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양떼를 주님께 인도하는 목자

LNCK 2011. 6. 22. 14:02

www.youtube.com/watch?v=414s4JoZqF4

◈양떼를 주님께 인도하는 목자         요3:26~30, 고후11:2      06.01.01.설교스크랩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11:2

 

 

◑목회자가 잘 나면 안 됩니다.

 

주님은, 아무것도 아니고 너무나 부족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을 통해서, 교회에 부흥을 가져와 주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많은 목회자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은 오직 <주님 한 분만>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어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자기 인격이 훌륭하면 좋지만, 꼭 훌륭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굉장한 지혜의 사람이 되면 좋지만, 지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요인들입니다.

 

다만 결정적 요인은.. 그가 주님 한 분만을 간절히 구하느냐..

그래서 주님이 그에게 강력히 나타나시고, 임재 하시느냐.. 이것이 결정적 요인입니다.

 

‘계시’를 잘 받는 사람이거나, ‘능력’의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계시(예언)의 말씀을 잘 받거나, 굉장한 능력을 행한다 하더라도,

주님 한 분을 간절히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은사(예언, 능력)를 의지하다가는... 금방 거덜 나고 맙니다. 밑천이 바닥 나 버립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주님’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성도들의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이 모든 것이 되시는데,

우리는 아직도

목회는.. 그래도 목회자가 유능하고, 믿음이 좋고.. 목회자가 하는 줄 압니다.

심지어는 목회자가 외모도 반듯해야 목회가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 아무 결정적 요인이 안 되는 존재를 두고서

자고하거나, 반대로 자학할 필요 .. 전혀 없습니다. 넌센스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 사실을 잊지 말아라’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네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의 임재를 구하고,

네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를 의지하고,

네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를 구하고,

네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예배 중에 나의 임재를 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관심을 갖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찾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가까이 가도록 만들면,

내가 그들의 모든 것이 될 것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되었다. 나는 그것 때문에 너를 쓴다.

내가.. 영혼들이,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전부이기 때문에

네가 뭐가 될 필요는 없다.

 

단지 너는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라.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내게 가까이 나오고

내 임재 속으로 들어오고, 나를 원하고 의지해라.

 

너는.. 말씀의 계시나, 부흥보다,

나를 소유하고 사랑하기를 더 원해야 한다.

 

너는 어떤 은사나 신비한 체험보다

나의 동행을 더 원해야 한다.

앞으로도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그 쪽으로 깊이 들어가라.

 

너는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면 내가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전부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나로 인해 참된 만족을 얻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부흥이 일어나고, 그런 식으로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고,

그것으로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고, 그것으로 열방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늘 새벽에 제게 감동으로 주신 음성입니다. ↑

그리고 오늘 오전에, 주님이 성령의 감동으로 또 다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

 

 

◑양떼를 주님께 인도하는 목회자가 되십시다.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으로 온 세례 요한도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요3:26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심령과 능력으로 자기가 계속 제자들과 일꾼들을 키워내겠다고 고집하지 않고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요3:30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지도자들이

쥐꼬리 만한 자기 지식과, 쥐꼬리 만한 자기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자꾸 자기가 품고 있으려 합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세례 요한도, 사람들을 예수께로 보냈습니다.

‘나는 못하겠으니까 주님이 하십시오.’

‘나는 쇠하여야 하고, 주님이 흥해야 하겠습니다.’ 하면서요.

 

오늘날 주님이 찾으시는 목자는,

양떼를 주님께로 인도하고, 보내는 목자입니다.

 

세례 요한 때만 주님이 살아계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도 그들 중에 계십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교회 안에 와 계십니다.

 

목회자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보내는 자가 되기를 애써야 합니다.

자기가 받은 능력과 영감과 은사로

자기 스스로 자기 부대를 키우겠다고 그들을 붙잡고 있지 말고

그들을 부지런히 주님께로 보내야 합니다.

 

(자기 교회 설교만 듣게 하는 목회자는, 아마 90% 그게 잘못일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면 알수록, 그에게 주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혹시 엘리야의 심령이 내게 임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 엘리야의 능력이 내게 오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설령 오늘날 내가 엘리야처럼 된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만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강단에서 자기 경건과 능력을 자랑해서,

성도를 자기에게로 많이 끌어 모으려 한다면..

문제는.. 하나님이 그를 떠나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모여들더라도.. 거기는 주님이 나타내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받은 세례 요한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보냈던 것처럼

끊임없이 성도들을 예수님께로만 인도해야 합니다.

 

자신은 부인되고, 자신은 내려놓아져야 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께만 초점을 맞추게 하십시오.

주님만 사모하게 하십시오.

주님께만 나아오게 하십시오.

주님만 구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베드로를 길렀던 것처럼,

주님이 사도 요한을 키웠던 것처럼,

주님이 야고보를 제자 양육하셨던 것처럼

성도들이 성장 될 것입니다. 사도적인 인물로 키워질 것입니다.

 

사도말고도, 어떤 사람은 선지자적 인물로,

어떤 사람은 복음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주님이 기르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을 통해서.. 열방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핵심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엘리야의 심령과, 엘리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혹시 그것이 있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사람들을 주님께로 보내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들을 만지시고, 주께서 그들을 키워 주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께 인도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꼭 “나 pastor를 통해서” 라고 고집하지 마십시오. 그거 엄청난 교만입니다.

그거 자기 성을 쌓는 것입니다. 그 성은 곧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짜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갑시다.

 

구원 사역 이전에는, 흑암의 밤이 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의 구원사역을 인도할 때.. 그 전에 흑암이 있었습니다. (9번째 재앙)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원 사역을 이루실 때.. 정오부터 3시까지 흑암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로 향해 나아가는 배 안에.. 유라굴로 폭풍 속에 흑암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고후1:8~9

 

그렇게 종종 <영혼의 깊은 캄캄한 밤>을 보냈습니다.

 

위에서 ‘목회자는 잘 나면 안 되고, 예수님께로 양떼를 보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 목자는.. 흑암의 밤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혼의 깊은 캄캄한 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부인하게 되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고후1:8~9

 

맨 정신으로는.. 안 됩니다.

맨 정신으로는.. (반대로) 자기를 돋보이고, 높이려고 합니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텐트 메이커의 비전   (0) 2011.08.06
일상 속의 묵상 3편  (0) 2011.06.24
낭패를 당하면 집착을 버리라  (0) 2011.05.29
귀의 할례를 받자  (0) 2011.05.19
영성가들의 아침 묵상  (0) 2011.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