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3편 모음 모두 펀 글
◑1. 공동체 라는 선물 전4:9-12 출처
작가 앤 라모트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설교는
단 한마디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한마디는 “나도 그래”라는 말입니다.
꿈이 산산이 깨져 의심이 밀려들고 울고만 싶을 때는
똑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일도 없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 “내 상황이랑 똑같네.”
이런 말 한 마디면.. 순식간에 고통이 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 한 마디는 마치 초강력 연고처럼
우리의 찢어진 상처를 순식간에 아물게 합니다.
여러분 주위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주로 위기 상황에서 가까워 진 친구들이 아닌가요?
힘든 순간을 함께하면 관계가 얼마나 끈끈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기자는 공동체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9-12
마찬가지로 공동체에 얼마나 깊이 속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힘들 때 위기의 순간에
그 공동체를 떠올리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라는 선물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다른 말로 ‘영적인 교제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입니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 있지 않으면, 위기의 순간에 최악의 선택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공동체 안에 있지 않으면 절망으로 흐르기가 훨씬 더 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가 고통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도움으로 고통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외국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고통 속에 있던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공동체를 선물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암흑 같은 순간,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룻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눌 뿐 아니라,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펴 줄 사람.
나오미에게 룻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룻의 진가를 곧바로 알아봤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룻1:21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 룻이 바로 옆에 있지만,
나오미는 빈손으로 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오미가 그때까지는 룻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상처가 아무리 깊어도
공동체라는 선물을 마다하는
정말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실망이 아무리 커도 “나도 그래”라는 말을 듣지 못할 정도로
넋을 잃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 여러분이 겪었던
동일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지체가 생각난다면
찾아가 '공동체'라는 선물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잡고 조용히 “나도 그래”라는 한 마디로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공동체'를 선물하실 때
거부하지 마시고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삼하23:5 출처
이 언약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삼하23:5
오, 하나님이라는 말은 얼마나 위대한 말입니까!
여러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이 세상을 있게 하신 그 하나님께서
높은 보좌에서 몸을 굽혀 여러분 손을 잡으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놀라운 겸손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다.”
이 땅의 일개 왕이, 나와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하나님, 영원하신 여호와 엘로힘,
“그가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아주 개인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성도 개개인이 모두 다 그 언약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위해 화목하셨다면, 그것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화목하셨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가 온 세상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나로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는지 그것이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가 나로 더불어 언약을 맺었다는 확신은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확신을 주신다면,
그의 구원은 나의 것이요 그의 마음은 나의 것이며 그 자신도 나의 것입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언약은 영원히 지속되는 언약입니다.
영원한 언약이란 시작도 없으며 절대 끝나지도 않는 언약을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불확실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다”(딤후2:19)는 사실을 알고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시89:34)라고
여호와가 친히 하신 약속을 갖고 있으니,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입니까?
비록 나의 집이, 내 마음의 소원만큼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죽어가던 다윗이 노래했던 것처럼, 이 말씀을 노래할 것입니다. <스펄전
※연말 연초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분이 많습니다.
특별히 내 개인적으로 듣는 음성도 필요하겠습니다만,
(위 글에서 스펄전 목사님은) 성경에는.. 이미 많은 언약들이.. 나와 체결되어 있다는 군요.
◑3. 영적 월식 요12:35~46 출처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12:46
개기월식을 보았습니다. 지구의 그림자가 환한 보름달 위로 천천히 미끄러져가면서
달을 검붉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어두움(월식)은, 하나님의 창조의 한 부분이지만
영적인 어두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목사 알렉산더 맥라렌은
“가장 짙은 어두움은, 빛을 거부한데서부터 비롯되고,
빛을 소유하고도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의 주위에 두터운 암흑의 구름을 (마치 월식처럼) 쌓아올리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 자초한 마음과 생각의 영적 월식을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3)
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바로 우리의 어두움을 끝내려고 오신 구주에게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36,4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빛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대를 위해 빛나고 있는 빛으로 오라
내 위로 따스하게 빛이 밝아왔으니
한 때 난 눈먼 자였으나, 이젠 볼 수 있네
이 세상의 빛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네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어둠에 걸려 넘어질 일이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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