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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내용이 있어야

LNCK 2011. 7. 7. 21:55

◈믿음에는 내용이 있어야          히11:1~7                  설교스크랩, 편집

 

믿음은.. 관념이 아니라, 삶, 생활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설교입니다.

 

 

▲도입/ 영화에는.. 내용이 있어야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요. 가끔 영화를 보러갑니다.

다들 마찬가지시겠지만, 저는 영화에 ‘내용’을 중요하게 봅니다.

 

화려한 화면과 멋진 장면이 많이 나오더라도

영화를 다 보고나서 그 영화에서 말하는 것(내용)이 별로라면.. 그야말로 ‘별로’입니다.

그저 눈요깃거리로만 영화를 보고 나온다면.. 투자한 시간과 돈이 아깝겠지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내용이 있는 영화입니다.

메시지가 담긴 영화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시>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영화였는데, 그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삶은.. 시처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주인공은.. 힘든 현실에서.. 세상을 향해 슬프고 힘겹게 사는 가운데.. 시가 써지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내용이 있었지요. 제가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내용이 있는 영화. 이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내용이 없이, 껍데기만 화려한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 영화는, 잠시 머리를 식히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모르나, 기억에서 금방 잊혀집니다.

<믿음>에 관해 말씀 드리면서, <영화>이야기를 잠시 빌려와 보았습니다.  

 

▲믿음도.. 내용 있는 믿음이 있고, 아무 내용 없는 믿음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도, 내용 없이 껍데기만 화려한 경우가 있고요,

반대로 충실하게 내용으로 꽉 채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 히11장을 통해서 그것(믿음의 내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믿음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히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는,

믿음에는..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증거라는 말을, 영화에서처럼 내용이라고 바꿔 본 것입니다.

 

믿음이란 아벨이라든지 에녹이라든지 또 노아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삶의 증거가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관념적으로, 생각으로 믿는 것.. 이 아닙니다.

믿음은.. 관계적으로, 삶과 생활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나의 반응인 것입니다.

지금 내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 섭리에 대한

나의 태도, 그리고 자세, 하나님에 대한 헌신,

이 모든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는 내용, 증거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냥 자기 생각으로 믿는 것이지, 참 믿음이 아닙니다.

 

 

▲2. 아벨의 믿음의 내용은.. 더 나은 제사를 드리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가인과 아벨에 대해, 창세기를 살펴보면,

아담이 가인을 낳고,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했습니다. 창4:1

이 말은, 가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 속에서 태어난 아들이란 말입니다.

 

장성한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아벨은 자기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창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기서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이란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제물만 드린 게 아니라, 가인과 아벨은 자기 자신도 함께 바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평소의 자기 삶을 산 제물로 바친 것을 뜻합니다. 롬12:1

평소에 자기 생활과 삶이.. 하나님께 헌신된, 바쳐지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저는 창4:3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에도 밑줄을 긋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는 몰라요. 1년인지 5년인지 10년인지 100년인지...

어쨌든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벨은 받을 수 있었는데, 가인은 받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삶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아벨의 삶은 받을 수 있었지만, 가인의 삶은 받을 수 없어서

그 제물도 덩달아 받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벨이 보여준 증거의 모습은.. 평소에 헌신하는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분 히11:4절에서 말하는, 아벨의 믿음의 내용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저와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이 지난 후에’ 냉랭하고 식어지니까요.

매너리즘에 빠지고 마니까요.

 

여러분, 믿음은 껍데기만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아벨의 믿음에 있어서, 그 내용은.. ‘더 나은 제사’이었습니다.

 

 

▲3. 에녹의 믿음의 내용..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5:22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에녹 을 클릭해서 보세요.

 

 

▲4. 노아의 믿음의 내용.. 미래를 준비하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에녹 이후, 므두셀라 이후, 세상에 흐르는 분위기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을 앞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방주를 만들지요.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심판을 준비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받고 그에 반응하는 것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몇 년 만들지요? 120년입니다.

무엇보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하심,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보여주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장래 일에 대해 경고를 성경을 통해 늘 받고 있지만,

노아처럼, 심판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세상에 보여주는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까? 

 

 

◑적용 및 마치는 말

 

아벨의 삶을 통해서.. 아벨의 믿음에는.. ‘보다 나은 예배’란 내용이 보입니다.

에녹의 삶을 통해서.. 에녹의 믿음에는..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노아의 삶을 통해서.. 노아의 믿음에는.. ‘장래를 준비하는 믿음’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그 내용이.. 과연 무엇입니까?

 

이건 주위 사람이 잘 알 것입니다.

주위 사람에게, 내 믿음에 대한, 평가를 부탁해 봅시다.

‘나의 믿음의 내용/특징/증거가 과연 무엇이냐고요?’

 

오늘날 우리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스펙입니다.

스펙이라는 말은 학력 또는 이력을 말합니다.

자격증이 몇 개냐? 토익점수가 몇점이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내용을 만드는 것입니다.

 

스펙이 있어야 취업도 쉽고,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스펙이 있어도, 내용이 없다면..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지요.

 

지금 스펙을 말씀드리는 게 아니고요..

신앙에도 스펙뿐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뭐 몇 대 째 가문이고, 삼촌과 사돈이 큰 목사이고..

-신앙경력 수 십 년에, 교회봉사경력 OO년,

-아버지가 교회를 몇 개 건축하시는데, 물질로 헌신하셨고...

-성경을 몇 독 했고, 새벽기도 개근이 몇 년이고..

-현재 직분이 어떠하며, 청년회장, 연합회 임원 등등

 

그런데 제가 싫어하는 영화처럼 겉모습은 화려한데, 그 스펙은 멋진데..

내용이 빈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 말하면,

믿음에 증거가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그런 ‘관념적 믿음, 스펙만 화려한 믿음’ 갖고는.. 천국에 못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헌신, 교회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수, 더 많은 시간, 더 큰 규모... 조심하세요.

껍데기만 딱딱하게 굳어 질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시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시고요..

 

껍데기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딱딱해진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러분 혹시 '딱딱하게 굳어진 껍데기'가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내가 그토록 믿음에서 중요하다고 여기고 목숨처럼 지켜온 것이

혹시 '딱딱한 껍데기' 같은 것은 아닌가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요, 삶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부디 그 내용을 충실한 것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헌신입니다.

 

-나는 평소의 삶에서, 진정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는 매일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 에녹처럼!

-나는 날마다, ‘나와 그 제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벨처럼!

-나는 주님의 심판날을 대비하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노아처럼! 

 

-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내 믿음의 내용, 내 믿음의 증거는.. 과연 무엇입니까?

나는 정말 믿음의 사람이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