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후에 부흥 온다 합3:1~19 11.08.30. 인터넷설교 스크랩
◑진노와 함께.. 부흥 온다
▲‘부흥이라고요? 그거 무서운 겁니다.
부흥?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소원하시면.. 정말 큰일 날 수 있습니다.
거기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합3:2에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교회 표어로 많이 등장하는 그런 구절입니다.
꼭 한국교회 뿐이겠습니까? 이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교회는 부흥을 원합니다.
또한 이 세속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사업이 부흥되기 원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잘되고 부흥 (復興: 다시 부, 일어날 흥) 하기 원합니다.
본문의 ‘부흥’은 히브리어로 ‘하야’ 인데
그 말의 뜻은 ‘죽은 것과 같은 상태에 있던 것을 활발하게 살려 낸다’ 입니다.
영어는 ‘Revival’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다시 살려내는 겁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다시 살려서 활성화 시킨다는 거죠.
▲진노 중에 부흥 온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부흥, 이렇게 우리가 꿈에도 소원하는 부흥을 둘러싸고 있는
하박국 3장의 어휘들을 보면 너무 으스스 합니다. 너무 무시무시합니다.
2절에서도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한 뒤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는 말이 나옵니다.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하면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가 이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진노를 통해 부흥이 온다> 이런 뜻이 아닙니까.
우리가 평소에 보통 생각하는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 축복, 무슨 풍성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박국이 예언하는 ‘부흥’은
‘진노를 당하는 중에 온다’는 것입니다.
‘진노를 당하다가, 그래서 박살이 나다가, 긍휼을 받아서 부흥이 온다’
-문맥상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강물처럼 사방천지를 덮일 것이고
마치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없는 분인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이
먼저 주어진다는 겁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스스로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당신의 성품이 자비하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
라고 느껴질 만큼 진노가.. 강물처럼.. 먼저 뒤덮이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가 이어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공의와 함께.. 부흥 온다.
▲부흥이 오기 전에.. 내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립니다.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라고 말한 뒤에, 보세요!
그 ‘부흥’이란 화두로 시작되고 있는 합3장의 마지막은 ‘덜덜 떨림’입니다.
‘내 창자가 흔들렸고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고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에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이 내 처소에서 떨도다’ 합3:16
내 처소에서, 내 몸이 왜 떱니까?
안전한 집안 (내 집, 내 처소) 에 들어가서 왜 떨고 있습니까?
내가 집이 있다는 것, 내가 동네가 있다는 것, 내가 나라가 있다는 것,
내가 안정감을 갖고 처할 수 있는 모든 울타리가 다 걷어질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다 부흥의 전후에, 부흥과 수반되어 나타날 내용이라는 겁니다.
▲공의의 하나님... 을 알고서, 하박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합3:2
주께 대한 소문이라는 것이 ‘주님의 소문을 듣고, 주님의 명성을 듣고’ 라는 말인데,
왜 새삼스럽게 깜짝 놀랍니까?
선민의 나라 안에 불의와 악이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악인들이 머리털하나 다치지 아니하고 번성해 나갑니다.
그야말로 부흥합니다.
악인들의 부흥하는 현실 앞에서 몸부림치며
하박국은 하나님께 그 창자가 끊어지는 비통함으로 절규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합1~2장 상황
이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선민의 나라를 심판으로 멸망시킬 것이고
온 나라를 구석구석 초토화 시킬 것이다’
여기까지는 무섭지만.. 받아들이겠는데,
이방나라 바벨론을 통해서 망하게 하겠다고 하는데 깜짝 놀랍니다.
하박국은 묻습니다.
‘아니 왜 더 악한 자로 하여금, 덜 악한 자를 멸망시키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을 때,
그 바벨론의 죄악상에 대해서도 들추어내시고, 바벨론도 망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선민 이스라엘도.. 이방나라 바벨론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 앞에서 이제 완전히 멸절되게 생겼습니다.
그러한 공의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박국이 자기 마음속에 들었다는 얘기에요.
자기 마음이 듣고 깜짝 놀랍니다.
이제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립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합3:2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해 주소서 - 공의로 심판하여 주소서! 라는 뜻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인걸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지금 이 세상의 현실을 보면
악한 자들이 불의한 자들이 횡행하고 그들의 일이 잘되고 번성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의 현실을 바라보면 마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죽은 것과 같아 보이는 이 땅의 현실에 묻혀버린,
땅의 악의 성행함에 묻혀버리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살아나서 활발하게 움직여 주시옵소서’...
가 부흥하게 해 달라는 합3:2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살아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멸절시키는 그 계획이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수년 내에 이루어지고 수년 내에 드러나게 해 달라는 얘기에요,
알려지게 해 달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부흥의 기도의, 부흥에 대한 소원의 내용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부흥을, 낭만적으로만 생각(오해)합니다.
우리가 부흥이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사랑합니다.
사랑이 가득하신 성품의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부흥은 어디서부터 시작 됩니까?
‘진노 중에 긍휼을 잊지 말아주세요’ 라고 간구할 만큼,
‘하나님이 과연 사랑이실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이신 것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니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의 진노가 나의 삶을 가득 차게 되는
그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부흥은 시작합니다.
여러분, 신약도 같은 맥락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서..’ 롬1:17
복음의 시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무슨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가 아니라,
‘당신은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회개하십시오!’
이것이 신약에 나타난 복음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회개하라’로 시작하는 복음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부흥, 복음.. 다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공의, 심판’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것(부흥, 복음)은 사실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축복)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부흥, 복음이..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부흥을 말할 때는,
‘이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요청하겠습니다,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이전에
먼저 공의로운 하나님을 내가 마음으로 사랑하고 수용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부흥시켜 주시옵소서, 드러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말을 연장시키면, ‘내가 망하게 해 주시옵소서, 심판받게 해 주소서’
결과적으로 이런 말로 귀결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순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며, 간절히 주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심령에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결과
▲먹고 사는 문제.. 별로 걱정 안 합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어요, 완전히 망했다는 얘깁니다. 합3:17
그런데 웬 말입니까?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합3:18
-이게 부흥의 결과가 되는 겁니다.
마치 ‘귀로 듣던 하나님을 내 눈으로 뵙는다’는 욥의 말처럼,
나의 죄악 때문에 모든 것이 망한 뒤에
나의 죄악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없어지고 다 사라진 뒤에,
하나님을 눈으로 뵙게 되고,
그 하나님이 기쁨이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소, 양, 송아지.. 이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부흥의 결과요, 완성 단계라는 겁니다.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는
무화과나무의 무성함과 포도나무의 열매와
감람나무의 소출과 밭에 먹을 것과 우리에 양과 외양간에 소,
이게 다 나의 죄악(탐욕)의 근거들이었습니다.
그 죄악의 이유가 되는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진 뒤에야
하나님 한분 딱 내 앞에 섰을 때, 그 하나님 맛을 느끼게 되면서,
‘아무 것도 없는데도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할 수도 있고 즐거워 할 수도 있구나,
내가 높은 산에 거니는 사슴처럼 합3:19
이 세상에서 아무도 안 알아주고 아무도 모르고 다 망했어도
하나님 한 분으로 이 기쁨과 이 즐거움으로 높은 산을 거니는
사슴과 같은 삶을 살게 되는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 거,
이게 바로 부흥이라는 겁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부흥! 반드시 해야 됩니다.
그러나 먼저 무서운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자비의 하나님, 도대체 자비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만큼,
뼈가 썩는 공포의 멸망이 내 몫이라는 사실을 실감해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믿고,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공의를 수용해서, 내 멸망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내 멸망이 이렇게 실감 나서
벌벌 떨며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갈 때
거기에 사유하심에 해방에 하나님과
주님과 만남의 영원한 축복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부흥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공의가 빠진,
회개가 빠진 부흥은.. 그런 부흥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흥 - 사실 무서운, 두려운 것입니다.
무조건 좋다고 환영할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의 공의’를 수용하고, 자신이 깨어지기 원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과 자기 심령의 부흥(되살아남, 또는 거듭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하는 것이
실제 삶의 현장에서 잊혀 져 가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부활하게 하시고,
내 심령가운데서 그 하나님 앞에서 나의 멸망이 수용되게 해 주셔서
하박국과 똑같이
우리의 뼈가 썩는 공포스러운 멸망을 수용함에 마땅한 자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주의 십자가의 역사 앞에서 사유하심의 축복을 누리는 자들,
자비와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들이 되게 하셔서,
부흥의 올바른 경험자들 다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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