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그릇 레6:24-30 07.06.08.설교스크랩, 출처
본문은 속죄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 주어지는 직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속죄제를 드릴 때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어떻게 다룰 것이며
또 어떤 절차를 통해서 처리해야 될 것이냐?
등에 초점을 맞추어, 분문이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거룩한’ 속죄 제사
▶그 속죄제를 드릴 때.. 특징적으로 우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룩’입니다.
구분되어졌다는 것이에요. 차별화되어졌다는 겁니다.
제사행위가 그렇고, 제물이 그렇고,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구분되어져 있고, 차별화되어져 있는.. 그러한 거룩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 짧은 본문에 ‘거룩하다’는 말이 무려 5번이 나올 정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거룩하냐 하면
‘그 속죄제의 제물을 삶은 그릇에 대해서
토기인 경우는.. 그 속죄제물 고기를 삶은 그 토기 그릇을 아예 깨부숴버리고,
그 그릇이 ‘유기(놋그릇)’이면 깨끗이 닦고, 물에 씻으라는 것입니다. 레6:28
하나님께 속죄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사용된 그 그릇을
절대로 다른 용도에 쓰지 말라는 겁니다. 그만큼 거룩하다고 하는 이야기예요.
하나님께 드려지는 속죄제 제물을 삶았던 그 고기나
그 삶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른 용도로 쓰면 안 된다..
너무 거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신약성경에 나옵니다.
옥합을 깨뜨려서 그 향유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던 마리아의 헌신입니다.
막14:3, 마26:7, 눅7:37
그 사건에 대한 주석책에, 그 당시 풍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이 지나가다가 어느 평민 집에 들러서
그 왕이 어떤 밥그릇으로 밥을 먹었다.. 그러면 그 밥그릇은 깨버리는 거예요.
너무 훌륭하고 너무 존경하고 너무 거룩한 분이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자가 또 사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깨버립ㄴ다.
그래서 옥합을 깨뜨렸다는 의미는..
옥합을 깨뜨리지 않고도, 향유는 부을 수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 그릇에 다시 향유를 담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릇이 귀한 시절이었죠.
근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 이 속에 들어있는 향유를 사용하게 되는 그분이
너무 좋고 너무 존경스럽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분에게 사용된 뒤에는 이 옥합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사용되는 거를.. 아예 끝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거룩성(구별)에 대한 그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습니다.
※TV에 보면, 유럽의 어느 식당에 가면, 손님이 먹고 난 다음에,
그 접시를 식당 바닥에 깨뜨리는 풍습이, 아직까지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 거룩한 속죄 제물을..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이 설교 제목을 <아버지의 밥그릇>이라고 붙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속죄제물을 삶은 토기를 부숴버린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의 밥그릇’과 비슷한 성격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밥그릇을 따로 구분해서
그 밥그릇은 아버지가 드실 밥만 담았습니다. 대부분 가정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보통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시간이 늦기 때문에
어머니도 그러시지만, 특히 할머니의 준엄한 명령이 있으십니다.
아버지 밥그릇을 따로 구별해서, 아랫목 따뜻한 곳에 수건에 싸서 두거나,
이불장의 이불속에 넣어서, 보온을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중에 드시더라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밥을 드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장롱 속 이불을 꺼내서 펴다가, 이불 속 밥그릇이 방바닥에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아버지 것을 구별했습니다.
맛있는 생선을 구웠으면.. 그 생선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둡니다.
불고기를 했으면.. 자녀들이 불고기를 먹기 전에, 먼저 그 불고기를 들어서 떼 놓습니다.
제일 먼저 아버지 것을 구분합니다.
이게 ‘거룩한’ 것이에요. ‘차별화’시키는 겁니다.
모든 반찬 어떠한 것이든지 먼저 아버지 것을 따로 구분하고
아버지 밥그릇은.. 언제나 아버지만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밥그릇에 있는 밥을 남은 거라도
식모 누나가 자기 수저를 넣어서 먹는 것을 보면.. 할머니가 아주 야단을 칩니다.
혹시 남은 밥을 먹더라도, 반드시 그 밥을 들어내어, 자기 그릇에 담아서 먹어야 합니다.
그 밥그릇 채로 먹는 것은, 야단맞았습니다.
그렇게 구분을 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제가 우리집 막내아들이에요.
아버지가 귀가하시면, 형들은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 인사를 하고선
자기들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시면
꼭 아버지 밥상 옆에 붙어 있었어요.
제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버지가 밥을 이렇게 드시다가
아버지는 밥그릇을 조금 남겨서 내어놓습니다. 상을 약간 뒤로 물리치십니다.
그러면 그 남은 밥과 반찬은,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8식구 중에서, 아버지 밥그릇에 자기 숟가락을 넣어서
밥을 먹는 자는.. 나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밖에 없었어요.
아버지의 밥그릇은 엄하게 구별되었지만,
그 막내아들은 같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지요.
이게 바로 속죄제사에 임하는 제사장에게 허락한 은혜라는 것이에요.
▶그 거룩한 속죄 제물을..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레6:26
그 거룩한 속죄 제물.. 그 그릇까지도 거룩해서 깨뜨려 버려야했던 속죄제..
그렇다면 그 제물을 (제사장이) 먹으면 안 되지요!
그런데, 그 거룩한 속죄 제물을.. 제사장이 먹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밥그릇’처럼 구분될 정도로 차별화되고 좋은 것을
막내아들이 먹을 수 있었듯이,
하나님이 내게도 주신다는 겁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말씀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우리가 그 주님을 먹습니다.
주님의 속죄제의 고기를 먹습니다.
즉, 거룩함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그 고기를 먹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의 뜻은.. 감히 내가 손댈 수 없는 밥그릇이지만
전능한 아버지, 전지하신 아버지, 정말 능력이 뛰어나신 그 아버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나를 사랑하는 그 아버지가
당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거룩하고 그 좋은 뜻을
감히 지렁이 같은 내가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뜻을
아버지의 밥그릇에만 담겨야 될 그 뜻을 내게 내밀면서
“이걸 먹어라. 내 뜻을 먹고 내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서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라.
아들아! 내 딸아! 내 밥그릇 네가 먹어라.”
내미시는 것이
바로 속죄제의 제물을 먹는 제사장의 사건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거룩하심에,
하늘 아버지의 뜻과 섭리와 경륜에,
부족한 우리 인간이 초대되고,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계명은.. 부담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를 얽매이는 그런 어떤 사슬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초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담스러워 해야 될 명령이 아닙니다.
벧전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그 외 적용은 각자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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