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6장과 행2장 사이 마16:16 편집자 글
아래 글은.. 제가 배우며 생각하는 점들을 스스로 중간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까봐.. 글을 올립니다.
◑일부 목사의 설교에 반대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일부 목사(이하 일부)는 너무 청교도적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남과 제2의 중생체험 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청교도적 중생을 강조하는 설교문 나는 정말 성령으로 거듭났는가요?
▲베드로의 예를 볼 때,
마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라고 신앙고백한 시점과
행2장에서 성령충만을 경험한 시점이 있는데,
일부 설교자가
'신자가 진정한 구원을 받았느냐’고 설교하는 시점은,
행2장 이전과 이후라는 것입니다. (일부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주로 개혁주의는)
거듭남을
마16장의 신앙고백 시점 이전과 그 이후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행2장 이후는 뭔가요?
그건 ‘거듭남’이 아니라,
‘제2의 중생체험’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제2의 중생체험’이란 표현이 직접적으로 안 나옵니다.
어쨌든 일부를 비판적 입장에서 보는 분들은,
그가 전하는 설교 내용은 대부분 맞지만,
단 ‘구원’의 수준을 너무 높게 잡는다는 것입니다. 행2장의 성령충만으로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부는 ‘지금 기존 교인들 대다수가 지옥간다’는 식으로 설교하는데..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신자들은
마16장의 수준에는 도달했는데,
행2장의 수준에는 못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마16장의 수준(신앙고백의 수준)에 도달해도, 거듭났고,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로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렇습니다.)
그런데 일부가 말하는 ‘구원’은, 베드로의 경우를 놓고 볼 때,
마16장의 신앙고백 시점에서 일어났다고 보지 않고
마치 행2장에서 뒤집어지는 체험을 통해서만.. 구원 받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기존 교인들 대다수는 지옥에 갈 사람들이 아니라,
거듭난 사람(천국에 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고백도
베드로가 스스로 고백한 것이 아니요,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7
... 그러니까 마16장의 <신앙고백>이 바로 ‘거듭남(또는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니까요.
▲위 내용을 더 간추리면 .. 성도의 구원받음을 가늠하는 기준에 있어서,
-행2장의 ‘뒤집어지는 체험’을 강조하는 입장과 (청교도주의)
-마16장의 ‘신앙고백’을 강조하는 입장의 차이.. 라고 봅니다. (개혁주의?)
개혁주의 교회를 위시해서
대부분의 주류 교회들은 ‘마16장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입술로/마음으로 신앙고백을 하기만 하면,
당신은 거듭난 사람이요, 그것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그래서 구원 받았습니다.’ -‘빨간색 표시’는 문제가 있다는 뜻. 아래에서 다룸
라고 말하고, 또한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일부 또는 소위 ‘청교도식 극단적 회심론’의 주장은,
마16장의 ‘신앙고백’에 신앙의 진정성이 너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엔 ‘진정한 회개’도 없으며,
-그저 입술의 고백, 명목상 크리스천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이 상태는 참 구원 받은 성도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제 생각을 정리하면
▲1. 거듭남은 ‘마16장 신앙고백’의 시점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설명하는 거듭남 http://blog.daum.net/rfcdrfcd/13789834
찰스 콜슨이 설명하는 거듭남 http://blog.daum.net/rfcdrfcd/15971897
▲2. 그러나 거듭남을 ‘구원의 완성’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부터 ‘거듭남=구원 받음’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거듭남을.. 구원의 시작이 아니라, 완성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구원(여정)의 시작으로 이해해야 옳습니다.
거듭남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남’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시작’입니다.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가 성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질병, 사고, 발육부진, 기타 여러 위험이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성인이 못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의 주장이 맞는 것은,
‘자기가 신앙고백 했다고 (거듭났다고)
자기가 구원 받은 줄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구원이 완성된 줄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고백 한 것은, 영적으로 마치 갓난아기가 새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그 아기가 커서 정상적인 어른이 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고,
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힘든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책의 주인공)이
천국을 향해 자기 집을 나섰다고, (중생의 시점, 신앙고백의 시점)
그 즉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주류는
‘신앙고백 하면.. 너는 구원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위에서도 빨강색으로 표시했음↑
일부는.. ‘그게 아니다..’ 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거듭남)은 ‘구원 여정의 시작’이며,
그 구원 여정(과정)에서 제대로 신앙생활 안 하면.. 탈락할 수 있다.. 를 경고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원을 천국 가는 티켓처럼 1회 신앙고백으로 확보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신앙고백은.. ‘거듭남’이요, ‘구원 여정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정말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구원은,
<천로역정>처럼 과정이며,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라는.. 이런 점들이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저 한 번 입술로 신앙고백 했다고.. 구원이 당장 완성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는 말
1) ‘거듭남’ 또는 ‘중생’을
너무 커트라인을 높게 잡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못합니다.
마16장의 신앙고백이 ‘거듭남’의 시점이 맞고
일부도 9세 때인가 신앙고백을 했다고 하고,
상당수 크리스천들이, 모태신앙인인 경우 비교적 일찍 신앙고백을 합니다.
2) 그러나 ‘신앙고백’이, 그 즉시 구원을 완성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거듭남에 불과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중대한 변화이긴 하지만
그리고 거듭남은.. 구원 여정의 시작입니다.
아기가 태어난 즉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신앙고백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제 성인으로 점점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류 기독교는,
신앙고백=거듭남=구원받았다(구원의 완성)로 봅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신앙고백=거듭남은
구원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신앙고백을 통해 시작한 나의 구원 여정은,
그 후에 계속 성장해 가야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구원의 최후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거듭남(중생)'의 커트라인은.. 너무 높게 잡을 필요 없더라도 (신앙고백만 잘 하면 되니까)
'구원(의 완성)의 커트라인은.. 높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안전하고, 성경적입니다.
(미국의 대학도, 입학은 쉬운데, 졸업이 어렵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렇게 볼 때, 일부 목사가 말하는
‘당신의 구원을 신앙고백에 의존하지 말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
그러다가는 천국에 못 간다’는 주장에는 틀린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부 목사에게 오류가 있다고 보는 분들은
‘신앙고백=거듭남=구원의 완성’으로 여기는 신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은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신학’이지, 성경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마16장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있었으나,
행2장의 성령체험에 미치지 못한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한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요?
-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고, 아무도 모른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는 신중하고, 겸손해야지.. 너무 과신하는 자세는..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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