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를 '치라'와 '다스리라'는 같은 의미 계2:27 편집자 글
신학 전공자들만 보세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뜻의 두 단어
요한복음 21장에는 비슷한 세 말씀이 나온다.
요21:15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feed
요21:16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feed
요21:17 내 양을 먹이라 feed
KJV 성경에 보면, 위의 세 구절 다 feed(먹이라)로 번역해 놓아서
세 단어가 같은 뜻처럼 보이지만,
헬라어 원문상으론, 그렇지 않다. 비슷하지만 약간 다르다.
위 구절에 스트롱 컨코던스 넘버를 붙여서 보면... *각 단어에 붙인 고유 번호
요21:15 내 어린 양을 먹이라 #1006
요21:16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4165
요21:17 내 양을 먹이라 #1006
그러니까 ‘먹이라’와 #1006
‘치라’ #4165의 두 단어로 압축된다.
두 단어의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용례를 살펴보면,
◑1. 내 양을 먹이라 #1006
‘먹이다’ 는 헬라어로 ‘보스코’인데
http://www.blueletterbible.org/lang/lexicon/lexicon.cfm?Strongs=G1006&t=KJV
위 컨코던스에 의하면, 신약에 9번 나온다. 살펴보면,
마8:30, 막5:11에서, 예수님이 돼지 떼를 강물에 몰살시키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가다라 지방 사람들이 돼지를 ‘치다’ 할 때.. 사용되었다.
또 눅15:15에, 탕자가 돼지를 치며 쥐엄열매를 먹었을 때도,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다.
같은 단어 ‘보스코’가 본문
요21:15 내 어린 양을 먹이라 #1006
요21:17 내 양을 먹이라 #1006 에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먹이다’의 뜻은,
양, 돼지 같은 가축에게 풀이나, 기타 사료 같은 것을 먹인다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음식을 먹인다는 뜻이다.
▶말씀을 .. ‘먹인다’고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라’고도 하셨지만,
종종 말씀을 ‘먹이라’고 하셨다.
‘먹인다’는 표현은.. ‘가르친다’는 표현보다.. 더 강조적 표현이다.
‘먹인다’는 표현은.. ‘안 먹이면 죽는다’는 뜻이다.
‘안 먹이면 성장이 멈춘다’는 뜻이다.
(비교해서 ‘안 가르치면’.. 사람이 죽거나, 성장이 멈추지는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4:4
-이 말씀에도 ‘먹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무리 5천명을 먹이시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마14:16
궁극적으로 그것은 ‘생명의 떡’이었다.
히5:13~14에도, 말씀은 ‘먹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구약 에스겔 때부터 사용되었다. ☞ 배에는 쓴 복음
정리하면,
소, 양, 돼지 떼 등 모든 가축들은
‘안 먹으면.. 죽는다!’
그래서 소나 양은 하루 종일 풀밭에서 풀을 뜯는다.
그래야 살기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하고, 건강을 유지한다.
그 가축들이 ‘먹는다’는 똑 같은 단어(보스코)를
예수님은 ‘내 양을 먹이라’에 사용하셨다.
안 먹이거나, 안 먹으면.. 이내 병 걸리고, 얼마 후에 죽는다.
‘먹거나’ ‘먹이는 일’은 ..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나는 ‘잘 먹고’ 있는가?
또는 ‘잘 먹이고’ 있는가?
일주일에 한 번 꼴을 뜯는 것으로는..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꼴도.. 때로는 신선하지 못할 때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일주일에 한 번 ‘먹음 feeding’으로는.. 어림도 없다!
‘내 양을 먹이라’와 비슷하게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
◑2. 내 양을 치라 #4165
‘치다’ 는 헬라어로 ‘포이마이노’인데 #4165
가축에 풀을 ‘먹인다 feed. 돌본다 take care’는 뜻도 있지만,
아울러 ‘다스린다 rule ’는 뜻도 있다.
그런 의미를 둘 다 연관지어서, 해석해야 한다.
http://www.blueletterbible.org/lang/lexicon/lexicon.cfm?Strongs=G4165&t=KJV
위 컨코던스에 의하면, ‘치라’(포이마이노)는 신약에 11번 나온다. 살펴보면,
①마2:6,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4165
‘목자가 되리라’의 원래 뜻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리라’이다. #4165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한국어 어감이.. 강력한 군주적 통치를 뜻하지만,
요21:16의 ‘내 양을 치라’ 할 때와 똑같은 단어이다. #4165
(아래 계시록에서 3구절을 더 살펴보겠지만)
‘다스리다’는 말이.. 강력하게 때려잡는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양을 치듯이 다스리는데..
그것은, 양을 먹이는 것이고.. 안 먹으면 달래서 먹이고,
그래도 안 되면 지팡이와 막대기로 징계를 하더라도.. 시23:4
어쨌거나 ‘군주적 통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글성경에 ‘목자가 되리라’로 의역해 놓았는데,
원어대로 ‘다스리리라’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의역을 잘한 것이다.
②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치게) 하셨느니라.
똑같은 단어 ‘포이마이노’ 이다.
그러니까 다스린다. 보살핀다. (양떼를) 친다. 먹인다..는 뜻을 갖고 있다.
③고전9:7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여기서 기른다는 뜻도 다스린다. 보살핀다. (양떼를) 친다. 먹인다..이다.
④벧전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친다’ .. 즉 다스린다. 보살핀다. 먹이는 사람은
그에게 사명감이 있다는 증거다.
자기에게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포이마이노’(치게) 되어 있다. 주1)
그 의미에는 ‘다스린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양면을 보자)
⑤계2:27 ←하이라이트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포이마이노)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위 구절의 문맥은.. 철장(쇠몽둥이)으로 질그릇 깨뜨리듯 내리친다고 하니까
그가 (여기서 주어는 문맥상 ‘이기는 자, 성도’ 또는 ‘그리스도’)
마치 군주적 억압으로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문제는 ‘다스린다’는 단어가.. ‘포이마이노’이다.
요21:16의 ‘내 양을 치라’와 똑같은 단어이다.
계12:5, 19:15도 마찬가지다.
⑥계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⑦계19: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여기서 우리는 ‘다스린다’는 뜻을,
문맥상으로는 ‘전제 군주적 다스림’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일면一面적 해석이다.)
물론 그런 뜻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일면 다른 뜻이 있는데,
그것은 (다스리지만) 보살핀다 먹인다는 뜻이다.
즉, 계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계12:5, 19:15도 마찬가지다.
이 구절들이 ‘엄하게 다스리지만’
다른 한편으론 ‘보살피고, 먹이신다’는 뜻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만 보지 말고, 양면을 둘 다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계시록에서 ‘다스리시는’ 주님은.. 문맥상.. 매우 엄하신 주님으로 이해되지만
(그것은 맞다. 그러나 일면이다.)
그 이면에는, ‘내 양을 치라’하시듯
take care하시고, 먹이시고, 보살피시는 주님이란 사실을
그 양면을 둘 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이율배반적이며, 두 얼굴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돌보심에는.. 그 속에 다스리심이 내포되어 있으며,
주님의 다스리심에는.. 그 속에 돌보심이 포함되어 있다.
요21:16, 내 양을 치라(돌보라)와 take care
계2:27, 철장으로 다스리신다는 구절을 rule
너무 한쪽으로만 극단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단어(포이마이노)를 쓰고 있으니까!
※그럼 군주적 다스림을 뜻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막10:42, 이방인의 집권(아르호)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아르헤)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적용하면, '주여,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주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주소서'(둘은 같은 말, 주기도문)
또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간섭이 내게 임하면.. 좋은 면도 있지만, 괴로운 면도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철장 iron rod 이 내게 내려쳐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take care도 있다.
영생과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다 좋은 것이지만,
현세적/현실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과 은혜'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를 회개시키는 방향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요21:16은, 계2:27과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오기 때문이다.
또한 양떼를 '치는' 목회자도, 무조건 사랑, 은혜만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not 자기 혈기로) 양떼를.. 말씀의 검으로.. 관절과 골수와 심령을 쪼개야 한다는 것이다.
..............................
주1)
위 구절 벧전5:2에서 ‘자원해서’를 잠시 짚고 넘어가면,
오늘날 작은 교회들이 심각한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 아시듯이, 여러 사회 경제적 압박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위기는.. ‘사명감’을 점검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명감이 있는 목자는.. 자원해서/양무리를 치게 (돌보게) 되어 있다.
꼭 내 교회에 나와야 '양'이 아니라, 양은 세상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 병원, 학교, 요양원, 군부대 등
요21:16의 표현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 양떼를 자원해서 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삯꾼은, 그 삯을 못 받으니까, 그만둘 것이다. 자발적으로 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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