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의 묵상글 4편 모두 펀 글
◑1. 백부장의 기도처럼! 눅7:2~3 출처
이번 학기부터 제가 순장이 되었습니다.
순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보기도하는 순장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기도에 게으름이 없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 순cell group에 처음오신 집사님이 3분이나 계십니다.
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풍성하게 순원들을 보내주시니
저는 복이 많은 순장입니다.
처음오신 집사님들을 소개할 때,
우리 순의 한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자기 하인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한) 백부장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깐 일어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거실을 서성대며 생각+기도를 같이 드립니다.
어제 잠깐 뵈었던 집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요 아직 젊으신 분이신데.. 암이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말이야 순장이지.. 우리 순에는 장로님이 두 분이나 계시고
전임 순장님을 빼면 사실 저 혼자나 다름없어서
등 떠밀려서 당첨된 땜빵용 순장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순에 집사님을 보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이, 저에게 필요하신 것입니다.
순장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요 하나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이렇게 제게 순장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새벽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하지 않으신 분 어디 있을까요?
가정에 문제가 없는 분이 어디 계시며
기도가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 어디 계실까요?
전 사실 저의 기도도 급합니다만
이렇게 기도로서 하나님과 같이 동역하실 기회를 주셨습니다.
백부장같이.. 순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순장이 되고 싶습니다.
백부장 같은 기도하는 순장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세요.
저는 힘이 없답니다. 저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내려 주시사, 기도하는 순장이 되게 해 주세요!
“암 투병이신 집사님의 병이 나을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집사님의 몸을 괴롭히는 암덩어리야, 썩 물러 갈지어다!”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집사님께 들러붙은 암이 물러가고,
집사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게.. 주님, 도와주세요!
◑2. 이스라엘이 광야로 우회한 이유 출13:17~18 출처
요즘 우리가족에게 조그만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주는 아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에 불만이 가득 찾아온 것입니다.
아니 마음속에 불만이 많기에, 친구와 오래 사귀지 못하고 헤어진 것입니다.
아들은 그동안 가족이 자기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불평이 많았던 터였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회계사 시험을 치르고 난 뒤에도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자신이 처지에 대해 비관도 하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아내의 불평도 심했습니다.
생활비가 조금만 모자라도 히스테리를 일으키며, 가족들에게 날카롭게 대했습니다.
거기에 가족들이 모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 역시 마음이 많이 상했으나
같이 싸우기에는 제 잘못이 더 많아..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불평이 쌓이니 무언가 되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짜증을 자주 내고.. 벌써부터 인생이 꼬인다고 불평타령입니다.
불평을 발설하면.. 그게 적어지는 게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내 불평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다시 불평을 일으키고
그 불평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사이에
‘많은 불평’이란 악한 영이 알게 모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 역시 장사(세일즈)하는 사람이라.. 장사(세일즈)로 일어나고 싶은데
아내의 불신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저 참고 있으나 마음속에 억울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평생 장사하던 사람을
50이 훨씬 넘어 장사를 빼고 그 무엇을 하려니..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내를 통해 그 무엇을 말씀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마냥 참고 있는 중입니다.
회사가 한참 잘 나갈 때..
당시 심한 우울중을 앓는 아내를 위해
미련 없이 사업을 버리고 아내를 돌보지 못한 데 대한
저의 죄책감도 작용을 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좋은 사업 아이템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덥썩 붙잡고 사업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내를 불안에 하게 하면서까지.. 사업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가 사업보다 우선이다!’ 이건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사업이 바쁘니 아내가 뒷전이었던 때’와는.. 제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가장인 내가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가정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더 장사해서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려니
마음속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아들 역시.. ‘제 이런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자리를 잡으면.. 성격이 까칠해 질 수 밖에는 없습니다.
까칠해지면.. 친구와도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악한 영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사태를, 불러 옵니다.
그런데 어제 아들이 회계법인의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장에 가기 전날 싸늘했던 집안의 분위기에, 많이 힘들어 했던 아들이었습니다.
더구나 빅4 중에 자기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에
낙점을 받지 못해 낙심이 많았었습니다.
아직 졸업반도 아닌데.. 아들은 벌써부터 조급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불평을 하면 걱정이 찾아오고
걱정을 하면 마음이 조급해져 판단에 무리수를 주게 됩니다.
졸업반인 내년에 하면 될 문제를
벌써부터 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가족 모두 걱정을 많이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제는 면접을 보고나서 문자가 왔습니다.
면접을 잘 봤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저녁에 들어와서 ‘엄마 아빠께 감사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를 꼭 껴안고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자신이 면접장에 가니까
자신은 이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학교의 경우 영어면접까지 까다롭게 보는데
자기 학교는 TO(채용 인원)가 많이 배정되어
비교적 쉽게 면접을 보았다는 이야기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가 보통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 혜택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를 잘 키워주고 이끌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바뀐 게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바뀌니.. 불평에서 감사로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예배도 성실하게 드리고, 감사하며 살겠다고 엄마와 약속을 합니다.
엄마보곤 ‘아빠께 짜증을 내지 말라’고 다짐을 받습니다.
에구구.. 저 녀석, 기특혀 ㅋㅋ
아들의 사과를 받고, 저에게 짜증을 내어 미안하다고, 아내가 제게 사과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 가정을 하나로 만들고 계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 사랑이 머물면.. 서로 사과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에게 감사해 합니다.
전날까지 날카롭고 싸늘하게, 서로가 상처받던 발언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칩니다.
모든 일은 그대로이지만.. 우리의 마음이 바뀌니.. 짜증에서 감사로 바뀝니다.
며칠 전 성경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광야로 우회한 이유는
‘너희들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면, 약해 다시 돌아갈까 그러셨다’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해변)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출13:17~18
얼마나 지혜로운 말씀이신지요!
그래요 우리 마음에 감사가 부족하여 쉽게 무너지니까
이런 말씀까지 주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 가족은.. 지금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입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이 단련 후에는 제가 정금같이 나올 것입니다.
지금은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불평하지 않기,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기..
그리고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지금 글을 쓰는 동안
딸이 방에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헤어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며
제법 큰 소리로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음속으로 뭉클한 감동이 찾아옵니다.
좋은 가족을 주신 주님이여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3. 어머니의 몸뻬 바지
*몸뻬 :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하네요. ‘일바지’가 표준어. 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품이 넓은 바지.
내가 어머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갑자기 돌아가신 다음 날 염습할 때였다.
우리 앞에 누워 계신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주무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입고 계신 알록달록한 몸뻬바지를 보자.. 갑자기 목이 메었다.
평생 쉼 없이 일을 하시고 장사를 하셨던 어머니는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늘 몸뻬바지를 입으셨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어머니의 옷차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 어머니는 멋지게 차려입는데
어머니는 늘 같은 옷에, 같은 머리 스타일로 다니셨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좀 다른 옷 입으면 안 돼?” 하면
어머니는 늘 “난 이게 편하다.”며 말머리를 자르곤 하셨다.
나는 그때 정말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여자인데, 왜 멋지고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으셨을까?’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 입고 싶은 것,
드시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사셨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똑같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놓으실 분,
그분의 이름은 ‘어머니’다.
티끌만큼의 이기적인 욕심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
하나님 사랑의 판박이다.
◑4. 교회 가려고 밤새 콩대 뽑은 소년
심창근 목사님 간증글
▲초등학교 때, 고마운 여전도사님
우리 동네는 진짜 산골이라, 버스도 안 다녔고,
일주일에 한 번 산 밑으로 트럭이 왔어요.
그만큼 깊은 산골이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쯤, 20살 될까 말까 한 여자 분이
흰 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입고 나타나, 동네에 빈 초가집을 빌려
지붕에다 십자가를 붙이더라고요.
그 분이 그 집을 ‘교회’라고 하면서,
창호지에다 찬송가 몇 장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런 걸 써서 부르고,
성경, 노래를 가르쳐주고,
당시에 먹는 게 굉장히 귀했는데, 알사탕 같은 것을 줬어요.
시골에는 놀 게 없잖아요.
겨울에 팽이치기, 연날리기 아니면 자치기, 제기차기 이런 것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거기 가면 사탕 주고, 노래 가르쳐 주고, 성경 가르쳐주고,
또 이야기도 해주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신앙은 없었어요.
▲중학교 때, 최초의 은혜 체험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쯤, 도시에서 목사님이 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그땐 집회를 대개 방학 때 1~2주일 했거든요.
금요일쯤 됐는데 “오늘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실 겁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날 밤에 ‘나에게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보여 주십시오.’ 기도하는데,
막 제 몸이 흔들리더라고요.
‘이러면 안 돼, 내가 바르게 믿어야지, 볼썽사납게 이렇게 흔들리면 되는가?’
하며 안 흔들리려고 하는데, 그러면 더 흔들리는(떨리는) 거예요.
머리도 흔들리고, 무릎까지 떨리고, 온몸이 불같이 뜨거워졌습니다.
‘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새도록 교회 방바닥을 기면서,
‘하나님, 오늘 보여주십시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느낌만 주지 마시고,
제 눈으로 좀 보여주십시오!’ 하고 애원하듯이 기도했습니다.
새벽쯤 됐는데, 제 마음속에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때 저는 ‘하나님을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구나’
그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신앙이 제법 돈독해지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교회 가려고, 손에 피가 나도록, 밤새 콩대를 뽑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버지가 종갓집의 종손이라
제사가 굉장히 많았는데, 그때마다 제가 절을 안 해서 죽을 만큼 맞기도 했죠.
그 당시 아버지 생각으로 그것은 조상에 대한 배신이었어요.
또 교회 가는 것으로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아버지는, 제가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을 막으시려고,
토요일 밤에 일부러 “창근아, 내일 밭에 가서 콩대를 다 뽑아라”고 지시하십니다.
저는 토요일 밤에 잠을 못 자는 겁니다.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내일 아버지께서 밭에 콩대를 다 뽑으라는데,
사실은 교회를 못 가게 하려고 그러시는 건데..’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마음속에 어떤 확신이 오더라고요.
‘지금 일어나라’
그래서 바로 밭으로 달려갔는데, 그때가 그믐이어서,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했어요.
달빛이 없는 밤길은,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발로 더듬어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무엇보다 캄캄하니까 무섭잖아요?
더욱이 그 밭머리의 산은, 낳다가 죽은 아기들을 파묻은 곳인데, 과거에 사산아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고양이가 울면, 사람들은 모두 ‘죽은 아기가 운다’고 믿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믐날 한 밤 중에, 그곳으로 가는 중학생인 제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래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을 불렀지요.
처음에는 잘 부르다가, 밭이 가까워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빡빡 깎은 머리카락도 송곳처럼 쭈뼛 쭈뼛 솟았습니다.
오직 주일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콩대를 뽑았는데,
교회 새벽기도 종치는 소리가 들릴 즈음에, 그걸 다 뽑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정신 없이 잤지요.
일어나 보니, 벌써 교회 갈 시간이 되었어요.
개울물에 가서 세수를 하려고, 손을 물에 집어 넣었는데,
손이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렀죠.
보니까 손이 마구 찢어져 있고, 손바닥에 피가 흥건해요.
어젯밤에 콩대를 맨손으로 뽑다가, 상처가 생겼는데,
어둡기도 하고, 그것도 모를 정도로, 콩대를 열심히 뽑았던 것이죠.
대충 세수하고, 사립문을 나서서 교회로 가려는데
“네 이놈, 너 오늘 뭐하라고 그랬지?”
“콩대는 어젯밤에 벌써 다 뽑아놓았는데요?”
아버지는 밭에 갔다 오더니, 아무 말씀 안하시는 겁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버지가 가서 보니까, 콩대를 막 뽑아놨는데,
콩대 줄기에, 아들의 손에서 나온 피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제가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에 대해 막지 않으셨습니다.
▲연탄 리어카를 끌면서,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나는 20대 초에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떨어지고, 다시 집 짓는 일을 했어요.
어느 날 그 집 여동생이 “오빠, 고등학교 입학시험 볼래요?” 하고 물어요.
“중학교 졸업한 지 5년이나 되었는데, 배운 거 다 까먹었는데 어떻게 시험을 보냐?”
“내가 그 학교 사무원으로 있으니까, 원서를 가져다 줄 테니,
그래도 신청 한 번 해 봐요”
이튿날 진짜 입학원서를 가지고 왔길래,
저는 병천중학교 졸업증명서를 우편으로 신청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가 너무 오래되었지만,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니까,
중학교 졸업증명서를 보내주세요.’
그랬더니 병천중학교에서, 고맙게도,
졸업증명서와 함께, 짧막한 격려의 편지까지 동봉했더라고요.
천안 중앙고에 입학시험을 보러갔는데,
일 하다가 연탄 끌던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갔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관계자들이 잠시 당황하더라고요.
수학시험에 ‘집합’이 나왔는데,
나는 ‘집합’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제대로 풀 수 없었습니다.
시험을 보고, 제가 하던 일을 계속 했는데,
같이 신문 배달하는 학생들이
“형, 고등학교 입학시험 본 거 어떻게 됐어?”
“안 가봤어. 떨어질 게 뻔하잖아.”
“그래도 가봐야지” 하더니
자기들이 막 뛰어갔다 오더니
“형, 형 이름이 앞에 있어”
가보니까, 정말 합격자 명단 맨 앞에 제 이름이 있더라고요.
장학생으로 붙은 거예요.
제가 그 학교 교장선생님 댁에도 신문을 배달하니까,
교장 선생님이 저를 알잖아요.
교장선생님께서 그 후 학교 다니면서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많은 용기를 주셨어요.
고등학교 시험에 합격 후, 아버지한테 무릎을 꿇고
“아버지, 몰래 입학시험을 봤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다행히 장학생이 됐으니, 돈은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아버지가 가라고 하시면 가고, 그러지 않으면 안 가겠습니다.
그 대신 학교에 가게 되면, 수업 끝나고 바로 연탄 끌어서 가족을 돕겠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학교 갔다 오면, 무조건 가방을 집어던지고, 연탄을 날랐습니다.
고등학교를 그렇게 졸업하고,
목사님이 추천해서, 대전에 있는 신학교로 진학했고요. 지금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이 단락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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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명한 외국 사역자의 TV인터뷰나, 또는 그의 유명서적을 읽을 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의 인터뷰나 책에 보면,
자기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고,
자기 예언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자기 가정과 사역은.. 아무 문제 없이 완벽 perfect하다는 내용을 볼 때..
‘정말 그럴까? 좀 틀린 내용도 말씀해 주셨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위에서, 좀 틀렸지만.. 결국 방향을 제대로 잡은 내용’이 나오기에, 스크랩 합니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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