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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를 당하면 집착을 버리라

LNCK 2011. 5. 29. 19:07

◈낭패를 당하면 집착을 버리라      창43:14~15     06.07.09.설교스크랩

 

 

지난 주간(2006년 7월)에, 교회적으로 가슴 철렁한 일이 있었습니다.

몽골에 단기선교를 떠났던 교우들이, 현지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주문진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고 그다음 날 아침, 아내가 갑자기,

‘이유는 모르겠는데 금식해야 할 마음이 강하게 든다’는 말을 했습니다.

 

‘오늘 (방어)기도를 꼭 해야 할, 어떤 절박한 일이 생기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날 오후 몽골에 갔던 단기선교팀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우리 교우들이 많이 다친 것 같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날 급히 돌아오는 단기선교팀을 맞으러 공항에 나가서,

자세한 사고 경위를 들어보니, 팀원들이 다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붙들어 주셨음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가, 앞차를 추월하려고 중앙선을 넘어와서

우리 선교팀이 탄 차와 정면충돌하는 사고였습니다.

 

운전자는 병원으로 후송하는 도중에 숨졌고,

1시간 후에 그곳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큰 사고였답니다.

 

선교팀원들이 공항 출국장을 통하여 나올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생명의 위협이 있었던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이럴까 싶었습니다.

 

다행히 출국장으로 나오는 선교팀원들의 부상 정도는

그러한 사고를 당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미했습니다.

 

정 권사님만 골절임이 드러났고, 다른 분들은 큰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최은혜 청년도, CT촬영 결과 별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단기선교팀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교우들과

순회선교단 중보기도팀과

사고 소식을 듣고 특별히 힘을 다하여 기도해 주신 교우들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선교팀원들을 생명싸개로 싸서 안으셨다고 밖에 고백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시키려고 역사하지만

사탄의 악조차도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몽골선교팀의 이번 사고는, 앞으로 우리가 선교하는 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선교팀을 보내거나 선교사를 파송할 때

   우리의 기도가 건성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을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런 사고 소식을 듣고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 선교운동이 일어나는 일은,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당한 ‘가슴 철렁한 사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때때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될 만큼,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

주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을 내가 당하게 하셨는가?’

 

본문에, 야곱이 식량을 구하려고 자기 아들들을 애굽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 갔던 아들들이 돌아왔는데, 기가 막힌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야곱의 아들들을 정탐꾼이라고 모함을 했다는 것과

둘째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다시 식량을 구하러 올 때는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받은 야곱은 절망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은 지 15년이 지났는데,

   이제 또 베냐민까지 애굽에 데려가야 한다니..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여러분, 야곱의 심정이 되어 보시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겠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왜 이런 어려운 일이 내게 계속 생기는가?’

 

그러나 이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야곱처럼 그렇게 마음이 답답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결과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마음 졸일 필요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이,

그냥 애굽으로 내려가면..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을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려고

애굽에 작업을 다 해놓으셨습니다.

 

그 뜻을 알았다면, 야곱이 무슨 고민을 했겠습니까?

“그러면 빨리 가자!”하고 일어나서 가면 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야곱은, 그 미래가 자기 눈에 당연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눈에는, 모든 일이 더 절망으로만 가는 것 같았고,

‘왜 일이 자꾸만 더 어려워지는가?’ 이런 생각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은 일이 야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앞 길을 정확하게 인도하고 계시는데,

   우리 생각에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고

   고난이 계속 된다고, 겹쳐 일어난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당황할 만큼 내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늘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야곱은 이 모든 일이, 아들들이 말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창43:6

 

야곱이 아들들 탓을 하는 것이지요.

사실 형들이 말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요셉이 꼬치꼬치 물은 것이지요.

 

“아버지는 건강하시냐? 너희에게 또다른 동생이 없느냐?...” 자꾸 물으니까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한 것 밖에 없었는데,

야곱은 아직까지도 아들들이 지혜롭게 말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닥쳤다고만 생각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낭패스런 일을 만날 때는 - 집착을 버리시라

 

여러분, 도대체 이와 같은 일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도 야곱 이상으로 지금 어려운 일을 만나서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어떤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야곱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길을 꼭 이번에 발견하실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1. 무엇보다 눈앞에 닥친 어려운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가 일어나는 것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내게 살 길을 보여주셔도

내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혼란스럽기만 하고,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는 것이.. 죽을 길같이 보이고,

죽을 길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꼭 살 길처럼 거꾸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나서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먼저 여러분의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과 염려’는 믿음과 반대이기 때문에,

두려움과 염려가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가 있으신 분은

오늘 하나님 앞에 먼저 그것을 처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기 원합니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냐고요?

두려움이 물러가고, 마음에 믿음이 생길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연단을 계속 받을수록.. 더욱 담대해 지게 됩니다.

그때는 약간만 기도해도.. 이내 믿음을 회복하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2. 말씀이 우리에게, 두려움 가운데서 담대함을 줍니다.

아브라함링컨이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이런 유언을 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성경을 읽어라.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릴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그가 종종 출석하던 뉴욕 에비뉴 장로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역사 기록에 보면 당시 담임자였던 조셉 C. 컬리 목사님이

링컨 대통령이 펴놓은 성경을 옆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여러 번 손으로 짚어서 손자국이 많이 나고

눈물 자국이 있는 성경 한 페이지를 눈여겨 볼 수 있었답니다.

 

시편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아브라함링컨이 어려울 때마다 이 성경 말씀을 수없이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우리도 링컨 대통령처럼,

두려울 때.. 말씀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도가 두려운 것은.. 말씀의 약속(약효)이 희미해졌을 때 입니다.

   오늘 두렵고 염려가 많으십니까? - 말씀을 붙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산란한 마음을 붙들어 주는 것은 - 하나님의 약속(말씀)뿐입니다.

   지금 당장 성경을 읽으시면서, 수첩에,

   내가 붙들고 기도해야 할 말씀의 약속을 적어내려 가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을 주장하며, 기도하십시오.

   위 시37:7, 고전10:13절도 좋은 예입니다.

 

3. 자신의 집착을 버리는 기회로 삼기           ←이 설교문의 주제 논지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죽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조급하고, 당황해 했던 이유는

야곱의 마음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베냐민을 지키겠다는 고집(아들 집착)입니다.

 

야곱은 ‘베냐민만큼은 애굽으로 보내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도 잃었는데, 이제 베냐민마저 잃으면 나는 살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어떻든지 베냐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 고집/집착입니다.

야곱의 이 마지막 집착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장애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고집(집착, 애착)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지금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순간이 올 때 여러분도 꼭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어떤 집착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로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절대 안 돼.”

“하나님, 절대로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지혜를 초월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우리 안에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에, 내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결국 자식 집착을 포기한 야곱

결국 그 순간이 왔습니다. 절대 베냐민만큼은 보낼 수 없다고 했지만,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옵니다. 식량이 다 떨어져 굶어죽게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야곱이 자기의 집착을 꺾습니다.

요즘 말로 ‘내려놓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 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43:14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로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은 절대로 안 돼! 이것만큼은 절대 안 돼!” 하지만,

진짜 믿음의 성도는, 그런 집착이 -비록 자기 자식이라도- 없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결단합니다.

 

사실 야곱에게는 해결 받아야 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편애에서 비롯된 아들들 간의 불화였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자기가 사랑하던 라헬이 낳은 아들이라고 유난히 편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 아들들이 더 어려워진 것이지요.

 

요셉도 그랬고 베냐민도 그런 것입니다.

사실은 야곱의 편애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모든 아들을 똑같이 사랑했으면,

요셉이나 베냐민에게 이런 시련이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형들은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히고, 형제들 사이에 말할 수 없는 불화가 일어나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하는 이런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닙니까?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 이후에는 베냐민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베냐민! 우리 베냐민!...” 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둘째아들 시므온이 지금 애굽에 인질로 잡혀있는데도,

야곱은 베냐민 걱정만 했습니다.

 

그러니 형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런 가정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가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마지막으로 다루셨습니다.

“너 굶어 죽을래? 베냐민을 내놓을래?”

 

결국 야곱은 꼼짝 못하고 베냐민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자 야곱의 눈이 뜨였습니다.

다른 자식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4절 말씀 중간에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 전에는 시므온은 생각도 안했는데, 시므온이 이제야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 베냐민은 많은 형제 중에 하나가 되고,

하나님이 주신 자식이 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과 그 아들도” 아니고

“그 아들과 베냐민”이라고 순서가 달라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뿐만 아니라, 아들들도 바뀝니다.

모두 다 자기 자녀들을 '내려놓습니다.'

 

유다는 식량은 다 떨어졌는데 베냐민을 내어 놓지 못하는

아버지 야곱을 보며 안타까워서 말합니다.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창43:8~10

 

여기서 야곱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움직였습니다. 

42장에 보면 장남 르우벤도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나의 두 아들을 죽이소서” 42:37

 

요셉의 형들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연단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까닭 없이 연단을 주시지 않아요. 야곱도 바뀌고 형들도 바뀝니다.

 

형들이 다시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은 그 형제들에게 잔칫상을 차려주면서

동생 베냐민에게 다른 형들보다 다섯 배나 더 주었습니다.

 

동생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형들의 반응을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베냐민만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받을 때 형들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데 형들의 반응이 성경을 읽어보면 “즐거워했다”고 그랬습니다.

베냐민에 대한 질투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정말 형들이 달라진 것입니다.

 

창43:34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5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여러분,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갈 때 형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마 옛날 같았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 동생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도하면서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발 식량도 가져오게 하시고 베냐민도 무사히 데려올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야곱의 고집도 꺾어지고, 요셉의 형들도 다 바뀌게 됩니다.

그러자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 열리고, 형들 사이에 화해가 일어나고,

막혔던 문제들이 다 벗겨지고 하나님의 역사의 비밀이 다 열리지 않았습니까?

연단을 주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의 이 고백은 자포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진짜 믿음으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주권자이십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베냐민 그대로 포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데려가시는 것이고, 다시 돌려주시면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정말 완전히 맡겼습니다.

 

그때부터, 꽉 막혔던 문제가 슬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하나님, 이것만은 안 됩니다!”하는 것까지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다고 지켜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만 받기 힘들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맡기면 됩니다.

목회까지도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네가 마음에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만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마음에 아직까지도 포기 못 하고 집착하고 있는

'너의 베냐민'이 과연 무엇이냐/누구냐?’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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