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마음의 암 치료 레1:1-17 07.05.30.설교스크랩, 출처
▶육신의 암도 무서운 질병이지만, 사실 마음의 암은 더 무서운 영적 질병입니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죽은 뒤에 다가올 심판과 지옥 이런 것을 생각하면
‘몸의 암’은 비교컨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레위기 전체 주제는 율법을 말씀하시는데, 특별히 제사법과 정결법을 얘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이 살아가는 규정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규정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받은 백성들의 운명적인 존재의 형태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묶여 있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면, (내가) 하나님과 괄호로 묶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과 함께 2인 3각의 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람직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평생의 과제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성공이 과제가 아닙니다. 내 비전.. 이런 것에 연연해 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같은 것을 염두에 둘 여지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에요.
가장 바쁘고 절박하게 내가 해결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2인3각처럼 묶여서 함께 살아가야 되는,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신 하나님,
내 앞에 지금 존재하고 계신 이 하나님, 이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
이 분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성도의 과제라는 것이에요.
내 인생의 꽃을 피우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레위기의 제사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이게 왜 힘이 들어요?
우리가 더럽잖아요. 우리가 죄인이지 않습니까?
그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하나님과 함께 묶여 온전한 파트너십을 이루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제사라는 것이 그러기 위한 장치입니다.
레위기가 힘주어 말하는 제사라는 것이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주 온전하게 해주어서
하나님과 묶인 상태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제사인데,
레1장에는 그 첫 번째로,『번제』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번제’ 히브리말로 ‘올라’(#5930)입니다.
‘하늘로 오르다’라는 뜻입니다.
우연의 일치로, ‘올라’와 ‘오르다’가 발음이 비슷하군요.
그런데 이 번제를 드릴 때에 그 모양이,
우리가 늘 주의 깊게 보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일 수 있는 이 부분이
얼마나 인상적인 지 몰라요.
▶자,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번제라는 제사를 드리는데 어떻게 드리느냐?
소나 양을 가지고 오면.. 제사 드릴 자가 짐승에게 손을 얹습니다.
그러면 내 속에 있는 모든 죄가.. 다 소나 양에게 옮겨 지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주시는 거예요.
그럼 이런 약속을 통해서 내 죄가 다 옮겨졌잖아요.
그 옮겨진 소를 죽입니다. 죽여서 피를 받아요.
철철 피가 나는 걸 양동이에 담아서,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발라요.
그 다음에 가죽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살을 다 저며내요. 각을 떠요.
그 다음에 내장을 다 끄집어내서 씻어요.
정강이, 다리 같은 거 다 깨끗하게 물로 씻어요.
그런 다음에 다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워요.
아니, 어차피 태울 거라면 통째로 죽여서 올려놓으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껍데기를 다 벗겨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다 꺼내고,
정강이 이런 부분을 다 잘라서 토막을 내서, 제단에 올려놓은 다음에 불로 태웁니까?
왜 이렇게 제사를 드려야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내 죄를 없애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활해지니까..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손을 얹고.. 그럼 이 죄가 옮겨간단 말입니다.
그 죄가 옮겨진 동물이 본래 난데..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
껍질을 벗겨내고, 피를 다 뽑아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온 사지를 토막을 내야 될 정도로
죄악이라고 하는 암이 온 몸에 퍼져 있는 상태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에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들자면,
암에 걸린 환자를 수술할 때.. 그게 간단하지 않잖아요.
뭐 째고, 드러내고, 자르고.. 그렇게 (잔인하게) 할 겁니다.
그래야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암을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번제를 이렇게 드린다는 겁니다.
내 영혼의 암을 제거하기 위하여,
태우기 전에 완전히 조각을 내버려요.
칼로 군데군데 다 저며요. 다 벗겨내고 찢어내고 발라냅니다.
왜 이렇게 잔인하게 끝까지 토막까지 내버립니까?
내 죄를 받은 그 짐승이 나와 동일시되는 상태에서
나의 죄악이 어떤 것이냐 하면, 아주 골수에까지, 신체의 가장 깊은 곳까지
죄라고 하는 암이 다 펴져있는 상태인 것을 드러내주시고 있는 겁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 위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렇게 철저하게 아주 골수에까지 파묻혀 들어가 있는
죄악된 인간이 갖고 있는 그 생각과/ 소원과/ 가치관을 그대로 묵과해버린 채,
(즉 철저한 회개의 과정, 번제의 과정을 쉽게 건너 뛰어 버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필요와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그게 아니에요.
뼈 속까지 숨어 있는 죄를 죽이기 위해서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다 저며 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기름기를 잘라내고 정강이를 절단을 내서 다 태워버려야 되는데,
이렇게 철저하게 죽이고 죽이고 죽여야 되는데
지금 내 속에 있는 생각을.. 기독교가 도리어 강화시켜버린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지요. 기독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건 큰일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오히려 암을 확장시켜주는 거예요. 암을 번식시켜 주는 겁니다.
이렇게 완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렸어요.
▶레1:17절에「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뭐냐?
죄악으로 물들고 찌들어버린 인간이 태워져 버리는 것.
즉, 진정한 회개를.. 향기롭게 흠향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화장터에서 사람을 화장하면 어떻게 됩니까? 가루만 남아요. 그게 죽는 거예요.
번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태워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하면
나의 존재 자체를 아예 태워버리는 겁니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나.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 나.
세상에 매여 있는 내가... 완전히 타서 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이러한 영적인 암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게 번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 현실 생활에서 적용해 봐요.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저며 내고, 피를 뽑아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내고,
사지를 절단해서 다 불사를 정도의 죄악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느냐?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판단기준, 내 소원.. 이런 것들이 내 가죽이고, 내 피고,
내 살이고, 내 내장이라는 것이에요. 다 태워버려야 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상태에요.
제가 아는 목사님 사모님이 미국에서 생활하시면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일제 승용차를 어렵게 구입하셔서 타고 다니면서
여름이었으니까 창문 네 개를 다 열고 바람이 이렇게 들어오는데
그 아름다운 동네의 국도와 깨끗한 도로를 달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여건을 허락해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그만 오다가 사고를 당한 겁니다.
차를 폐차 시킬 정도로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겁니다.
그래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고 있는 그 순간에
이런 사고가 날 수가 있느냐?’ 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것을 제 문제로 받아들여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렇잖아요. 환경이 좋습니다. 어렵지만 일제 차량을 구입하셨습니다.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특권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세상적으로 봐도 다 좋은 상태입니다. 그럴 때 감사했습니다.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폐차를 시킬 정도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거죽에 발린 감사일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지금 거죽 밑에 이 벗겨낸 가죽 밑에 살에는 암덩어리가 퍼져 있어요.
다시 말해서 껍데기 하나만 벗겨내도
우리의 감사가 없어질 그런 표면적, 얇은 감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시아 선교에 힘쓰다가, 하나님이 막으시고 마게도냐 사람을 꿈에 보이게 해서
유럽 선교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빌립보는 유럽 선교의 첫 번째 교두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선교의 방향을 바꾸어서, 빌립보로 왔는데
빌립보에서 죽지 않을 만큼 매를 맞게 됩니다.
왜 하나님 뜻에 따라서 타문화권에 까지 진출해서 선교에 힘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랄까, 환영인사가
죽지 않을 정도로까지 매를 맞는 핍박을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 같으면.. 다 때려치우고.. 풀려난 다음에
당장 고향인 소아시아로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 속았다!’ 이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바울의 감사가 어디까지 가야 됩니까?
이럴 때 감사해야 됩니까?
그런데 감옥에서 찬양과 기도를 올리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때 지진이 일어나게 되지 않아요?
그때 감사는.. 표피적 감사가 아니에요.
정말 관절과 골수가 쪼개진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깊은 수준의 감사이지요. 자아가 완전히 번제를 드림을 통해 죽은 사람,
즉 진정한 회개를 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우리의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여러분, 욥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식이 10명이 다 죽었습니다. 한두 명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데려가신 겁니다.
사탄이 데려갔지만.. 하나님이 허락 하에 데려갔으니까요.
그리고 있는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몇 십만 원만 손해를 봐도 벌벌 떨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어요.
몸에 병이 났습니다. 자, 살갗을 벗겨 냅니다. 살을 저며 냅니다.
완전히 사지를 절단해버리는 것 같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 가운데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갖고 가시는군요.”
이게 자아가 죽은 증거입니다.
번제를 통해, 자기 깊숙한 곳이 다 드러내지고, 대수술을 받은 증거라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욥이 회복되었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니라」.
이 정도로 완전히 죽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표현되는 거예요.
▶결국 우리의 과제가 뭡니까?
완전히 죽는 겁니다.
내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번제를 통해.. 완전히 죽는 겁니다.
왜요?
나를 향하신 내 인생을 위한 소원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니까.
내 소원.. 하나도 없어도 돼요.
내가 내 인생의 목적을.. 제발 몰라도 돼요.
내 인생의 목적을 왜 그렇게들 알려고 애를 써요?
나를 꽃 피우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제 인생을 꽃피우기 위하여 살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 성도의 운명은
그게 순적한 길이든지/고통의 길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 꽃 피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자기 인생을 꽃 피우려는 ‘소원’이 약간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번제단에서 더 온전히 가루가 되도록 불살라져야 합니다.
즉, 더 깊이 각을 뜨고, 내장을 드러내고.. 더 깊숙이 회개를 통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 평생의 과제는.. 나의 옛자아를 죽이는 거예요.
그걸 보여주는 것이 번제이고요.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영단번의 제사를 드리셨지만
그 번제의 형식이 아니라, 의미는 오늘날 신약에도 계속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나타나시고, 일하십니다.
죽입시다! 죽여요! 이게 암을 치료하는 법입니다.
우리 전신에 퍼져있는 ‘영혼의 암’을 수술하는 길입니다.
▶암의 특징이 뭐냐면.. 암 말기 때까지 통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암에 걸린 줄도 모르는 겁니다.
마찬가지에요. 지금 교회에 교인들의 상태가 이런 상태에요.
옛자아를 죽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아요. 신앙생활의 과제가.. 옛자아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몰라요.
그러니까 매일같이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법칙'만 쫓아다니고,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어요.
오늘도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번제단에서 내가 완전히 죽게 해달라고 간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불평이 나오지 않고..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도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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