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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목적보다는, 하나님의 임재 민9:15~23 07.07.20.설교스크랩, 출처
◑가혹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인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매일 반복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구름이 진 위에 머물러서 있으면.. 이스라엘도 머물고
그게 떠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걸 보고 따라갔던 것이에요.
그런데 좀 황당한 얘기가 나옵니다.
민9: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여러분 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일까요?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건 ‘인도’가 아니라, ‘가혹한 사막의 행진’입니다.
지금 노약자를 포함한 25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 한모금 안 나오는 광야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자, 2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길게 잡아 한 달이라고 합시다.
한달에 걸쳐 갈 수 있는 그 길을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막에서 이게 뭡니까? (여기가 비치 리조트가 아닙니다.)
여러분 같으면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못 견뎌요.
적어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또한 모세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신다.. 라고 말한다면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지도력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2주일 안에 보통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거리를
단축해서 1주일 만에 갈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지도력 아니겠습니까?
이게 뛰어난 지도력이지요.
그런데 2주일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1년 동안 광야에 머물게 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나중에 총 40년이고요
이건 인도하심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매일 먹는 것이라고는 맹물하고 만나 밖에 없어요.
하도 불평하니까 메추라기 고기를 주셨습니다.
메추라기 고기가 맛이 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습니까? 광야에서 그렇게 지냈습니다.
인도에서 요가(고행)하면서 수도하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이런 상황을 안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 비전 보다는, 먼저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향해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 이렇게 기복주의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차단하십니다.
이것은 요즘 말로 말하면 비전을 차단하신 거예요. 비전이 뭡니까?
보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의 성공과 우리 인생을 꽃 피우기 위해서.. 우리가 보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 비전을 차단 시켜 버리는 것이에요.
인간적인 자기 비전을 보지 말고,
먼저는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을 주목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사건을 통해, 당신의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가나안을 보면서 갑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차단시키십니다.
왜요? 하나님을 보게 하시려고!
그게 광야 40년의 방황 혹은 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가나안 땅을 못 보게 하시고
바로 앞에 있는 구름기둥만 보게 하십니다.
구름기둥이 뭡니까?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고하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사건이고, 상징물이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
이 자리에 지금 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가나안이라는 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 '가나안'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오해하면 '그저 젖과 꿀이 흐르는 유복한 땅'으로 .. 그렇게 현세적인 땅으로만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현실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면이 있습니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의 임재, 통치>입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 통치>를 놓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만 목적 삼는 것은.. 오해입니다.
▲2. 목적의식 이전에.. 먼저 하나님입니다.
과거에 신앙적으로 많이 이야기 되었던 목적의식. <목적이 이끄는 삶>
‘나를 드라이브해가는 나를 몰아가는 것이 무엇이냐? 목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가나안 땅을 향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로 들어섰다면, 그 목적의식이 드라이브해갔다면
일치 단결해서 2주 만에 주파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갖는 목적의식을 단절 시키십니다.
도대체 구름기둥으로 인도되어지고 있는 와중에
1년 동안이나 오래 진영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목적의식을 갖고, 나를 드라이브 해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 목적의식이 중단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2주면 갈 거리를, 지금 구름기둥이 1년 째 머물고 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것을 어떻게 견뎠겠습니까?
‘목적의식 purpose driven life’으로 살았더라면,
가슴 답답해서(터져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무조건 쳐들어갔을 것입니다.
▲3. 홍해에서 세례 받은 후에.. 하나님의 임재 훈련
유월절은.. 우리가 세례 받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세례 받았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 뭘 얘기하냐 하면,
비전을 얘기하고 목적의식을 얘기하는데,
그건 다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야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세례 받은 후에,
젖이 흐르는 가나안 비전 이전에,
꿀이 흐르는 가나안 목적의식 이전에,
구름기둥의 하나님의 임재/동행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것도 40년씩이나!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으로 자기를 채우려 하고..
자기 목적의식, 비전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차단되고
오직 지금 현재 여기에 계시는 구름기둥으로 상징된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하는 것,
-바로 그 훈련을 위해서, 백성들을 40년간 훈련시켰다는 겁니다. ←주제
서두에서, 하나님의 광야 40년 인도를 ‘가혹하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렇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혹하리만큼’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훈련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동행/교제> 훈련이었습니다.
그 세대가 다 광야에서 엎드려졌더라도,
그 다음 이어진 세대는 40년 동안, 그것을 집중 훈련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붙여야 됩니다.
가나안에 붙이고 있는 한 안 되는 것이에요.
가나안에 붙이고 있던 장정만 60만명이 어떻게 됩니까?
가데스 바네아에서
“야 좋다. 이제 가나안을 정탐하게 되었으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네!” 하고 정탐했다가
그 가나안 사람들의 앞선 문명을 보고, 다 놀래 자빠진 것 아닙니까?
결국은 가나안에 마음을 두었다가, 다시 말해서 비전이라고 하는 것에 마음을 두었다가,
또는 목적의식을 갖고 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서 40년 동안 배회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정리하면
도대체 요즘(과거에) 교계가
왜 비전을 떠들고, 목적의식을 강조하는지 있는지.. 난 이해가 안 갑니다.
어떻하자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속량 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 한 분으로 만족하는 사람으로 변해가지 않는 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아세요?
홍해를 통해 속량 받은 60만명 장정 중에
2명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왜요? 모두가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된다 라고 하는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결국은 다 하나님을 놓쳐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에요.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지금 구름기둥을 보고 좇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목적의식이 자기 마음속에 있을 수가 있겠느냐는 거예요.
내가 내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더디게 인도하는 구름기둥은 무시해버리고,
그냥 가나안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구름기둥(임재)을 보고 좇아가는 자들에게는.. 비전과 목적의식이 있을 수 없어요.
오직 구름기둥으로 상징되는 지금 내 옆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자기 마음을 채우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와 자녀 세대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실제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할 때,
-비전, 목적의식으로 내가 인도함을 받을 것인가?
-하나님의 임재(구름기둥)로 내가 인도함을 받을 것인가?
우리가 오늘 심각하게, 생각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시의 백성들의 입장에 서게 되면
우리가 그들을 손가락질만 할 수가 없어요.
우리도 이 입장이 되었다고 하면,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을걸요?
그래도 이 사람들은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보고 홍해를 건넜다는
그런 어떤 기억의 잔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 정도라도 견뎠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 광야생활을, 그것도 40년씩이나.. 못 견뎠을 것입니다.
(지금도 고작 10년도 못 견디는 사람 많잖아요?)
여러분, 여름에 날씨가 조금 더워도 신경질이 빡빡 나는 판인데
이 광야에서.. 아니 왜 2주면 갈 거리를 (한 장소에서만) 1년 동안이나 머물고 있느냐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가 어디 있습니까? 이건 인간적으로 보면 살살 꼬여내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갈게. 젖과 꿀이 흐르거든?"
그래놓고 40년을 광야에서 돌리십니다.
이래도 하나님께 우리가, 내 인생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맡기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뭡니까?
우리의 삶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사업과 직장 관계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이 안 됩니까?
그 인도하심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젖과 꿀 다시 말해 돈이 많이 벌리는 곳,
큰 아파트, 좋은 차
이런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현재 너를 이끌고 있는 하나님인 내가 너와 함께 함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로 만족해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되지 않는 한 내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내 백성의 권 안으로 들어왔지만,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는 심령이 될 때는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 때는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끊어지고 만다는 겁니다.
몇 만 년인지 모르는 긴긴 세월 동안을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실 때 이미 아담 안에서 내가 태어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몇 억년을 하나님 마음 속에 기억하시다가
이제 태어나서 길게 살아야 70~80년 살다가
수억만 년 영원한 세계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뭐겠는냐는 거예요.
이 땅에서 무슨 비전을 바라보고, 유복하게 살아가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유복한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와 교제, 동행, 임재, 신부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게 되면.. 우리 인생은.. 만족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유복해도
주님과 나와의 교제, 동행, 임재, 신부됨.. 이런 것이 안 되면,
내 인생은 실패인 것입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 Karl Barth가 얘기한 게 그겁니다.
교회 밖에 있는 이단이 무서운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이단은 뭐냐?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이단>이라고 말씀했던 것이에요.
우리의 소원은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로만 집중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사건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에서 인도하시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내 인생의 비전과, 목적의식이 아닙니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의 구름기둥에 철저하게 복종하면서
기쁨으로 지금 내 옆에 계신 하나님으로 기뻐하시며 하루를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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