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텐트 메이커의 비전

LNCK 2011. 8. 6. 19:27

◈텐트 메이커의 비전  

(경어체로 녹음해 주세요)

 


◑빛만 발한다면, 버려져도 괜찮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스웨덴 출신 선교사 사모님이 심한 향수병에 걸렸다.

문화 충격도 심했고, 터놓고 말할 대상도 없어서 향수병은 점점 더 커졌다.

어느 날, 그 사모님의 눈에 스웨덴 제 성냥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분은 성냥갑에게 혼잣말로 물었다.

“성냥갑아! 너는 고국을 떠나 여기까지 뭐 하러 왔니?”


그때 성냥갑이 마치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선교사님! 저는 이곳에 불을 켜주러 왔어요.

그 임무를 마치면 버려질 거예요!”


그 내적인 음성을 듣고 사모님은 즉시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곳에 저를 오게 하셨군요.

이제 버려져도 괜찮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게 하소서!”

그 뒤 사모님을 향수병을 극복하고 자바 섬 원주민을 위해 헌신했다고 한다.



▲선교학자들은 21세기를 가리켜 ‘전문인 선교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전문인 선교사’는 때로

*비직업적 선교사 Non-professional missionary 혹은

*이중 직업 선교사 Bi-vocational missionary 혹은

*평신도 선교사 Lay missionary 로 불려지기도 한다.


왜 21세기가 전문인 선교사를 요구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오늘 날 전 세계에서 목사나 선교사의 이름을 가지고 들어가

선교할 수 없는 나라가 세계의 70~8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촌 어느 나라도 당신이 과학자의 이름으로, 의사나 간호사로,

혹은 비즈니스 맨, 농업 전문가, 컴퓨터 전문가, 산업 기술자,

심지어 연예인, 예술인 혹은 체육인의 이름으로 간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심지어 선교전략상 창의적 접근지역이라 불리는

이슬람 지역들까지도 그렇다.


▲본래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평신도 선교동원의 단초를 마련하신 분은

크리스티 윌슨 Christy Wilson 박사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는 평생 아프가니스탄 선교사로 일하시다 후일 조국인 미국으로 돌아가

보스턴의 고든 콘웰 Gorden-Conwell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셨다.

그 분은「현대의 자비량 선교사들」Today's Tentmakers 를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 전문인 선교 개념의 고전이 되고 있다.

 

    Christy Wilson


오늘날 전문인 선교사란 말은, 과거에는 텐트메이커란 표현으로 썼다.

이 말이 성경 사도행전 18장 1~4절에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브리스길라 와 아굴라 부부는 최초의 본격적인 전문인 선교사

혹은 텐트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부를 통해

텐트메이커가 누구이며 그가 갖추어야할 자격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 경제적 자립


전문인 선교사를 다른 말로는, 자비량 선교사 self-supporting missionary

라고 부른다. 그는 선교를 위해 다른 이들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선교비를 충당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선교에 필요한 자기 소모비용을

충당한다 해서 ‘자비량’이라고 한다. (‘자비량’이란 말은 고전 9:7 참조)


바울이 자비량했고, 바울과 동역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그랬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 했다. 행 18:3       He was a tentmaker


바울이 고향인 소아시아 길리기아 다소 (터키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는

특히 염소 털이나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직업이 크게 성행했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 직업에 종사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유대인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키면서도

반드시 거친 세상에서의 생존 수단으로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쳤다.


▲그런데 아굴라 역시 소아시아 동북부 본도地名 출신으로

같은 생업을 가지고 있어서 동종 직업인으로 쉽게 만남이 가능했다.

아굴라는 본도 출신이었지만, 로마에 가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

(로마의 4대 황제, 주후 41-54년까지 통치, 그 아들이 네로) 시절에

로마에 유대인 추방명령이 내리자 그리스의 고린도로 이주했다가

거기서 전도여행중인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되어

함께 복음을 나누면서 전도 팀이 된 것이다.


▲오늘 날 이런 텐트메이커 선교사들이 많이 필요한 이유는

①우선 교회의 선교자원이 한계가 있는데

무한정 재정지원을 계속해야하는 선교사들에게 주력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②이런 텐트메이커들이 선교에 유리한 것은

그들의 선교 동기를 사람들이 순수하게 믿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전도하면 직업이 성직자이기 때문에 전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의 분명한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전도하면

우선 그들의 순수한 동기를 사람들이 더 잘 믿어 주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텐트메이커들에게도 때때로 그들의 사역이나

특별한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재정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 있다.

바울 사도의 경우에도 빌립보 교회나 그 밖의 다른 이들에게

재정 지원을 받은 성경적 기록들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텐트메이커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계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는 지상명령의 남은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



◑2. 직업적 전문성


우리가 텐트 메이커로서 보다 효율적인 선교 수행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직업적인 전문성이 있어야한다.

물론 탁월성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의 직업을

잘 수행하고 자기의 직장 혹은 사업의 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직장에서 사고치고 왕따 당하고,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전도하면, 사람들이 누가 그 메시지를 신뢰해 주겠는가?


▲예수님도 텐트메이커였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공실에서 일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예수님의 목공실에서 만든 소의 멍에나 가구가

밤낮 고장 나서 반환되는 모습이 상상할 수 있겠는가?


바울이나 아굴라가 만든 천막이 자꾸 고장이 나서 반납된다면

그들의 복음 전도가 고린도에서 통했겠는가?

사람들이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일 잘하는 것 까지는 몰라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해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실성에 관한 한 불신자들에게 뒤지지 말아야 한다.

잘 하지 못하면, 성실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성실성에는 도덕적인 성실성도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적어도 이 최소한의 성실성의 증거나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선교 안 하는 것이 더 낫다.

바울이 남긴 자신의 직업과 선교에 대하여 이런 고백을 들어보시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  행 20:33~35 


얼마나 당당한 고백이요 증언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바울을 쓰셨다.

그러므로 텐트메이커의 꿈을 가진 사람마다 성실을 위해 기도하자.

성실하지 못하면 결국 실성한 사람이 된다...



◑3. 선교적 협력 마인드


선교는 혼자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한 개인, 한 교회, 한 교단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광범위한 사역이다.


선교 현장에 크게 장애가 되는 두 가지 의식이 있다면 

-자민족 중심의식 ethno-centerism

-개인적 영웅의식 individual heroism 이다.


혼자 영웅이 되고 혼자 스타가 되려는 것이다.

전도 대상자를 존중하시라. 우리 교회에서는 전도 대상자를 VIP라고 부른다.

그렇다. 그동안 선교사들이 선교하고서도 배척받은 원인이

이런 자민족 우월감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제국주의적 선교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웃이 소중하기 때문에 전도한다면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태도로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함께 일할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영적 지도자들과의 동역이다.

선교지에서의 목사님과 평신도 선교사의 동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동역은 아름다운 간증을 남겼다.


▲당시에 바울은 사도였다.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사람

(사도의 의미-보냄 받은 자)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는 지도자였다.


그들은 보냄 받은 지역에 영적 책임을 갖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는 오늘날도 말하면 평신도 사역자이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얼마나 바울사도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는지?


▲오늘날 평신도 지도자가 되면 목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아는 분들이 많아져 교회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이런 현실의 일차적 책임은 소위 영적 지도자들이

그 모범을 보이지 못한 것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는 한국 교회가 본질적으로 새로워지려면

평신도 지도자의 정체성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 교회에서는 평신도 지도자가 되면

교회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다.


물론 행정 사역도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평신도 지도자의 정체성은 복음사역에서 찾아야한다.
목사님의 동역자가 되어 함께 전도하고 함께 선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에게 아굴라 부부는 어떤 존재였는가?

롬 16:3-4를 읽어 보시라.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 하느니라”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인 딤후 4:19에서 보면

인생의 석양녘까지 바울이 기억하고 싶은 동역자가 바로 이들 부부였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이것이 동역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의 시대가 여전히 요구하는

텐트메이커들의 동역의 모습이다.



◑4. 주님의 인도에 민감함


물론 이 조건은 텐트 메이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영적 지도자,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규범이지만

시시각각 변화가 기다리는 선교현장에 대처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민감성을 가지고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왜냐하면 전도하거나 선교하는 분들이 날마다 물어야 할 질문은

오늘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전도해야 할 것이냐는 것이다.

전도는 본질적으로 주님의 일이다.

주님의 일을, 주님의 지시나 인도 없이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A. W. 토저는 “사역의 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은

기도 (열심히) 안 하는데도 잘되고 있다는 의식이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조지 뮬러는 동역자들에게 “기도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성령보다 앞서지 마십시오.”라고 강조했다.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만난 후 적어도 두 번 이상 주거지를 옮겼다.

전에는 불가피한 개인적 상황 때문에 옮겼으나 이제는 달랐다.

이제는 선교 목적을 위한 것이다.


여러분은 전도를 목적으로, 사역을 목적으로 집을 옮겨 보셨는가?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고린도에서 약 1년 반 동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바울이 에베소로 옮긴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로마로 불렸던 곳이다.

아굴라 부부도 다시 에베소로 간다. 거기서 다시 약 3년간 동역을 한다.


그런데 바울이 최종적으로 기도하던 곳은 로마였다.

당시 로마의 복음화 없이 세계 복음화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를 쓰면서 바울은 “나는 로마로 나아갈 좋은 길이 열리기를

기도하고 있다”(롬1:10)고 고백했다.


그 후 로마에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들에게 핍박이 덜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본래 로마에서 살았던 아굴라 부부가 바울에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로마로 가서 사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6:5에 보면 바울이 “또 저의(브리스가 와 아굴라)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들은 로마에 가자마자 집을 오픈하고 셀 교회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셀 교회를 잘 감당하는 목자들은 다른 문화권

어디에서도 복음전도를 통한 교회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회교권은, 법적으로 교회 허가가 안 나니까

자기 가정을 오픈해서 셀 교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이런 많은 ‘실버 선교사’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텐트메이커 선교사의 해맑은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고생이 안 되세요?” 물었더니,

“특권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무슨 뜻입니까?” 다시 물었더니,

“한국에 있으면 골프치고 은퇴연금 축내는 것 밖에 더 있겠어요?

그런데 여기선 한국에서 사는 생활비 1/3정도만 들면 되고요,

선교하지요, 목사님들과 동역하지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사랑도 받고 존경도 받지요.

이런 특권의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교회에서도 김 장로님 같은 분들이 좋은 모범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무엇을 주저하시는가? 언제까지 사시겠는가?

주님 앞에 서실 날이 가깝지 않으신가?


주님이 “무엇 하다 왔니?” 하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푸른 초장green 거닐다보니 세월 다 갔습니다. - 라고 하시겠는가?

맛있는 식당 순례하다보니 인생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 라고 하시겠는가?

텐트메이커의 비전이 보이지 않으신가?


▲근대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엄 케리는 본래 평범한 구두수선공이었다.

(처음에는 직업을 가진 전문인 선교사였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고 구원받은 후 인도로 간 것이

근대 선교의 문을 여는 계시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인 캐나다 출신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6, 처음 내한할 시는 평신도 독립선교사였으나

나중에 미국 보스턴의 한 침례교회에서 침례교 목사 안수를 받음)도

처음에는 평신도 선교사였다.


그는 본래 캐나다에서 철물상과 도매업에 종사하던 사업가였지만

선교의 열정 하나로 26세의 피 끓는 젊음으로 한국을 찾아와

처음엔 언더우드 선교사 등과 동역으로 선교를 시작했다가

나중에 원산으로 옮겨 독자적인 사역을 시작한다.


그는 효과적인 한국 선교를 위해 농사를 배워 거의 농업 전문가의 수준이

되어 농사를 지으면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이런 분들의 헌신으로 오늘의 교회, 오늘의 크리스천들이 존재한다면

이제 우리의 헌신의 차례이다.

누가 이 텐트메이커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겠는가?

언제 응답하게겠는가?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하겠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시겠는가?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06.06.04. *원제목 : 텐트 메이커 비전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능력을 받고   (0) 2011.10.31
복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  (0) 2011.09.26
일상 속의 묵상 3편  (0) 2011.06.24
양떼를 주님께 인도하는 목자  (0) 2011.06.22
낭패를 당하면 집착을 버리라  (0) 2011.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