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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현재부터 시작 고후4:17 11.07.10.
Dallas Willard 박사 설교 정리
※내용이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만, 달라스 윌라드 박사님 설교는 귀담아 들을 필요 있습니다.
◑1. 영생은 ‘현재’부터 시작합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7
이런 구절을 대할 때,
우리는 항상 ‘먼 미래 천국’을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영원, 영생’은.. 지금 현재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도
지금 현재부터, 우리 삶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현재는 영생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항상 ‘영생’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영생’이란.. 오늘 현재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어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이 죽어서, 천국에 가서, 영생을 사는 것이니까,
‘지금 이 땅에서는 호의호식 하며 잘 살다가, 천국만 가서, 그때부터 영생하면 돼!’
-이런 식으로 가르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렇게 가르칩니다.
지금 현재의 삶이, 영생의 삶의 시작이며,
지금 오늘의 삶이, 영생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지금 나의 삶이, 영생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축복받아 부자로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서 영생을 살자... 이건 성경적 논리가 아닙니다.
부자로 살든지, 빈자로 살든지.. 여기서부터 천국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부자로 살면서도, 천국 영생을 못 누릴 수도 있고, (돈이 우상이 될 때)
빈자로 살면서도, 천국 영생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돈을 다스릴 때)
▲영생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것
우리가 집에서 가정생활을 하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든,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성도는 ‘영생’을 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배운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3년간 제자도 discipleship 가 필요했습니다.
죄사함 받아서, 천국 가는 것이.. 전부였다면,
3년간 제자도가 필요 없었습니다. 마지막 1주간 십자가 지심만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년간 제자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영생의 삶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현재의 일상 속에서 영생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늘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게 구체적으로 뭘 뜻합니까?
하나님 나라 안에서, 현재 영생을 산다는 것은, 실제로 무슨 뜻입니까?
아래 ◑2. 3. 4.에서 생각해 봅시다.
◑2. 현재 영생을 사는 것이란.. 현재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17:3에, 예수님은 ‘영생은 바로 이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상호 친밀한 교제를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들었을 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안다’는 말은, 지식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적으로 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실 때도, 이렇게 개인적, 인격적으로 아십니다.
우리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세고 계시고,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시139:2
내 염려, 고통, 탄식을 아시며, 물론 기쁨도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정한 날이 이르기도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139:16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꺼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친밀하게 교제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 때,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땅을 살지만, 자기 힘과 노력과 능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것이.. 영생이며,
그 안에는 평안, 행복, 만족, 기쁨, 시험을 이기는 힘.. 등이 있습니다.
그런 ‘영생’은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것이지만,
그 누림은, 벌써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interactive relationship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갈 때, 영생이 점점 풍성하게 생깁니다.
◑3. 영생은.. 무조건 영원히 오래 사는 것은 아니라,
다스리며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롬5:17에,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영생) 안에서 왕노릇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동물과 식물이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면.. 그것도 영생인가요? (아닙니다.)
천국에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습니다.
생명수 강이 흐르고, 어족도 풍부하며, 생명나무 실과가 있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으니,
천국에 동물과 식물도 있을 터인데, ※천국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에 천국에서 동물과 식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오래 산다면..
그것도 영생인가요?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아닙니다. 그들은 영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생명이 있어서, 공을 가지고 놉니다.
사람이 천국에서, 고양이처럼 공을 가지고 놀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영생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영원히 안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용이 있습니다.
즉 영원히 살되, 다스리며, 왕 노릇하며 영원히 사는 것이 - 영생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다스리며(=사랑으로 섬기며)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지옥에서도 영원히 삽니다.
이것을 ‘영생’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제 관계가 끊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생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같은 사람을 ‘허물과 죄로 죽었다’ 라고 말합니다. 엡2:5
과거에 우리 모두가 ‘허물과 죄로 죽은 가운데’ 지냈습니다.
거기(영의 죽음)에서 나오는 결과는,
불만, 미움, 분노, 폭력, 적대감 등입니다.
한 마디로, 영생을 살지 못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나, 무슨 행동에서 든지.. 다스리는(섬기는) 것이..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영생은..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서, 하나님처럼 다스리는 삶을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위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하면,
이렇게, 무슨 말에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다스리며(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을 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생은 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현재, 영생을 살 수 없습니다.
◑4. 그러므로 영생은.. ‘제자도’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신자를 두 부류로 구분한다면,
제자와, 그저 신자로 구분됩니다.
위에서 ‘영생’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드렸는데,
결국은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로서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가운데서 살지 못하고,
그저 신자로서 교회 왔다 갔다 하면서 살면,
-그에게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교리나, 어떤 성경구절에 대해 ‘지적 동의’로 *知的 同意
자신이 ‘영생을 가졌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영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평소의 삶을, 냉정하게 짚어보면, 됩니다.
‘나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만물을 다스리며(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양선 등이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그저 성경 몇 구절에, 내가 머리를 끄덕이고 동의했다고,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제자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하게 ‘복음의 도’를 자기 삶에서, 추구하고, 구현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와 교회가 착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제자의 삶을, 평소에 살지 못하면서, 아니 탐욕적 삶을 살면서
자기가 교회에 다니고, 성경 구절 몇 가지(영생을 준다는)를 알고 있다고 해서,
자기가 ‘영생을 얻은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그런 ‘지적 동의/신념 체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죽어서 천국 가서 얻는 것도 아니고, 현재부터 영생이 시작됩니다.
-무조건 안 죽고 천국의 동식물처럼 오래 계속 사는 것도, 영생이 아니며,
영생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세상과 만물을 다스리며 (이런 ‘내용 質’이 있어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것인데
-그것은 오늘 현재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제자의 삶’이라 말합니다.
‘부활의 삶’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관련글/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함께 앉아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옴으로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새(부활)생명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새롭게 탄생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새(부활)생명을 얻은 사람은.. 반드시 저절로 ‘제자의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5. 신학적으로 시각을 넓힙시다.
제가 지루한 내용을 길게 설명 드린 이유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영생’과 ‘구원’을
성경 몇 구절 자기 머릿속으로 끄덕이고, 지적으로 동의하면,
자기가 죄 사함을 받았고, 영생/구원 얻었다고.. 그렇게 가르치고, 또한 배우고 있습니다.
▲1. 기독교, 영생은.. 지식이, 공부가 아닙니다.
그런 ‘지적 동의, 신념체계적 기독교’는 .. 잘못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관계’적 측면에서 접근되어져야 합니다.
‘영생, 구원’은,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가 전혀 없던 사람이,
새 생명을 얻고, 이제 새 관계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관계 속에 정말 들어간 사람은, 그 관계가 쉽게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 증거는, 제자의 삶을 반드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신자는..
자기 ‘영생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영생은.. 머리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영생은.. 오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장차 천국을 갈 것인가요?
-오늘 내가 천국을 살고 있으면, 장차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못 살면.. 장차 못 갑니다.
오늘 나의 삶을 보면,
장래 나의 삶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오늘 천국과 영생을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정욕과, 돈에 대한 욕심과, 이생의 자랑 등에 눈이 멀어서,
그 욕심을 쫓아가면서, 오늘 천국을 전혀 살지 못하면서도,
‘자기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기 욕심 채우는데,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자 다닙니다. 기복주의입니다.
영생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를 보면, 장차 천국의 내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영생, 천국을 살고 있는가요?
아니면 지옥 같은 나날을 살고 있는가요?
▲3. 영생을.. 죄사함 측면만 강조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죄인입니다. 회개하고.. 믿고.. 네, 영생을 얻었습니다.’
-물론 복음에 그런 측면도 있지만,
요즘 기독교에는, 그런 측면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죄사함은 받았다는데,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욕심에 이끌려 명목상 신자로 살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영생과 구원을
-너무 ‘죄사함’ 측면에서만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관계’적 측면도 함께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으로 성경을 다시 볼 필요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7
비록 이 세상에서 환란과 고통 속에 살지만
성경은, ‘죄사함’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도 동시에 강조합니다.
그래서 현재, 영생과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있는데, 만약 ‘관계’가 되지 않는 신자는,
-그것이 ‘지적 동의’에 의한 ‘죄사함’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것이 정말 성령의 변화시키는 초자연적 역사로 ‘죄사함’ 받았다면,
‘관계’가 반드시 자연스레 동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는 각도를 좀 더 넓히십시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영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영생은 ‘하나님과 새로운, 계속되는, 친밀한 관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당시에(현재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이런 ‘관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믿고 죄사함’ 받고, ‘죽어서 영생’ 얻는다고만 가르치는 것은,
또한 그렇게 자기가 믿는 것은, 깊은 재고가 필요합니다. 성경 보는 각도를 넓게 봅시다.
지금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머리’에서 ‘관계’로 돌이켜야 합니다.
또한 영생의 ‘미래’에서 영생의 ‘현재, 지금’에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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