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무엇입니까? 요20:2, 행4:36, 스7:6 펀 글, 편집
◑1.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요20:2
사도요한은, 참 부러운 별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던 제자’였습니다. ↑
당신의 별명은 무엇입니까?
▶저는 어릴 적 별명이 ‘말’입니다.
제 얼굴에 말에 물린 상처가 크게 나 있기에 자연스럽게 불린 별명입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그렇게 불립니다.
별명은 단순히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려고 붙여지기 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에게만 있는 어떠한 특징이나, 독특한 개성에 의해
불려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기에 별명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름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중요 사건에 항상 동행한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면서
예수님으로부터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요,
베드로와 함께 무덤으로 달려간 제자입니다.
그런데, 요한에게도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 불리는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그런 별명이 붙여졌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유독 요한 사도만을 더 많이 사랑하신 것일까요?
좀 인간적인 생각이지만, 그 모습이 얼마나 많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면,
요한의 별명이 “사랑받는 제자”가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 사도만을 편애하신 것일까요?
▶곧, “많이 사랑한 사람은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에서 알려 주듯이,
요한은 예수님과 늘 함께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다른 제자들 보다, 예수님과 더 깊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는 모습이 다른 제자들 눈에는
‘예수님께서 요한 만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란 인사를 하며 요삼1, 2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고, 늘 체험했기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귀중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4:8, 16
이렇게 요한 사도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늘 사랑 안에서 살아갔기에
다른 사도들과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 라는 또 다른 이름이요, 요13:23, 19:26, 21:7, 20
별명으로 불렸던 것입니다.
▶별명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에게만 더 크게 보이는 특성이나,
독특한 개성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별명, 저의 별명, 요한 사도의 별명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별명이라 하더라도, 요한 사도는
영원하신 예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받던 제자” 라고 불린 별명이라
돌아가신 후에도 그 별명이 영원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별명은 자신이 듣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 안에서 다른 신자 분들이나,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별명을 듣고 싶습니까?
▶부족한 저의 강론을 인터넷에 올려주는 한 형제님께서는
저에게 ‘주님의 작은 그릇’ 이란 별명을 붙여주셨지만,
그 별명은 너무 황송할 따름이요,
저는 ‘늘 주님의 사랑을 받는 죄인’ 이란 별명을 갖고 싶습니다.
해바라기가 따스한 해님을 통해 싱싱하게 되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듯이,
저 역시 주님의 사랑스런 시선, 손길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스런 손길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너무나 쉽게 죄인이 되어 버릴 그런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홍
◑2. 바나바라는 별명을 가진 요셉
행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의 별명을 바나바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의 본명보다, 별명 바나바가 더 널리 알려질 정도로,
그는 정말 ‘격려/위로’의 삶을 살았나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요셉을 보면 힘이 났다. 저절로 위로가 되었다.
요셉의 말을 들으면 용기가 생겨났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의 별명을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오규근 씨는 키가 1미터도 되지 않는 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칼슘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희귀병에 걸렸다.
그 병은, 뼈가 자꾸만 사라져 버리는 병이다.
길을 나설 때면,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다녀야 하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자기를 쳐다보며 측은히 여길 때, 자기가 너무 힘들었단다.
그는, 죽고 싶어도, 자신의 힘으로는 죽을 수가 없는 그런 신세였다.
그는 라디오에 자신의 형편을 써서 보냈다.
그 프로그램을 들은 어느 분이,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
“나는 하반신 마비라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목발이라도 잡고 걸을 수 있으니 행복한 겁니다.”
그때 오규근 씨는 깜짝 놀랬다.
살아오면서 자신을 보고 "행복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소개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완전히 변했다.
이제는 그가 하는 일이 편지 쓰는 일이 되었다.
자기 자신도 편지 한 통으로 살아난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일이 그의 일과가 되었다.
지금까지 보낸 편지가 자그마치 50만 통이 넘는다고 한다.
오규근 씨는 이렇게 편지한단다.
"나 같은 사람도 행복한데.. 건강한 당신들은 왜 그렇게 불행한가요?"
◑3. 학사 에스라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저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로서.. 스7:6
에스라의 별명은 ‘학사’였습니다.
다른 말로 ‘율법에 능통한 학자’입니다.
그는 율법에 능통한 말씀(설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그 유명한 <수문앞 광장 부흥>을 이끈 학사 에스라
백성들은 수문앞 광장에 모두 모였고, 느8:1
제사장 겸 율법학자인 에스라는 유다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8:2-3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8
그 율법의 말씀을 들은 백성은 울며 :9
그들이 이방 왕들의 종이 되고, 자기들의 삶이 곤핍해진 원인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데 있음을 자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도,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회개로 이끄는.. 말씀에 능통한 학자’입니다.
그저 지식적인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서,
청중의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말씀의 검’을 가진 자.. 누구 없습니까?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시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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