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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워셔 목사 개인 간증 Paul Washer

LNCK 2011. 9. 8. 18:01

◈폴 워셔 목사 개인 간증            출처 보기



※판에 박힌 듯한, 정형화된 사역자만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러면 좋은 것 같지만, 그건 성령의 역사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설교를 들어봐도 모두가 대동소이하고..

사역을 하는 모습도 모두가 대동소이하고..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전체 ‘모자이크’에,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사람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면..

그 특징 중 하나가 <독창성 creativity>이 생깁니다.


그의 설교는 결코 남들과 대동소이 할 수 없으며,

그의 사역은 결코 남들과 비슷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점이 많겠지만, 그는 독창적/창의적/creative 하다는 뜻입니다.


폴 워셔 목사는 매우 독창적/창의적/creative 합니다.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올수록,

하나님 나라 전체 그림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슷한 사역자 한 분 더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더 도움 됩니다.) /펀 글



▲가문의 신앙 유산

저 폴 워셔는 1961년에 아마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불신자이셨지만, 어머니는 믿음이 강하셨습니다.


(먼저 외가를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외할머니는 원래 크로아티아 사람이었는데,

아마 구소련 공산주의 아래서 믿음의 핍박을 실제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외가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 듯,


(이제 친가 쪽 배경을 설명 드립니다.)

제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브라질로 파송된 첫 선교사들 중 한분이셨습니다.

그 분의 20~30대를 대부분 브라질 밀림 속에서 사역하며 보내셨습니다.

그 당시엔, 정말 정글 외엔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간의 기독교 유산 가운데서 자라났다고 하겠습니다.

-친할아버지의 브라질 선교사 유산과

-외할머니의 핍박 중 승리,

-어머니의 강한 믿음의 유산을

제가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대 시절

제가 9살 때, 처음으로 입술로 신앙고백을 했고,

심지어 제가 울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당시 제 삶에, 진정한 변화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서, 저는 10대 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욱 불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그런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그 당시 제가 다닌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가 예수님을 제 마음에 영접하는 기도를 했기 때문에,

전 제가 구원받았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에, 제 죄악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얼마 후에

전 자신이, 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업에 있어서는 잘 하고 있었지만,

도덕적으로는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제가 비참한 사람 a wretch 임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고, self-centered

교만으로 가득했으며,

거짓말쟁이였고,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렇게 제가 비참한 사람 a wretch 임을 불현듯 깨닫게 되자,

그 절망감이 저를 매우 심하게 짓눌렀습니다.


▲제가 회심한 계기

그러던 어느 날 밤 1시쯤,

저는 제가 얼마나 비참한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제 방 문을 두드렸는데,

같은 기숙사 건너편 쪽에 사는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그는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왜 떨고 있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마 저를 한 방 먹이고 싶으시겠죠?”

“아마 네 말이 맞을 거다. 너는 지금 밤 1시에 찾아온 불청객이니까”


“지난 2주간 동안 하나님께서, 제게,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라고 계속 지시하셨지만,

저는 당신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신에게 말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에 관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가 괴짜이거나

아니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비참하고 가련하며, you are wretched, and you are miserable

당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내어드릴 때까지 you'll continue to be miserable

계속해서 비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until you'll surrender your life to Jesus Christ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진정 제 삶 가운데서

일하시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벽 1시에, 알지도 못하는 학생이 제 방으로 찾아와서,

정말 웃기는 말(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을 던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정말 제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정말 항복 surrender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초자연적 역사로 가능합니다.


사실 저는 매우 부도덕한 immoral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저는, 제 신앙적 반항에 대해서

뚜렷하게 고상한 이유도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얼간이 jerk 이었습니다.

아무 철학도 없이, 아무 반항할 명분도 없이,

그저 하나님께 반항하고, 신앙을 반대하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세상적으로 악한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중심적이고, 남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제 삶 가운데 일하시기 시작하셨고,

결국 저는 회심 했습니다. converted, 명목상 신자에서 진실한 신자로 변화


▲신학교를 진학해서, 졸업하고, 페루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그로부터 즉시 저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무거운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길거리에서, 혹은 비오는 길거리모퉁이에서

제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저 그 당시에 제가 ‘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결국 대학을 마치고, 신학교에 진학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조지 뮬러와 허드슨 테일러에게 큰 감동을 받아서

선교지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많은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에, 별로 관심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 선교단체에서 파송을 받아서 가지 않았고,

그저 제가 성도로 다니던, 일리노이주 Cornfield에 있는 작은 침례교회의 파송으로

저는 페루에 가게 되었습니다.


▲페루 선교사 시절, 저는 성경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페루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적인 역사들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페루는 정치적으로 상황이 매우 불안했습니다.

과격 무장반군들이 산악지대를 장악하고, 정부에 대항해 테러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내전이 계속 진행 중이었으며, 폭탄들이 폭발 했고,

길가에는 죽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제 삶을 바꾸기 transform 시작하셨습니다.


이때 저는 주로,

전직 가톨릭 사제이었으나   남미는 90%가 가톨릭이잖아요.

후에 복음주의 침례교 목사가 된 어느 분에게 많은 도전을 받고,

그 분과 협력사역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성경을 계속 읽고 있었는데요...


그 페루 목사는, 제게 신학교 강의를 부탁했는데,

그 페루 현지 신학교의 방침은,

첫 학기는 학생들이 성경 66권 전체를 그 학기 내에 읽어야 하며,

성경 각 장을 읽고, 거기에 대한 자기 느낌을 써 내는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서,

또한 학생들이 성경읽기 숙제를 하는 것과 보조를 맞추어서

저도 하루에 10시간 가량씩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거기서 제가 (제 신학적 관점이) 점점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과거에 제가 알고 있었던 복음이.. 불완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선포해왔던 복음이,

진정 성경적인 복음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한 바,

찬송 받으실 우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취하여

그것을 사영리나, 또는 5가지 복음의 원리들로 축소시킨 것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한 일이라서 그렇게 했겠습니다만,

    오직 복음을 “언제나” 4영리로만 간단히 설명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 4개의 질문에 모두 ‘Yes’라고 대답하고,

영접기도만 따라 하기만 하면,

‘당신은 이제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선언하는 방식을

제가 곁에서 지켜보면서,

제 속으로 ‘저게 아닌데..’ 하는 영적인 불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보더라도,

그렇게 길에서 사영리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그 후에 결코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저 전도자 체면을 봐서, 동의해 준 경우가 많음.


교회에 나오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경건함 가운데 성장해야 하는데,

4영리로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

그런 영적인 성장이 나타나는 경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의 복음 이해 방식,

기존의 복음 전도 방식, 기존의 중생 이해 방식..

이런 것들에 대해, 강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스스로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한 후,

저는 몇 개월간의 안식월을 갖기 위해 미국에 돌아왔는데요...

이때 제가 내린 결론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때 미국의 안식월 기간에,

제가 조지 휫필드와 찰스 스펄전에 대해 연구하면서,

<진정한 복음>이 이 시대에 회복되어져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이 시기에,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서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등 18~19세기 그 당시에

‘복음’을 열심히 전파했던 사람을 집중 탐구했습니다.


제가 그들이 전한 ‘복음 설교’들을 연구해 보니,

우리 동시대에 전해지고 있는 ‘복음’과 매우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복음은, 변질된 것이며,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앞서, 먼저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혹자는, 우리 시대는 ‘복음을 전할수록, 복음과 멀어진다’고 합니다.

     비복음을 전하는 것은, 복음전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극단적인 주장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의미는 있습니다.

 

그 즈음에, 저는

갈보리 십자가를 깊이 이해하려는.. 꺼지지 않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제 연구의 대부분의 주제는,

십자가 신앙, 십자가 복음, 십자가 신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복음의 주제가.. 십자가가 되어야 하며,

그 십자가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깊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 복음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스펄전 식, 휫필드 식 복음’을 전하던 중에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새로운 복음이 아니며, 새로운 계시도 아닙니다.

이것은 옛 전통적이며, 역사적으로 전해진 복음을

다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심지어 신실한 크리스천들,

그리스도와 20~30년간 동행해 온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제게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이

어떻게 진정 나의 죄값을 치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절실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계속 그것을 늘 믿어왔지만,

오늘처럼 철저하게 이해하진 못했었습니다.”


(과거에는 지식적으로 그 복음을 알았다가, 이제는 성령의 감동으로,

초자연적인 역사로, 십자가 복음의 중대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뜻)

 

▲제가 보니까, 이 나라에, 그리고 온 세상에, 복음이 많이 변질되어 있음을 봅니다.

지금 온 세상은, 복음에 대해 무지하다고 여겨집니다.

(사영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 듯)


지금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복음을 축소 reduced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이

누군가의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소책자에 다 담겨져버렸고,

보통 신자들 역시, 그 이상의 복음을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제 간증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시간입니다만,

     제 개인적 생애를 자세히 소개하는 것보다,

     사실은 이것(복음 회복의 부담감)을 더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주로 몸 담고 있는 곳은 Heartcry 라는 선교단체입니다.

제가 페루에 있을 때,

우리는 페루 현지인 선교사들을 양육하고,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역이 지금은 엄청나게 성장하여,

많은 페루 출신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페루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4개 대륙에, 15개 나라에

페루의 Heartcry 출신의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역을 크게 축복하셨고,

그 곳이, 지금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 곳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설교하지 않을 때는,

해외에서 Heartcry 선교사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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