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9

중매쟁이 바울의 열심

LNCK 2011. 12. 20. 18:38

 

◈중매쟁이 바울의 열심               고후11:1~3              09.04.22.설교일부녹취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11:2


◑바울의 사역 목적, 중매


▲바울이.. 열심 내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예수님께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다시 말하면, 목회자 바울은,

신자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의 번영으로 이끈 것도 아니었습니다.

신자들이, 자기 마음의 안식을 얻는 길을 안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럴싸한 교회 부흥(확장)으로 이끈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끌었는가요?

정결한 처녀로 이끌었습니다.

주님보시기에 합당한 신부의 모습을 갖추도록 이끈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런 바울과 같은 목적이 있는가요?

‘그리스도께 정결한 신부를 중매하는 중매쟁이’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로 갖추어질 수 있도록

성도들을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런 목적, 방향성,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대다수가, 이런 분야엔 개념조차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집단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 지인 K목사님은,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는 정결한 신부가 될 때까지

자신에게 전혀 만족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100% 동의합니다.


아무리 성도님들이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불러도,

아무리 목소리 높여 부르짖어 기도해도,

희생과 헌신이 타에 모범이 되어도,

아무리 놀라운 기적과 은사가 나타나도..

(이런 것들도 다 귀한 것들이고, 교회 성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는 정결한 신부가 될 때까지

목회자인 자신에게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K목사님의 그 말을 들을 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저 마음이 제게도 똑같이 있습니다.

저 소원이 제게도 똑같이 있습니다.

그게 끊이지 않는.. 제 속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으로 ‘아멘!’ 했습니다.  



◑신부는.. 특권도 있지만, 고난도 있습니다.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어느 신부의 고백을 인용합니다.

 

‘주머니가 얇았던 남자를 사랑한 까닭에..

신혼 때는 17평 서민아파트에서 9식구가 함께 살았어요.


시외할머니.. 시부모님.. 시누이 둘, 남편과 저.. 자녀 둘


남들은 삶이 힘들겠다고, 안쓰러운 듯 저를 쳐다보았지만..

의외로 저는 어우러져 사는 것은 재미있었어요.

 

지금 결혼 19년째인데, 

지금은.. 시부모님.. 남편과 저.. 아이들 둘

(할머니는 소천하시고, 시누들은 시집가고..)


예전에..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그리 고백하면서도..

결혼 전에는..

사실 뭐가 뭔지 잘 몰랐죠.

 

+++


예수님과 그저 멀찍이 알고만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덧 그 분과 오랜 시절 사귐을 끝내고..

그런데.. 주님이 이제 저랑 결혼을 하자 하셔요..


이제야.. 이 나이에야.. 정말 조금은 알겠거든요..

남편과 결혼해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남편과 사는 여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제가 지난 19년 동안..

신랑을 사랑해서 사는 신부가 무엇인지.. 다 경험했잖아요!


그래서인지

예수님이 결혼하자고 하시는 의미가..

이제는 좀 달라져서, 제게 인식되어 집니다.


혹시.. (예수님과) 결혼하셨어요??


저는 고민을 합니다..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나는 (예수님과) 결혼하기에는 너무나.. 너무나..  부족한 여자인데..


예수님은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데..

영적으로 현모양처형도 아니요.. 정숙한 여자도 아닌데..

그래서.. 궁금합니다.

예수님은 왜 나랑 결혼하자 하실까요?’    인용끝 05.04.28


위 인용글의 주제를 요약하면,

주님의 신부로, 주님과 결혼해서 사는 것은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엔.. 신부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이 따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신랑의 신부이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면,

무조건 ‘특권, 축복’으로만 여기는데,

그게 아니라.. 의무와 고난 가운데.. 그 가운데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부의 특징 - 진실함과 깨끗함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제가 두려워 떠는 것은,

(이것은 제 자랑이 아니라, 주님이 제게 주신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날까봐 .. 그게 제가 두렵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직분자를 세우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적당히 세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그게 진짜 그 마음이 없으면,

‘정결한 신부’로 가는데.. 직분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사 받은 사람이 아니고, 성장하는 교회도.. 아닙니다.

능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도.. 우리의 참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안 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진실하고,

주님이 자기 삶에 전부인 사람!

신랑은, ‘자기 밖에 모르는 신부’를 원합니다.

신부가.. 신랑 말고, 자꾸 다른 대상에게 한 눈 팔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이 길로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길로 달려갈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 기도응답, 자신의 문제 해결에.. 전부를 걸고 신앙생활 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나를 위하는 하나님으로,

-나를 돕는 하나님으로,

-주님의 손과 보호, 즉 공급과 보호만을 원하는.. 그런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소위 기복주의 신앙입니다.


신앙에 기본적으로 복을 바라는 바탕이 깔려 있습니다만,

그게 우리 속에 전부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게 우리 신앙의 최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수적으로 따라 올수는 있겠지요.

목표는 ‘신부 bride’가 되는 것입니다. 

                                           ☆관련글/ 신부’ 개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신부’가 대세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나도 같이 떠 보려는 마음!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전부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부인가요, 음녀인가요?

과거에 술집에 가 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부인보다 훨씬 더 상냥하게 대하고, 애교를 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 남자의 돈을 뽑아내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물론 남자도, 여자에게 그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고 애쓸 수 있지만, 주님의 사랑, 신랑 되심의 가치를 못 보고,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삶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

뭘 뽑아내려는 데서, 만족을 얻으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은 도전합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신부로, 그리스도께 중매하려 하노니..’



◑신부의 특징 - 핍박과 고난을 감수함


▲바울의 사도됨의 특징

바울은 자기가 사도인 것을 주장하는데,

그 특징이 ‘내가 주를 위해 핍박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참 사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11:23~25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런 핍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고   (우리 같으면.. 1번 맞고 벌써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태장(큰 몽둥이)으로 3번 맞고

-돌에 맞고,

-굶주리고


그러나 바울은

사도 였고, 그리스도의 신부였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당했지만..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신부의 특징 - 고난 감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다면.. 그러고도 도망 가지 않았다면,

이게 진정한 신부의 모습입니다.

신부는.. 아무리 핍박을 받아도.. 신랑을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음녀들은 핍박 받을 때가 되면.. 남자(주님)를 떠나버립니다.

그에게 더 이상 나올게 없으니까요!


나올 게 없으면 떠나버리는 사람,

자기 유익을 위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신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진짜 아내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떠나지 않습니다.


▲신부가 아니면.. 종교생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주님을 위한 핍박 받음이 없고

그저 ‘나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한다면   출32:23

그들은 신부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칙적으로 모르는 사람이며,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생활 하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목 놓아 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에 10~20시간 이상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안 빠지고 새벽기도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타종교인들 보세요.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 얼마나 열심인가요?

가난한 나라에서, 없는 돈 다 털어서, 성지순례를 가기도 합니다...

종교생활도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신앙생활이, 신부 자세가 없으면, 종교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종교 생활도, 그 이상의 열심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종교생활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신앙생활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진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지..


▲마치는 말

우리 성도님들은, 정말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지 않으면,

그래서 핍박과 고난도, 그 사랑으로 능히 견디고 이겨내는 사람이 아니면,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경지에 들어가진 못 하더라도,

10년, 20년이 되었는데도.. 성장이 없으면..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 낭비이며.. 영생을 못 얻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되어야 가족이고, 주님이 그와 함께 거하십니다.

진짜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제 자신부터 시작해서, 이 땅에 신부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은사만 있고, 주님을 닮지 않는 것.. 우리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유명한 누구가 있어서, 그 사람 보러 교회 오는 것.. 그게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있는가요?

그런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요?


그게 될 때까지.. 저는 씨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튕겨 나가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거 아니면, 안 되니까 (구원 못 받을 수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또한 제게 책임도 따르는 것입니다.

     이대로 안 하면, 주님께 내가 혼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도 마찬가지고,

     우리 신앙생활을 점검해 봅시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이런 방향으로 목적으로 삼고 나가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어떤 유혹들을 접하게 될 때

     불쑥 불쑥 올라옵니다.


목회 방법론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되어야 하고, 같이 함께 이 목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타야 합니다.


아니면, 주님이 나에게 가까이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저나 여러분이나 안 변합니다.

소리쳐 기도하건, 뭘 하건.. 내가 안 변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증거가 있어야.. 진짜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손해와 불이익을 받는 증거가 있어야.. 진짜입니다.

그건 주님을 사랑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게 될 때까지는, 제 자신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열심히 출석하는 성도를 봐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것 갖고.. 만족이 안 됩니다.

봉사 많이 하고,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만족이 안 됩니다.


여러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날 때까지는

내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기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주님이 제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그 곳까지 가기 전까지는

우리 마음에 만족함이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