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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LNCK 2012. 1. 9. 11:03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딤후4:3~4        인터넷 설교 일부 녹취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4:3~4



◑1. 세상은 진리를 견디지 못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딤후4:3a


▲사람들은.. 복음을.. 견디지 못해 한다.

‘바른 교훈’은 sound doctrine인데, 건전한 교리

즉 건전한 복음, 십자가의 도를 뜻한다.


본문의 ‘받지 않는다’는 말은..

‘사양한다. No thank you!’ 한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것은 ‘스미마생’(죄송합니다) 하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원래 원어/영어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다.

they will not endure sound doctrine

‘사람들이 견디지 못해 한다. 못 견뎌 한다’는 뜻이다.

‘도저히 듣기 싫어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때가 이르리니’..

즉 말세 때가 되면, 즉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사람들이 바른 복음의 진리를 못 견뎌한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그랬는데,

우리가 이 현실, 시대를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말세가 될수록,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극렬하게 날뛰는데,

그 마귀의 최고로 강한 역사는 ‘핍박’이 아니다. 

핍박을 가하면.. 오히려 교회는 살아난다.


말세 때 마귀의 최고의 훼방은.. ‘미혹’이다.

그래서 미혹을 받아서, 신자/불신자들이 ‘복음을 견디지 못해’ 할 수 있다.


우리 성경에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이다.

‘바른 복음’을 들으면.. 자기 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말세 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그렇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알곡 성도는.. 복음을 견뎌낸다. 복음을 참고 듣는다/ 산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라는 말씀은

‘올바른 복음 sound doctrine을 견디지 못하며..’ 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알곡 성도는 ‘바른 교훈을 견딘다 endure’는 뜻이 되는데,

이 ‘견딘다’(아네코)는 말씀이 성경에 종종 나온다.


히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복음뿐만 아니라, 권면의 말도.. 견딜 줄/용납할 줄 알아야 한다. (아네코)


살후1: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모든 핍박, 환난을 참았다. (아네코)


정리하면, 말세 때 성도들은 <잘 참아야/endure/아네코>해야 하는데

-환란과 핍박을 잘 참고 견디듯이

-권면의 말도 잘 참고 들어야 하며

-더욱이 ‘복음의 진리’도 잘 참고 들어야 하며, 견뎌야 한다. 힘들지만 그대로 살아야 한다.


정직하게 성경을 읽으면.. 정말 듣기 힘든 말씀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설교를 듣기 싫어하는 이유가 2가지인데,

-설교가 내용이 없어서, 뻔한 소리라서 듣기 싫을 수도 있고,

-설교가 너무 후벼 파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고,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말세에,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바른 교훈을 잘 참고 견디어라!’


▲제가 1천2백명 모이는 중고등부 연합수련회에 한 번 참석했다.

어떤 젊은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시는데,

제가 아이들 틈에 섞여서 그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며, 복음을 차근차근 설명하시는데..

그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임을 선포하시는데,


저는 들으면서 속으로 ‘맞다, 맞다’를 연발하며

‘주님 감사합니다. 저런 분이 한국에 계신다는 것이 감사하고,

저런 분이 학생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게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혼자 고개를 계속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설교가 시작한지 5분이 지나자,

곳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일어서서 화장실을 가면,

괜히 아이들이 우르르 무리지어, 그 아이를 따라서 단체로 화장실에 갔다.

‘아이들이라서 철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어쨌든 복음의 진리는..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린 사람만

듣게 되어 있고, 보게 되어 있다.


그렇게 졸고 떠들던 아이들이

동영상 보여 주면.. 좀 쳐다보고

연예인 같은 사람이 강사로 등단하면.. 환호하고 박수치고..


하나님이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바른 교훈을 견딜 수 없어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겔2:5, 7



◑2. 말세 때면 복음도..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인다.


(때가 이르리니)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4:3b


▲신자들이 ‘좋은 말씀, 좋은 찬양, 좋은 교회..’ 라고 말할 때 가만히 보면,

자기 귀에 좋게 들리고,

자기 사정과 형편에 용기와 격려를 주면

- 좋은 말씀, 좋은 찬양, 좋은 교회로 칭송한다.


진리의 기준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진리의 기준과 표준은.. 오직 성경에 있고, 주님께 있다.


오늘날의 세상 가치관이 ‘자기중심적’(실존주의)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판별하기를 ‘내게 유익/내게 무익한 사람' 기준으로 판별한다.

즉, 내 중심적으로 판별한다.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내게는 무익하지만(또는 해롭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참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예수님과 말씀을 표준에 두고.. 거기에 자신을 맞춘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자는.. 자기 자신을 표준에 두고.. 거기에 성경을 맞춘다.


▲오늘날 복음의 주제와 포커스를 ‘예수님’께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쩌다 한 번 부를 수는 있지만,

그 포커스와 목표가 <내>가 되는 것은.. 우려해야 한다.


심리학적 교훈, 자기계발 메시지, 성공주의, 내가 축복받아야 한다는 기복주의..

이 모든 ‘비복음’의 공통점은

그 주제와 포커스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  934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읽기 (강추)  937 ‘하나님 중심으로’ 설교하기 (강추)



◑3. 사람들은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4:4


▲허탄한 이야기

이것은 영어로 myth, fable로 번역했는데,                 *헬, 미소스 

쉽게 말하면 fact의 반대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만이.. fact(사실, 진리)이다.

아무리 비복음은.. 그럴 듯하게 보여도.. 그것은 fact가 아니다.


아무리 강철왕 카네기와 거부 록펠러를 동원해도

실제로 그런 거부가 되는 사람은 확률적으로 미미하며,

또 설령 거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게 참 행복/만족/천국의 삶은 아니다.

 

여러분, 비복음은.. 허탄한 이야기다.

들을 때는,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도 불끈 솟는 것 같지만,

내 현실이 그 얘기대로 되지는 않는다. '허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이미 일어난 fact이고 (허탄한 이야기의 반대말)

     장차 이루어질 일도 fact이다.

     주님은, 역사의 미래를 다 내다 보시면서, 오늘 현실을 창조해 나가시기 때문이다.

     즉 복음과 계시록의 모든 예언은, 허탄한 이야기가 아니라, fact이다.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모호한 내용이 아니라, 확실히 이루어질 내용이란 뜻)

 

▲허탄한 이야기가 횡횡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이켜 그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람들이 ‘비복음’을 듣고, 쉽게 따라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복음’과 비슷한 흥분과/ 감동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비)복음을 들을 때는

순간적으로 용기가 불끈 생기고, ‘You can do it! / Yes, I can do it!’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또 현실에 부딪히면.. 아무 것도 안 일어난다. 여전히 좌절한다.

그 복음이.. 비복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탄은 ‘미혹’으로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는데..

복음의 겉포장을 했지만, 속 알맹이는 ‘비복음’을 넣어서 유통시키고 있다.

소위 말하는 ‘짝퉁’이다.

문제는 이 ‘짝퉁 복음’이,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과연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그 ‘짝퉁 복음’을

가장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그리스도 중심인가?’, ‘자기 중심인가?’ .. 그걸 진단해 보면 된다.


내가 복음의 진리를 듣고 ‘견디는가?’

아니면 복음을 ‘못 견뎌’ 하면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가?


▲주님도 말세에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이미 경고하셨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13:27~28


원수 마귀는 가라지(비복음)를 뿌리며

그것은 알곡 사이에서 함께 자라고 있고, 모양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

오늘날 교회에 옆자리에 같이 앉아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정말 ‘두 사람이 함께 맷돌 갈다가,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게 될 것’이다.


너무 비슷하니까.. 구분이 안 되고, 구분이 힘들다는 것이다.

양과 염소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지만,

그날에 주님은 반드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다.


그런데 그 구분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 스스로 내가 판별이 안 될 수 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나는 일평생 ‘양/알곡’인줄 알고 신앙생활 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염소/가라지’였던 것이다.

이런 하소연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마25:44


그러나 마지막 추수날에는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마3:12


교회를 10년 이상 다녔고, (복 받으려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드렸는데..

‘지옥’에 대해서는,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는 신자가 있다.

 

나아가 ‘지옥’에 대해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듣기 싫고, 나는 거부한다는 신자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 들을 귀가 열리고, 보는 눈이 뜨여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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