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땅이 없어진 자들 민16:1~50 07.08.15.설교스크랩, 출처
▶본문의 주제는, 반복해서 서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두 번 언급되고 있는
『분수』입니다.
3절에, 고라가.. 모세와 아론에게 와서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7절에, 모세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에게 말하기를, 특히 고라를 지적해서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니라」 하는 말이 나옵니다.
분수에 지나친 삶, 분수에 지나친 생각.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를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여러분, 분수는.. 자기에게 할당되어진 한도를 분수라고 말합니다.
그 분수를 넘게 되면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없어지는 겁니다. ←주제1
분수를 넘어선 사람들이.. 땅 속으로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내가 분수를 넘어서면.. 비록 땅 속으로 꺼지지 않더라도
내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다는 겁니다. 땅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처럼요.
왜냐하면 분수라고 하는 것은 내게 할당되어진 경계를 말합니다.
내게 할당되어진 구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그 분수를 넘어가면.. 내 구역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설 땅이 없어집니다.
▶본문 간략 설명
고라가 모세와 아론에게 와서 르우벤 자손들을 부추기고그리고 250명 지도자들을 부추겨서 모세에게 반기를 듭니다.
‘모세와 아론 너희만 지도자적 위치에 서있고, 아론 너희만 제사장 일을 독점하느냐?
그럴 이유가 도대체 뭐가 있냐?’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반기를 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 물어 기도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고라와 고라 자손 그리고 다단과 아비람 모든 자손들까지 다 모아서
장막 옆에 서 있는데.. 그들이 서 있는 땅 밑이 갈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산 채로 스올에 빠졌다. 정말 지옥에 떨어져 버린 거예요.
깊은 음부에 떨어져 버리고 그 땅이 다시 닫혀져 버렸습니다.
아! 무서운 일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땅이 자기들도 삼킬까 하여.. 도망가 버렸습니다. 민16:34
그래서 우리가 늘그막에까지도 삶의 흔적이 아무 것도 안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가 도대체 뭘 하며 살았는지 그 삶에 보람이 하나도 없고
삶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어요. (모든 경우가 아니라, 어떤 경우는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평생 자기 분수를 넘어서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땅이 내 구역을 삼켜버렸어요. 분수를 넘자마자 내 구역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거 아주 대단히 중대한 얘기입니다.
▶2. 이 문제를 좀 영적으로 생각을 하면, 내가 영적으로 분수를 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설 땅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이.. 에덴동산에서의 사건과 똑같아요.
아담과 하와가 자기 분수를 넘어서..
인간 됨에 경계를 지나쳐서..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그 즐거움의 땅(에덴의 말 뜻은 '즐거움 pleasure')에서 내 구역이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지금 즐거움이 없다. 내 삶에 기쁨이 없다.’
이거는 에덴을 상실하게 된 결과입니다.
그 에덴을 왜 상실하냐?
자기 분수를 넘었기 때문에 그래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인간 됨에 분수를 넘자마자
그 즐거움의 땅에서.. 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주제2
▶3. 내 분수란.. 지금 내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 고라 자손의 사건을 우리가 중심으로 볼 때
구체적으로 내 분수는 뭐겠습니까? 내게 허락하신 내 분수가 뭐겠어요?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에요. 지금 현재 주어지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내 분수라는 겁니다. ←주제3
천지를 지으시고
삼라만상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만사를 뜻대로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이 세상 속에서
내게 주어져 있는 지금 내 현실은.. 이게 바로 내 분수라는 겁니다.
아무리 내 속으로는 내가 잘난 것 같아 보이고,
내 속으로 내 자식은 남의 자식과 달라 보이고,
그래서 정말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대학과, 더 좋은 삶을 누려야 될 것 같이 여겨져도
지금 주어져 있는 이 나의 (내 기대치보다 낮은) 현실, 내 배우자의 현실,
내 자식의 현실, 내 사업의 현실, 직장의 현실 이게 지금 내 분수입니다.
잘못된 사람을 만나도 그게 내 분수고, 훌륭한 사람을 만나고
이 모든 것들이 다 현재가.. 바로 내 분수라는 겁니다.
▶근데 사람들이 이 분수 안에 머물지를 못합니다. 다 그 분수를 넘어가요.
내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금의 이 현실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영영히 못한다는 것이에요. 천국 따위는 생각하지 않지요..
이렇게 분수를 넘어가는 것..
가나안 땅을 들어가야 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가나안 땅의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본질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에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 됨의 본질을 넘어서지 말았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이 가나안 땅이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내 분수를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 사건(분수 지키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여러분, 왜 분수를 지키지 못할까요?
지금의 현실에서 이 현실이 내 분수, 내게 적당하고 내게 알맞은 환경이라고 하는
이 사실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이걸 받아들여지는 사람의 마음은 뭔지 아십니까?
언제나 감지덕지한 마음이에요.
왜 이게 안 받아들여질까요?
여기서 문제가 있어요.
자,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250명의 지도자를 끌고 모세에게 왔습니다.
사실 지금 모세 입장에서는,
자기 지도력에 자기 위치에 대해서 자기 삶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근데 이제까지 모세가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행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줬던
그런 기적과 능력과 권위를 생각하면
이 250명과 고라 전체를 다 잡아다가 당장 징계해도.. 크게 잘못된 게 아닙니다.
아니, 이제까지 출애굽을 지도하면서, 모세가 보여줬던 권위가 있는데..
그런데 첫 번째로 모세가, 이렇게 반기를 든 사람들 앞에서 한 행동이 뭐냐 하면
4절에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이렇게 얘기합니다. ←주제4
4절은 아주 짧아요. 보통 핵심이나 정답은.. 짧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이 모세가 무엇 때문에 엎드린 것입니까?
저렇게 나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고라를 살려두고 계시는
그의 생명을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래서 엎드리는 이유는 고라 앞에서 엎드리는 게 아니라
내게 반기를 들고 있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250명의 지휘자들
그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엎드린 것이에요.
“저들의 반기가 하나님 뜻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자기 분수를 지키는 사람의 태도라는 거예요.
▶한국 사람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고 하지요.
무슨 얘기입니까?
내가 못나고, 내가 부족한 것은 참아내는데
남이 넘치고 남이 잘 되는 것은.. 절대로 못 참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남이 잘 되는 것.. 그건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분수'라는 겁니다.
모세와 아론이 백성의 지도자가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분량'(분수)입니다.
근데 그 하나님을 못 보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들에 분수를 넘어서서.. 결국 나의 설 땅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그 마음이 어떠냐?
기쁨의 땅이 없어지고 마는 거예요.
어떡하든지 이 삶은 기쁨이 특징이에요.
기쁨이 없다는 것은.. 산 채로 땅에 삼켜버린 것과 같아요.
더 이상 가나안 땅의 복지에 살 자격이 없기 때문에
땅이 벌려져서 그들을 산 채로 삼켜버린 겁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갑니다.
살아있는데 기쁨이 하나도 없는 거 왜 그래요?
자기가 설 땅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삼켜버려졌기 때문에 그래요.
삼키운 바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기쁨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왜요? 자기 분수를 넘었어요.
왜 분수를 넘게 됩니까?
지금 주어진 현실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주제2
▶5. 그러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사건이 뭐냐?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신 사건입니다.
백날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고 불러도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가 그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자라는 사실을 놓쳐버리면.. 내가 하나님을 못 봅니다.
하나님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진짜 마음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에서.. 나 자신을/내 분수를 발견하는 겁니다.
사실은 주님의 십자가 자리가..
본래 나에게 가장 알맞은 자리이고, 내게 가장 합당한 자리이고, 내 분수입니다. ←주제5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내 모습 말입니다.
그 십자가 자리를 보게 될 때, 지금의 현실이 어떻게 보이느냐?
감지덕지로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이 바로 기쁨의 땅이 되는 거예요.
근데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서 놓치고 뭘 자꾸 보느냐?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남의 처지를 보고
옆집 아이는 공부가 어떻게 됐다는데
옆집 아저씨는 사업을 잘 해서 어떻게 됐다는데
자꾸 이것만 보게 되면
마음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걸 중단하게 되면
그러면 반드시 내 분수를 넘게 되고 내 분수,
지금에 주어진 이 현실을 넘어서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기쁨의 땅에서 내가 설 땅이 없어지는 거예요.
마음이 언제나 걱정/ 근심/ 불평/ 원망이 가득합니다. 그게 뭡니까?
산 채로 스올(무덤)에 빠져버린 거예요.
▶6. 모세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엎드러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뜻을 구하는 거예요.
그리곤 일어나서 말합니다.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6절)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 거예요. 이대로 하라.
250명 보고 향로를 들고 서 있으라는 거예요.
향로가 뭐예요?
하나님께 향기를 드리는 성소 안에 있는 향불입니다.
향불을 붙이는 게 제사장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너희 분수를 넘어서 제사장 직분을 탐을 냈어.
그러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향로를 들고 있어라.
들고 있는데.. 그 향불이 다 태워 죽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제사장직을 탐내다가 제사장직이 수행될 때 필요한 향로를 들고 있었는데
그 향불에 죽어버립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이웃들을 보고 탐내다가 분수를 넘어가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그것을 얻지요?
그 얻은 것 때문에 망합니다. 그 탐낸 것 때문에 망한다는 겁니다. ←주제6
내가 무조건 좋은 차를 탐내지 마시고, 기도하며 기다리세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너, 차 바꿔!” 하는 날이 있다니까요.
내 분수를 지키면,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주신 핸드폰, 이렇게 해서 주신 자동차,
이렇게 해서 주시는 것은.. 행복의 근원이 되지만,
내 분수를 넘어서 내가 쟁취한 그것들 향로,
제사장직을 탐내서 향불을 붙들고 있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 하나님 보는 대신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그 제사장직을 보면서...
그랬다가 그 부러워하던 제사장 직분의 향불 때문에
그들이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에요.
쉬워요. 여러분!
인생 너무나 쉬워요. 기쁘게 살 수 있는 게.
어떻게 하냐고요?
주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있으면 돼요.
그럼 내 분수를 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돼요.
지금의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내 분수에 가장 맞는 것이라고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거기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에요.
설 땅이 없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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