이 시계를 보면서) 사진 찍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벌써 조금 늦어서, 지금 서둘러 가야 해요.

 

참 그리고, 골프를 마치고 나서는, 아마 그 친구들과 식사하러 갈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 저녁은 혼자서 알아서 해결하세요.

그럼 밤에 집에서 다시 만나기로 해요. 그래도 괜찮죠? 그럼 안녕!’

 

그렇게 신랑은 친구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저녁 먹고, 밤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1층 주방에서 커피를 끓인 후, 반쯤 마시다가 갑자기 깨닫습니다.

‘아 맞다! 내가 오늘 결혼했지. 나는 더 이상 싱글이 아니야.

그런데 아내는 어디에 있지?’ (신랑 되신 주님을 연상하셔야 합니다.)

 

찾아보니 아내는 2층 침실에 있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지금까지 계속 싱글로 혼자 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당신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었네요.

그런데 지금은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봅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그는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신문을 봅니다.

그런 후 다시 깨닫습니다.

‘아 맞다. 나한테 아내가 있지!’

 

그래서 아내에게 가서 말합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게, 내게 익숙지 않아서, 지금 방금 알았어요.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일이 많아서, 지금 급히 나가봐야 돼요.

저녁에는 일찍 돌아오려고 노력하겠지만, 만약에 일이 안 끝나면, 내일 들어올 수도 있어요.

그럼 나중에 집에서 봐요. 갈게요!’

 

위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상당히 황당하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크리스천 대부분이, 이렇게 황당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신부라고 하면서도,

일주일 내내, 그 신랑을 본척 만척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과 결혼생활이 밋밋하고 지루할 수밖에요!

 

지금 우리 대부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기도 10초,

자기 전에 간단히 기도 10초.. 그것으로 땡입니다.

하루를 통틀어 30초밖에 기도를 안 합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이 이렇게 제게는 멀게 느껴지시죠?’ 라고 하소연합니다.

대화가 없는데,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2. 기도를.. 관계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마치 쇼핑리스트를 적어서 쇼핑하듯 합니다.

'하나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하면서 리스트를 쭉 읽어내려 갑니다.

 

그래서 관계가 깊어지겠습니까?

배우자를 단지 ‘물주’로만 여기고 있는데요.

 

그렇게 뭘 요구하지 말고,

기도를 ‘관계 쌓기’에 중점을 두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원래 기도의 본질이, 뭘 호소해서 얻어내는 게 아니라,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니까요.

 

아내가 가끔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해 줘요.'

제가 조금 멀게 느껴지거나,

제가 일에 몰두한 관계로 부부 대화가 건성으로 이루어질 때면,

아내는 항상 제게 그렇게 말합니다.

 

부부관계를 유지하더라도, 피상적이거나 건성이 아니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뜻이지요.

 

진정한 기도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관계적 기도’입니다.

 

한나가 성소에서 기도할 때, 자기 마음을 쏟아내었다고 했습니다. 삼상1:15

(개역성경은 ‘마음이 통했다’고 번역했습니다. 관계적인 표현이네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기도’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저 피상적인 기도가 아니라요.

 

▲3. 시간을 정해서 기도에 헌신해 보십시오.

빌 하이벨즈 목사님은, 약 20세가 되기까지,

자기가 모태교인이었지만,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기도시간을 따로 정해서,

마음을 통하는 관계적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매주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녔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살았지만,

기도다운 기도 한 번 안 하고도.. 20살까지 잘 살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 영적인 성장은 없었습니다.

 

그 후에, 따로 기도시간을 정해서, 기도에 자신을 헌신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삶은 그(기도)로 인해 변화되었다.

내가 경험한 가장 큰 만족은, 지금껏 내가 받은 기도의 놀라운 응답이 아니라,

(물론 이것도 매우 기쁜 일이지만)

가장 큰 즐거움thrill은, 바로 나와 하나님과 관계의 질적인 변화였다.

 

나는 시간을 따로 정해서 정기적으로 기도하기 전까지는

이런 변화가 내게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생전 안 하던 기도를 하다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질적인 변화를 체험했고,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인생의 스릴'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말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에 들어가면,

 

그런 기도가 응답되어 얻는 기쁨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과 나와 인격적 관계가 더 깊어짐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진정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국이 임했다’고 합니다...

 

 

◑ In and Out aspect

 

막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①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②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위 말씀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2가지로 나타납니다.

이 두 요소는 결코 따로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① In 측면aspect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를 뜻합니다.

 

② Out 측면aspect

이제 나가서 전도도 하고,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세상을 섬기는 힘과 능력을 공급 받습니다.

만약 In 측면이 없고, Out 측면만 생각해서, 무조건 나가서 섬기려 하다가는,

그 섬김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메마름만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계/교제를 위해,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가고,  In aspect

그 다음에 세상을 섬기기 위해, 밖으로 나아갑니다. Out aspect

 

우리의 섬김, 증거, 사역이 종종 무기력하다면,

그것은 In aspect가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충분하고도 깊은 관계’가 없는 가운데, 바깥으로 나가면.. 메마름만 줄 뿐입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사역자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자기가 Out해서 사역을 펼치는데, 자기 스스로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짐을 느낍니다.

 

그것은 In & Out의 균형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처럼, In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릎을 꿇은(기도 하는) 가장 약한 성자 앞에서, 두려움에 떱니다♪

Satan trembles when he sees the weakest saint upon his knees.

이 짧은 노래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연약한 성자라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성자 안에는, 그를 통해 역사할 천국의 모든 힘이 주어집니다.

 

여러분, 기도의 가장 큰 유익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이 유익을 꼭 얻게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