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용사로 부름받았다 모두 펀 글
◑1. 대적기도, 주문기도 (주술적 기도) 벧전5:8~9 출처, 정리
▶사단은 무작정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5:8~9
많은 신자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 기도만 하면.. 사단은 당장 물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름과 신자에게 내주하신 성령님의 권능은 대단합니다.
사단이 감히 대적을 못합니다. 사단과는 절대 타협과 조정을 할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대적해야 함도 분명히 맞습니다. 행16:18
그러나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는 한 마디로
사단은 절대 쉽게 물러가지 않습니다.
매번 그러면 기도가 아니라 일종의 주문이 됩니다.
반드시 온전한 믿음의 바탕에서 대적해야 합니다.
유대 한 제사장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 보았지만
오히려 사단에게 크게 당한 실례가 있지 않습니까?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행19:14~16
그럼 온전한 믿음으로 사단을 대적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의지를 다시 굳세게 다잡아서 큰 목소리로
주저하지 않고 대적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대적 기도가 아닌, 주문 기도를 더 세게 한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대적 기도는.. 먼저 믿음을 굳게 하는 가운데.. 효력이 있습니다.
대적기도가 능력을 발하려면, 즉 ‘주술적 기도’가 되지 않으려면,
본문에 말씀한 대로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9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리, 물러가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은
어쩌면 신자의 두려움이 반영된 것일 수 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과 바울은 잘 알지만..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 기도를 했지만
온전한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단이 꿰뚫어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사람입니다.
당연히 사단이 바울을 삼키기는커녕, 그 앞에 감히 얼씬거리지도 못할 것 아닙니까?
▶‘믿음을 굳게 하는’ 예를 한 가지 더 살펴봅시다.
욥의 경우를 보면, 아무리 큰 능력을 가진 사단도
절대로 하나님의 궁극적 통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단이 역사하는 것도,
사단의 훼방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사단의 훼방’을.. 내가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때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 사단을 맡기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그 사단의 훼방을 통해 다 이루어지고,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이 사단을 제압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8/12/2009
◑2. 영적전쟁을 인식하시라 출처 보기
▶성도가.. 영적 전쟁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신자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악령들의 회의가 있으며
전략의 점검이 있으며, 상급 부대의 지령을 받고 지원을 받으며
기회를 노리고 중간 점검을 하며, 승리를 한 후에 서로 낄낄거리며 기뻐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악령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천사들이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이며
그들의 공격에 비하여 화력이 부족함을 한탄하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기도로.. 마귀를 대적하는 기도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아무리 돕고 싶어도
주님의 명령이 없이는 움직일 수 없으며
비로소 누군가의 중보기도가 드려지고
드디어 도움을 허락하는 주님의 명령이 떨어져서
천사들이 환희에 찬 폭격을 통해서 악령들을 제어하는..
이러한 전쟁들이 영계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책을 맡은 사람이라면 그 공격은 더욱 더 치열해집니다.
한 사람이 넘어짐으로써 많은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악령들의 공격은 더욱 더 집요하고 처절해집니다.
한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그 사람의 기질, 약점, 성장과정,
아직 주님께 드려지지 않은 부분들..
공격에 취약한 그들의 허점을
악령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는지.. 알게 된다면..
아무도 그 전쟁을 쉽게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승리하는 신자들이 드문 이유입니다.
▶중책을 맡은 사역자가 아니라고 해서 악령들의 공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연약한 초신자라고 하더라도 공격의 예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갓 태어난 신자들은 좀 더 천사들이 신경을 써주고 도우며
쉽게 은혜의 자리에 이르게 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영적 전쟁에 대해서 가르치고 영적 무기에 대해서 가르치고
돌보는 보호자들이 없을 때
신자들은 잘 성장하지 못하며
초기의 은혜 상태가 지나면
대부분 형식적이고 피상적이고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신실하게 하고
악령들의 왕국에 큰 피해를 입히는 사람(신실한 성도)이라면
마귀의 영적 공격은 아주 심합니다.
그러나 적당히 세상을 즐기고 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고
현실의 삶에서는 주님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신자라면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포로가 되어 채찍을 맞으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옥의 끔찍한 화력을 쏟아붓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가끔 지옥의 창고를 열고
재물이나 복을 부어주기도 합니다.
▶모든 복이 주님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이들은,
영적으로 아주 무지한 이들인데,
기도 없이 주어지는 복..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어지는 복이나 이익은
다 지옥의 창고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금하시는 쾌락이나 즐거움도
다 지옥의 창고에서 오는 것입니다.
도박을 처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돈을 따게 됩니다.
그것이 악령들이 사람을 사로잡는 방법입니다.
바람을 처음 피는 사람은 반드시 기대 이상의 쾌락을 맛보게 됩니다.
증권을 처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득을 봅니다.
부동산 투자를 처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득을 봅니다.
악령들은 사람을 사로잡기 위해서 처음에는 반드시 친절을 베풉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사람의 탐욕을 배양해갑니다.
사람의 안에 암세포를 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잘 자라도록 관리를 해주는 것입니다.
▶악령들이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소의 코에 코뚜레를 하고 부리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를 위하여 뇌물을 심어두는 것입니다.
악령들은 선물을 준 대상에게 영적 권리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는
그 영적 마비의 상태로 내버려두지만
은혜를 사모하거나 죄에서 돌이키려고 할 때는
잔인한 보복을 하게 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고 보호해주지만
그들이 애굽을 탈출하려고 할 때 결코 쉽게 보내주지 않습니다.
악령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 얻어진 복이나 형통이 있다면
그것은 복이라기보다, 저주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음란을 즐기고 정욕을 즐기며
세상의 더럽고 사악한 문화를 즐기며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악령들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고 있을 뿐
자기가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거미줄에 걸린 곤충이 몸부림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들은.. 결국 껍데기만 남고
속은 거미들에게 다 빨려서 텅 비어 있는데
주님께 헌신되지 않고 악령들에게 잡혀서
세상을 즐기고 있는 신자들의 상태가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미이라처럼.. 해골처럼 파리하고 비참합니다.
외모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지만
그 영혼은 해골과 같은 이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헌신되지 않은 신자들은 악령들의 먹이입니다.
뱀에게 주어진 저주는 흙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흙은 육체의 재료이며 육으로 사는 사람은 악령의 먹이입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악령들에게 영혼의 에너지를 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점점 더 영혼이 파리해지고 감각이 마비되어서
나중에는 복음과 보혈과 말씀에 대해서 들어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날 말씀을 개념으로만 이해하고
그 심령은 해골처럼 죽어있는 신자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함.. 기도의 기쁨.. 감격..
영혼의 풍성함과 충만함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아무도 자기 영혼을 지킬 수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주님을 알아가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고
세상살기에만 바쁘고, 세상일에만 관심이 가득한 이들은
이미 악한 영들에게 그 의식이 점령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앙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영들, 어둠의 영들에게 포로로 잡혀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부디 성령충만을 받으십시오. 영혼의 깨어남을 경험하십시오.
영혼이 깨어날수록 영계에 대한 감각이 생기며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 오는 영광의 빛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소망이 아닌 영광의 소망으로 충만해지게 되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살아갈까.. 에 관심이 사라지며
세상이 주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거룩함과 평안을 맛보고 누리며
더 깊은 갈망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디 깨어나십시오.
이 시대의 기독교는 너무나 가난합니다. 너무나 세상으로 충만합니다.
자아애정으로 너무나 충만합니다. 너무나 영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인식하십시오.
깨어있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그 마귀의 불화살을 피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 보는 시간에 말씀을 읽으십시오.
드라마에는 온갖 악령들의 기름부음 종합세트가 있습니다.
흑암의 영으로 가득한 세상과 그 세상의 영, 세상의 사상에서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영의 감각이 일어나고 그 전쟁을 인식할수록 우리의 영은 안전해지며
진정한 신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천국의 기쁨과 영광의 맛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정원 목사
◑3. 진정한 하나님의 군대의 수칙 출처
▶영적전쟁터에서 우리에게 두려움이 오는 근본이유는
“적이 얼마나 큰가?”
“적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염려하는데 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왕하 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또한 우리가 아래 사실에 감격해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주시며, 그의 이름이 만군(모든 군대)의 주라는 사실이다
(시24: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사47: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2.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이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3. 우리는 전쟁에 대한 부르심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 5: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세상)에서 나온(구원받은)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우리의 부르심은 군대로의 부르심이요,
지금 하나님은 하늘군대와 연합할 하나님의 군대를 찾고 계신다
(딤후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4. 우리는 현재 전쟁 중에 있다 라는 영적인 사실을 알아야하며
신앙은 전쟁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은.. 당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용사되기를 원하신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아는 힘과
우리의 군대장관인 예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참 용사의 진위를 드러낸다.
신앙생활에서 용기있는 자는 두려움이없고, 오직 사랑과 거룩이 충만할 따름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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