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많이 의역한것입니다
원본 그대로 번역한 것은 여기를 보십시오 ☞ http://blog.daum.net/rfcdrfcd/15977637
◈자기 믿음을 확증하시라 벧전4:18, 고후13:5 출처
Paul Washer 목사님 설교, 정리
맨 마지막 ‘▲계곡을 건너기에는 너무 불안한 구름다리’ 단락은 꼭 읽어보세요!
◑의인도 ‘겨우’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많은 ‘교인 churchman’ 들이 화를 낼 설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과 청년들이 화를 낼 수 있는데, 특히 청년들이 더 화를 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화를 내실 분들은 바로 장년층 부모님들입니다.
저는 부모님들 에게서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라고,
신앙교육을 나름 잘 시켰다고 주장하고 또한 확신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 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이제껏 잘못 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아니, 우리가 믿음으로 반듯하게 잘 키웠는데, 무슨 소리냐?’ 하며
제게 분노하실 것입니다.
▲흔히들, 진리를 듣는 것보다는, 거짓 소망이라도 붙잡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기에, 진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그 거짓 소망이
이런 설교를 들으면, 마구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진 구원의 소망은,
참 소망이 아닙니다.
진정 구원받는 소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미국 기독교 안에는,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칭하셔서,
자신이 구원 받은 성도라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값싼 은혜 신앙
왜냐면 그들은 설교를 통해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 Paul Washer는, 지금 목회자들이
성경을 더 많이 연구하고, 설교를 더 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 세계의 사람들, 특히 미국 신자들이,
스스로 구원 받은 자라고 안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분들께 되묻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은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아십니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글쎄요. 그냥 믿으니까요.’ 혹은 '우리 목사님이 그랬어요.'
그럼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진정 믿는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아십니까?'
오늘 집회가 끝나면, 여러분은 이 도시 각처의 집과 직장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동네와 직장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그들은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믿기는 믿는데, 다 예수님을 머리로만 믿는 신자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현상은 미국뿐만 아닙니다만
전 세계의 유흥업소, 홍등가(붉은 등불의 거리), 카지노에 가 보시면,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다 머리로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믿음이, 그런 사람들의 믿음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여러분의 믿음이.. 구원 받는 믿음이라고.. 확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들은, 머리로만 믿고 있지.. 주님과의 관계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 개신교에는 2가지 교리를 오해하고 있는데,
그 두 교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확신’ 과 ‘성도의 견인’입니다.
저는 '구원의 확신'이란 말조차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이라서, 오늘 이 시간에 거론하면서
그 위험성을 지적하겠습니다.
이 2가지가 극단적으로 강조된 나머지, 전통적 기독교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생성된 이 두 교리가
그 16세기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 사는 오늘날 전 세계 성도들에게
‘거짓일지도 모르는 구원의 확신’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 받는다고.. 그것도 확신하고 있으며,
한 번 구원 받으면, 비행기 안에서 넘어지고 자빠져도 목적지에 간다고 하는데요..
이런 ‘값싼 은혜’로 자기 구원에 (거짓)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cheap grace, 본 훼퍼의 주장
▲처음 믿을 때부터.. 잘못 믿은 것
만약 어떤 신자가,
3~4~1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공부와 기도와 성도의 교제에 힘쓰다가
어느 시점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오늘날 주위에서 흔히 봅니다.
그들은 점점 죄와 세상이 자기를 점령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성도의 교제권을 완전히 버리고,
점점 세상적 교제권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렇게 주님을 떠나서 3~4~10년을 계속 삽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은 크리스천입니다만.. 지금 잠시 넘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진짜 신자라면.. 그렇게 오래 동안 타락할 수 없습니다.
진짜 신자는, 혹시 타락해도 금방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대신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처음부터 잘못 믿었습니다.
회개도 하지 않고, 너무 쉽게 신자가 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회개하고.. 정말 참된 크리스천이 되십시오!’
그럼 지난 10년간, 교회 다닌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동안 ‘크리스천인 척’했던 것입니다. 본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본래 본성’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가 정말 ‘본성적으로 크리스천’이 되었더라면,
한 때 타락했다 하더라도, ‘본성’(크리스천)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방황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확증하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도, ‘피상적으로 교회 왔다갔다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크리스천인 척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본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본 어겐’해야 합니다. *born again : 중생
여러분이 ‘본 어겐’했는지, 자신을 확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후13:5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의 믿음을 스스로 확증해 보라’고 말합니다.
Examine yourself, Test yourself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13:5
▲중생한 사람의 특징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집니다.
그래서 늘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이 섬깁니다.
-중생한 사람은, 죄를 두려워합니다.
죄를 지을 때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짓지 못합니다.
죄를 지어도, 즉시 회개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늘을 소망하며, 내세 중심적으로 삽니다.
중생 못한 사람은, 현세 중심적으로 삽니다.
-중생한 사람은, 어쩌다 한 번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그러나 중생 못한 사람은, 한 번 넘어져도 계속 넘어진 상태로 지냅니다.
▲미국의 최고 보수교단인 남침례교의 어떤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진지하게 성경이 기독교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는지 깨닫는다면,
우리 교인들 가운데, 10~15% 정도만 구원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추정 수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겠지만요...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지금 교회 안에 ‘세속적 크리스천’이 많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인정받는 남침례교도 이 정도라면
(최근에 남침례교도 교세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다른 교단의 사정은 더 심각할 것입니다.
▲계곡을 건너기에는 너무 불안한 구름다리
제가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선교사역할 때,
가끔 밑이 안 보이는 아득한 계곡 사이에 걸쳐져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야 했습니다.
그때는 건너기 전에, 그 구름다리를 한 번 흔들어 봅니다.
밧줄이 튼튼한가, 나무발판이 안전한가..
그리고 그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예민하게 들어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구름다리의 중간쯤 건넜을 때,
만약 다리가 끊어진다면.. 계곡에 떨어져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구원’을 생각해보노라면,
제가 남미 계곡을 조마조마하게 건너던, 그 구름다리가 자꾸 생각납니다.
여러분들은 너무나 약한, 실타래 같은 줄, 짚으로 엮은 새끼줄을 붙잡고.. 건너려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전하지 못합니다. 중간에 툭 끊어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 계곡 아래에는, 지옥불이 세차게 이글거리고 타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줄이 끊어질 때, 어리둥절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examine yourself, test yourself (믿음을 확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시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이 무엇인지..
한 번 스스로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정말 구원 받았는지.. 한 번 확증해 보십시다.
◑스스로 속지 마십시오.
▲요한1서에 <거짓말> 하는 자가 나옵니다.
①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요일1:6
-당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고, 또 자기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어도
계속 ‘어두운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은 믿지 않는데, 자기가 믿는다’고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속는 거짓말입니다.
②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2:4
-‘안다’는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인격적으로 안다’는 뜻이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교인’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인 것입니다.
자기는 사실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데..
스스로 속고 있습니다.
자기가 ‘주님을 안다’고 하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속는 것입니다.
③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요일4:20
-위 ①번과 같은 맥락이므로, 설명을 생략합니다.
바울은 빌1:6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10년 이상 다녀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구원이, 형상이 성숙되거나 온전해지지 않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것은 ‘착한 일(중생)이 아예 시작되지도 않은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분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자기를 확증해야 합니다. examine yourself
주님의 은혜로, 참된 중생의 체험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거듭남, 회심
‘지적 동의’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고의적이 아니라,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성경에,
‘믿어도 구원받기 어렵다’는 구절이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벧전4:18
And, "If it is hard for the righteous to be saved,
what will become of the ungodly and the sinner?"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으로 인정받아서, 다 구원 받는다’고 알고 있지만,
베드로 사도는 ‘그 의인도, 겨우 구원 받을 수 있다’ ..
다른 말로 ‘의인이 되었을 지라도, 구원 못 받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만’ 의인이 되었을 때 그렇습니다.
‘관계로는’ 의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신앙은 ‘관계적’입니다.
예를 들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요15:7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요일2:6
빛 가운데 있다 하며... 요일2:9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 수23:8
이런 구절들은, 성경에 수두룩 빽빽하게 나옵니다.
다 관계를 표현하는 구절들입니다.
자신이 머리로써 믿음을 가지면서도,
주님과 개인적/인격적 관계가 없으면... 그것 구원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 단락, 편집자 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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