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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 자아의 죽음

LNCK 2011. 10. 26. 19:03

 

◈자기 십자가, 자아의 죽음        마16:16~24              08.06.22. 이길용 목사 설교일부녹취  

 

◑본문 배경 설명

 

▲베드로의 1차 시험 합격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가 처음에 칭찬 받았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7

 

▲베드로의 2차 시험 불합격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제 죽게 될 것이라는.. 임박한 십자가를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마16:21  

 

그러자 즉시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다.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주님..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니, 주님 죽지 마십시오..’ 라고

베드로가 주님을 한 수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셨다.

:23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라는 사실은 깨달았는데, 그 분의 십자가는 깨닫지 못했다.

베드로는 계시를 통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16:17

예수께서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았다. 그래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제 내가 죽게 될 것이다.’라고 또 다른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시자,

베드로가 이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깨닫지 못했다.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깨달았는데,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리가 육신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계시의 영을 통해서(마16:17),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안에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겠다고 말씀했을 때, 베드로는 거부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깨달아 알았고,

그래서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하나님 아버지시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여전히 육신에 속한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세속적 사고의 확신에 차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할 것입니다’ 라고 잘라 말했다가,

주님께 꾸지람을 들었던 것이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바로 이 베드로와 같이 생각하고/말하고/행동한다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알지만,

여전히 내 생각/판단/행동은.. 육신적/세상적이라서

항상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며.. 오히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기 쉽다...

 

 

◑‘그리스도’를 믿는데, ‘자기 십자가’를 모르는 신자들

 

▲본문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예수님은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그런데 너희도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시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깨달을 수 있었으랴! 못 깨달았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최종적으로는 자기 십자가를 졌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믿는데, 자기 십자가를 질 줄 모르는 신자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24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도 믿는데,

‘자기 십자가’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4영리 위주로 신앙생활 하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질 줄 모르니까 나타나는 현상

여러분, 왜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영광으로 살지 못 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감으로써, 소중한 자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죄)인지 알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굉장한 많은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는가?

 

우리는 많은 기도를 드리지만.. 왜 여전히 혼탁하고 열정 없는 삶을 살아갈까?

 

나는 예수님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고 싶은데..

왜 그런 삶이 내게 안 이루어지는가?

 

이 모든 문제의 뿌리는.. 자아 때문이다.

자기 자아가, 아직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크리스천의 삶,

권세와 은혜가 충만한 성도의 삶,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참 만족, 참 행복..

이런 모든 축복들이 <그림의 떡>인 이유는,

 

예수님을 구주로는 믿는데..

자기 자아가 '아직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육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육신적으로’ 살아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새 생명을 기대한다면.. 그건 난센스다.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는 사람. 즉 자기 자아가 죽은 사람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자아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  :24

 

이것이 바로 ‘제자의 표시’(증거)이다.

 

누가 제자인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는 사람이.. 그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능력 있는 크리스천의 삶의 비결이다.

 

여러분,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것이 바르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지금 삶의 모든 모습이

얽혀 있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 자아가 아직 죽지 않고, 펄펄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자신을 부인하고,

내 자아(체면, 위신, 교만, 정욕, 고집, 술수, 미움, 분노, 지식, 경험 등)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내 삶의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자아란 무엇이며, 왜 주셨는가?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아를 주셨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자아에, 당신의 생명을 가득 채워주시기 위해서이다.

자아가 있어야, 그것을 받아내는 그릇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자아를 깨끗한 빈 그릇의 상태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기 원하신다.

그 빈 그릇(내 자아의 죽음)에

하나님은, 당신의 생명/영광/권세/은총을 가득 채워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이 자아가,

깨끗한 빈그릇으로 아버지 앞에 늘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이 빈그릇에.. 하나님 자신의 모든 생명/영광/은혜를

가득 가득 부어주실 것이다. 여러분께 이런 은혜가 있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자아를

깨끗한 빈그릇의 상태로 매일 가지고 나아와서

‘하나님 내 자아에 들어와 주십시오. 내 자아를 당신께 올려 드립니다.’

이렇게 내 자아의 죽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즉,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이다.

 

자, 여기에 많은 분들이 계신다.

그런데 여러분 안에, 자아를 다 가지고 계신다. 

자기 자아가 깨끗하고 비어있는 만큼,

오늘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당신의 생명을 여러분께 부어주신다.

 

어떤 사람은 깨끗해서 다 비어있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부어주신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른 것으로 많이 채워져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붓는데, 그 남은 공간밖에 채울 수가 없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아의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자아를 비우지(죽이지) 못한 루시퍼

하나님은 천사들이 빈그릇으로 나오기를 원하셨지만,

천사장 중 하나인 루시퍼가 자기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임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자아를 독립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아서, 마귀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각자도,

내 자아를 세우고, 내 자아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나를 부각시키고, 나의 위대함을 드러내려 한다면,

사탄까지는 안 되어도, 사탄의 하수인으로는 쉽게 전락한다.

 

 

     그 하나님의 생명, 권세, 영광을 내가 받아내려면.. 내 자아가 반드시 빈그릇이 되어야 한다.

     내 욕심, 내 야망, 내 정욕, 내 교만, 내 거짓.. 이런 것들이 깨끗이 비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 자아는.. 종종 지옥의 어두움에 빠진다.

     나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포기하는 순간..

     마치 ‘타락한 천사’처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는 것이다.

 

▲사탄이 인간의 자아를 부추긴다.

타락한 천사는, 인간을 자기처럼 타락시키려 하는데,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자꾸 유혹했다.

자아의 교만과 독립을 불어넣은 것이다.

자아의 죽음이 아니라, 자아의 높아짐을 부추긴 것이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인간은 ‘타락한 자아’를 원죄로 내려받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원형을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다.

‘자기 자아를 죽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이 저주받은 자아를 물려받았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인간으로 태어나면, 이 저주받은 자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자아는, 나의 황폐와 파멸을 몰고 왔다.

그래서 어둠, 죄, 불행, 사망, 이와 유사한 모든 악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영원한 지옥에 들어갈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 자아를 미워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내 자아 안에

하나님의 생명, 거룩으로 가득 채워주신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내 자아의 죽음>이, 잘 안 일어난다. 

왜냐하면 내 저주 받은 자아가, 살아서 득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생명과 성령과 거룩으로 가득 부어주시려고 해도,

내 그릇이 그것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 수준 올라가다가, 늘 다운된다.

그러나 이 자아를 우리가 죽이게 되면,

내 자아속에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모든 부요함이 계속 부어진다.

 

우리는 이 자아를 깨끗한 빈그릇의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내 자아 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신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아’

 

▲자아는 타락한 인간 속에 들어와서 (대표적으로 하는 일이) 자기를 기쁘게 한다.

모든 죄의 뿌리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아가 도사리고 있다.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죄를 짓는 것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정욕, 탐심, 이기심, 욕심, 음란 등 (자아)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면서,

그 가운데서 참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오히려 자아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탐심, 이기심, 욕심, 교만, 음란 등의 죄에 빠진다.

자아가 끊임없이, 그런 <자아의 기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그래서 탐심, 이기심, 욕심, 교만, 음란으로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고, 이것들의 노예로 살아간다.

 

▲자아를 기쁘게 하기 위해.. 예배드리는 자들

육신, 음란, 이기심, 교만, 탐심 등

자기 마음에 온통 (자아를 기쁘게 하는) 우상으로 가득 채워놓고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예배를 드린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기 탐심과 욕심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로.. 자기 탐심과 욕심을 채워달라고.. 애원한다.

 

하나님을, 자기 욕심을 채워주시는 분으로(수단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다. 그런 하나님을 설교하면 큰 소리로 ‘아멘!’ 한다.

 

이들은 사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것이며, 자기 정욕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도구에 불과하다.

 

이렇게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섬기는 사람이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온전히 구원 받은 사람일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자기를 기쁘게 하는 탐심, 이기심, 교만, 음란은

지옥에서 올라온 것들이다.

 

그 지옥에서 올라온 것들로 가득 채워진 자아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일평생 사는 사람이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마치는 말

당신은 오늘 천국을 살고 계신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아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이 장차 천국에 간다.)

 

당신은 오늘을 지옥처럼 살아가고 계신가?

왜냐하면 당신의 자아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옥을 산다.

(이런 분이 장차 지옥에 간다.)

 

자아의 죽음은 쉽지 않다.

완전히 깨어지는 아픔과 수모와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예수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진다. 그게 자기에게 유익이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4영리 차원에만 머물고 있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만,

(본문의 베드로처럼) ‘십자가’를 전혀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분이 많다.

 

우리는 자기 구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매일의 삶이.. 천국을 누려야 한다.. 내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