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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여호와께 속한 전쟁을 싸워야 Tommy Tenney

LNCK 2011. 7. 6. 16:04

www.youtube.com/watch?v=4cLmDTJOilM

◈여호와께 속한 전쟁을 싸워야        에4:16       설교 녹취, 정리, 출처보기

                                                토미 테니 말씀강해 /13강 Don't run from the risk

 

우리가 인생의 시련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궁극적인 힘과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절실히 깨닫는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장이 아닌 곳에서,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에는 전쟁이 누구의 것이라고 했습니까? -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했습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영적 전쟁의 최고 단계는,

여러분이 목소리 높여서, 귀신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잠시만 기다려, 아빠를 불러올 거야!’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당한 전쟁.. 하만을 만나다

 

▲나의 대적의 크기는, 나의 사명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외적 크기에 대적을 맞추지 않습니다. 얼마나 부자냐, 높으냐..가 아닙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대적을, 여러분의 사명의 크기에 맞추어 세우십니다.

 

God does not match your enemy to your size,

God matches your enemy to the size of your destiny.

 

혹시 여러분 중에 누가

만약 거대한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명이 너무도 크기에,

거대한 적을 대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숨어버리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수준을 높이시기 위해서

먼저 적의 공격을 허용하십니다.

 

그 대적의 크기는,

여러분이 이룩할 승리의 크기를 선행지표로 알려줄 것입니다.

      The size of your enemy is often a clue.. for the size of your victory.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준비가 되면,

먼저 약속/비전/꿈/언약을 주십니다.

그런 다음에 마치 이렇게 말씀 하시는듯 합니다.

‘그것을 꼭 붙들고 있으렴, 잠시 후에 보자꾸나!’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정 기간 동안 사라지신 듯합니다. 아예 안 나타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나 혼자서 이 약속/사명 감당을 도대체 어떻게 하지?’

 

이때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약속/사명을 꼭 붙드십시오.

 

여러분이 버려지고, 잊혀지고,

원수가 나를 이기는 것 같아 보여도.. 계속해서 끝까지 사명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욥처럼, 에스더처럼, 그 마귀의 시험을 다 이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준비가 된 것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약속을 주었다.

네가 그것을 버리지 않고 꼭 붙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일할 것이다.

네가 원수의 시험을 잘 참고 견뎌냈구나. 이제는 내가 일할 시간이 왔다.

 

 

그런데 그 중간에는, 마귀가 득세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숨어버리시고, 내가 마귀가 맞닥뜨리는 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대적(마귀)이 승승장구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대적 하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마귀’로 생각하십시오.

사람은 사랑해야할 대상으로.. 그를 품으십시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대신 위에 두니 에3:1

 

‘지위를 높이 올려.. 위에 두니’..

하만은 아마 말단 용병으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각 사람입니다. 유다보다 더 이름도 없는 민족의 출신입니다.

그가 나중에, 제국의 제2인자까지 등극했으니.. 얼마나 많이 노력했을까요?

 

그리고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고난을 당할 때,

하만은 더욱 지위가 높아가고, 더욱 다른 대신들 위에 뛰어나게 승승장구 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보다 대적 마귀가 더 득세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질병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하는데도, 암덩어리가 더 확산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은 ‘왕’이 그를 높이는 것입니다.

     내가 대적을 이기기도 힘겨운 터인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나갈수록, 대적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만한 대상만 상대해서, 여러분의 사명의 크기를 줄이지 마십시오.

그게 암이든지, 마귀이든지

큰 대적이 다가오는 것은,

내 존재감을 크게 증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약한 대상을 만나는 것은.. 결코 다행으로 여기거나, 즐거워할 일이 아닙니다.

 

Risk versus Reward입니다. 위험 對 상급입니다.

리스크 부담이 크면 클수록

내가 받는 상급의 양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에스더는 하만을 상대해야 합니다. 제국의 실세 2인자입니다.

     자기는 왕비이지만, 어쩌면 하만에게 당하여,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前왕비도 쫓겨난 전례가 있었던 터라, 에스더도 상당히 긴장했을 것입니다.

     전 왕비가 그냥 고이 쫓겨났겠습니까? 폐위 된 후에 아마도 즉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도전 앞에서

에스더는 뒤로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피하여 숨지 않았습니다.

모든 리스크를 무릅쓰고, 직접 대면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에스더’가 된 것입니다.

 

      ※한국축구 대표팀이 이태리를 꺾고, 스페인을 꺾어야 ‘강팀’으로 인정되는 것이지,

         ‘네팔, 인도’팀을 꺾고 나서, 승리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왕의 임재 가운데 있으면.. 전쟁은 승리합니다.

에스더의 승리는.. 왕의 임재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왕 앞에 문제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왕 앞에 대적과 함께 선 것입니다. 이 내용은 아래에서 다시 살피겠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앞으로, 골리앗을 불러오셨습니다.

골리앗 앞에 다윗이 불려나간 것이지만, 사실은 다윗 앞에 골리앗이 불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영적 전쟁을 통해 단련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쉬운 적을 데려오셨을까요? 아닙니다.

 

‘저것으로 할까? 아냐 너무 작아, 그럼 이것은.. 너무 쉬운 것 같아..’ 이렇게 고르시다가

결국 골리앗이 낙점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크기의 대적을 구하십니다.

 

저는 평소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대적을 난장이처럼 작게 만들어주세요’

물론 그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정반대로 우리에게 대적을 쎈 놈으로 골라서’ 보내주십니다.

내 소원과 정반대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외적 크기에 대적을 맞추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사명의 크기에, 대적을 맞추어 세우십니다.

 

God does not match your enemy to your size,

God matches your enemy to the size of your destiny.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드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대적을 허락하시고, 그 환란을 통과하게 하신 후에.. 비로소 높이십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아니었다면, 시골 목동에 계속 머물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준비가 되면,

첫 번째로 하시는 일은, ‘대적을 높이시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나를 높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적 하만도 높이 승승장구 올라갔고,

대적 골리앗도, 사람들에게 크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골리앗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세팅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높이시기 위해, 골리앗을 다윗보다 앞서 먼저 높이신 것입니다.

 

그때 다윗 같은 성도들은 매우 당황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내 편이 아니라, 대적 편이 되시고 있네? 대적이 더 잘 되네?’

 

그러나 대적이 매우 강하게 높아진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윗, 내가 네 대적을 이제 다 준비 끝마쳤으니, 이제 나가 싸워 이겨라.

비록 대적이 크고 무섭겠지만, 이제 네가 등장할 때가 되었으니, 믿음으로 전진하라!’

 

만약 골리앗이 거인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절대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골리앗을 만나지 않고 왕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아닙니다.

 

▲Don't be intimidated by the size of your battle!

여러분이 치르는 전쟁의 규모가 너무 크고 끔찍스럽다고, 스스로 위축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우실 준비가 되면,

하나님은 먼저, 여러분의 대적을 일으키시고, 그를 일부러 강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맞부딪히는 대적의 크기가

여러분이 얼마나 크게 세우질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뒤로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게 될지.. 알려주는 힌트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 속한 전쟁을 싸우고 있다면..

 

만약 골리앗이 난쟁이, 약골이었다면,

다윗은 결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난쟁이’들만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조르는 것입니까?

 

골리앗이 난쟁이 이었다면,

아예 다윗의 등장이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앞 다투어 나가서, 다 처치했을 터이니까요.

 

아니면 다윗이 세간에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난장이를 쓰러뜨렸데요! 와우, 대단해요! 그는 우리의 왕이에요. (조롱투로)

 

▲오늘 여러분은, 난쟁이 사이즈의 작은 시험과 대적을 만나기 원하면서

꿈과 비전과 야망은.. 다윗 같은 위대한 영웅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난센스입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크게 들어 쓰시기 원하시고

그래서 최상의, 최고의 무대세팅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그게 바로 ‘하만’이요, ‘골리앗’입니다.

 

만약 다윗이 골리앗과, 또한 사울 왕과 대결하지 않고,

낙하산 타고, 그 왕의 자리에 올랐다면,

‘삼일천하’로 끝났을 것입니다. 3일만에 쫓겨났을 것입니다.

아니면 사울처럼 똑같이 타락한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명심하십시다. 우리의 사명의 크기는,

우리가 지금 치러나가고 있는 전쟁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여러분이 현재 피 튀기는 전쟁을 많이 치르면 치를수록,

여러분은 지금 아주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우리는 아우성칩니다.

‘하나님, 전쟁은 싫습니다.

제가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닙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애당초 이 길로 접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아마 ‘도시락 심부름’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형들에게 도시락 갖다 주는 심부름 하러 갔다가, 골리앗을 만났고,

그 후로도 골리앗 때보다 더 힘든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엉뚱하게 깊은 수렁 속으로 몇 년간이나 빠질 때가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을 계기로, 엄청난 전쟁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를 원망할 필요 없다.

너를 향한 나의 계획을, 네가 아느냐?

내가 너를 높이 세우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기획 했단다!’

 

※여기서 ‘높인다’는 뜻은,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적으로 무슨 지위를 차지하고, 자기 직급이 꼭 높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직급이 높든지/낮든지.. 하나님 나라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데는, 큰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한숨을 크게 몰아쉽니다. 끙끙거리며 신음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릴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지를 수도’ 있습니다. piss

 

그때는 어떻게 이해하시라고요?

‘네, 하나님이 당신을 높이시기 위해서, 당신이 높아질 만큼의 대적과 환란을 보내시는 겁니다.’

 

※그럼 대적과 환란을 만나지 않고, 성공하고 높아지는 길도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성공주의, 기복주의’ 메시지입니다. 무조건 복 받아 높아지라는 메시지입니다.

십자가 없이 성공하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잘나가는 사업가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크게 성공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무슨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에스더 이야기로 돌아가서

 

▲에스더는 왕궁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편안하게 팔자 고치고 잘 살 줄 알았습니다.

좋은 옷도 입었습니다. 예전에 이름도 못 들어본 훌륭한 음식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고 보니, 거기에 ‘하만’도 있었습니다.

그도 좋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왕이 준 반지도 끼고 있었습니다. 에3:10

그의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어쩌면 하만으로 인해서, 에스더는 자기 목숨이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하만이 모든 유대인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는데,

결국 그 칼끝은 에스더 자신도 겨누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시고,

목자는 양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신다고.. 이제 나는 팔자 고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사방에 늑대가 양떼를 노립니다. 양떼를 이리 가운데 보내십니다.

때로는 우는 사자가 나타나 으르렁 거립니다.

‘왕궁’속도, 결코 안전한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에스더는 이 싸움을 ‘왕 앞으로’ 가져갑니다.

이 싸움은, 나를 높이기 위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싸움을 싸우고 나서, 에스도도, 모르드개도 다 높아졌습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에스더처럼 ‘왕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그 임재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서두의 일화에서

그 꼬마가, 당장 자기 아버지께 일러주러 갔던 것처럼..

여러분, 우리가 마치 힘이 있는 것처럼 크게 심호흡하며 내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어도,

사실 우리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하만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왕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왕을 의지함으로써, 이 싸움을 이기는 법을.. 연습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일생동안 점점 더 크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작은 싸움부터, 왕의 임재 앞에서, 왕의 개입으로,

이 전쟁을 이기는 법을 숙달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대적이, 왕의 대적이 되면,

여러분의 전쟁은, 왕의 전쟁이 됩니다.

 

다윗은 자기가 골리앗과 싸우는 전쟁이, 자기의 전쟁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내 전쟁’을 일으키면.. 하나님이 그 전쟁을 안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고 있다면.. 이건 내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다가, 사자 굴에 던져진 것입니다.

그것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승리한 비결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쟁을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므로 당신 스스로 ‘대적’을 결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내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대적과 싸우십시오.

 

이때 내 대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고,

나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기분으로 전쟁을 도발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내가 말려들어간 전쟁에서, 내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인생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란 말도 일면 맞습니다.

저도 똑같은 힘겨운 싸움이 매일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 식구들과 그런 싸움을 싸울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분변해야 합니다.

‘내가 내 싸움을 벌이고 있나?, 아니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나?’

 

정확한 분변을 통해

내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면, 두렵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곧 에스더, 다윗, 다니엘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내 싸움을 싸우고 있다면,

내가 골리앗, 하만이 되고 맙니다. 이때는 빨리 도망가야/빠져나와야 합니다.

그 결과는 끔찍합니다.

 

▲여러분, 전쟁에는 목숨을 걸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총 favor을 주십니다.

지난 시간에 그것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왕의 은총을 구하십시다 Tommy Tenney

 

그러나 그 은총은, 그저 꽃마차를 타고 오지 않습니다.

그 은총은, 대적과의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고 난 후에, 비로소 주어집니다.

 

나는 주님께 ‘은총만 받으리라’고 결코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의 일면만 보는 것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기복주의’이고,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렇거든,

하물며 가장 강적인 사탄과 맞부딪혀 싸우는데, 자기 목숨 안 걸고.. 못 이깁니다.

‘내가 비록 이 일을 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하는 것은 옳다!’ .. 굳게 결심하십시오.

 

다윗, 다니엘, 본문의 에스더,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

모두 자기 목숨을 걸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했습니다.

그러므로 Don't run from the risk! - 원래 영어설교 제목

위험과 싸움을 피하여 도망가지 마십시오! 끝까지 사수하고 버텨야 승리합니다.

 

     ※신기하게도 이순신 장군이 말씀한

        필생즉사 必生卽死 사필즉생 死必卽生은, 복음의 핵심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그 분이 곁다리로 복음을 전해 들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