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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엣지를 다시 갈아야 Jentezen Franklin

LNCK 2011. 7. 5. 14:04

www.youtube.com/watch?v=LW4oFDwwPsg

◈엣지를 다시 갈아야           왕하6:1~6          설교일부녹취, 정리 

                                                젠센플랭클린 27강 Fasting to reclaim the edge

 

▲저 젠센 프랭클린 목사는 최근에 <두 벌목꾼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거기에 탁월한 벌목꾼으로서,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 ‘늙은 벌목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벌목꾼’이, 자신의 역량을 뽐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젊은 벌목꾼이, 늙은 벌목꾼에게 대결을 제안했습니다.

‘오늘 해가 질 때까지, 누가 더 많은 나무를 벌목하는지.. 겨루어보자’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우람하고 잘 다듬어진 근육을 갖고 있었고,

대신에 늙은이는 오랜 기간의 벌목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벌목을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자기 힘으로, 사정없이 도끼를 휘둘렀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빨리빨리 나무를 쓰러뜨려 나갔습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늙은 벌목공은, 나무를 쓰러뜨렸지만,

한 나무를 벌목하고 나면, 반드시 쉬었습니다.

그는 나무 한 그루를 벌목할 때마다, 약 10분씩 휴식을 취했습니다.

 

드디어 날이 저물었습니다.

다른 동료 벌목공들이, 두 경쟁자의 벌목 결과를 공정하게 심사했습니다.

결과는 늙은 벌목공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젊은 벌목공은, 한 번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나무를 벌목했는데도.. 졌습니다.

 

젊은이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늙은 벌목공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벌목하면서 보니까,

당신이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마다..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았어요.

저는 쉬지도 않고 도끼질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이 벌목을 더 많이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젊은이, 자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네.

내가 앉아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나는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았다네!’

 

▲당신은, 바로 이 ‘젊은 벌목공’이 아닙니까?

오늘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날이 무딘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날카로움edge을 잃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엣지’라는 말이 유행인데,

‘날끝, 날카로움’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벌목꾼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엣지’ 즉 날 끝의 날카로움을 잊어버렸습니다. 무뎌져 버렸습니다.

영적으로 무뎌진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르고 있지만, 거기에 날카로움이 없습니다.

모양새는 손을 들고 있지만, 거기에 엣지가 없습니다.

교회는 안 빠지고 다니는데.. 그 삶에 도끼날이 무뎌져 있습니다.

 

기름부음이 없습니다.

영적인 날카로움을 잃어 버렸습니다.

판에 박힌 일상의 매너리즘일 뿐입니다.

 

▲금식은, 우리에게 날카로움을 돌려줍니다.

영적으로 무뎌진 우리의 날을, 예리하게 갈게 만들어 줍니다.

 

금식은, 우리에게, 예전의 열정을 되돌려 줍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생산적이고 성공적이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도끼의 날’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하던 일을 멈추고,

날을 다시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움을 다시 회복케 합니다.

 

여러분, 오늘 혹시 무뎌진 도끼날을 휘두르느라.. 지치지 않으셨나요?

어떤 분은 도끼날이 물에 빠져버려서, 아예 휘두르기조차 못하기도 합니다...

 

 

▲본문 왕하6:1~6절에, 도끼날을 물에 빠뜨린 사람이 나옵니다.

지금 이 사람(선지 생도)은, 도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처소를 확장하는 일을 하던 중에,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던 중에, 날이 무뎌지는 것보다 더한,

아예 도끼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도끼날은 빌려온 것이었습니다.

만약 주인에게 돌려주지 못하면,

‘그 선지생도는, 말씀 전하는 사람이 빌려간 물건도 되돌려주지 않는구먼!’ 하면서

비난을 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종종 날이 무뎌지는가 하면,

아예 날을 잃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도리어 핀잔을 듣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것입니다.

 

사역의 영역에서뿐만 아닙니다.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더라도.. 지금 엣지(날끝)가 무뎌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날카롭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때 영적으로 아주 날카롭게 설교하고, 찬양인도 했었습니다.

한때 개인적으로도 아주 경건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갈망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을 품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한 때는 그렇게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도끼날은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집에서 쓰는 식칼도.. 시간이 지나면, 날 끝은 점점 무뎌집니다.

날카로움이, 그 엣지edge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날이 있기는 있는데, 잘 베지 못하는 뭉툭한 날입니다.

 

그러다가 본문처럼, 아예 날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해서 중간쯤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예전처럼 자녀를 키우고 있고,

예전처럼 똑같이 사역과 직장 일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효율성, 열매, 결과가 아주 미미한 것입니다.

무디어진 날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잃어버린 도끼날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요단강에 던지자,

도끼날이 다시 물위로 올라왔습니다.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내밀어 (도끼날을) 취하니라.’  왕하6:6

 

여기서 ‘나뭇가지’는 상징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와, 그 고난과, 그 사랑을 깊이 붙잡을 때,

우리는 자기의 무뎌진 날을, 다시 날카롭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Free Chapel 은 2011년을 시작하면서 <21일 금식기도>를 시행합니다.

금식을 통해,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간절히 붙잡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생활의 날카로움을 되찾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역의 예리함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찬양의 열정,

우리 생활의 성결함 등을.. 다시 회복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계속 하지만, 그 기도에 능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계속 다니지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삶의 사명과 목적을.. 날카롭게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 소명과 사명의 길을.. 예리하게 되갈아야 합니다.

 

자꾸만 식어져가는 열정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분명히 임재하시고, 일하시도록.. 우리가 민감해져야 합니다.

 

▲삶이 엉망진창이 된 분들이 많습니다.

‘나는 성령충만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내 삶의 목적과 사명이 희미해졌습니다.’

‘나는 경건한 생활에도 실패했고요, 삶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탄식하는 분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될 사실이 있습니다.

‘육상경주에서 선수가 달려가다가 헛디뎌 넘어졌다고 해서

심판이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넘어진 그 장소에서 빨리 일어나, 계속해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나 자기 삶을 한 번 실패한 사람도,

빨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세월을 빨리 만회하기 위해서는,

‘도끼날을 갈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메마르고, 답답하고, 컬컬한 삶을.. 우리는 더 이상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자기 삶의 사명, 소명을.. 그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려서 그렇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도끼날처럼’ 말입니다.

 

더 이상 내 삶이 엉망진창 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다.

더 이상 내 직장(사명)이 진흙 속에 푹 빠지도록 방치하지 마십시다.

마치 선지생도의 도끼날이, 요단강 바닥 진흙 속에 푹 빠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에 사명이 무뎌진 것 때문이라면,

우리가 다시 금식하며, 십자가를 붙잡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 사랑, 고난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갑시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계속 진흙 속에 푹 빠져서 살 것입니까?

 

▲이번 21일간 금식은, 여러분께 <날카로움>을 되찾게 해 줄 것입니다.

하루에 한 끼를 금식하시든지.. 그 식사비를 모아서 구제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출~일몰까지 금식하시든지.. 보통 중동지역의 금식 풍습은 일출~일몰사이 금식입니다.

아니면 ‘쥬스 금식’이든지.. 쥬스만 마시면서 금식하는 것

 

우리 각자가 날카로움을 다시 회복하십시다.

우리 각자가 엣지를 다시 되찾읍시다.

 

우리가 ‘날카로움’을 다시 회복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게 됩니다.

부모가 영적 민감성을 다시 회복할 때..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복종 합니다.
사역자가 영적 예리함으로 섬길 때.. 성도들에게 존경 받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크리스천이 영적 민감성을 다시 회복할 때.. 사회에서 교회를 신뢰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래도 교회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야!’ 라고 말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예리한 말씀의 검’을 회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자꾸 교회를 떠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불교, 동양신비종교로 가기도 합니다.

 

크리스천이 ‘날카로운 영적 능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결국 버려져서 사람들 발에 밟히는, 맛을 잃은 소금밖에 더 되겠습니까!

 

여러분, 점점 어두워져 가는 세상은

교회를 마지막 희망이요, 세상을 비추는 등대요, 등불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날카로움’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절대 희망을 못 줍니다.

 

▲금년 2011년 우리 Free Chapel은, <날카로움>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되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 생활에서 ‘날카로움’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딴 생각을 하고, 한 눈을 팝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영적 동행에서 ‘날카로움’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날카롭게 사역하던 사람이.. 지금은 무디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과 직장에서 ‘날카로움’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직장생활 하려니.. 지쳐서 허덕거립니다.

위에서 공급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자기 힘이 아니라, 위에서 내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직장 일을 감당했거든요..

 

여러분, 그 날카로움으로의 회복이 쉽지 않으니까, 우리가 금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정은 전염(확산)되는 것입니다.

내게 열정이 불타면.. 내 주변 사람에게 반드시 그 열정을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식어 있으면.. 나는 내 주변사람도.. 식어지게 만듭니다.

 

오늘날 우리는 ‘열정의 선순환’이 일어나서,

서로가 서로를 뜨겁게 달구는 관계가 되어야 할 터인데,

 

반대로 우리는 ‘냉랭함의 악순환’이 일어나서

서로가 서로를 싸늘하게 식히는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배우자와 자녀가 여전히 냉랭합니까?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아직, 당신이 그들을 달굴만큼, 뜨겁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셀그룹에, 구성원들이 여전히 싸늘합니까?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아직, 당신이 그들을 달굴만큼, 열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내가, 내 주위에 열정은커녕

내 주위에 싸늘함과 냉랭함을 주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금식할 때, 마귀가 찾아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실 때, 마귀가 찾아와서 유혹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금식을 통해, 우리가 영적인 엣지, 날카로움을 회복했다면,

그 찾아온 마귀의 시험을, 단번에 날카로운 말씀의 검으로 날려버릴 것입니다.

 

그런 영적전쟁의 승리를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더 단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날카로워진’ 사람의 증거입니다.

 

우리의 날카로워짐은.. 마귀의 시험을 통해,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닥치는 마귀의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여기십시오.

내 신앙과 믿음을 굳세게 해 주는 기회요, 나를 영적전쟁의 베테랑으로 만들어주는 기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영적인 날카로움을 왜 잃어버렸습니까?

마귀의 유혹에 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그 날카로움을 다시 회복하겠습니까?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나서! 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금식과 십자가를 붙듦을 통해

-이제 음란물의 마귀의 시험을 끊어버리십시오.

-여러 가지 중독의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십시오.

 

그런 것 저런 것 끊지 않고, 결코 날카로움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 저런 것 다 갖고 있으면서, ‘길에 밟히는 소금’ 되시겠습니까?

 

*관련글 /  우상숭배하면, 흐리멍텅 해 진다           요즘 교회가 dull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