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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은.. 주님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것

LNCK 2011. 12. 28. 22:27

https://www.youtube.com/watch?v=rlZj4LVQx_g 

사역은.. 주님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것                  모두 펀 글               출처

    

얼마 전 ‘그루터기 목장’에서 후원하는 김해영 선교사님이

수요 선교간증을 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갓난아기 때

술에 만취한 아버지로 인하여 척추를 다친 신체장애자입니다.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불우 청소년을 돕는 편물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크리스천 선생님을 만나서

돌처럼 굳어진 마음 문을 열고, 15세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국제 기능대회> 편물 종목에서, 금메달을 3번이나 수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서 철탑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가서, 14년을 편물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김해영 선교사는, 몇 년 전 기회가 주어져서 미국에 유학을 와서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7년 만에 사회복지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명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니까, 모두 미국에 주저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해영 선교사는 남 몰래 3가지 제목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무도 안 가려는 곳에 저를 보내주세요.”

“제 기술이 잘 사용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사역했던 곳보다 더 가난한 곳으로 보내주세요.”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김해영 선교사를 부탄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탄 정부와 연계해서, 편물 기술을 전국에 보급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부탄은 일반 선교사가 못 들어가는 불교 국가이고,

국민 1인당 평균 수입이 보츠와나의 1/4 정도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3가지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이 이전에 보츠와나에서 처음 사역을 할 때에

얼마 안 되어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답니다.

동역자들이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혼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떠나야 되는가?

떠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황량한 아프리카 사막에서 무릎 꿇고,

가슴이 답답해서 소리조차 못 내며 신음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해영아, 나랑 여기서 같이 살자.”  

 

선교사들이 포기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못한다고 하셔서,

그곳에 남아 하나님과 더불어 즐겁게 살다보니

14년의 사역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해드리는 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역이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같이 살다가 하나님의 필요가 눈에 뜨일 때에

그의 심부름꾼이 되어서 심부름하는 것이 사역입니다.

 

 

 

 

◑ 선택과 결말               갈6:7~10          출처

 

영국 리버풀에 있는 국제노예박물관에는 노예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몇 세대에 걸쳐 가해졌던 잔혹한 실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탐욕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지불했던 대가는 참혹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박물관의 벽에는 한 때 노예였다가 인권운동가가 된

프레데릭 더글러스의 다음과 같은 심오한 경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동료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사람은 누구나 결국에는

그 쇠사슬의 다른 한쪽이 자신의 목에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바로 우리자신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것을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라는 표현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선택에는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준엄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미워하기로 작정하면,

그 미움은 우리가 전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형태의 결말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멀어지게 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무력해져서

그리스도를 효율적으로 섬기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이렇게 선택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9-10절).

 

탐욕과 증오의 씨를 뿌리면

썩고 잃어버리고 고통스런 작물을 거두게 되나

사랑과 친절의 씨를 뿌리면

영원한 열매를 거두어 들입니다.

 

오늘 뿌리는 씨가, 내일 수확할 열매를 결정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어느 날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남루한 차림의 늙은 거지가, 길을 막으며, 자선을 구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늙은 거지를 불쌍히 여겨

서둘러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형제여!

돈이 있었으면 기꺼이 당신에게 줬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 내겐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러자 톨스토이의 말을 들은 늙은 거지가

허리를 무릎까지 구부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미안해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나, 당신은 돈보다 더 큰 걸 제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저를 따스하게 ‘형제’라고 불러준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은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삶에 지치고 힘겨워 하는 이들에겐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참으로 크고 거룩한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삶이라는 것이 한없이 벼랑 밑으로 추락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이를 악물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다시금 삶의 희망을 다짐할 수 있는 이유는

주위의 따뜻한 사랑과 따뜻한 격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여태 살면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던 적이 있습니까?

당신 곁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내일을, 함께 함을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석 달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일본 속담

 

...................................

 

 

◑면류관, 상, 상급                 계11:18         출처

 

성경은 분명히 영적 결산을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상급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면류관과 상과 상급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면류관

구약에서는 제사장들의 임직식(출29:6)에서

대제사장은 성패(네제르)가 청색 끈으로 고정된 관을 머리에 썼습니다.

 

왕들도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왕관(면류관)을 썼습니다(시21:3).

 

신약에 와서 ‘면류관’은

주로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수여한 관이나 화관(스테파노스, 월계관)을 의미하였는데

 

이것이 종말론적으로 쓰이면 영원한 면류관(계 2:10; 3:11; 4:4 등)을 의미하므로

상급의 개념과 통한 다고 봅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입니다.        *  성경에 나오는 5개의 면류관

 

▲2. 상 또는 상급

바울도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prize)을 위하여 쫓아간다(빌3:14-15)하였습니다. 

 

면류관 이외에도 ‘상’(prize, 브라베이온) 또는

‘상급’(reward, 흠정역에 이와 관련된 단어들은 신구약 포함 101회 나옴)을 나타내는

성경 단어는 대단히 많습니다.

 

(구약= 사카르, 페리, 솰람, 에케브, 가말, 게무아, 마쉐트 등)

(신약= 미스도스, 아포디도미, 안타포도시스, 미스다포도시아 등).

 

구약에서 번역된 상급 개념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받을 만할 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택하신 언약 당사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표현되었습니다(창15:1).

 

하지만 단순한 일방적 은혜만 아니라, 신실함에 대한 상급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룻2:12).

 

▲신약의 상은, 종말론적 상급 개념

구약에서 상급 개념은 주로 세상적인 번영이나 땅의 복과 관련되었습니다(출20:12, 레25:18-19).

 

하지만 신약으로 넘어오면 종말론적 상급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원한 구원 자체가 상급인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마25:34, 계11:18).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구약의 복은, 신약의 복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실체인 신약을 제쳐놓고, 그림자인 구약으로 복을 설명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상급(마 16:27; 롬 2:16; 벧전 1:17; 계 22:12),

즉 구원을 얻되 구원의 질은 다릅니다.

 

부끄러운 구원도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고전 3:15, 벧전 4:18, 요일 2:28).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결산평가를 받습니다(고후 5:9-10).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성경은 상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를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적 관점의 공로와 업적에 의한 유물론적 보상이 따르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마20:1-16).

 

죄인이요 죄성을 지닌 인간이

죄 없는 저 세상의 상급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때로는 불순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충성한 성도들에게는 분명 모두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계11:18).

이것이 중요합니다.

 

계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인간적 상급 개념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천국 상급이 어떤 것들인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전지전능하심, 사랑, 공의 등)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상, 상급은.. 천국에서는 돌처럼 흔한 것이므로, 그건 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서 모든 성도들은

주님이 주시는 상급에 대해 감사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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