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역사적 의미 행2:11 찰스 프라이스 / Speaking in Tongues
◑서론
▲때는 오순절이라서, 세계 곳곳의 흩어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력calender에 있어서, 3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흩어진 유대인(디아스포라)들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모여듭니다.
오늘날에도 무슨 축제가 있으면, 이웃 나라에까지 놀러 갑니다.
오순절은, 유대 나라의 추수감사제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행2:5절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때는 바야흐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유월절에)
40일 지나서 승천하시고,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1)
그날 아침 9시, 베드로가 청중 앞에 서서 말씀을 전하려 했던 그 시간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러자 해외 각 16국에서 모여들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행2:11
오순절 성령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이
과거에 한 번도 배우지 않은 말을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던 것입니다.
▲굳이 방언으로 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레코-로망(그리이스-로마) 사회에서
모든 세계가 헬라어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헬라어로 기록되지 않았습니까!
아마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도.. 다 120명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행1:13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일(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증거하려면,
헬라어로 해도 되었을 것이고,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주2)
어쨌든 굳이 ‘방언으로 말 안 해도 될 것을’
헬라어나 아람어로 말해도 될 것을,
왜 ‘방언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을 말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설교문의 주 논지
◑바벨탑 방언과 오순절의 방언
성령이 최초로 내려오신 그 날, 방언이 말해졌다는 것은..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 은사로서 방언은, 그저 무시하고 지나쳐 버릴 것이 아니라
초기 교회를 시작하는데 있어서,
(교회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을 제시해 주는데요..
▲창11장에 바벨탑 사건이 나옵니다.
그 이전에 세상에 언어는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탑을 지을 때,
주님이 내려오셔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11:3 주3)
바벨탑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의 행동을, 방언의 은사로 저주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에서 사람들이
서로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에는, 방언의 은사로 축복하셨습니다.
오순절에도 주님께서 (성령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바벨탑 때도 내려오셨습니다.
바벨탑의 저주로 인해 갈라졌던 사람들을
방언의 은사라는 축복으로 다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에서 방언은 저주였지만,
행2장의 오순절에서 방언은, 축복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과거에 많이 듣던 설교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래에서 ‘그 의미, 그 의의’가 새롭게 들려집니다.
◑복음은 창조의 회복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벨탑의 혼잡을 다시금 원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 질서의 회복이며, 복음의 놀라운 특징입니다.
※요즘 ‘창조질서의 회복’이란 말을 잘 씁니다..
▲1.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하나님과 다시 연합
복음이 전파되며, 복음을 믿으면.. 창조질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창세기의 저주를 그 이전상태로 되돌려 놓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4:18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던’ 사람이
하나님과 다시 연합되는 사건입니다. 성령의 임하심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먼저는 120명이 하나님과 다시 연합되었고,
그들은 ‘첫 열매’로서, 누구든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연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즉, 창세기의 원래 상태로 되돌려진다는 뜻입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은 타락해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지만,
오순절에, 사람은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영적으로 생명을 다시 얻었습니다.
▲2.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사람끼리 다시 연합
바벨탑의 언어의 혼잡이.. 오순절에 다시 언어가 통일되었습니다.
‘언어의 통일’은, 다시 말하면
모든 민족의 통일이요, 모든 인간의 통일입니다.
오순절에 방언을 통해, 언어가 통일 되었다는 것은..
민족과 언어dialects로 나눠졌던 인류가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 한 언어로 다시 연합되고 통일된다는
즉 창조질서로 되돌려진다는..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적용 : 성령은 연합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게 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구약에 없었던 방언이 나타난 것은)
모든 민족, 방언(열방)을
하나님 나라 안에서, 모두 하나로 연합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방언은.. 바벨탑의 분열을.. 다시 회복한다는 싸인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는.. 연합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분열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는 소멸된 것입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하나 됨, 하나님 나라는..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창11장 바벨탑 사건 이전으로.. 회복되고, 되돌려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공동체는.. 오순절 성령이 역사하고 있습니까?
그 증거 한 가지는,
우리가 창11장 바벨탑 이전으로 되돌려져서,
서로가 온전히 하나로 연합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심지어는 형제간이나, 부부지간,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 골이 생깁니다.
하나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그 외적 증거로 방언이 시작된 사건이 가지는.. 그 신학적 의미는,
분열된 민족과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부부가 하나 되려면
어떤 '가족이란 끈'이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할 때, 성령이 충만할 때.. 하나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부부라도.. 분열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면.. 모두가 하나됩니다.
교회가 분열에 시달리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또는 성령의 역사를 거의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미래는 은사주의자들 Charismatics 중심으로 ‘일치될’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개신교의 모든 교단에 다 포진하고 있지만,
가톨릭에도, 정교회에도, 성공회에도.. 다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로 연합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지난 2천년간.. 말할 수 없이 참혹하게 나눠지고 분열된 ‘그리스도의 몸’은
교단/교파/민족(언어)/피부색을 막론하고
성령운동이란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 연합하고 일치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조직적 연합/기구적 연합’이 아니라, (사실 이것은 너무 부실한 연합이고요.)
성령에 의한 연합이.. 범세계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
주1)
120명 성도가 모여서 기도에 힘쓴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행1:4~5
주2)
당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주로 썼다고 합니다.
아람어는.. 바벨론 포로 생활 때 배운 언어로, 귀환 후에도 통용되고 있었다고 봅니다.
주3)
영어에 ‘배블 babble’이란 말이 있는데, ‘중언부언한다, 웅성거린다’는 뜻입니다.
아마 babel (혼잡)에서 파생된 단어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자,
그들은 서로 알아듣지 못하고, 서로가 말하는 것이 웅성거리듯(배블) 들렸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 두 도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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