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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당신만 사랑하시나?

LNCK 2011. 6. 24. 20:23

www.youtube.com/watch?v=TDsq30aJG7s

◈하나님이 당신만 사랑하시나?                            최영기 목사님 칼럼

 

◑하나님이 당신만 사랑하시나?                                                 출처

 

얼마 전 토요일 새벽 기도 때 한 집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최근에 직장에 있었던 일을 간증하셨습니다.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여러 부서에서 몇 명을 뽑아 벤처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 집사님이 거기에 가담하게 되었답니다.

 

얼마 후 지금 일하는 더 좋은 회사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벤처 그룹에서 일한 경험 때문에 발탁되었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떠난 후, 이전 회사의 벤처 그룹은 해체되었고,

자신을 고용하기로 결정한 현재 회사의 간부 4사람은

은퇴를 하든지 전직을 해서, 현재 회사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집사님만 고용해 주고, 다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새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벤처 그룹도 만들어주시고

4명도 예비해 주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간증을 들으면 거부반응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그 집사님)만 사랑하시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하신 집사님만 사랑하십니다.

온 우주에 집사님 한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영화로 말하자면 집사님이 주인공이고,

벤처 그룹의 멤버들이나, 새 회사의 4명의 간부들은

주인공을 위해서 출연한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엑스트라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때,

이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 사람이 됩니다.

집사님은 이 사람을 위해 출연한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내 인생 드라마에서는 내가 주인공이고 이웃이 조연이지만,

이웃의 드라마에서는 그가 주인공이고 나는 조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중간에 사고나 불행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은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각색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과 이웃의 인생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계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순종할 때

여러 개의 작품이 순조롭게 제작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거나,

그의 인도하심을 거역할 때에 드라마 진행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래도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뉘우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대본을 쓰십니다.

엔딩은 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해피엔딩입니다.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우리의 인생 드라마를 엮어 가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빠라는 것은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입니다. <최영기 목사님 칼럼

 

 

 

◑2.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시88:8                       출처보기 

 

주님께서는 나의 가까운 친구들마저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시고,

나를 그들 보기에 역겨운 것이 되게 하시니, 나는 갇혀서, 빠져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시88:8

 

몇 년 전에 ‘가정 교회’를 정착시키고자 애쓰는 젊은 담임목사님을 도와드리기 위하여

최영기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해  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은퇴하신 원로목사님이 막후에서 장로들을 통하여

‘가정 교회 제도’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흥집회가 끝나는 주일날, 원로목사님이 예배에 참석하여 맨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설교 후 헌신 초청을 했을 때, 교인들 대다수가 일어나서 헌신을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원로목사님도 이런 결과를 보시면서 나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가정 교회에 관해 긍정적으로 의견이 바뀌겠다고 기대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제가 출구에 서서 퇴장하는 교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

원로목사님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하셨습니다.

 

“설교에 은혜 받았습니다” 라든지 최소한 “수고 했습니다”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이분의 말은 저를 당혹시켰습니다.

“최 목사님은 왜 강단에서 거짓말을 하십니까?”

 

제가 설교 중에 젊은 담임목사님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이때, 아무리 은혜로운 설교를 해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제가 그 원로목사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어떤 설교자에 대해, 마음이 불유쾌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제가 A선교사가 말씀을 전하는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저는 부끄럽지만 A선교사에게 “싫다”는 감정을 평소에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A선교사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고,

헌신 초청에 많은 사람들이 응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은, 여전히 냉랭한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저를 당황시켰던 원로 목사님과, 제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싫다”는 감정은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를 향한 원로 목사님의 감정이 “싫다”는 것이었고,

 

A선교사를 향한 제 감정이 “싫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하고, 아무리 고귀한 사역을 해도.. 감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좀 더 열심히 하고, 좀 더 잘하면, 좋아해주지 않을까..는 기대를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반면에, 나 자신이 “싫다”는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합니다.

“싫다”는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연민과 사랑의 마음인데,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싫은 사람이 좋아지게 하시든지,

아니면 적어도 같은 목표를 놓고 상호 존중해가며, 동역은 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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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역은.. 주님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것                            출처

 

얼마 전 ‘그루터기 목장’에서 후원하는 김해영 선교사님이

수요 선교간증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갓난아기 때

술에 만취한 아버지로 인하여 척추를 다친 신체장애자입니다.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불우 청소년을 돕는 편물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크리스천 선생님을 만나서

돌처럼 굳어진 마음 문을 열고, 15세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국제 기능대회> 편물 종목에서, 금메달을 3번이나 수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철탑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가서, 14년을 편물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김해영 선교사는, 몇 년 전 기회가 주어져서 미국에 유학을 와서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7년 만에 사회복지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니까, 모두 미국에 주저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해영 선교사는 남 몰래 3가지 제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무도 안 가려는 곳에 저를 보내주세요.”

“제 기술이 잘 사용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사역했던 곳보다 더 가난한 곳으로 보내주세요.”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김해영 선교사를 부탄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탄 정부와 연계해서, 편물 기술을 전국에 보급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부탄은 일반 선교사가 못 들어가는 불교 국가이고,

국민 1인당 평균 수입이 보츠와나의 1/4 정도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3가지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이 이전에 보츠와나에서 처음 사역을 할 때에

얼마 안 되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답니다.

동역자들이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떠나야 되는가?

떠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황량한 아프리카 사막에서 무릎 꿇고,

가슴이 답답해서 소리조차 못 내며 신음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해영아, 나랑 여기서 같이 살자.”  

 

선교사들이 포기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셔서,

그곳에 남아 하나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다보니

14년의 사역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해드리는 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역이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같이 살다가 하나님의 필요가 눈에 뜨일 때에

그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심부름하는 것이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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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 밖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온 이유                              출처

 

최영기 목사는 30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미국 전도대원이 나누어주는 손바닥만한 신약 성경책을 받아서 읽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전자 공학 박사 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수양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그 후에 한미 가정 자매 두 분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한인 교회는 거북하다고 안 나오고,

미국 교회에는 알아듣기 힘들다고 안 나갑니다.

이분들을 위하여 성경 공부를 인도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당시에 성경을 잘 몰랐기 때문에

평신도로서 ‘엠마오 성경통신학교’를 운영하던 홍문공 형제를 모시고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5명으로 시작하였는데 20명까지도 모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에 오는 것은 꺼리지만

집으로 초대하면 오는 불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원생들을 위한 기도 모임도 시작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모여 식사를 같이 하고, 간단히 성경 공부를 한 후에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어야 끝나곤 했지만,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빤질빤질했던 많은 대학원생들이 이 모임에 와서 '깨어지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작은 모임

전도에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체험하였습니다.

 

1976년에 학위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Varian이라는 회사 중앙연구실에

취직이 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현재 교회 숫자가 약 300개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딱 4 개뿐이었습니다.

 

교회마다 개척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나 젊은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청년과 더불어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6명을 데리고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임이 성장하여서 수년 후에는 약 50명이 모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 시점까지 제 사역은 다 교회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 사역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워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전인적인 제자를 키우기 위하여서는 역시 교회가 필요하구나."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교회 안에서만 사역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시 섬기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마침 권면해 주셔서, 장년주일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10년 가까이 교장직을 맡아서 섬겼는데 열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를 느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 지식은 느는데, 생활은 그만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를 키워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볼까? 고민 가운데에

신약적인 ‘가정 교회’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1992년 서울침례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초청이 왔을 때에

가정 교회를 하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저는 30세에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고, 41세에 신학교에 입학했고,

     44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평신도 때에는 집사, 장로로 섬겼습니다.

 

     신학교 입학 후에는 전도사, 교육목사, 담임 목사로 섬겼습니다.

     평신도와 목회자 양쪽 생활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의 교회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하여 교회 생활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