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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향해 소망을 가진 자 Paul Washer

LNCK 2011. 6. 13. 20:44

◈주를 향해 소망을 가진 자                  요일3:3~6                     Paul Washer, 출처,

                                                                                         Exmine Yourself 중 (7)번 녹취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3


▲옷차림, 패션의 목적은?

만약에 지금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이

여러분의 얼굴과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옷이라면,

그것은 믿음의 수준이 아주 낮은 것입니다.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가 옷 입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성도의 옷차림입니다.


여러분의 옷차림과, 몸가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시오.


‘저 형제/자매가 옷 입는 것을 보니.. 참 아름답다.

나도 저렇게 단정하게 입고, 저렇게 품위 있게 행동해야 되겠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옷차림과 행동거지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이

여러분의 몸매를 드러내서 어떤 육감적인 어필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요일3:3절을 보십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주를 향하여, 이 소망(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는,

옷차림을 포함한 모든 행동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진짜 재림을 믿는 사람의 증거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꽤나 믿음이 올바른 신자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만,

여러분, 여러분이 재림을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에 상관없이

재림은 일어날 것이고, 여러분이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교리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믿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든지/안 믿든지.. 재림은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재림을 믿는 성도는, 요일3:3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전후 문맥상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재림 때,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자기 행동거지와 의복을 단정히 하는 사람..

그 사람이 ‘주님의 재림을 믿는 성도’이지,

그냥 교리적으로.. 여러분이 안 믿어도, 그것에 상관없이 재림은 있을 것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주님의 재림을 대비해서, 자기 행동거지와 자기 옷차림 등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요일3:3절에 의거해서 말씀드리면,

주님의 재림을 자기가 믿었다 하더라도, 그는 땅에 남겨질 것입니다.’ 재림 때 휴거하지 못합니다.


재림을 생각으로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에서, 재림을 대비한 삶을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 무슨 뜻입니까?  요일3:3

성경에는 ‘거룩과 성화’에 관한 두 측면이 나옵니다.

1측면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을 보시고, 거룩과 성화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1:30

2측면은.. 그래서 우리가 거룩과 성화로 몸부림치고, 애쓰는 것입니다.


요일3:3절의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는 말씀은

2측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몸부림치고 계십니까?

제 곁에 오셔서, 개인적으로 귓속말로, 여러분의 몸부림을 생생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그런데 대부분은..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부림에 대해서.. 간증할 얘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완전히 성화되어서, 몸부림 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과 믿음이 병들어서.. 몸부림 칠 힘조차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일례로,

깨끗한 흰옷을 입은 사람은, 아무 흙바닥에 앉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흙바닥에도 거리낌 없이 앉습니다.

자기 옷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이 예는, 믿음으로 깨끗하게 거룩함을 입은 성도는,  고전1:30

이제 자기를 더욱 깨끗하게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요일3:3


▲여러분, 성경을 마치 시나 산문처럼 읽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무슨 고상한 문학책처럼 읽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성경은 여러분의 <삶>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소망>을 갖고 사십니까?

-천국에 대한 소망,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그리스도와 연합에 관한 소망,


이런 소망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증거는,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이, 분투, 몸부림이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요,

-그의 믿음은 ‘관념적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생각으로만 주님을 믿고 있고, 성경은 그저 ‘시, 산문’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금 77세 되신 제 어머니는,

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희들을 혼자서 키우셔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셨는데,

할머니 때 크로아티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정입니다.)


저는 때때로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어머니가 사시는 집 앞을 지나쳐 갑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집 처마 밑에서 성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앙심이 없어. 내가 지금 성경을 보니까,

말을 할 때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처럼 말하라고 했는데,  벧전4:11

나는 내 여동생에게, 하나님처럼 말을 하지 못했거든..

내가 지금 빨리 여동생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해!’


저는 지금 ‘구원 받은 증거’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은, 그냥 자포자기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그의 거룩하심과 같이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요일3:3


▲지금 여러분에게 ‘깨끗함에 대한’ 분투, 투쟁, 몸부림이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거룩한 삶’에 대한 불만족과, 갈등과, 투쟁이 있습니다.

이 분투와 투쟁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전에 말씀드렸는데, 성도가 세상에서 완전히 성화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화를 ‘지향’하고 ‘추구’합니다.

혹시 넘어지고 자빠지더라도, 늘 ‘지향’하고 ‘추구’하는 성도는.. 정말 거듭난 성도가 맞습니다.

 

죽을 때까지 ‘지향’하고 ‘추구’합니다.

‘완전 성화에 도달할 수 있다’(웨슬리 신학?)가 아니라, ‘지향, 추구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저 머리로만 예수를 믿을 뿐,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또는 영혼이 거듭났더라도, 지금 심하게 병든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성결에 대한 투쟁과 갈등이, 자기 삶에 거의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는 목적은,

그저 복 받아서 세상에서 주님을 이용해서 성공하고 출세하겠다는 것이지,

그것은 참된 거듭남의 증거가 아닙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3:4

위 말씀은,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말씀하고 있는 데요.


여러분이 죄를 짓는 것은,

어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죄를 짓는 것은,

작은 시골 마을의 어느 촌장을 대항해서,

그를 거역하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죄를 짓는 것은,

왕중의 왕, 만주의 주, 영광의 하나님께 대적하며/거역하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봉건 시대 때

영주나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거의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왕보다, 비교할 수 없이 몇 만 배 더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죄를 짓고, 그 분의 명령에 대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함부로 자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몸을 내버려 두시는 겁니까?

그러고도 ‘나는 생각으로 예수를 믿기에’ 구원 받았다고 안심하고 계십니까?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3:6


‘범죄하다’는 현재형입니다.                               *현재 능동 직설

                                                                           *헬라어에서 현재형은,

                              현재적인 시간을 가리키고, 지속적인 행동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NIV는 ‘범죄를 계속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풀어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요일3:6, 3:9, 5:18을 보십시오. 훌륭한 번역입니다. '지속적인 행동'으로 번역했습니다. 


범죄를 계속 하지 않는 것은,

자기 속에 분투의 노력, 몸부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재림에 대한 소망을 진짜로 가진 성도입니다.

그냥 재림이 있을 것을,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 성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