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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주님과 연합하는 생활

LNCK 2011. 12. 16. 23:55

◈주님과 연합하는 생활              요14:18~21                  출처보기


부제 : 사랑으로 지키는 계명                *요3:16만 알고, 이 원리를 모르시면 안 됩니다.

 

현대는 기술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여 온 세상이 휘황찬란하고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즐길 거리들이 많습니까?

그러나 정작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고독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핸드폰이나 TV, 컴퓨터 등을 항상 켜놓고 생활합니다.

만일 이런 것들을 잠시라도 떼어놓는다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를 것입니다.

만일 현대인들을 이 모든 것들로부터 얼마동안 떼어놓는다면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알찬 시간입니다.

그것은 그 시간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주님과 단둘이서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혼자서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길을 가거나 일을 할 때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낍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이 너무나도 강하고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감사와 감격이 충만하고, 행복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은혜가 충만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주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주님과 연합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바로 이 문제, 즉 우리와 주님과의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신다   :18


본문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주님께서는 이제 몇 시간 후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온 제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고아처럼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믿고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엄청난 충격과 절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벌써부터 그것을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8


▶위 18절,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19절에 나오는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과 맞지 않습니다.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가리킬까요?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만 가리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더 이상 육체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확실하고 좋은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이것을 주님과의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9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19a


여기서 ‘세상’은 안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세상 사람들은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안 믿는 사람들보다, 제자들에게 더 큰 충격과 슬픔과 절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시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9b


‘내가 살아 있고’

예수님은 이제 곧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너희도 살겠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생명으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연합되는가를 보여주는

너무나도 복된 말씀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제 주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으로 우리는 주님과 연합됩니다.


     그러면(연합하면) 믿는 자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이제 믿는 자는 주님께서 계속해서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계속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겠음이라”는 말씀은 :19

너무나도 은혜로운 복음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얼마나 원하고 사모하셨던지

아직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큰 소리로 외치셨던 것입니다.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성령을 보내주셔서.. 주님과 연합한다.  :20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되게 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0


예수님께서는 늘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으며,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만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실감나게 믿지 못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일 수 있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셨을 때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일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제자들은, 이제 그들이 주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으며,

승천하신 후에도, (성령으로) 그들 안에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육신의 귀로 들었던 것보다 더 분명하게 들렸고,

이제는 그 모든 말씀들을 확실히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 안에 계심을,

즉 자신들이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자기들이 하는 일이 예수님의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속에 성령(예수)님이, 주도하셔서, 하는 일이니까요!

 

사도들은, 당국자들이 그들을 붙잡아

다시 예수 이름을 전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예수님의 일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주님의 일 감당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죄를 짓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하는 소원을 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시면서, 나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당신은 주님의 그 말씀을 분명히 듣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제 내 안에는 예수님께서 사십니다.

 

이제 우리는 자아와 정욕을 따라 살던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인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지키는 계명  :21

 

이제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연합된 성도의 삶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1


주님과 연합된 성도는, 이제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처럼,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계명을 지키기 원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전에는 불가능했던 이 일이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4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령님과 연합하게 된 성도는, 

그 영, 즉 성령을 따라 행하게 되고,

그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 율법을 지키며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완벽주의자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숙한 성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성도는,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 주님을 체험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처럼 비천한 자를 기뻐하시고, 귀하게 쓰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을 깨닫는 성도는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도록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그 계명을 기꺼이 지키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키는 가운데서.. 또한 행복을 느낍니다. 멍에를 지고서 느끼는 쉼입니다.


오늘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쁘게 지키고자 힘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사례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설립하신 김준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썼던 때는 60세 때였습니다. ↓


그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세 형들이 차례로 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6․25때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동생이 불놀이를 하다가 불에 타 죽는 슬픔을 체험했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는 집 근처 벌목장에서 놀다가, 나무에 치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착하디착한 동생이

10살에서 16살까지 줄줄이 있는 딸 넷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일 년 후에는, 김준곤 목사님의 딸이

위암으로 고통을 겪다가, 어린 두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참혹한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고아원을 차려야 할 정도로, 모두 자녀들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 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같고,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이 있고, 과거는 회한과 슬픔뿐이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나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더럽고 아프고 서러워도

내일과 새해와 미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페이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 공주 같은 처녀성이 백지 같이 열려 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 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을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해 한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주님을 호흡하며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로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이것이 주님과 연합된 사람, 주님을 모신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겠습니까?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능력과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성도에게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주의 깊게 듣고 순종하십시오.

항상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쁘게 순종하여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십시오.

날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