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기도하신 이유 막8:22~26 대만 쩐리탕 교회 설교 녹취, 정리
▲문제 제기/ 본문의 기적은 매우 독특합니다.
이 기적은 오직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예수님은 보통 공개적으로 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쩐지 비공개적으로 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 병자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 것입니다. 아마 한적한 곳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막8: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후에도,
집으로 돌아가되,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막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이렇게 비공개로 고치신, 예수님의 태도와 동기는 무엇입니까?
②또한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방식도 매우 독특합니다.
눈에 침을 뱉으신 것은..
오늘날 우리 관점에서 보면, 매우 비위생적인 방식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침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문화적 방식을 따른 것이라는
그런 해석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예수님이 소경은 치료하시면서, 두 번에 나누어 치료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한 번 만에 소경을 고치지 않으셨는가요?
막8:23 그에게 (첫 번째)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우러러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
오늘은 위 2가지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1. 왜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조용히 소경을 고치셨을까요?
▲1. 내성적이며 비공개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는데 자신이 없어서,
멀리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실 때, 치유사역에 자신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직면한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해
각각의 사안에 따라, 형편에 아주 적합하게 처리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치유하신 방식이 모두 제각각 다 다릅니다.
그러나 동일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각 병자가 느낄 감정에 대해, 매우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셨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본문의 벳새다 소경은, 좀 내성적이라고 할까요?
자신의 치료를.. 비공개로 하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소경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셔서,
마을 바깥으로 나가신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2.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은 언제나 십자가 사역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를 치유해 주셨는데,
그 목적은
-병자가 불쌍해서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또한 치유사역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알리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임을 나타내시기 위한 목적의 ‘표적’으로
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순히 ‘신기한 기적’에 초점 맞추는 것을.. 극히 조심하셨습니다.
마치 5병2어의 기적을 보고,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것처럼,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보고, 군중들이 자기를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본문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여러 본문에서,
병자의 치유 기적을 ‘조용히, 은밀히’ 행하셨습니다.
또한 고침 받은 환자에게 ‘나가서 떠벌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막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집에 가서 조용히 있고,
마을에 나가서 사방에 말 퍼뜨리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초점은 언제나 ‘십자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유 기적>을 너무 선전하지 않는 것이 건전합니다.
그 ‘간증’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일을 나타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종종 많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신유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고침 받지 못한 다른 병자보다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신유의 기도를 해 준 사람이.. 자기 스스로 굉장한 능력자라고 자고할 수 있습니다.
능력은,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자기는 통로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고할 필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언제나 ‘십자가’이며,
기독교 신앙의 지향점은 언제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유 기적에 대한 간증이,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한 초점을 흐리게 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기적적인 고침을 받고도,
그의 믿음이 자라지 않거나,
도리어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저런 의미로,
실제로 신기한 신유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대개는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10년에 한 번쯤 간증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용/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섬길 때는.. 조용히 행하십시오.
이사야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마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여기서 ‘들레지 않는다’는 말은, 소리치지 않는다는 뜻이요,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는
이사야서 원문에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열심히 ‘홍보’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외에는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와는 너무 다릅니다.
(설교를 잘 하신 후의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이런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전 세계에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지.. 병 나은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설교자가, 자기가 고친 병자에 대한 기적에 대해 간증할 경우에도,
환자의 사전 동의를 받고, 방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것도 10년에 한 번 정도 해야 하지만요..
어떤 환자는, 그런 일이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성병, 무슨 귀신들림, 무순 알콜 중독.. 이런 것들이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분이 많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일관적 태도는 ‘겸손과 섬김’입니다.
신유나 다른 기적, 혹은 말씀의 은사를 통하여
스스로를 높이려 하지 마십시오. self-promotion은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길과 정 반대이며, 성령 사역하다가 결국 망하는 길입니다.
▲일화 / 조용히 선행을 행하신 교수님
오래 전 제가 미국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교회사를 가르치던 A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전교생이 그 분을 ‘파파(아빠)’라고 부를 만큼, 친근함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셨습니다.
하루는 그 분이 소천하시고, 장례 예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존경하는 교수님을 추모하며 고별식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에 장미꽃을 한 송이씩 들고 들어왔습니다.
장내에 모인 사람들은 갑자기 술렁거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장애우들 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왜 이 장례식에 참석했는지 의아해서, 술렁거렸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그 교수님이, 매주마다 그 장애우들이 거주하는 곳에 가서
은밀하게 그들을 섬기셨던 것을.. 거기 모인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서, 거기 장례식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그 분은 은밀하게 그 섬김과 봉사를 행해오셨던 것입니다.
◑2. 두 번 기도해서 고치신 이유
▲예수님은 한 마디만 하시면, 천지가 창조됩니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말씀 한 마디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왜 본문에서,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기도해서 고치셨을까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셨던 것인가요?
아니면 한 번 기도로 치유가 실패해서, 두 번씩이나 기도하셨던 것인가요? (물론 아니지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많은 경우, 치유도 마찬가지고, 문제 해결과 응답도 마찬가지고,
주님의 사역은, 모두가 1초 만에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료도, 또한 기도의 응답도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1초 만에 즉각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요.
▲우리는 대부분, 기도 한 번 하면, 금방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 되는 것이, 믿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여깁니다.
두 번, 세 번 기도하면.. 믿음(능력)이 없어서, 그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만...
그러나 예수님도 두 번, 세 번 기도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본문에서 예수님은 병자를 두 번 기도해서 고치셨고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세 번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동일한 내용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한 번만 기도하시고, 끝내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유를 위해서나,
또한 어떤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
두 번, 세 번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한 순간 1초 만에 무슨 일을 이루시기도 하시지만,
또한 어떤 과정 가운데서, 점차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한 번 기도해 보고, 응답 안 되면.. 포기해 버립니다.
(어쩌면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한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일은.. 우리가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은.. 우리가 기도를 하다가, 기도를 중단하게 됩니다.
여기서 '기도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인 경우,
두 번, 세 번 기도해서 응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인 경우,
우리는 기도를 계속하게 됩니다.
결코 한 번 기도하고, 중단하지 않습니다.
▲신유기도를 할 때, 점차적으로 낫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본문은,
모든 일이 1초 만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나무 같은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이면서, 막8:24
어떤 과정 process을 통해서, 소경이 점차적으로 고침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난 고난주간 금요일에,
저는 기도탑에서 설교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제 어깨가 굉장히 아팠습니다. 아마 오십견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에서 열리는 금요치유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성도님들이, 저의 어깨 치유를 위해 둘러서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떠나가라, 떠나가라! 질병이여 물러가라!”
그리고 팀장이, ‘목사님 어깨가 나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은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픈 어깨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답을 확실하게 안 하니까
어떤 믿음 좋으신 한 분이 ‘목사님, 어깨 병이 나았습니다!’ 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저는 그냥 얼버무리고, 기도탑으로 돌아와 계속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설교 준비를 마칠 즈음에,
갑자기 어깨가 나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회에 참석한지 24시간이 지나고야, 제게 고침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유의 기도는,
즉시 일어나지 않고,
시간이 좀 지나야 응답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 세 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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