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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없는 것 하나가 있다

LNCK 2011. 8. 2. 22:18

사랑안에 없는 것 하나가 있다 - YouTube

◈사랑 안에 없는 것 하나가 있다         요일4:16~21        11.02.13.설교스크랩

           그것은 두려움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4:18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모릅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듯이, 마찬가지로 두려움사랑은 같이 섞이지 않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내어 쫓는 것처럼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는 것처럼, 사랑은 두려움을 잡아먹어 버리고 맙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몇 년 전 군산 전목사님 댁에 들렀습니다.

토종닭이 많은 것을 보고, 몇 마리만 달라고 하였습니다.

전목사님은 기꺼이 응하면서 토종닭을 잡으러 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장대를 잡고 닭을 구석으로 몰면서, 약 병아리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미 닭이 전 목사님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전 목사를 물어뜯을 것 같은 자세였습니다.

장대로 한 대만 치면 작살날 닭이었으나, 정말 겁이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어미는 자식을 향하여 온전한 사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10여 쌍의 부부가 물가로 쉬러 갔습니다.

아내가 물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꼭 붙잡았습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둘 다 죽게 되었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본 남편 동생이, 뛰어 들었습니다.

두 명은 정신없이 그를 꼭 붙잡았습니다. 세 명이 같이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었고, 동생은 형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으니까, 목숨을 걸고 물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용감한 사람은 -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시카고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잊지 못 합니다.

시카고 큰 건물을 가진 교회가 공매처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자꾸만 줄어가니까, 공과금도 내지 못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공매(경매)하는 날 밤이었습니다.

믿음이 독실한 어느 부자가 여행을 하다가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책을 하려고, 입었던 잠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 옆을 지나는 데, 공매하는 소리가 거리에까지 들렸습니다.

 

‘나는 이 건물을 얼마에 사겠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 비싸게 사겠습니다.’ 이런 소리였습니다.

부자는 이상하여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공매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귀에, 눈물의 기도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렸습니다.

그는 기도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습니다. 지하 골방이었습니다.

할머니 몇 분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지금 위에서는 우리 교회를 공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팔리면 술집으로 바뀔지, 빙고 오락실로 바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막아 주옵소서!’

그야말로 몸부림치는 기도였습니다.

 

부자는 공매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장 비싼 금액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에게 교회 건물이 낙찰되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산 증서를 가지고 골방으로 갔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할머니들에게, 그 증서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기도 응답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그 분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당을 사랑했던 할머니 성도님들은,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고,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 사람은, 어떤 일을 당하여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당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롬8:31~34

 

계속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2. 자기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 두려움이 없습니다.

 

살았으니까 사는 사람이 있고, 사명 감당하려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카알 힐티가 말한 것은 진실입니다.

‘사명을 발견한 날은 생일보다 중요한 날이다.’

사명을 발견하고 나면 그 날부터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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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번연은 사명을 발견하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 군대 생활할 때

보초로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볼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대신 세워놓고, 볼 일을 보고 왔습니다.

적이 몰래 들어와서 친구를 죽여 버렸습니다.

 

번연이 돌아 와 보니 친구가 적에게 살해되어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번연은 그 때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은 나를 통하여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에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명 감당 하면.. 사도바울입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5

 

바울은 그 때부터 사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려고 애썼습니다.

바울은 늘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말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런지 알지 못 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행20:22~24

 

그리고 로마에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작년 11월 제가 그 곳에 갔다가

그 기념교회 뜰에서 눈이 시뻘개지도록 울었습니다.

자기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두려움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충성된 일군입니다. 사명의 사람입니다.

 

‘내가 온 목적을 말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습니다.’ 사명이 우선이었습니다. 주1)

 

▲노래하는 구두닦이 소년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아이는 구두를 닦을 때마다, 늘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닦았습니다.

그래서 구두를 닦을 때, 사람들은 항상 기분 좋아 했습니다. 즐거워 했습니다.

 

어느 날 손님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뭐가 그리 좋은 일이 있어서, 늘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노래하니?’

 

이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게 아니에요. 희망을 닦고 있어요.’

 

이 아이가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입니다.  Charles Dickens

 

사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3. 사람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명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 없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니까..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두려움이 없는 사랑이 -  온전한 사랑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니까

여우가 굴속에 자기 새끼를 낳았습니다.

구렁이가 여우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굴로 들어갑니다.

 

어미 여우가 굴 입구를 막아서서 구렁이와 싸웁니다. 피가 낭자합니다.

혼자 뱀에 물려 뱀독으로 퉁퉁 부어가면서 싸웁니다. 처절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길을 비켜주지 않습니다. 마침내 뱀은 물러나고 맙니다.

 

사랑은.. 정말 두려움을 이깁니다.

정말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 이권사님은 아들을 정말 사랑하니까, 아들에게 신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 어머니가 간이 나쁘니까, 아들이 간을 나주어 준 이도 있습니다.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간, 신장을 나누어주기도 하는데,

물질을 조금 나누어 주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이 듭니까?

 

부모가 자식을 돌보지 않거나, 자식이 노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돈 아까워하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속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4:18

 

나는 외치고 싶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경제적 두려움을 이긴 사람 

1930년대 미국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경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공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업가들의 자살이 줄을 이었습니다. 경제를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움에서 경제 파탄은 점점 폭풍처럼 다가 왔습니다.

 

그 때 ‘라스크’라는 사람이 역발상을 하였습니다.

‘실업자가 많다. 건축 자재가 안 팔린다. 땅값이 폭락하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

그는 증권에 투자하였던 돈을 모두 모았습니다. 땅을 샀습니다.

실업자들을 사랑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건축 자제를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큰 빌딩을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경제난에... 모두가 비난하였습니다. 날마다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 빌딩 안에서 3만 명이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경제 공황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사람들(실업자들)을 사랑해서, 앞장서서 당당히 일하였습니다.

이 빌딩이 바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입니다. 80년 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질문드립니다.

사랑에 없는 것 하나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단 하나 - 두려움입니다.

 

.......................

 

주1)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충성된 일군입니다. 사명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이삭을 장가보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고향에서 자부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충성된 종 엘리에셀을 불러 말했습니다.

 

‘내 고향에 가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 오거라.’

 

‘주인님! 만일 여자를 구하였는데, 이곳으로 오지 않겠다고 하면

이삭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을 시킬까요?’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곳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는 이 곳에서 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내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반드시 천사를 먼저 보내셔서 신부감을 골라 놓고 계실 것이다.’

 

종은 이런 지시를 받고 아브라함의 고향을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그 곳 하란까지는 800km 였습니다.

그 먼 거리를 나귀를 타고 쉬지 않고 갔습니다.

정말 놀라운 종이었습니다.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 종은 동네 밖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종을 축복하십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나의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약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창 24:41~44.

 

종은 아브라함의 고향에 가서 우물곁에 섰더니 한 처녀가 물을 길러 왔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하였더니 그 처녀는 종이 기도한 대로 말했습니다.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46

 

종은 기도한 그대로 되자 지 사람이 바로 이삭의 아내감임을 직감하였습니다.

종은 가부간에 선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온 목적을 말하기 전에는 먹지 않겠습니다.’ 사명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처녀 리브가의 아버지 라반에게 전후 좌우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라반이 말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그래서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주인 아브라함에게 돌아왔습니다.

 

사명의 사람은 사명을 다 하기까지 결코 쉬지 않고 먹지 않습니다.

오직 사명입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