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고린도 전도 행18:1~11 찰스 프라이스 설교 녹취, 정리
Encouragement in tough times
▲도입 / 워렌 위어즈비 목사님의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한 남자가 차도에 있는 눈을, 삽으로 치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꼬마아이들이 눈삽을 들고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저씨, 저희가 눈을 대신 치워 드릴게요. 그리 비싸게 안 부를게요.’
그 남자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직접 눈을 치우고 있는 것이, 너희 눈에 안 보이니?’
그러자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네, 저희도 보고 있지만, 아저씨가 눈을 반쯤 치우고 나서 포기할 때 즈음이
저희가 일거리를 찾는 가장 결정적 시간이에요.’
(사람들은 중도에 포기를 잘 한다는 의미)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도, 바로 그때가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을 열정적으로 시작했지만,
반 정도 지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지쳐서.. 그냥 중도에서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아마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이, 그런 지친 상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는 행18장에서 고린도에 도착하기 앞서,
빌립보(행16장),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행17장) 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모든 도시에서 결국은 쫓겨났으며, 그래서 고린도에 오게 되었으며,
그 모든 도시에서 자기를 대적하는 세력과 마주쳤으며,
빌립보에서는 감금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지금 혼자인 바울은, 지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어떻게 대처했으며,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셨나요?
아래에서 같이 살펴 보겠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이 처한 괴로움들
고린도에서 바울이 대면한 어려운 상황은,
그는 지금 친구(동역자)도 없고, 물질도 없고, 따르는 자(성도)도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 처음에 친구, 동역자가 없어서 외로웠습니다. 행18:2 (분홍색 구절을 계속 따라가세요)
고린도로 오기 전에, 바울은 베뢰아에 있었는데,
거기서 쫓겨나올 때, 디모데와 실라는, 베뢰아에 남겨 두었습니다. 행17:14
그래서 바울은, 처음에 혼자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게 됩니다.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딜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그들로부터 바울이, 큰 위로를 받았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그들의 집에 가서, 바울은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친구 (동역자)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바울과 합류합니다. 행18:5
▲2. 고린도에서 바울은, 물질도 없었습니다.
행18:3~5
행18:3 (아굴라와)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이 물질이 없었다는 증거는,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물질이 궁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물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합니다.
행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이 상황은, 고후8:1~5, 고후11:9절과 같은 상황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때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을 걷어가지고 와서, 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바울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고후11:7~9절에서 바울은 편지하기를,
'복음을 너희에게 값없이 전했다'고 말합니다. 고후11:7
고린도에서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11:7,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8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사례비)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나는 여러분을 섬기기 위하여 삯은 다른 여러 교회에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에서 빼앗아 낸 셈입니다.)
9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행18:5>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바울은 자기가 그런 일(자비량)에 ‘모델(본)을 보여주었다’고 말합니다. 살후3:9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는 것도 좋지만,
사역자가 교회에 짐을 지우지 않는 것도.. 좋은 모델입니다.
(자비량 사역은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훗날 그는 고린도교회에 편지로 이렇게 썼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고전4:11~13
(바울이 방문했던 모든 도시를 포함해서) 고린도에서
바울이 당한 고난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 와중에 바울이 겪는 좌절감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요?
여러분 마음에 그리스도가 좌정하시고, 여러분이 주님을 전심으로 섬기시면,
무조건 삶이 편하고 쉬울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고난과 역경을 주십니다.
바울은 종종 그런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사역자는,
종종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정처가 없을 수 있습니다.
‘정처가 없다’는 말은, 홈리스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은, 집 없이 떠도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숙자들을 보면서, 너무 비웃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만날 기회가 더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복음을 전하는 관계로, 돈을 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물질이 없다고,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이 없으면, 자비량으로 물질을 벌어가면서,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3. 바울은, 고린도에서, 처음에 따르는 자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행18:6
(그는 지금 친구(동역자)도 없고, 물질도 없고, 이 도를 따르는 자도 처음에는 없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굴라 부부를 제외하고는,
처음에, 그 도시에는 믿는 사람을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맨 땅에 머리 박는' 식입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는 했지만,
그는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격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행18:6
어쩌면, 평소 같았으면, 바울이 참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 반대를 받았을 때는, 바울도 맞서서 대항했습니다.
그것은, 지금 고린도에서 바울의 상태가 <매우 피곤한> 상태임을 반증합니다.
사람이 지쳤을 때는, 격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4. (행18장 본문에는 안 나오지만)
고린도 도시의 타락상은.. 역시 복음전도의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고린도는 매우 풍요롭고 번성하던 항구도시였습니다.
실제로는 항구와 몇 킬로 떨어져 있었지만, 항구도시나 다름없었습니다.
수많은 배가 오고 갔으며, 무역이 활발했으며, 굉장히 산업화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유동 인구가 넘쳐났습니다.
그런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온갖 일들이 다 생깁니다.
그 도시에는 아프로디테(아데미, 행19:27)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과 연관된 대략 1천명의 매춘부들이,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매춘을 했습니다.
그들은 신전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매춘을 했고, 그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로 포장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부도덕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그 어떤 도시도, 고린도보다 더 부패한 곳은 없었습니다.
그런 도시를 방문한 바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저 못 본 척 하고, 지나쳐서 다른 도시로 가버리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도시라고 단정 짓겠습니까?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6:9~10절에 보면,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남색男色하는 자,
도적, 탐욕,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 등을 언급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더러움과, 부패함, 타락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낙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 고전6:11
◑1. 절망한 바울에게 임한, 주님의 위로
▲결국 고린도에서도 ‘열매’가 생겨났습니다.
행18:7~8
처음에는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전도의 열매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행18:7~8
▲완전히 지친 바울에게, 주님의 위로가 임했습니다.
행18:9~10
행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두려워 말라,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이런 말씀에서 유추해 보면,
바울의 상태가,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 2차선교여행의 4도시(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를 거쳐 오면서,
계속 반대와 핍박을 받았으니,
고린도에 이르러서도, 비슷한 적대 세력이 있을 것임이, 쉽게 예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바울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만 침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두려워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라고 격려해 주신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것은 아마, 고린도에서 사도바울이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린’ 경험과,
그 ‘흔들린’ 경험을 극복하고 난 다음에 나온, 체험적 권면이란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서두에, 눈 치우는 어른의 예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중간쯤 하다가 포기하기 쉽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바울과 같이 지쳐있을 때는, 정말 포기하기 쉬워집니다.
그때 바울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내가, 피곤한데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주님이 말씀해 주지 않으실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너무 분주해서, 그 격려와 위로의 음성을 못 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위로, 격려하십니다.
그 세미한 음성을 듣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은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동안 머물면서
고린도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 고린도교회의 문제들은
오늘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들의 교회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써서 가르친 고린도전후서를 통해서 말입니다.
바울의 서신서 중에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고린도전후서는,
가장 긴 서신서입니다. 총29장으로, 16장인 로마서보다 더 깁니다.
고린도교회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바울은 많은 교훈을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일례로, 고린도교회의 성적 타락으로 인해서
바울은 소위 ‘결혼장’이라고 알려진 ‘고전7장’에서
결혼과 독신 문제에 대해, 자세히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전3:16, 6:19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훈들은.. 만약 고린도교회가 없었더라면,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타락으로 인해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성경(고전후서)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 죄인에게 오히려 필요한 복음
▲타락한 로마시대로 되돌아간 '전후 세대'
세계2차대전을 겪은 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세대는,
역사상 유례없는 가치관과 도덕성의 혁명과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서구권에서는, 그 로마시대의 ‘아프로디테 정신’이 아직도 숭배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도덕의 사회 im-morality>가 아니라
<무도덕의 사회 a-morality>가 되고 있습니다.
immorality는 부도적해도, 도덕기준이 있지만,
amorality는 도덕기준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성 혁명이 일어난 오늘날, 서구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파괴해 버렸습니다.
작년은, 영국에서,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낮은 결혼률을 보였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책임지기도 싫고, 또한 이혼을 통해 지게 될 부담감도 두려우니,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그냥 함께 삽니다.
그리고 서로 ‘동의’하기만 하면,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낯선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타락한 로마시대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그 이상을 가고 있습니다.
또 성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알려주는 포르노급의 방송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포르노 사업의 규모는, 이제 방송에서 주류가 되었으며 (과거에는 비주류였는데)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 사업규모보다 더 큰 사업규모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정이 깨어져가고 있습니다.
▲절망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졌던 바울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가졌던 절망감과 동시에 가졌던 자신감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2:2
이 구절은, 고린도의 도덕적 상태를 알았을 때, 더욱더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음행과 아프로디테(아데미) 여신을 비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의 우상을 없애기 위해 고린도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음탕함을 책망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말씀만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줄 것이며,
이를 통해 부패한 고린도에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 이전 과거)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복음을 받은 후 현재)
바울이 그러한 상황에서 사역하는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은
당시 고린도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마치는 말
지금 캐나다의 기독교는 (세계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전에 없던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로 (AD 313)
지난 17세기동안 ‘기독교 나라’들이었고,
나라의 근간이, 기독교 신앙과 그 도덕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크리스천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의 계명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윤리적 규범이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서구의 나라들은, 아프리카와 남미와 아시아에 선교해서
그들 나라들 중에 상당한 기독교인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 국가가 된 나라들도 많습니다. 가톨릭 포함
하지만 그 모든 전통적 신앙들이,
오늘날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 좀 먹으며 손상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처한 절망감 같은 절망감을
우리도 느끼고 있습니다.
저 Charles Price는 며칠 전에 테네시 주, 네쉬빌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거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미국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염려하고
가치관과 도덕의 붕괴를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한 고린도에서 바울이 당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복음에 대한 적대 세력들이 있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비웃고, 전도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 사도행전 18장을 읽으면서,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합시다.
그 가운데서도, 심지어는 고린도에서도
-참 신자들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열매들입니다. 행18:7~8
-암담한 곳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더 크게 임합니다. 행18:9~10
-타락한 곳에는, 정말 복음에 대한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6:11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필요가 많은 곳으로 가서, 물건을 팝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고린도는,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복음이 가장 필요한 곳임에 틀림 없습니다.
갈급한 심령의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간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분류 없음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Glocal Impact P2 / 劉彤 (0) | 2011.06.29 |
---|---|
Glocal Impact P1 / 劉彤 (0) | 2011.06.29 |
두 번 기도하신 이유 - 쩐리탕 (0) | 2011.06.27 |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Charles Price (0) | 2011.06.23 |
‘신부’ 개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Mike Bickle (0) | 201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