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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LNCK 2012. 2. 12. 21:27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마25:1-13            출처

재림예수님을 기다림이 없이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체 그 때를 알 수 없는 예수님을 어떻게 잊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단 말입니까?

'기다림의 미학'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다림의 지루함, 기다림의 짜증, 기다림의 초조함이 아니라,

기다림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알아야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죽더라도 이런 기다림 속에 죽어야.. 진실한 기독교 신앙입니다.

 

 

▲비유의 주안점은.. 등불, 기름의 상징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밝히는 게 아니라,

기다림이 그 주안점입니다.

 

이 ‘열 처녀 비유’에서 등불은 무엇이고,

그 등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냐..

이런 것들이 이 비유의 주안점이 아닙니다.

그냥 기다림 자체가 주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3

여기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을 향하여 깨어있음의 이야기를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는 당시 유대결혼의 풍습에서 비유적으로 따오셔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기다림의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열 처녀는 열 신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될 핵심부분은

기다리는 자세,

기다리는 자들의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 결혼 풍습

유대결혼은 신부들의 들러리가 열 명씩 세워지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신랑을 기다립니다.

 

밤중에 신랑이 오는 이유는

중동 지방에는, 낮에는 무덥기 때문에,

중요한 행사는 시원한 밤에 열립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대부분, 시원한 저녁때 시작됩니다.

 

그러면 결혼식이 어떻게 시작되느냐 하면,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오게 되는데,

 

신부의 들러리들이, 오는 신랑을, 길에서 등불을 들고 환영나가 맞이해서

신부 집으로 들어간 뒤에 문을 닫아걸고, 결혼식을 시작하고

일주일 이상씩을 잔치를 열고 춤을 추며

결혼 피로연이 진행되는 것, 이것이 이들의 결혼풍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랑이 올 때에 당시의 상황이, 핸드폰으로 알릴 수도 없는 것이고

전화로 연락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언제 올지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는 겁니다.

먼 거리를 걸어가던 시절에, 신랑이 도착할 시간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옴으로 그들이 다 잘새…’   마25:5

이 상황(더디 옴)은, 결혼식 때마다 다반사로 일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신랑이 얼마나 더디 올지를 모르고,

때로는 며칠씩 더디 올 수도 있었다고 하는 것 같아요.

 

▲슬기로운/어리석은 처녀의 차이.. 기다림의 목적의 차이 

거기서 ‘신랑을 기다리는 자세’를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슬기로운 자어리석은 자들로 두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슬기로움어리석음으로 나눠집니까?

 

여기에 나오는 '기름은 성령이다' .. 이렇게 얘기하기 이전에,

그런 선입관을 버리고, 우리가 '기다림'에 초점을 맞춰서 이 비유를 대해봅시다.

 

또한 '등불을 준비하지 않았다' .. 이것은 ‘준비성이 없다’ 이렇게 보기 이전에,

그들의 기다림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거예요.

 

①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만, 신랑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신랑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그러면 무얼 기다렸다는 겁니까?

이들은 잔치에 들어가서 노는 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5)라는 구절에 근거해서, 그렇게 봅니다. 

 

잔치에 들어가서 노는 일이, 다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신랑을 맞이하는 일은 단순한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함이, 그들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문이 닫혀서) 잔치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기대했던 그 잔치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②반면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에게 마음이 가있었다는 거예요.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라도.. 참고 기다립니다.

 

‘연애 때 세 시간, 결혼 후 5분’ ..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연애할 때 애인을 기다리는 것은

3시간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기다림이 가능한 이유는,

애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결혼 10년차 남편이

아내를 3시간 기다리는 경우는 아마 역사상 없을 겁니다.

길면 5분 기다립니다.

 

남편이 차 시동을 걸고서,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주말에 모처럼 쉬려고 했는데, 아내가 하도 재촉을 하니까

‘좋다,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을 하자’ 그래가지고

남편은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차 시동을 켜놓고 기다리는데, 아내가 늑장을 부립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와서, 짜증을 팍 냅니다,

아주 오래 기다렸다고 마음은 느끼고 있는데, 실제로 시간을 보면 3분도 안 기다린 거예요.

 

아내는 화장하고 있거나, 열쇠 찾고, 핸드폰 찾느라 지체하는데,

기다리는 남편의 심정은.. 1분이.. 거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3분만 지나면, 고래고래 고함이 나오면서, 짜증이 팍 나는 거예요.

왜 그래요?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이미 기쁨이 아니에요, 10년차 남편들에게는.

빨리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 편히 쉬어야겠다는 목적이 따로 있는 겁니다.

그런 남편에게,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다섯 처녀의 어리석음이 어디서 발생하는가 하면

어리석어서 어리석은 게 아니에요,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이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 거라는 겁니다.

 

아니 신랑이 더디 오는 게 다반사인데

왜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들고서야 신랑을 맞으러 갈 수 있는데…

- 신랑에 대한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마음이 결여된 신자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라는 겁니다.

그리고 잔치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0~13

 

▲예를 들면,
교회에서 일 많이 하시는 권사님들, 예배 자체는 통과의례에요,

예배 끝나고 교제시간을 위해서 빨리 부엌에 가서 음식과 다과를 준비하는 데에

마음이 다 가있어요.

 

그러니까 설교 들으면서 목사님을 향해 ‘아멘, 아멘’ 하지요,

그 뜻이 ‘빨리 끝내세요, 빨리 끝내세요!’ 이 뜻입니다.

 

‘내가 설교 내용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끝내세요, 자꾸 중언부언 하지 말고 빨리 끝내세요!’

이 뜻이라는 겁니다.

 

▲황지우 시인이 쓴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제가 시에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문학성을 갖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워요.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중략)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여러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여러분, 진짜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게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거예요. 무슨 얘깁니까?

 

신랑에게 초점을 맞춘 마음상태에서는

신랑이 그 육체로 기다리는 열 처녀가 있는 공간으로 오기 전에

이미 마음이 신랑에게 가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음이 '신랑'에게 가 있으면

'기다림'이 반드시 있게 되어 있습니다.

또 기다리는 마음이 아름답고요.. 성경은 '슬기로운 처녀'라고 말합니다.

 

▲정리하면

자, 재림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까?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법은

우리 마음이, 주님이 계신 승천하신 하늘로 가는 겁니다.

(아니면, 그는 '어리석은 처녀'입니다.)

 

그 예수님 때문에 일어나게 될 일들, 잔치, 그분 때문에 일어나게 될 역사,

이런 것(여러 종말 현상)들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라는 거예요.

 

오실 신랑에게, 내 마음을 얹어놓으면,

잔치는 염려 안 하고

잔치가 더디게 시작되더라도.. 전혀 상관없어요,

 

그 신랑이 들어가는 대로, 따라 들어가면 되고,

신랑과 만난 상태에서는, 그 신랑이 가는 대로 가면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마침내 나는 주님에게로 가는 겁니다, 마음이 이미.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이게 바로 재림예수님을 기다리는 법입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기다림의 미학 가운데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게 하여 주셔서

우리 마음이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께로 미리 갈 수 있게 하여 주셔서,

지혜로운 다섯 처녀 같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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