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크림빵 갈2:19 출처보기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바울의, 하나님과 율법과의 삼각관계
오늘 본문에 보면, 19절에 이런 말씀이 나와 있어요.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하나님에 대해서 살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율법은.. 하나님과 삼각관계에 있어야 할 요소가 아니지 않습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 아닙니까? 둘은 같은 편입니다.
그러면 율법에 대하여 살아야, 하나님에 대해서도 살게 될 것 같은데,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율법을 버려야).. 하나님께 대해 산다고 말씀합니다.
간단한 말씀입니다만, 이해가 어려워요...
우리는 바울이 “내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뭡니까?
죄를 안 짓는다는 얘기겠지요.
‘하나님에 대해서 산다’는 얘기는 뭡니까?
하나님만 기억하면서 살겠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왜 바울이, 율법에 대해 죽습니까?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이란?
▲점점 변질된 언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시지요.
그리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십니다. 계명을 주시지요.
그래서 하나님과 약속을 하는데 어떻게 약속을 하느냐하면,
너희가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면 내가 복을 줄께.. 약속을 해주십니다.
세월이 흘러갑니다.
어떻게 변질이 됐느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켰더니,
오 생각지도 않게 하나님이 이렇게 큰 복을 주셨네!
이렇게 돼야 순서가 맞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 주겠다고 하는 복만 바라보면서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다는 얘기입니다.
선민들이 하나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름만 빌려주면 됩니다.
진짜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에 다가있어서
그 복을 따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기 시작했다는 얘기에요. 이게 변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나중에 바울의 시대에 어떻게 통했느냐,
내가 복을 가득 얻기 위한 방편이 돼버렸다는 얘기에요.
(원래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러면 복은 따라오는데..)
그래서 바울은 ‘내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갈2:19
‘내가 축복을 바라보며 율법을 지키던 삶을 벗어나서,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겠다’ 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해를 돕는 예화
제가 어렸을 때의 사건입니다.
제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실 때, 수금收金차 지방에 출장을 자주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날에는, 늘 막내인 제게 크림빵을 사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에 호남 지역에 출장 가셔서
다 끝내고 돌아오신다고 하는 그날 밤,
저는 ‘크림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크림빵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지금의 식빵보다 절반 정도로 작은 식빵모양으로 생긴 빵에,
가운데 크림을 넣고 두 쪽을 붙인 겁니다.
요즘도 제과점에 팝니다. 요즘도 추억으로 먹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제가 크림빵을 받으면,
저는 크림이 속에 뭉쳐있는 것을 골고루 바르기 위해서, 손으로 빵을 비벼서 먹었습니다.
그 아삭아삭 소리가 나는 크림빵, 기억나세요, 여러분?
제가 초등학교 4~5학년 때라고 기억합니다.
크림빵을 사오시면, 그냥 너무너무 좋아서 크림빵을 받아먹곤 했던 시절입니다.
그 때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밤이 늦은 겨울인데, 오시지를 않아요.
그러더니 전화벨소리가 울립니다. 어머니가 받으시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세요.
아버지가 사고가 나셨습니다. 광주에서 올라오셔서 터미널에 내리셨는데,
추운 겨울밤 급하게 추우니까 달려가시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셨는데,
아스팔트 바닥에 그냥 얼굴을 박으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얼굴에서 피가 나고, 붓고, 엉망진창 돼가지고
터미널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그래요.
어머니는 제 형님들한테 설명을 하시면서 부랴부랴 옷을 입으시고 뛰어나가는데,
그 등 뒤에다 대고 제가 “엄마! 그러면 내 크림빵은?” 이랬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신발장에서 신을 꺼내시느라 못 들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엄마! 그럼 오늘 내 크림빵은 없어?”
그랬더니 엄마가 그 바쁜 중에 돌아서면서
“아무리 어린 자식이지만 해도 너무한다.” 그러면서 홱 나가시는 거예요.
그 다음날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아버지가 입원하신 동대문의 병원 응급실에 저를 데리고 갔어요.
병원에 갔더니, 아버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어요.
핏자국이 새카맣게 엉겨 붙어 있고요, 입술도 부어서.. 보기에 징그러웠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고 반가우셔서 불러요.
‘아들아, 저기 좀 봐!’
보니까, 병실 창문턱 위에, 크림빵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얼른 크림빵을 받아 가지고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서, 크림빵을 하나 먹었습니다.
먹는데.. 그 어린 나이에 목이 메서 넘어가지를 않아요...
철없는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존재자체를 사랑하기 보다는,
크림빵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아버지의 선물인 크림빵 때문에, 눈이 멀어서,
아버지의 존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크림빵을 안 사주셨더라면,
아버지의 존재를 똑바로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 손에 잡히지 않는 크림빵을 잡기위하여 “내 크림빵!”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아버지가 옆에 와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아버지를 만나고, 볼 수도 없습니다.
크림빵은.. 하나님께서.. 내가 아들이니까,
축복은.. 하나님께서.. 내가 아들이니까 주시겠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변했느냐?
내 손에 아직 잡히지 않은 크림빵(축복)을 향하여
그것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내 마음에서 보이지를 않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죄라는 것이에요.
우리는 아버지가 주시겠다는 그 축복의 크림빵만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아랑곳없이
40년 50년 60년을 신앙생활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에요.
▲기도로 구하는 이유도, 다 크림빵입니다. 아버지 자신이 아닙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작정기도, 산상기도하며
아버지께 기도도 했습니다. 특새도 했습니다.
그 전부 이유는
내 손에 아직 쥐어지지 않는 크림빵
즉, 건강, 돈, 직업, 자식들의 문제.. 이런 많은 것들에 주목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놓쳐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동행/내주/연합을 말입니다.
▲이런 일은 에덴동산부터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아버지가 허락하신 파라다이스, 낙원에서 삽니다.
모든 과일을 다 먹으라고 허락했습니다. 하나만 빼놓고, 선악과,
그런데 뱀이 와가지고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자꾸 보라고 독촉합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단 하나의 크림빵, 선악과를 보기 시작합니다.
선악과를 보면서 내 마음이,
아담의 마음이 내손에 잡히지 않는 크림빵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달려가게 되자마자, 내게 없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자마자 나타난 현상은
(내게 없는 것을.. 지금 내가 갈급하고 있다면.. 그게 내게 선악과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존재가 안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먹지 말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씀이 안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완전히 깜깜한 암흑 속에 가려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손에 안 잡히는 그것, 큰 것으로 여겨져서,
그것을 따먹고 드디어 아버지가 없는 세계, 에덴 바깥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위 설교는, ‘바울이 율법에 대해 죽은 이유’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 중 한 가지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좋은 의도로 주신 율법을, 사람들이 잘못 사용/남용해서 변질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한다'는 설명은 맞습니다.
특별히 바울이 '율법에 대해 죽는다'고 말한 이유는,
율법이 '자기 의'로 둔갑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선민이요,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착각'을..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율법에 대해 죽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신앙으로 극복하기
▲크림빵은.. 다른 말로 <내게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게 없는 것이 있지요. 내게 부족한 것이 있지요?
그 부족한 것, 없는 것에 대한 내 마음의 태도를 따라서
여러분이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와 함께 사느냐
아니면 아버지를 잊어버린 채로, 크림빵만 찾아 사느냐가... 결정될 겁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있어도, 내 곁에 아버지가 계시니.. 만족한 인생
돈이 없어 고생하는 분계시지요? 돈이 얼마나 절실한 것입니까?
그런데 돈 없어 괴로워하는 지금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되십니까, 아니면 전혀 안 되십니까?
(위로가 되어야.. 참 신앙인입니다.
그는 크림빵이 아니라, 아버지로 만족하고 사는 자녀이니까요.)
건강을 잃어서, 고통 가운데 사십니까?
건강이 없다는 것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안 아파본 사람은 마음을 모르지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가,
내 옆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병든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던가요, 아닌가요?
(만약 위로가 안 된다면, 크림빵 때문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자녀입니다.)
자식이 문제고, 취직이 문제고, 사람관계가 문제고, 문제투성이인 세상을 삽니다.
그러나 내 곁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아버지로 계시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없는 크림빵’만 바라보고 사십니까?
왜 아버지는 못 바라보십니까?
아버지 바라봤다고요? 천만에!
크림빵 바라보고 크림빵 갖고 오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크림빵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율법에 대해 죽은 것’은.. 크림빵을 멀리하겠다는 뜻!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던 율법을 지키는 행동을
내가 이제 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복만 쳐다보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만을 바라보겠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율법에 대해서 죽고, 아버지를 향해 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2:19본문
◑크림빵(축복) 바라보지 않고도 살려면..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
이어지는 20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율법을 지켜 복을 받겠다는 마음을 끊어버리고
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그게 쉽게 안 되더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보기 위하여 취한 방법이 뭡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입니다.
즉, 내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영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해서 살아났다(부활했다)는 것이지요.
이제 내 육신이 나를 주관dominate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나를 주관하는 삶을 살게 될 때,
그 크림빵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만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에 이끌려서/복종해서 사는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법 터득하기
여러분, 없으면.. 그것을 갖고 싶지만,
꼭 그것을 가졌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행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부족한 그것을.. 용케 내가 가지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사람은, 목마르고, 배고프며, 부족함을 끊임없이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경건의 훈련’은
뭘 더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없는 것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관련글/ 없는 은혜
그 ‘없는 것을 은혜로 여기는’ 단계를 통과하면, 거뜬히 패스하면,
하나님이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없게 해 주셔도.. 그게 은혜니까.. 괜찮습니다.
내게 크림빵이 없어도,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단계에 올라서면,
내가 크림빵에 대해 자유하게 되면,
하나님이 마음 놓고 내게 크림빵을 맡기시는 겁니다...
없으면.. 없는 것을 은혜로 여기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동행하며 살면..
하나님이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받아도 거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보는 둥 마는 둥 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근원이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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