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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0 신앙은 건축이다

LNCK 2011. 9. 23. 20:36

◈신앙은 건축이다                                                           출처 보기

 

 

노아의 홍수를 생각하며 방주를 지으시라. 거룩한 성품으로!     창7:23, 마24:37~39 

                                                                                                            

※제목만 들어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처처에 지진과 경제파동과 중동 불안의 소식이 가득할 때,

성도가 해야 할 일은,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일입니다.

거룩한(‘구별된’이란 뜻) 성품으로!

 

원래 방주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노아는 그리스도의 방주 짓기에, 동역자로 초대되었습니다.

 

신약에도 종종 신앙을 '건축'에 비유합니다.

신앙은 점점 '지어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시작하지만)

구원 받은 후에 '신앙을 건축해 가는, 구원을 완성해 가는'

그런 개념이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편.

 

당시 살았던 온 세상 사람들 가운데,

오직 노아의 가족만 구원 받은 사실을 놓고 보면,

우리의 ‘구원’이, 아주 쉬운 구원으로 보이시는가?

그렇지 않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는다.


노아의 8식구들은, 오직 은혜로 거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가?


물론 방주를 지으라는 복음 자체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그 복음 자체가 없었다면, 노아와 그 가족도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노아를 통하여 그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도 무려 120년 동안, 그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방주를 지은 사람은, 오직 '노아 가족'뿐이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 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7:23


오늘날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빛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이고 있다.


그 복음 자체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이다.


하지만 그 십자가의 복음의 빛이 안내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굴복하여

온전한 성품으로 ‘자신의 구원의 방주를 지어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노아의 시대 때와 똑같은 것이다.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구원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한번 구원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그 신학에 반대적(=보완적) 측면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이 수 십~수 백 구절 있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끝까지 (단 몇 구절만 붙잡고)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오해이다.

 

 

이것은 사단의 기만 중에 가장 큰 기만이다. 사단의 가장 큰 무기가 기만, 또는 미혹이다.

 

그 사탄의 기만으로 인해,

자기에게 구원의 온전한 빛이 주어지지 못하였음에도

자기가 온전한 구원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착각 때문에

어떠한 진리의 빛이 주어져도 받아들일 수 없고

또한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단의 기만인가?

 

그의 기만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교회에 침투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노아 시대는 예수의 복음이 없었고,

현재에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분명히 사도 베드로는, 노아 시대에도

예수께서 성령으로 직접 복음을 전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저(예수)가 또한 영(성령)으로 옥(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죄의 노예 상태)에 있는

영(사람)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3:19~20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그 노아의 시대에

직접 인류에게 복음 즉 살아남는 복된 소식을 전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역시 동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8명 뿐’이라고 증언한다.

복음을 듣고,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였다는 뜻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진리를 받아들이질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짓기만 하면,

아니 노아가 만든 방주에 타기만 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들은 거기에 순종하지 않았는가?

-아마 사탄의 기만에 속아 넘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인류가

사단의 똑같은 기만에 넘어갈 수 있음을.. 예수님은 내다보셨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7~39


사단의 기만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데도

온전히 구원받았으니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기만이었다.


홀로 구원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


그냥 생각으로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온전함(성숙함)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똑같은 기만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


오늘날 구원에 이르는 거룩하고 온전한 성품을 이루지도 못한 채,

거짓선지자들과 거짓교사들의 막연한 구원론에 취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줄도 모르고,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벧전3:20


오늘날 전해지는 살아남는 복음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단순하다.


그것은 분명하고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온전한 믿음, 성숙한 믿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구원의 완성’

것에는 아무 관심 없고, (즉, 자기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일에는 전혀 관심 없고)


‘자기 생각으로 예수를 한 번 믿기만 하면, 영원히 구원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오해이다.


현재 각자의 삶에 방주가 지어지고 있다.

변치 않을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계명으로

자기 구원을 반석 위에 세워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고

사람이 세운 전통, 즉 모래 위에 자신의 구원을 지어가는 사람이 있다.


※신약에도 ‘건축’개념이 종종 등장한다.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건축’의 의미는.. 하루 아침에 못 짓는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오래도록, 일평생 지어가는 것이.. 건축이다.

  

분명히 구주께서는 마지막 날이

노아의 시대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정교한 사단의 기만에 속아 넘어가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편견을 더 확신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시며, 주님은 지금도 경고하고 계신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부디 신부님들!

각자의 삶에서 거룩하고 온전한 방주를 지어가시길 기도 드립니다.


.....................


◑당신의 의식을 자신의 감정이나 아픔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꾸십시오.                     출처


 

당신의 의식을 자신의 감정이나 아픔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꾸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한 자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 역시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평안하고 자신만이 괴로운 것 같지만,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다 각자 자기의 고통을 안고 삽니다.


자신의 고독보다

주님의 고독과 아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길이며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초월해 갈때

자유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분이 어떻든지

자신이 죽든지 살든지 거기에 매이지 마십시오.


당신의 의식을 자신의 감정이나 아픔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꾸십시오.


그러한 방향 전환이, 당신에게,

기쁨과 자유함을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맑고 깊은 영성의 세계를 향하여 中에서 / 정원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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