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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혼란과 환란을 통해 일하신다 / 데이빗 윌커슨

LNCK 2011. 8. 3. 19:24

www.youtube.com/watch?v=IiYobgLg0Yk

◈혼란과 환란을 통해 일하신다      마26:31~32     David Wilkerson 목사님 설교, 출처, 편역

 

 

▶하나님은 고난과 혼란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펼쳐 나가십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극심한 혼돈과 아픔, 고난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그분 자신의 방식으로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 나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은,

오직 '그분만 아시는' 마스터플랜을 펼쳐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그 마스트플랜을 전혀 모르니까, 혼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고난을 통하여, 그분은 일하십니다.

그 고난의 혼란 뒤에는, 곧 승리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사람은, ‘극심한 삶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해 보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이와 동일한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사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자신의 언약을 이행하시기 시작할 때,

먼저 ‘지붕부터 붕괴되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환란과 혼란이 생깁니다.

 

▶1. 먼저 다니엘과 세 친구를 살펴보십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거룩한 삶, 세상의 모든 쾌락과 단절된 삶에, 자신들을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 세 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큰 축복과 승리가 왔습니까? 오기는 왔는데, 좀 이상한 방식으로 왔습니다.

 

그들의 승리는,

혼란과 환란을 통과한 후의 승리였습니다.

용광로의 혼란과 환란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승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눈물을 흘리며 중보기도 하는 삶에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기도의 골방에서,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하나님께 받은 축복과 은총이 어떤 것입니까?

 

어떤 승리의 산꼭대기로 간 것이 아닙니다. 사자 굴로 갔습니다.

 

헌신함으로써 오직 안락하고 축복받는 삶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 친구들은 불붙는 용광로로 갔고,

다니엘은 사자굴로 갔습니다.

 

이런 성경을 읽으면,

‘기도와 헌신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혼란과 환란을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끝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자들을 만나고,

붉게 타오르는 용광로를 통과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으로 결판 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자굴, 용광로.. 그것이 하나님의 perfect will(완전한 뜻)이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혼란과 환란이..

하나님이 당신의 뜻과 섭리를 펼쳐나가시는, God's way(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풍에 돛 달고서, 뱃놀이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2. 선지자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 땅에 영적 각성을 주시고, 풍부한 비를 내리시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타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업적을 성취한 후에, 발생한 모든 혼란과 환란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큰 축복과 환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이세벨이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를 추격하여, 엘리야는 산속에 숨어야 했습니다.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려 하고

그 땅에는 여전히 사악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속임수’처럼 보였습니다.     *렘15:18 ‘속이는 시내’ 참조

 

엘리야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응답받은 기도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온전히 홀로 남겨졌다.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그분의 언약은 실패한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혼란과 환란의 와중에

그분이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실행하고 계셨습니다. 왕상19:14~18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정확히 이루어 가시는데,

혼란과 환란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혼동에 빠지지 말고, 이런 패턴을 읽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의 12제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닌 결과,

그들은, 나라의 좌, 우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혼란과 환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닥칠 혼란과 환란을 대비할 약속을 남겨주셨으나

제자들은 슬픔과 두려움에 잠겨서,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약속’의 예를 한 가지 들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26:31~32

 

저 Wilkerson 목사는, 이 구절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뜻입니다.

 

‘너희가 이 혼란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들의 전투가 아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

그러나 이 일이 모두 끝난 후, 나는 너희 앞서 갈 것이다.

너희의 목자는 여전히 그곳 갈릴리에 있을 것이다.’

 

참으로 힘을 북돋아 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모든 혼란과 환란의 .. 결과와 답을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니, 갈릴리에서 만나자’ 하십니다.

 

▶정리하면,

1) 혼란과 환란을 만날 때.. 당황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혼란과 환란을 통해.. 주님의 뜻과 역사가 성취되어짐을 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혼란과 환란을 통해’ 일하시는 방식 말입니다.

 

2) 그 주님의 마스트플랜은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주님은 미리, 답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일례로, ‘내가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 또는 우리들은,

현실을 살고 있으니까, 지극히 현실적이니까,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미래와 답’을 듣고도..

우리는 혼란에서 확실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의 환경은 여전히 혼란과 환란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패턴을 알 때,

그 혼란과 환란 중에, 믿음의 길을,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영문 편역.>

JUST BEFORE VICTORY

If you are experiencing confusion, pain, and suffering, it may be that God is working things out for you in his own way.

It is most often the sovereign work of our God unfolding a master plan known only to him.

Through all the suffering of God's people, he is at work. The miracle soon follows the confusion.

 

Study your Bible and you will discover these same patterns in the lives of all of God's people.

In case after case, when God began to fulfill his promise, the roof seemed to cave in first!

 

Think of Daniel and the three Hebrew children.

They gave themselves to a life of holiness and separation from the world and all its pleasures.

Daniel pledged himself to a life of prayer, tears, and intercession,

but what did that get him and his three Hebrew friends? Testing just before victory!

 

You don't go from the prayer closet to some mountaintop victory—you go to the lions' den.

You don't go from consecration to a life of ease and blessing only—you go to the fiery furnace.

These men were not afraid to face pain and suffering, because they knew it always ended in God having his way.

Through lions and red-hot furnaces to God's perfect will!

 

Think of Elijah. God gave him a glorious promise of a spiritual awakening in the land;

of an outpouring of abundant rain; of a new day of victory for God's people; and the overthrow of Ahab and Jezebel.

But look at all the confusion that broke out after the promise was given.

Jezebel threatened his life, chasing him into hiding in the mountains.

Wicked forces killed the prophets of God and the land continued in wickedness and drought.

In fact, the Word of God seemed like a hoax.

 

Can you imagine how confused Elijah must have been? “What kind of answered prayer is this?

I'm left all on my own. Where is the Lord? Has his promise failed?"

And all the while God was doing exactly what he said he would do.

The confusion would soon pass and the answer would be forthcoming.

 

Christ left his disciples a promise that could have seen them through all the confusion and pain,

but they were too broken up in sorrow to remember. He had told them:

"After I am risen, I will go before you into Galilee" (Matthew 26:32).

 

In other words, "Don't try to figure it all out. Don't question the time of confusion.

It's not your battle. God is at work! When this is all over,

I will still be going before you. Your shepherd will still be there." What an encouraging word!

 

 

 

◈2. 부흥을 위한 나쁜 소식       눅2:34~35        스크랩 글

 

미국의 부흥을 섬겼던 조나단 에드워즈찰스 G. 피니 

그리고 잠자던 영국 교회를 깨웠던 요한 웨슬리

영국 웨일즈 부흥의 주역 이반 로버츠

당시에 부흥보다, 먼저 비방과 핍박이 찾아 왔었다.

 

요나단 에드워즈의 생애를 보면, 그가 교회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요한 웨슬리의 일기를 읽어보면, 그가 설교를 마친 후 자주 돌과 계란이 날아오고

그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체포되었고 매 맞아야 했다.

이반 로버츠는 십자가만 설교했는데도, 당시의 교회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부흥의 전조로,

성령의 기쁨과 희락으로 인한, 사람들의 인정과 칭송만을 추구하는 것 같다.

 

예수님이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값으로 주시려는 성령의 역사

십자가를 통한 성령의 역사보다는

사람들이 호응할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교회에는 치유가 일어나서 기쁘고 감격스러운 예배가 늘어나는데도

그 교회 근처의 세상에서는

죄로부터의 각성과 진지한 회심이 일어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예배에 성령의 나타남이 있어서, 예배자들이 은사들을 누리고 기뻐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기쁨에 비해서

우리 죄로 인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로부터 돌이킴은 있으나,

이웃을 위해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는 자아로부터의 돌이킴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베들레헴 들녘에서 밤중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주의 사자가 모든 백성에게 미칠 부흥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1~12

 

예수님의 탄생은, 직접 관계가 없는 목자들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들려졌었다.

 

그런데 그 부흥을 직접 품어야 했던 마리아에게는

베들레헴 들녘의 목자들이 하늘의 천사로부터 들었던 소식과는 좀 다른 소식이

어떤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부터 전해졌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2:34~35

 

그 부흥의 주인공을 낳아야 하는 마리아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니라 아픈 소식이었다.

 

그녀의 태중에 자라는 아이는 이스라엘 중에 많은 사람이 패하고 흥함을 일으키며

또한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될 것이라는 나쁜 소식이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마음은 칼이 그녀의 마음을 찌르는 것처럼 될 것이라는 아픈 소식이었다.

 

사실 마리아가 그 부흥의 아기를 잉태했을 때부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요셉으로부터 오해받고 버림받을 뻔 했었다.

온 백성에게 미칠 부흥은, 그녀를 먼저 그렇게 외롭고 아프게 했다. 축복이 아니라..

 

그 아기가 태어날 때도 마리아를 받아줄 여관이 없었고

태중의 아기와 함께 마리아는 출산의 위기를 겪어야 했었다.

이미 여관의 방을 잡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서

결국 짐승들의 안식처인 마구간의 구유에서 출산을 해야 했었다.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겪은 그 거절은,

이미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던 나사렛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아기를 가진 여인을 누가 받아줄 수 있었을까.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장성하여 사역을 함으로 시작될

바리새인의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전에

이미 마리아는 ‘이웃의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사마리아의 우물가 여인처럼

그녀의 마음을 찌르는 수많은 수군거림과 눈흘기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었다.

 

베들레헴에서 양치던 목자들이 들었던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부흥을 품어야만 했던 마리아에게는 너무나 아픈 소식이었다. 

 

오늘날 부흥을 구하는 많은 이들이

마리아가 들었던 아픈 소식은 품으려 하지 않으면서,

목자들이 들었던 큰 기쁨의 좋은 소식만을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전하려는 것은 아닐까? <성목사님 칼럼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