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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LNCK 2011. 8. 10. 12:48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8          11.05.29.설교일부녹취,정리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8


성경에, 3가지 율법이 나옵니다.


▲1. <마음에 새긴 율법>입니다. 로마서에 나옵니다.


롬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 율법은, 인간에게 가장 최초로 주어진 율법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없는 이방인도, 마음에 새긴 율법(선한 양심)을 따라 행하고자 합니다.


이방인들도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등

마음에 새긴 율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사랑, 거룩, 진실 등)을 닮은,   (살인, 간음, 거짓과 반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율법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받기 전에,

태어난 아기의 마음속에.. 이미 ‘마음에 새긴 율법’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성으로 율법을 행합니다. 롬2:14,    물론 ‘타락한 본성’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율법 없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핑계할 수 없으며,

그들은 ‘율법이 없어도, 마음에 새긴 율법에 따라 심판 받는다’고 했습니다. 롬2:15~16


▲2. <모세의 율법>입니다.

이것은 출애굽할 때 시내산에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롬3:2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2:10


이런 구절에 의거, 오늘날 사람들은, 율법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이며, 율법 안에도 복음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십계명도 있고,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유월절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복음적 요소’를 예표하고 있으며, ‘복음의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그것들은 모두 예수님과 십자가를 예표(미리 보여줌)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이다’ 만 강조합니다. 롬3:20

그러면서 ‘신자는 절대 율법대로 못 산다’ 라고 강조하는데요...

     물론 그 말은 ‘율법을 완벽하게 100% 지키며 살 수 없다’는 뜻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극단으로 빠지면

‘율법을 폐기처분 해 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폐기론을 antinomianism 이라 그럽니다. nomos가 율법


여러분, 가장 쉽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은 -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율법으로 죄만 깨달으면..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 - 이런 식으로 나가면 오류에 빠집니다.


율법을 보통 도덕법, 제사법, 사회법civil law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제사법, 사회법은 신약에 폐기되었다 하더라도(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도덕법은 계속 유효합니다.


갈라디아서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구절이 몇 차례 나오는데,

문맥을 읽어보면, 그것은 ‘절기 준수, 할례’등을 가리키지,

‘도덕법’을 가리키진 않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복음)을 읽어보면, ‘율법(도덕법)을,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네 마음으로 지키라’고 하십니다.


구약에 여러 차례, 그리고 고전10:8 등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 숭배하고, 이방족속과 간음하다가..

율법대로 심판받고, 멸망당한 사건들이 나오는데..

그 율법을 주신 목적이 ‘그냥 죄만 깨달으라’고 주신 것인가요?


- '아닙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망한다, 죽는다, 율법을 지키라.' 를 말씀하십니다.

만약 율법이 죄만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이라면.. 광야에서 백성들은 멸망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을 선포하면서,

내가 생명과 사망을 너희 앞에 두었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생명과 복이 옵니다. 안 지키면 사망과 저주가 옵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30:19

 

어떻게 율법을 지킬 것인가는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신약의 율법입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고전9:21


이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14:21등


'믿음'에는 반드시 ‘사랑의 역사’가 동반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믿음을.. 그냥 ‘교리적 동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큰일납니다.

믿음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참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론, 교리'가 아니라, '관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그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갖고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A. 율법을 지켜서 온전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 제기/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 고 했는데,   약2:10  

사람이 어떻게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는 것인가요? 그건 불가능 하잖아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했는데,

물론 사람들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었고, 그래서 속죄제, 속건제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성실히 지키며 살다가, 다 못 지키니까, 제사를 드리면서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계명(율법)을 지켜야 생명과 복을 얻는데,

살다보면 그게 완벽하게 안 되니까,

예수 피를 의지하며 회개하면서..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율법은 지킬 수 없으니까, 평소에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예수피를 의지해서 회개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 피만 의지해서 속죄 받으려 하는 것은.. 잘못 입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자세히 들어보세요.)

①일례로 세례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율법에 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눅1:6


이 두 사람이 100% 완벽하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흠이 없다'는 말은.. 성숙하게, 온전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완전하라’는 말씀의 뜻은, ‘성숙하게, 온전하게 살아라’는 뜻입니다.

모든 계명에 100% 완벽하게 살아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신구약에 흐르는 성경의 일치하는 맥은,

사람이 완벽하게 100%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계명을 지키며, 성숙되게, 온전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예 완전하게 살 수 없으니,

예수 피 의지해서 믿고 의로움 얻어서..

그 다음부터 ‘계명, 거룩한 삶’ 이런 것에 전혀 관심 없이 사는 것

-이렇게 믿다가는, 구원 영생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천국, 구원, 영생 얻은 사람(진정 거듭난 사람)은,

현실적으로 그런 ‘이론적, 교리적 믿음’이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온전한 삶을 추구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면이 변화되었거든요.

또 하나님이 환란 등으로, 성도를 성화의 삶으로 몰고 가십니다. 


②성경에, 노아도,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평가 받았습니다. 창6:9


③욥이 동방에 의인으로, 온전하게 살았습니다. 욥1:1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④신약에도,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여기서 ‘온전하라’는 헬라어로 ‘텔레이오스’인데,

같은 단어가 쓰인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8


저(에바브라)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골4:12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빌3:15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고전14:20


위의 용례에서 볼 때, 마5:48의 ‘완전함/온전함’이란

‘흠 없는 완전무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온전한, 장성하다'는 의미의 <완전한, 완벽한>을 의미합니다.


즉, 사람이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달 가능한 성숙함/온전함/장성함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롬8:4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13:10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중심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 받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성경에 나오는 수 백 가지 계명을 일일이 다 지키는 것은, 측정 불가능하지만,


외적 행위가 아니라,

그 내적 근본 동기가 사랑이면..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완전을 추구하는 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4


이런 구절들이 성경에 종종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구절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1)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 롬3:20

2)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약2:10


이런 단 몇 가지 구절에만 의거해서,

‘율법 무용론’적인 신앙을 가지는 것은.. 극단적 기독교입니다.

문제는, 이런 극단적 신앙이, 한국 기독교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해외에까지 전파할 수도 있습니다.

 

위 두 구절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는 물론 있습니다.

-성경이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즉 ‘행위구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온전함’을 요구하는 성경의 전체적 명령을,

모조리 ‘행위구원’의 범주에 포함시켜서, 무시하는 것은,

너무 신학적 눈으로 성경을 재단하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신학을 봐야 되는데요) 

                                                                         ※관련글 주를 향해 소망을 가진 자 Paul Washer



◑B. 위 내용과 반대적 측면을 강조한 설교


A단락이, 복음으로 내면이 변화된 사람이 추구하는 측면의 거룩함이라면,

B단락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측면의 거룩함입니다.


위의 내용(A단락)과 아래 내용(B단락)은.. 상호 모순처럼 보이지만,

상호 보완의 측면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마음의 청결함 - 복음으로 해석하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란?

 

   너희는 세상의 소금 


   이런 (칼빈주의적 측면의) 내용도 당연히 맞습니다. 성경적입니다. 



◑위 A, B의 두 측면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열심, 성화의 노력을 강조한 사람이 존 웨슬리입니다.  (A단락)

반대로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믿음으로 얻게 되는 성화를 강조한 사람은 존 칼빈입니다.  (B단락)


두 분의 주장은, 상호 모순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이 약하게 강조했던 부분을, 보완적으로 강력하게 강조했습니다.


존 웨슬리가 쓴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책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칼빈보다 약 2세기 후대의 사람입니다.

그는 칼빈주의가 너무 한쪽 극단으로 치우쳐서,

‘인간의 책임과 열심’을 너무 도외시한다고 보고, ‘성화,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웨슬리에 뒤이어 찰스 피니도,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2차영적대각성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둘 다 강조되어야 하고요, 상호보완적이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죄성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완전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성은 죽을 때까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성령충만한 삶을 추구하면서

생각/말/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추구(지향)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는, 한국에 좀 더 성숙한/거룩한/온전한 크리스천들이 많이 나올 줄 믿습니다.

미국에 가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 거룩하고 성숙한 크리스천들을 보면,

저 수준이 자기 세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 한국 크리스천도,

지금 우리 부모 세대가 좀 더 성숙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

거기서 성장한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더 성숙하고 거룩한 세대가 될 줄... 기대합니다.


다음 세대가 100% 다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될 세대가 반드시, 일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부모 세대의 사명입니다.

- ‘우리 세대의 거룩함, 성숙함’을 자녀 세대에 전달해 주는 것

이것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유산은 없습니다.


한국은 기독교 역사가 서구에 비해 짧습니다.

그런 유산을 전달해 줄만한 여유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집 짓고, 뿌리내리는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세대는, 이제 다음 세대에, 그런 유산을 전해줄 사명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웨슬리가 나오고, 찰스 피니가 나와서

<그리스도인의 온전>이란 진리가 회복되어 질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믿음>만 강조해 왔고, 성경의 또 다른 중요한 진리인 <성숙>을 놓쳐 왔습니다.


※상호보완적 측면의 설교문   신앙생활의 목표          예수님이 주신 4가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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