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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받은 자에겐 책망이 따른다

LNCK 2011. 9. 26. 08:57

◈사명 받은 자에겐 책망이 따른다       엡5:11~14, 골1:22         11.04.01. 인터넷설교 녹취



◑1. 책망에 관한 성경의 예


내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아도, 책망을 받을 때 돌이키지 않으면,

그 받은 사명 감당 못하고, 멸망당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이키면, 심판 전에 부흥 온다.)

 


▲1. 엘리 제사장은, 그 자녀를 책망하지 않아서, 그 집이 멸망당했다.


삼상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의 자녀인 홉니와 비느하스만 망한 것이 아니라,

그 자녀를 책망하지 않았던 엘리 제사장까지

즉, 온 집(그의 집)이 함께 망하고 말았다.


공동체적으로 적용하면,

성령의 권위에 의한 책망이 없으면,

성도도 죽지만, 그 영적 아비인 지도자도, 그 공동체도.. 함께 하나님께 심판 받는다.


▲2. 가인도 책망을 듣지 않아서 망했다.

가인에게는 큰 부르심이 있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위 말씀에 ‘여자의 후손’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뜻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에서 이 예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하와의 후손 ‘가인’이었다.


가인은 가장 먼저 태어난 ‘여자의 후손’으로서,

‘뱀의 후손’(위 본문에 네 후손)과 싸워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가 받은 또 다른 사명은,

아버지 아담이 받았던 사명을 계승하는 것인데,

곧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창1:28


     가인이 잘못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가인을 책망하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6~7


      그런데도 가인은, 그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 큰 잘못을 범했는데, 그것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중차대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고,

      아마 영생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창4:7

죄가 마치 강도처럼, 또는 성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적군처럼,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 문을 살짝만 열기만 해도,

죄는 금방 내 마음 문을 밀고 들어와서, 내 마음을 장악해 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 마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죄가 그를 점령해서,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다.


결국 가인이 망한 이유도,

그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회개했지만

사울은..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지 않았다.


삼상13:12에, (블레셋과의 전쟁 상황에서)

사울은 부득이하여 자기가 집전해서 제사를 드렸다고 변명한다.


그런데 삼상15:18~19에서, (아말렉과의 전쟁 상황에서)

사울은 또 불순종해서, 다 진멸하지 않고, 양과 소의 좋은 것을 남긴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았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울의 부르심을.. 거두어버리셨다.

그 대신에 다윗이 왕이 되었다.


     다윗도 완벽하지 않아서, 범죄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고 회개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세워주셨다. ↔사울과 반대로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위 구절은, 사울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임시변통으로 나타난 엑스트라가 아니었다.

그도 다윗처럼, ‘그의 나라가 영영할 수’ 있었다. ↑

다만 그의 불순종이, 자기와 자기 집안을 모두 망하게 했던 것이다.

 

사울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생애 내내 승승장구했다.

 

삼상13장의 전쟁에서, 15장의 전쟁에서, 17장(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다.

(최후에 블레셋과 전쟁에서 전사하기는 했지만..)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도, 책망을 듣지 않으면서도,

세상 일에 승승장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큰 부르심이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오히려 큰 부르심이 있을수록, 사탄은 더욱 거세게 그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또한 큰 부르심이 있을수록,

     주님의 책망과 징계도.. 거기에 비례해서 더 클 것이다.

     그때 온전히 돌이키면 되는 것이다.


▲4. 사명 받은 자를 책망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특별히 받은 부르심과 사명이 있었다.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것,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

-이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부르심이요, 사명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가하면,

예수님이 이기시고, 예수님이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처럼

똑같이 라오디게아 교회도, 이기고,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데,

위 구절에 보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도, 결국은 승리하도록, 작정되어 있었다.

‘이겨서,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작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이 필요했다.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책망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요,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라’고 했는데.. 히12:8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명 받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2. 땅에서 책망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골1: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책망을 받고 온전하게 되어야

나중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서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땅에서 책망을 받는 일을 거부하고, 계속 어둠 가운데 지내다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때 우리의 모든 잘못이 드러나고 책망을 받게 되고..,

그것은 대단히 큰 낭패가 될 것이다.


▲성도는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한다.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딤전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이렇게 나타나려면,

우리는 평소에 늘 책망을 받고, 점점 더 성화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신칭의로 인해, 내가 완전해졌다고 확신하고 있으면.. 큰 일 난다.

위 구절은, 사도 베드로가, 사도 바울이,

이신칭의를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성경이 우리를 책망하여, 온전케 하신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책망하여 <온전케>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가, 지금 우리 각자에게, 또한 공동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성경을 그저 <교리책>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지만, 늘 <교리>를 발견하고,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그저 <도덕책>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사서삼경처럼, 그저 도덕적 교훈만 발견하고, 그것만 즐긴다.


그렇지 않다.

성경은, 성도의 삶을 온전히 바꾸어 놓는다.

성도의 삶을, 육적인 삶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오늘날, 성도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설교는.. 책망을 받아야 한다.

설교와 말씀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딤후3:17



◑3. 책망은.. 빛을 비추는 것


▲책망은 무조건 야단치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 책망은, 본문에 ‘빛을 비추는 것’이라고 했다. ↓ 


엡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즉, 책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 가운데 오셔서

빛을 비추시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책망의 사전적 뜻은

‘잘못을 일러주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책망이고,


성경적인 책망은

‘예수님이 빛을 비춰주실 때’ (성령의 권위로 책망할 때)

성도는 자기의 어디가 어두운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게 된다. 엡5:13

즉, 자기 잘못과 어두움을 밝히 깨닫게 된다.


     정리하면, 책망은.. 누구를 부끄럽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고,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을 비추어 깨닫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여기서 은 곧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엡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이 구절을 보면, 책망을 하는 주체는 ‘너희’이다. 즉 성도가 서로 책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14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고 말씀한다.


책망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권위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책망하시도록..’ 그런 방향으로 책망해야 한다.

                                                                           ‘말씀’이 그를 교정하게 하라


▲그래서 책망을 받으면, 지혜로워진다.


잠언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나’는 지혜이다.

위 본문은 ‘지혜가 오게 되면 책망한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지혜/말씀/예수님의 책망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어지는 구절에

주님의 영이 더 많이 부어지고, 주님의 말씀이 더 많이 깨달아진다. ↖

  

비슷하게 신약에도 이렇게 말씀한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서도 ‘꾸짖는다. 나무란다’의 책망이 아니라,

‘더 많이 깨닫게 한다’는 식의 책망이다.


▲잠1:23, 요16:8에서 말하는 책망은, 일차적으로 나를 스스로 책망하는 것이다.

주님의 지혜의 말씀에 따라서,

성령의 지혜의 말씀에 따라서,

내가 나를 스스로 책망하는 것이다.

나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빛 가운데로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씀은, 타인에게, 또한 공동체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겠지만,

먼저는 내가 나 자신을 책망하고, 스스로 교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