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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문둥병자, 백부장의 연결성

LNCK 2011. 11. 2. 15:34

◈산상수훈, 문둥병자, 백부장의 연결성          마8:1~13        출처보기



◑산상수훈이 끝나자마자, 등장하는 ‘문둥병자 치유’    마8:1~4

 

▲마태의 본문 배치 의도

마5~7장에서 산상수훈이 끝났습니다.

산상수훈이 끝나자마자

마태는, 마8:1절부터,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이야기를 갖다 댑니다.


나병환자 이야기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다른 복음서에서 배치하는 것과, 마태는 다르게 배치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마태는, 마태 나름대로의 방향아래서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본문 마8:1~4에,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쳤습니다마는

마태(복음)의 의도는,

‘어떤 질병의 치유’ 또는 ‘나병을 고치신 기적’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의 주제는,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천국 먹고 배불러서, 욕심 없는 웨이터처럼 살아가자’              *배불뚝이 웨이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갖고 오신 천국 앞에 서있는,

인간의 실제모습은 어떤 모습이냐?

-모든 사람은.. 다 나병환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져오신 천국은,

‘나병 걸린 죄인을 치료해 준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복귀시키셨습니다.

여러분, 나병환자가 그 당시에 겪게 되는 삶의 변화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나병이라고 판정되자마자                          *한센병

짐 싸 가지고 정든 가족을 다 등 뒤로 하고

삶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 되어서

나병환자들만 모여 있는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그 골짜기에 다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신 다음에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정한 예물을 드림으로써, 네가 나병으로부터 나았다는 것을 확증 받아라!’ 8:4


이렇게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정한 예물을 드림을 통하여

다시 그 삶의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겁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셔서

삶이 죽은 자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고, (천국) 공동체로 회복시킨다는 겁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나병 환자의 기적적 치료’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 기적을 행하신 상징적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산상수훈 직후에.. 여러 가지 다른 사건을 제쳐 놓고,

이 ‘나병 환자의 치유’를 제일 먼저 배치한 이유가,

뭔가 상징적 목적이 있기 때문으로 봅니다.


마태복음은 ‘문둥병자의 치유’를  마8:1~4

마가복음은 ‘귀신들린 자의 축귀’를   막1:23~28

누가복음은 ‘귀신들린 자의 축귀’를   눅4:33~37

요한복음은 ‘물로 포도주 만든 기적’을  요2:1~12                 *거듭남의 기적이 가장 중요한 기적이다

각각 예수님이 가장 처음 행하신 신유/기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상징적 목적이 뭐냐 하면,

마치 나병환자가, 나병이 나아서, 정상적인 삶과 사회로 복귀하듯이,

‘아메리칸 드림’ 같은 영적인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으로 치유 받아

‘천국 사회에 복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이전의 삶이라는 것은,

‘위대한 개츠비’ 같은 삶이요,    주1) 

마치 쓰레기 매각장에 버려져서 나병환자들끼리만 모여서 살던

그런 나병에 걸린 환자의 삶이었는데,


그래서 죄와 나병 때문에

천국 kingdom of God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살고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갖고 오시고,

그래서 ‘천국 타운’에 살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산상수훈으로 삽니다.


무슨 IT산업계의 전설이라고 하고,

아무리 연예계의 전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천국타운 kingdom of God에 들어가서 살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도.. 세속의 나병에 걸려서 살다가..

천국의 삶에서 완전히 제외된 채로, 나병환자로서 살다가, 삶이 끝난다는 겁니다.



연이어 등장하는 ‘백부장의 믿음’       마8:5~13 


▲이 단락의 상징적 해석

백부장은.. 명령체계로 사는 존재입니다.

자기 스스로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8:8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8:9 (왜냐하면)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로마제국 안에서는, 황제가 완전히 명령체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진정한 왕이다’ 이겁니다.

백부장이 그걸 인정한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목수에 불과한 그 초라한 모습의 예수님을 통하여.. 진짜 천국의 지배력을 봅니다.

천국의 명령체계의 근원을 본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시고, 칭찬하신 겁니다. 눅7:9


바로 이것이

천국(타운)에 들어가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조항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초적인 지배력은 예수님께 있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천국(타운)에 들어가 살기 위해서 가져야 될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마음자세라는 겁니다.


여러분, 그거 갖기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하나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지배력이 주님께 있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론으로만 아는 것으로 그치기 쉽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아내가 미워요? 아내 때문에 화가 납니까? 남편 때문에 화가 납니까?

그러면 벌써 ‘천국타운’ 바깥에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


왜 원수가 생깁니까?

‘원수가 내 삶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내가 스스로 믿는 겁니다.

‘내 삶의 일정 부분 중에, 원수가 어느 정도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내가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수가 미운 것이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백부장의 믿음처럼,

이 세상의 모든 힘과 권세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고 믿으면,

나를 화나게 하는 배우자 때문에..

나를 화나게 하는 원수 때문에.. 그렇게 미워서 안달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원동력은,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믿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천국 타운’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다 황제(돈, 권력 등)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하나님과 이 초라해 보이는 예수님께서 지배하고 있구나!’


- 이걸 믿는 믿음이 없으면.. 천국의 삶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된다는 얘깁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도 자기 나병이 온전히 고쳐지지 않은 상태라는 거예요.


오늘날 이 세상의 황제가 누굽니까?

돈이에요, 돈.


돈의 지배력이 온 천지를 다 깔아뭉개고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니다. 돈이 아니다. 돈 때문에 일하는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굽신거려야 되는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내가 걱정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이 세상의 모든 일의 지배력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것’이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내게 천국의 삶이 시작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실 수 있겠어요 여러분?


내 원수도, 나에게 걱정을 끼치는 자식도, 회사의 상사도.. 아무도 아닙니다.

그들에 의해서 내가 괴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지배력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그들 사람이 나를 괴롭힐 수 있어서 괴롭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백 사람, 천 사람을 만나도

‘내가 만나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요,

나를 명령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을

실제로 믿고 사는 사람이..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가는 ‘나병환자’들이 아니라,

‘나병을 치유받은 자’로서, ‘백부장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천국백성인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인 마8:14~17 <베드로의 장모 고치는 사건>에서

'예수님이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도  8:17

하나님 나라 안에서, 이미 이루신 사역으로 보는 관점이 옳습니다.  병을 짊어지셨다


..................... 서론, 도입 예화  .................

 

주1)

◑기독교 신앙은 ‘아메리칸 드림’을 접는 것입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에 발표한 소설이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미국 중서부 출신의 가난한 집에 태어난 개츠비가,

동부로 떠나와서 데이지라는 애인을 사귀게 됩니다.


그런데 데이지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또 데이지 스스로가 아주 돈 많은 미국 상류층의 한 시카고 부잣집으로 시집을 갑니다.

남편인 뷰캐넌은, 그 시카고 부호의 아들이면서, 예일 대학 출신입니다.


이게 개츠비의 마음에 한이 맺혀 가지고,

내가 돈 벌어서 미국의 상류층으로 진입해서,

이제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옛날 애인이었던 데이지를

반드시 자기의 사람으로 되돌릴 것이라는 꿈을 갖고

열심히 동분서주하면서 노력을 하는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게 됩니다.


돈을 모으는 주된 방법이, 금주령에 반해서 몰래 밀주 제조 및 판매로

돈을 엄청나게 벌고, 뉴욕에 롱 아일랜드에 호화저택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수백 명의 인사들을 초청해서, 사치스럽고 방탕한 파티를 벌이면서

데이지에게 접근하고,

뷰캐넌의 아내가 된 데이지를, 자기의 사람으로 돌이키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는 중에,


결국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뷰캐넌의 거짓말에 속은, 그 동네 정비공 윌슨이라는 사람에게

개츠비가 오해를 받게 되요.


정비공 윌슨의 아내와, 개츠비가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있다고

데이지의 남편 뷰캐넌이 거짓말을 합니다.

실제로는 뷰캐넌 자신이, 정비공 윌슨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에 빠져있는데

개츠비가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비공 윌슨이 분노해서, 개츠비의 저택의 풀장에서 개츠비를 쏴 죽이고

개츠비가 그 파란색 풀장 물에 빠져죽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쓰려고 했던 이 이야기의 주제를 요약하면,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출세해서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것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적 허구성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 '개츠비'가, 아메리칸 드림의 어떤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아메리칸 드림은.. 내 생각대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아요.

아메리칸 드림 때문에

오히려 미국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그 드림이 없으면

‘나도 상류층으로 진입해야 겠다’라는 마음이 없으면.. 괴로움도 덜할 텐데..


자연스럽게 상류층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겠다는 것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처럼요!


▲기독교 신앙은.. <아메리칸 드림>을 접고, <천국 드림>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육신의 목숨이 붙어서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 세상 이 땅 위에서 펼치고 싶은 ‘아메리칸 드림’을 접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미국에 가서 미국의 상류사회에 진출하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아메리칸 드림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땅'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근데 기독교 신앙은

그 아메리칸 드림, 이 땅 위에서 펼치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아메리칸 드림을

접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땅 안에서 살고 있지만

마치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코리아타운에서 평생을 살다가 마치는 한국 노인들처럼,

이 땅 위에서 살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천국타운(하나님 나라)에서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으로..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변질된 기독교

이 땅 위에서 상류층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펼칠 아메리칸 드림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께 예배하는 것은.. 그건 기독교의 변질이에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세상 욕망을 접는 거예요, 이 땅 위에서의 세속적 꿈을 접는 겁니다.

이 땅 위에서의 비전을 얘기하고 꿈을 얘기하는 모든 설교가 다,

죄송하지만 변질된 것이라고 봐도 됩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천국 드림'입니다.


‘이 땅에서 잘살 것이다, 이 땅에서 높아질 것이다,

이 땅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복이다..’ 이런 말들로 도배를 한다면,

이건 다 변질된 기독교이며, 심하게 말하면 이단성이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