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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선교는 학생이 중요하다 / 오가와 스구미치

LNCK 2011. 6. 16. 14:25

 

◈일본의 선교는 학생이 중요하다            요일3:2          출처보기, 정리 

 

◑53일 동안 지상에 머무른 천사

 

오늘 이 자리에, 최근에 5살 된 귀한 자녀를 잃은 부부가 와 계십니다.

성누가병원 채플에서 고별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드실까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가와고에 에서 목회하는 다카하시 목사는 간증집을 펴 내었는데,

그 속에 <53일동안 지상에 머무른 천사>라는 제목의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간증의 주인공 자매님은, 생후 53일된 넷째 아이를 잃었습니다.

신문에 가끔 등장하는 ‘유아돌연사 증후군’이었지요.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갑자기 어린 아기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 군요.

 

“어느 날 밤, 저는 너무나도 큰 슬픔에 무너질 것만 같아서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랬더니 갑자기

‘엄마! 저 여기 있어요! 왜 모르시는 거예요?’ 라는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이제는 아들이,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53일 동안 맡긴 천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자녀는 지금 이 땅에서.. 내 손으로 키우느냐,

아니면 지금 저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키워주시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자식을 낳아 기를 책임이 있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일찍 데려가시면,

그 아이는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키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이를 키워주시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성경학자는, 어린 아기가 천국에 가면, 성장한다고 추측합니다.

 

제게도 먼저 천국으로 간 두 딸이 있는데요,

저는 그 두 아이도, 천국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두 딸이 유산되었지만, 천국에서도 유산된 상태일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최근에 자녀를 잃으신 두 분의 자녀도,

5살에서 멈추지 않고, 천국에서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키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천국에 가시 보시면,

5살된 아기로, 그 자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성숙된 성인으로 자란, 그 자녀를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가면, 어쩌면 처음에,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인줄 몰라볼 정도로,

그 아이는, 천국에서 완전하고 아름답게 성장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요일3:2참조.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자녀를 일찍 보내시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키우시겠습니까, 아니면 천국에서 키워지길 바라시겠습니까?’

그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아이를 잘 키워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의 부모에게, 그런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주시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기 위함’인데,  롬8:28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성도로 성숙시키기 위하여,

이 땅의 우리들에게, 그런 크나큰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부모들도 다 성숙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아,

장차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먼저 보낸 우리 자녀들을 다 만나게 되실 줄 믿습니다. 요일3:2

 

모든 성도 여러분, 천국에 갈 때까지

더 연단되고, 더 성장합시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읍시다.

 

주님께서는 일부러 우리에게 좌절을 주시며, 장애물을 주십니다.

부조리하고, 불합리하며, 열 받는 일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 중 일부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이런 시련 가운데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일본 선교 역사는 <학생 선교 운동>의 결과

 

1854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일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1859년 미국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성경번역, 교육, 의료, 기독교 학교 등의 사역을 통해, 선교를 넓혀갔습니다.

 

1868년 메이지 천황이 즉위합니다.

1873년 메이지 정부는 그리스도교를 일본에서 승인합니다.

 

그런데 일본 개신교 선교역사를 보면,

<구마모토 밴드>와 <삿포로 밴드>가 중추적 역할을 합니다.

 

▲1. 구마모토 밴드

1871년, 큐슈 구마모토 번은,         *번藩 : 지방영주가 다스리는 영지

제임스라는 미국의 교육자를 초빙하여

<구마모토 양학교>를 설립합니다.

 

그런데 이 제임스 교사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수업 후에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거기서 성경 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학생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크게 놀란 구마모토 번 당국은,

제임스에게 경고를 하고, 박해까지 가했습니다만,

부흥의 불씨는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임스는 미국으로 추방당하고, 학교는 폐교 되었는데요,

남은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산에 올라가서

일본의 복음화를 놓고 뜨겁게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들은 일본을 살려야겠다는 뜨거운 의지를 가슴에 품고 움직였는데요,

그 중심 멤버가 미야카와 쓰네데루, 에비나 단조, 가나무리 쓰린, 도쿠토미 소호였습니다.

이들은 이른바 <구마모토 밴드>라는 모임을 조직해 전도활동을 펼쳤지요.

 

이듬해(1872)에는 요코하마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바라, 브라운 등 많은 선교사들이

요코하마 항을 통해 일본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것이지요.

 

※당시 19C말은, The Great Century라 불릴 만큼,

그 이전에 잠잠하던 개신교에서, 본격적으로 세계선교에 뛰어든 시기였습니다.

한국도 1885년을, 개신교 선교 원년으로 잡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영어학원을 열어서 전도를 시작했고,

영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는데요,

그 가운데는, 저 유명한 이부키 목사님과, 마사시사 목사님도 계셨다고 합니다.

 

▲2. 삿포로 밴드

그로부터 4년 후에는 (1877)

홋카이도 삿포로 농학교에 윌리엄 클라크 선교사가 옵니다.

 

정부는, 그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당시 홋카이도를 담당하던 구로다 키요다카 장관은

그에게 이러한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학교에 성경을 가져오지 말 것, 기독교와 복음을 가르치지 말 것’

 

이 말을 듣고 클라크 선교사는

‘성경 없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항의했고,

학생 전원에게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전도했고,

<삿포로 밴드>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요,  주1)

그 멤버 중에는,

일본 지폐에 얼굴을 새긴 이토베 이나조, 우치무라 간조 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1900년대 초반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었습니다.

 

 

 

 

 

윌리엄 클라크 박사와 그의 삿포로에 세워진 기념 탑,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됨.

이 건물은 삿포로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 유적지 중 한 곳이라고 함    -위키 피디아-

 

※그 외 <요코하마 밴드>는 1873년 처음 성립될 때

62명중 과반수 이상이 무사 즉 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장로교 조직을 선호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갔다고 합니다.

 

▲(모든 나라에서) 초기 선교역사는, 학생들이 주도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학생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은, 자기 인생에 주어진 에너지를 자각해야만 합니다.

 

온 세계 어디든, 복음으로 나라를 변화시킨 주체 세력은, 전부 학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멍하게 있으면, 나라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요.

 

젊은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청년들은 복음과 말씀에 눈을 떠야만 합니다.

 

일본은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일본은 반드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청년들이 눈을 뜨고, 성경을 공부하여,

일본 땅의 혁신을 위해 일어서지 않으면,

일본 땅은 반드시 썩고 말 것입니다.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할 사실이지요.

교회 전체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멘 데시오까?         아멘 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지 모릅니다.

 

 

◑학생 때 좌절은 도리어 약입니다.

 

이틀 전, 금요일 금요철야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무릎을 꿇고, 우리 각자가 오래 동안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시어, 풍성한 은혜를 주시더군요.

 

기도 후에, 제가 급히 제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3 형제가, 로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목사님,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가 대학입시에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가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찮아. 새 길이 열릴 거야. 기대를 가져!’ 라며 격려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재수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할 생각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저는 잠시 그 학생을 위해 기도해주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사무실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는 순간,

주님께서 제게 강한 감동으로 내적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바로 ‘More excellent way’ 라는 영어로 된 음성이었습니다.  *더 나은 길

 

순간 저는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게 무슨 신호입니까?’

‘당장 그 젊은이에게 이 말을 전해라’

 

하지만 저는, 주님께 조금 반항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바쁩니다. 그 형제는 주일에 교회에 올 테니

주일날 이 말을 전해 주겠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지금 당장 가서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당장 말씀대로 순종하여,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갔더니

그 형제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더군요.

그러나 누나가 있기에, 저는 그 자매에게 대신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남동생에게 more excellent way라고 전하라고 하시니, 대신 전해주게.”

 

저는 서재로 돌아와 여러 종류의 영어성경을 펼쳐보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애용하는 구절은 ‘best of all’ 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최선을 행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찾아보니, more excellent way

고전12장 마지막 절에 등장하는 말씀이더군요.

(내가 더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And I show you a still more excellent way. 고전12:31)

 

저는 그 학생을 보면서, 제 학창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오카와 쓰구미치 목사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제 담임선생님은, 시즈오카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꼴찌로 들어가느니,

두 번째로 좋은 학교에 일등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생님께서 합격을 100% 보장한다며 권하신 학교에

입학시험을 쳤지만, 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창피해서, 더 이상 시즈오카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 15살 소년의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당시 저는 너무 괴롭고 외로웠으며, 앞날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미션스쿨인 도쿄 성학원 고등학교에 입학을 수속해 주셨지요.

그 당시에 저를 말씀으로 격려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도 아직, 스스로 말씀을 읽고 격려를 받을 만큼, 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수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다시는 시즈오카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래성 없는 삼류 고등학교 1학년생의, 암울하고 희망도 없는 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형은, 아오야마대 영문과에 입학했기 때문에

저까지 사립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내줄 수 없는 현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요,

어디선가 혈액을 팔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느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까지 찾아가서, 제 혈액을 팔려고 했더니

제가 영양실조라고, 제 혈액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참 제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난의 길을, 제가 어려서부터 걸었지만,

만약 그때 제가 모든 것이 성공하고, 탄탄대로를 걸었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목사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실망을 하고, 벽에 부딪혀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듬뿍 받아서

지금도 감사함으로 인생을 살고 있지요.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more excellent way, 더 좋은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주 앞에서 성실히, 충성스럽게 산다면

주님께서는 ‘더 좋은 길, 가장 좋은 길’을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청년들이여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작은 일에 성실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작은 일에 얼마나 충성스럽고, 성실한지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큰 일’에 관심 기울이고, ‘작은 일’에는 관심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일’도, 무시하지 말고, 충성스럽게 감당하십시오.

장차 하나님이, 그런 여러분을 ‘큰 일’에도 불러서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의 우선순위 priority를 지켜서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섬기면,

여러분께서 생각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more excellent way가 펼쳐질 것입니다.

 

그 어떤 환경 가운데 처해 있더라도,

아무리 밑바닥으로 떨어지더라도,

충성을 다하여 성실하게 감당하면,

주님께서 우리 삶을 보장해 주십니다.

 

성경을 읽고, 예배를 지키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드리는 등

작은 것에 충성스럽게, 성실하게 감당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대입니다...

 

.................................................

 

 

주1)

1877년 1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 귀국의 날이 가까운 3월 5일 클라크는

(매사추세츠 농과대학 학장 재직 중 1년간 일본에서 단기 사역 함)

깊은 기도 뒤에 작성한 ‘일본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계약(Covenant of Believers in Japan)’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하기를 권하였습니다.

 

제1기생 전원이 하나하나 클라크 앞에 나와 기독교 입신의 결의를 밝히고 서명을 했습니다.

이 계약 서명 후 제1기생 16명은 일요일마다 밤에 모여 성서 연구에 참가하고,

자발적으로 기도회를 열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음해 농학교 2기 신입생 18명이 삿포로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맞으러 나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조용한 기숙사 저편에서 찬송가 소리만 들리더라고 합니다.

 

일부 학생은 기독교가 싫어(우치무라 포함)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기이하게도 3, 4개월 안에 제2기생 18명 중 15명이 클라크의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 2기생 가운데 뒤에 말하는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니도베 이나조, (新渡戶稻造),

미야베 깅고(宮部金吾)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9개월의 체재기간이 끝나 4월 16일 클라아크가 귀국의 길에 오르는 날이 왔습니다.

당일 농학교는 임시휴교로 하고 직원 제1기생등 25명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삿포로에서 24킬로 떨어진 시마마츠(島松)역까지 전송을 했습니다.

 

클라크는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늘 기도하기를 잊지 말도록. 건강히 지나라”부탁한 뒤

악수를 하고 말 위에 훌쩍 올라, 저 유명한

Boys, be ambitious

라고 소리 친 뒤, 말에 채찍을 치고 눈길을 달려 숲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말은 뒤에 남은 일동의 가슴에 깊은 감개와 함께 큰 여운을 남겼다.

그 뒤 이 말은 오래 기억되어 삿포로 농학교의 교훈이 되어 정착하였고,

교모에 이 세 두음자를 따서 BBA라 표시했으며,

나아가 일본의 모든 청년들에게 청춘의 슬로건으로 타올랐습니다.

         (삿포로문고 61 농학교이야기 삿포로시 교육위원회편 북해도신문사 1992) 

         http://www.foodlink.kr/bbs/board.php?bo_table=story&wr_id=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